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인으로 성공해 백인으로 추락한 애버크롬비

김형욱 2022. 6. 27.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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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화이트 핫: 애버크롬비&피치, 그 흥망의 기록>

[김형욱 기자]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화이트 핫> 포스터.
ⓒ 넷플릭스
 
2013년 10월 31일, '애버크롬비&피치(이하, '애버크롬비')'가 서울 청담동에 매장을 오픈하면서 한국에 정식으로 상륙했다. 애버크롬비는 일찍이 '우리는 백인을 위한 옷을 만든다, 아시아나 아프리카 지역에는 진출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바 있는데 미국 내 실적이 부진해지면서 고육지책으로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마저도 용이하지 않았는지 몇 년 되지 않아 철수해 버렸다. 

애버크롬비가 한국에 정식으로 상륙하기 전부터도 그 명성을 익히 들어왔다. 역사가 오래 되기도 했거니와 1990~2000년대까지만 해도 애버크롬비는 미국을 대표하는 패션 브랜드이자 전 세계적으로도 큰 인기를 끈 '쿨함'의 대명사였기 때문이다. 옷을 입는다기보다 이미지를 입는다고 하는 게 맞다 싶을 정도의 브랜드를 구축하고 있던 애버크롬비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영화 <화이트 핫: 애버크롬비&피치, 그 흥망의 기록>(이하, '화이트 핫')은 제목과 부제 그대로 애버크롬비의 흥망을 들여다본다. 그 속엔 애버크롬비가 흥할 때도 망할(추락할) 때도 중심에 있었던 '백인의 백인에 의한 백인을 위한' 노골적인 브랜드 이미지가 있다. 즉, 애버크롬비는 백인 덕분에 최고의 자리에 올랐고 백인 때문에 추락을 면치 못했다. 

나도 저렇게 될 수 있어!

애버크롬비는 일찍이 1892년 데이비드 T. 애버크롬비가 미국 뉴욕 맨해튼에 자신의 이름을 딴 아웃도어 용품점을 열며 시작되었다. 꽤 잘 되었던지 그 유명한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단골 고객이었다고 한다. 헤밍웨이 하면 낚시, 사냥 같은 이미지가 떠오르지 않는가. 그런 그가 애버크롬비를 애용했다는 건 애버크롬비의 초창기가 얼만큼 잘 나갔는지에 대한 반증이다. 1904년엔 에즈라 피치가 합류하면서 지금의 애버크롬비&피치로 이름을 바꿨다고 한다. 

이후 애버크롬비는 오랫동안 아웃도어 이미지를 고수했는데 1970년대 이후 사냥 인구가 줄어들면서 경영난에 시달렸고, 1977년에 처음으로 파산을 면치 못했다. 이후 수차례 주인이 바뀌었고, 1992년 의류 사업가 출신 마이크 제프리스가 CEO 자리에 오르면서 일대 혁신을 감행했다. 아웃도어 부문를 정리하고 1020세대를 대상으로 한 캐쥬얼 브랜드로 변신한 것이다. 

그 중심엔 '상의 탈의한 근육질의 젊은 백인 남성'이 있었다. 그들은 화보 속 모델로 활동하며 '미국적인 이미지란 이런 것이다'라는 걸 정확히 어필했을 뿐 아니라 강렬한 비트가 요란한 분위기의 오프라인 매장에서 고객들을 직접적으로 상대하기도 했다. 타 브랜드와 다르게 일반인 모델을 전면에 내세우며 젊은 고객들로 하여금 '나도 저렇게 될 수 있어' 하는 마음을 들게 했다. 미국에선 그야말로 신드롬에 가까운 인기였다고 한다. 너도 나도 애버크롬비. 

명명백백 인종차별·외모차별

하지만 애버크롬비는 빠르게 정점으로 치고 올라갔던 만큼 빠르게 나락으로 떨어진다. 그들을 성공으로 이끈 바로 그 전략 때문에 말이다. 마이크 제프리스 CEO는 애버크롬비를 '백인의 백인에 의한 백인을 위한 브랜드'라고 당당히 외쳤다. 그게 1990~2000년대 미국의 '쿨함'을 상징한다고 당당히 외쳤다. 수많은 젊은이가 호응했다. 그런데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애버크롬비는 마이크 제프리스의 방침에 따라 내부 구성원의 태반을 백인으로 채웠다. 유색인종은 거의 채용하지 않았다. 모델이 동양을 비하하는 듯한 포즈를 취하곤 했다. 동양계 미국인을 타깃으로 한 티셔츠를 내놓은 적이 있는데 오히려 동양을 비하하는 듯한 디자인이었다. 또한 애버크롬비의 옷들은 기본적으로 백인의 체격에만 맞게 만들어져서 동양인, 흑인, 히스패닉이 입기엔 적합하지 않다. 명명백백 인종차별적인 정책의 일환이다. 

마이크 제프리스는 "젊고 아름답고 마른 이들만 우리 옷을 입으면 좋겠다"든지 "뚱뚱한 사람들은 우리 매장에 들어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같은 발언 수차례 공식적으로 내뱉었다. 하여, 애버크롬비는 여성 의류를 라지(L) 사이즈까지만 생산하기도 했다. 명명백백 외모차별적인 발언이자 정책이다. 

일련의 발언과 정책 때문에 '애버크롬비 불매 운동'이 확산되기도 했고 줄소송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위기를 감지한 애버크롬비는 정책을 선회하기도 했지만, 세계 금융위기를 겪고 패션 의류 업계의 지각 변동까지 합세하며 추락을 면치 못한다. 결국 2014년 마이크 제프리스가 퇴임한다. 

나락으로 떨어진 애버크롬비

애버크롬비의 흥망은 한때 전 세계 문화를 선도한 '미국 스타일'의 흥망과 결을 같이 하는 것 같다. 여기서 말하는 미국 스타일은 '백인 스타일'을 지칭하는 것인데, 백인을 선망하고 따라 하고 백인처럼 되고 싶어 하는 게 당연했을 때가 있다. 2010년대 이후 전 세계 문화는 '다양성'으로 선회했는데 거기에 자연스레 미국 스타일의 자리는 없었다. 

미투 운동이 패션계로도 확산되었던 2018년에 애버크롬비의 이미지를 만들어 낸 전설적인 사진작가 브루스 웨버가 수많은 성폭행 혐의로 기소되기도 했던 바, 그는 애버크롬비 남성 모델들을 자신의 집으로 불러 '성공'이라는 키를 쥐고 성폭행을 저질렀다고 한다. 작품에 인터뷰이로 출현한 전 애버크롬비 모델은 브루스 웨버의 부름을 거부했다가 채 1분도 되지 않아 해고당했다고 증언했다. 미국 문화의 추락과 결을 같이 한 '미투 운동'에 애버크롬비의 상징과도 같은 사진작가가 연류되었다는 것 자체가 큰 의미를 갖는다. 

CEO를 교체하고 그동안의 인종·외모 차별적인 정책을 180도 바꿨다고 해도 애버크롬비&피치가 드라마틱한 반등을 선보이는 게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이미 유력 브랜드들은 오래 전부터 탄탄하게 반 인종·외모 차별적인 정책을 실행하며 고객들에게 다가갔기 때문이다. 과거 애버크롬비의 '배타적' 정책처럼 눈에 확 띄는 모습을 선보이기도 힘들고 또 선보일 수도 없고 말이다. 긴 역사를 뒤로 하고 사라지느냐 흡수되느냐 명맥만 이어가며 언젠가 올 수도 있는 재기의 순간을 노리느냐, 그것이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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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김형욱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 singenv.tistory.com과 contents.premium.naver.com/singenv/themovie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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