우리들의 윤서

강민지 2022. 6. 28.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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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윤서를 모르던 지난 봄 그리고 그녀를 알게 될 앞으로의 수많은 봄.

늦은 오후 익숙한 스튜디오에서 사진가 홍장현은 앞에 피사체를 두고 평소보다 들떠 보였다. “TV에서 보자마자 인스타그램 계정을 팔로했어요”라고 애정 어린 맘을 이실직고하며 그날의 피사체를 ‘보석 같다’고 했다. 메이크업 아티스트 이지영은 그의 무릎을 보더니 혀를 끌끌 찼다. “다리에 왜 이렇게 상처가 났어요?” 이어 ‘헤헤’ 들리는 멋쩍은 웃음. “제가 좀 조심성이 없어서요.” “아우, 우리 아들 같아!” 한편 배우 김혜자는 “대단한 아이네?”라는 평을 내놓았다는데. 그래서 이게 다 누구냐고?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로 데뷔한 배우 노윤서를 두고 하는 말이다.

“김혜자 선생님을 처음 뵌 날이었어요. 제가 ‘내림 바로 빤스인데요’라는 영주의 대사를 읊은 뒤였고요.” 노윤서가 당시를 회상했다. 물론 기억한다. 제5화 제주도 시장 신. 노윤서가 맡은 고등학생 ‘방영주’가 현춘희(고두심)와 강옥동(김혜자)에게 물미역과 고구마를 사는 장면. 정은희(이정은)가 짧은 바지를 입은 영주에게 ‘야, 똥꼬 보여. 바지 내려”라는 잔소리를 던지자마자 영주가 말을 받아치는 장면에서 TV를 보던 나 역시 속수무책으로 폭소했으니까. “김혜자 선생님이 ‘어머, 얘 재미있다’며 즐거워하셨어요. 그리고 잘한다고 칭찬해 주셨죠. 영광이었어요”라며 말을 덧붙였다.

윈피스는 Alexander McQueen.

놀랍게도 〈우리들의 블루스〉는 노윤서의 데뷔작이다. 노희경이 4년 만에 선보이는 작품이고 이병헌, 신민아, 차승원, 한지민, 김우빈 등 내로라하는 배우를 대거 캐스팅했다는 것만으로도 방영 전부터 화제작이었다. 거기서 노윤서는 거의 유일하게 낯선 이름이자 생경한 얼굴이었다. “아무래도 전작이 없다 보니 오디션을 여러 번 봤어요. 촬영감독님, 연출감독님 오디션을 차례로 보고, 그 다음엔 작가님을 만나고 그랬죠. 그중에서 김규태 감독님과의 오디션이 기억에 남아요. 제게 후반부 신의 특정 대사를 읽게 하시곤 그걸 어떤 감정으로 읽었는지 물어보셨거든요. 그러곤 ‘이 감정을 몇 프로 줄이고 대신 저 감정을 몇 프로 더해보면 어떨까’ 하시며 세세하게 디렉팅해 주셨어요.” 노윤서 말고도 수많은 후보가 있었으리라. “그러고 보니 정작 왜 저를 뽑으셨는지 감독님에게 여쭤본 적 없어요. 대신 작가님이 그런 말씀을 해주신 적은 있어요. 제가 대사를 툭툭 내뱉는데 그게 연기하는 것 같지 않고 담담해서 마음에 드셨다고. 그게 영주 같았다고요. 저도 몰랐던 부분이라 그 말씀을 듣곤 ‘아, 그렇구나’ 했어요.”

화이트 크롭트 톱과 슈즈는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데님 팬츠는 Dolce & Gabbana.

그렇게 윤서는 영주라는 캐릭터에 닿았다. 같은 학교 학생인 현과 아이를 임신하게 된 전교 1등 고등학생 역.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인 역할이에요. 대입하기도 쉽지 않았지만 연기할 때 ‘영주라면 이럴 수 있겠다’ ‘영주라면 이렇게 얘기할 거야’라며 몰입했어요. 영주가 매몰찬 구석이 있어요. 말을 직설적으로 하는데, 그런 모습이 멋져 보였어요. 임신 사실을 알게 된 영주가 현에게 “막말로 우리가 그렇게 사랑해?”라고 하잖아요. 저라면 그렇게 얘기 못 했을 거 같거든요. 화나고 예민해도 돌려서 표현했겠죠. 그런 부분이 영주와 저의 다른 점 같아요. 반면 영주가 아버지에게 짜증 낼 땐 거기서 내 모습을 보고 반성도 했지만요.”

블랙 재킷은 Celine.

배우의 길에 들어서기 전, 2000년생 노윤서는 그림을 그리는 평범한 대학생이었다. 예고를 나와 미대에 진학했고, 소장품 중에 물감이 묻어 있지 않은 물건을 찾는 게 쉽지 않다. 지금도 촬영이나 오디션 없는 날엔 성실하게 학교에 간다. “이제 졸업까지 5학점, 한 학기가 남았어요. 수업은 두 과목만 더 들으면 되고요. 다음 학기엔 졸업 전시를 준비해요. 그림은 앞으로도 계속 그리고 싶어요. 그런데 몇 개월만 쉬어도 손이 굳을까 봐 걱정이에요.” 더 어릴 땐 막연하게 선생님이 되리라 생각했다. “장래 희망을 적는 난에 매년 그렇게 적었어요. 선생님, 아니면 미술 선생님. 가르치는 일 자체를 좋아했어요. 대학교 1학년 땐 미술학원 아르바이트를 반년 정도 한 적 있어요. 화실에 다니는 학생들 나이가 초등학교 고학년생부터 고3까지 다양했는데, 제가 ‘빠른년생’이거든요. 고3 입시생이면 저랑 동갑이잖아요. 그런 학생을 대할 땐 더 집중해서 시범을 보여주고 그랬던 기억이 나요.” 다를 것 없는 삶을 살던 노윤서는 대학교 1학년 때 우연히 소셜 미디어로 모델 제의를 받았고, 등록금을 제 손으로 벌어보고 싶은 마음에 일을 시작했다. 처음엔 마냥 어렵고 숙제 같았던 연기는 배울수록 흥미로웠다. “조금씩 달라지는 게 보였어요. 스스로 미세한 변화를 경험할 때마다 재미가 생기더라고요. 그리고 이제 드라마로 현장을 경험했잖아요. 그랬더니 배우라는 직업이 더 좋아졌어요. 용기 내 새로운 걸 배우고 도전했는데 그게 재미까지 있다니. 그런 일을 만나는 게 쉽지 않잖아요!” 듣는 사람까지 덩달아 설레게 하는 목소리였다.

원피스는 Saint Laurent by Anthony Vaccarello.

“데뷔 후에 달라진 건 사실 없어요. 학교에서 같은 실기실 후배나 동생이 귀엽게 ‘마이쮸’ 하나 주면서 ‘언니, 드라마 잘 봤습니다’라고 해주는 정도? 그리고 식당에서 밥 먹고 나갈 때 종업원 분들이 아는 척해주시는 거.” 노윤서가 강조하듯 말을 이었다. “그거 말곤 달라진 거 없어요. 하나도.”반나절을 함께 보낸 후 그를 보내주며 이제 무얼 할 거냐고 물었다. “집에 가서 씻고 과제해야죠. 내일까지 제출해야 할 게 있어서. 그러니까 오늘밤 12시, 아니 11시 55분이요!” 스물두 살, 이제 막 데뷔를 마친 노윤서가 봄처럼 생글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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