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여전히 아직 다 알지 못하는 얼굴, 전도연

이마루 2022. 6. 27.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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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보다 인간다운 한편 야생적 본능으로 번뜩이는 존재. 우리가 여전히 아직 다 알지 못하는 얼굴, 전도연은 어디로든 갈 수 있다.

Q : 소식이 많이 들립니다. 영화 〈비상선언〉 개봉이 8월로 확정되고, 새 드라마 캐스팅 소식도 있어요. 팬들은 전도연의 일상을 보는 가장 좋은 방법은 변상현 감독의 SNS 계정을 보는 거라고 하지만요

A : 아, 그거요(웃음). 〈길복순〉 ‘쫑파티’ 사진들이에요. 코로나19로 한동안 이런 걸 전혀 못 하다가 정말 오랜만에 다 함께 시간을 보냈거든요. 촬영하는 동안 틈틈이 찍은 사진도 있고요.

은은한 광택이 돋보이는 블랙 트렌치코트와 스퀘어 이어링, 펌프스, 스타킹은 모두 Saint Laurent by Anthony Vaccarello.

Q : 어디든 원하면 훌쩍 떠날 수 있을 것 같은 전도연의 모습을 담고자 합니다. 빈티지 카가 스튜디오 밖에서 기다리고 있죠. 그러고 보니 〈접속〉 〈밀양〉 〈멋진 하루〉 등 운전석에 앉은 전도연의 모습은 꽤 익숙해요

A : 면허는 기억이 잘 나지 않을 정도로 오래전에 딴 것 같아요. 아마도 스물서너살쯤? 어릴 때는 운전을 하고 싶잖아요. 운전면허증을 따는 게 굉장히 어른이 된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고요.

Q : 운전이 주는 효용감이나 즐거움도 있죠. 내가 원할 때 어디든지 갈 수 있다는 것도 그렇고

A : 저도 그럴 줄 알았던 것 같아요. 하지만 결국 일탈에 운전 실력이 쓰이지는 않더라고요. 촬영으로 워낙 여기저기 많이 다니기도 하고, 무엇보다 제가 살짝 길치에 고속도로를 무서워해서….

Q : 고속도로를 무서워하나요

A : 네. 고속도로는 길을 한번 잘못 들어도 계속 가야 하잖아요. 그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어요.

레이스 디테일의 화이트 슬립 드레스와 볼드한 페이크 퍼 코트는 모두 Saint Laurent by Anthony Vaccarello.

Q : 그래도 훌쩍 떠나거나 도망치고 싶을 때도 있지 않을지

A : 매일 그런데요? 오늘 촬영도 그랬고요(웃음). 겁도, 두려움도 많아서 내가 잘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항상 갖고 있어요. 항상 모든 것에서 도망치고 싶습니다. 그렇다고 도망친 적은 한 번도 없지만요.

Q : 〈엘르〉와는 5년 만의 만남입니다. 생 로랑을 입고 카메라 앞에 선 전도연의 모습은 어떨지 많이 기대됐어요

A : 정작 저는 기대를 잘 안 하려는 편이에요. 기대하면 그 기대에 못 미쳤을 때 오는 실망감이나 상실감이 있잖아요. 기대 혹은 바람과 부합하는 현실은 다르니까요. 어릴 때는 그런 걸 좀 힘들어했던 것 같아요. 지금은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지만, 매 순간 최선을 다해요.

블랙 피크트 라펠 재킷과 레이스 팬츠, 펌프스는 모두 Saint Laurent by Anthony Vaccarello.

Q : ‘최고다’ ‘독보적이다’라는 이야기를 듣는 배우지만 항상 도망치고 싶고, 스스로에 대한 기대는 없군요(웃음). 그럼에도 피하지 않은 결과, 어떤 것이 남던가요

A : 자신에 대한 끝없는 발견이죠. 대부분 사람들처럼 저 또한 자신감은 없어도 책임감은 강해서요. 해내고 난 뒤에야 비로소 내가 이런 것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돼요. 최근 촬영을 마친 〈길복순〉에서 액션 연기가 그랬어요. 되게 위축돼 있었거든요. 남자 배우들은 아무래도 액션영화를 할 기회가 많다 보니 똑같이 연습해도 동작도 빨리 외우고 습득력도 빠르더라고요. 그런데 저는 그렇지 못하니 연습을 정말, 계속, 많이 했죠. 조금씩 몸에 동작들이 익숙해지면서 ‘이 고난도 액션을 내가 해냈구나’ 싶은 순간 엄청 뿌듯했어요.

Q : 〈접속〉의 꼬불꼬불한 단발, 〈너는 내 운명〉의 꽃무늬 원피스, 〈멋진 하루〉의 스모키 화장…. 돌아봤을 때 전도연 ‘룩’으로 떠오르는 장면이 생각보다 많더라고요. 스타일링을 마친 순간 완벽하게 캐릭터와 일치됐다는 느낌이나 만족감을 얻은 적 있나요

A : 매 작품이 그랬어요. 제가 인물을 만들어가는 데 의상은 굉장히 중요해요. 연기로 세심하게 표현한다지만 이 인물이 어떤 사람인지, 우리는 외형적으로 보고 평가하잖아요. 의견도 많이 내요. 캐릭터 안으로 들어가다 보면 막연했던 이미지가 구체화되면서 지금 상황에서 이 인물이라면 이런 옷을 입지 않을까? 이런 색감이 어울리지 않을까? 하는 것들이 보이거든요. 왜 그런 기분이 드는지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요.

우아한 실루엣의 블랙 드레스, 퀼팅 디테일의 볼드한 로고 장식이 특징인 ‘이카’ 백은 모두 Saint Laurent by Anthony Vaccarello.

Q : 그중 가장 마음에 든 작품을 꼽는다면

A : 오늘 촬영장에 오기 전 어쩌다 보니 〈무뢰한〉을 끝까지 다시 봤는데요. ‘김혜경의 의상이 되게 좋다, 인물이 확실히 잘 보여졌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영화사 대표와 감독에게 ‘좋은 작품인 것 같다, 감사하다’라고 오랜만에 안부 겸 연락을 하고 왔습니다.

Q : 배우들은 대본을 ‘책’이라고 부르죠. 책을 통해 가장 먼저 작품을 보고요. 어떻게 그려질지 궁금한 장면, 직접 해내고 싶은 대사 같이 미시적인 부분에 영향을 받아 출연을 결심한 적도 있나요

A : 제 대사가 아닌, 상대 배우의 대사에 끌렸던 적은 있어요. 〈피도 눈물도 없이〉에서 독불이(정재영)가 “내가 그렇게 싫냐, 시발년” 이러고 죽는데 너무 인상적이라 정재영 배우에게 그 대사만은 잘해 달라고 말했죠. 그냥 그 말이…. 굉장한 사랑 고백처럼 들렸어요. 결코 올바른 표현 방식은 아니지만 독불이가 사랑을 표현하는 투박하고 폭력적인 방식인 거죠. 진짜 잘해 달라고 집요하게 말했던 것 같네요(웃음).

Q : 엉뚱한 짝사랑을 하거나, 희생할 가치가 없어 보이는 남성에게 헌신하거나, 끝이 좋을 리 없는 사랑에 빠지거나…. 누군가는 ‘어리석다’ ‘무모하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랑에 빠진 인물을 많이 연기했습니다. 그런 열정에 휩쓸리는 여자들을 전도연은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나요

A : 저도 궁금해요. 왜 그런 이야기가 좋은지. 저를 아는 사람들도 많이 물어보거든요. 내가 아는 전도연은 그렇지 않은데 왜 작품 속에서는 그렇게 희생적인 캐릭터들을 하냐고. 저는 제가 경험하지 못한 특별한 상황과 이야기에 끌리는 것 같아요. 사랑이라는 건 너무나 다양하고, 우리가 본 것보다 보지 못한 게 더 많을 수도 있잖아요. 그에 대한 관심이나 호기심이 있나 봐요. 비록 그게 주류의 이야기가 아닐지라도요. 그런데 이제 그만하려고요. 주변에서도 그만하래요.

레이스 디테일의 화이트 슬립 드레스, 볼드한 페이크 퍼 코트는 모두 Saint Laurent by Anthony Vaccarello.

Q : 더 해주세요(웃음). 실제 전도연은 그런 캐릭터들과 거리가 있지만 주변에 그런 맹목적인 사랑을 하는 지인이 있다면

A : 제 주변에는 이제 연애 안 하는 올드미스들밖에 없는데(웃음). 제발 연애해야 한다, 감정을 아끼지 말라는 이야기는 많이 해요. 한 번 사는 인생이니까, 연애를 좀 했으면 좋겠다 싶어서요.

Q : 그게 만약 해로운 관계라고 해도

A : ‘좋다’ ‘나쁘다’는 건 타인이 객관적으로 판단하기 어려워요. 애인과 싸웠다고 안 좋은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나쁜 놈 같지만, 그런 관계를 지속한다는 것은 내가 알지 못하는 어떤 게 있기 때문이거든요. ‘이건 잘못된 거야, 헤어져’라고 말하기 힘들죠. 그리고 사실은 설령 좀 잘못됐다 해도 그냥 하면 좋은 게 연애 아닐까 싶기도 해요.

Q : 연애의 어떤 점이 그렇게 강력한 힘을 가진 걸까요

A : 판타지잖아요. 결혼 같은 제도에 들어오지 않는 한, 저는 연애 감정이나 사랑이 판타지라고 생각하거든요. 현실에서 판타지를 줄 수 있는 건 사랑뿐이고, 거기서 오는 에너지가 있죠. 예를 들어 누가 갑자기 예뻐지고 분위기가 달라졌어. 그럼 밑도 끝도 없이 “쟤 연애하나 봐, 요즘 사랑하나 봐”라고 하는 것처럼. 그런 밑도 끝도 없는 말을 생각하는 건 우리가 설명할 수 없는 에너지를 오직 연애를 통해 느끼기 때문이고, 그런 에너지를 줄 수 있는 건 사랑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Q : 모성 이야기를 해볼까요. 2007년 〈밀양〉 이후로 여러 ‘엄마’ 역할을 맡았습니다. 지금 〈밀양〉을 다시 보면 당시 연기를 하면서 스스로 불신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예요. 이후 실제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고, 또 여러 상황에 처한 어머니를 연기하며 내 안의 ‘모성’은 이런 것이구나 알게 된 것이 있나요

A : 모성은 희생인 것 같아요, 결국. 저는 아이 엄마이기 때문에 일하면서 또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대해 최대한 지지하고 희생하지만 가끔 다 때려치우고 싶고, 도망도 가고 싶거든요. 아이를 낳기 전에는 아이를 낳으면 우리 엄마가 내게 한 것처럼 할 수 있을 줄 알았어요. 그런데 그렇지 않더라고요. 낳았다고 해서 내가 상상했던 엄마가 되는 게 아니라는 것, 어마어마한 노력과 희생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느껴요. 내가 엄마라는 역할로 만들어지는 중이구나 싶기도 하고요.

은은한 광택이 돋보이는 블랙 트렌치코트와 스퀘어 이어링은 모두 Saint Laurent by Anthony Vaccarello.

Q : 그간 알지 못했던 세계와 감정을 알게 됐다는 건 당신에게 좋은 일인가요

A : 힘들어요. 그냥 사는 것도 힘든데(웃음). 그런데 저는 그런 부분을 아이에게 이야기해요. 노력은 하고 있지만 부족한 부분이나 때때로 잘못된 판단에 대해. 아이에게 내가 하는 건 어쨌든 교육이잖아요. 그 과정에서 방식이 올바르지 않다고 생각될 때는 이야기합니다.

Q : 지난해 드라마 〈인간실격〉에서는 완전한 자식이 됐습니다. 부정이는 유산으로 아이를 잃은 엄마이기도 하지만 아버지 창숙(박인환)과의 관계가 아주 비중 있게 비춰졌어요

A : 어떻게 보면 〈인간실격〉이 전하려는 이야기 중에서 사람들이 가장 편하게 다가가고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관계가 부정과 아버지 이야기였던 것 같아요. 부정이가 겪는 상황은 사실 모호하잖아요. 저 또한 부정이가 현실이나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기연민에 끝없이 빠져 있는 인물이라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실제의 저와 굉장히 다른 인물이기도 하고요. 작가님과도 이야기를 많이 나눴죠. 이해시켜 달라고.

Q : 부정과 창숙의 집도 그랬지만 복도식 아파트, 오피스텔 방, 단칸방, 오래된 주택…. 소시민적 공간에 놓인 전도연의 모습을 곧잘 봐요. 연출된 것이지만 실재하는 이들의 생활감이 묻은 장소들에 자꾸 들어감으로써 상상하게 되는 게 있나요

A : 공간은 제게 옷과 비슷하죠. 어떤 차림으로 어떤 공간에 있느냐를 통해 인물이 많이 설명되니까요. 대본을 읽고 상상할 때보다 현장에 갔을 때 인물과 더 가까워지거든요. 공간의 움직임, 어떤 자세로 그곳에 있는가도 중요하고요. 그런데 생각지도 못했던 공간과 미술이 준비된 게 〈길복순〉이었어요. 재미있었죠.

레이스와 골드 버튼 장식의 벨벳 블랙 원피스는 Saint Laurent by Anthony Vaccarello.

Q : ‘싱글맘으로 이중생활을 하는 초A급 킬러’. 복순에 대한 설명입니다. 외적으로는 〈카운트다운〉의 차하연이나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의 연희와 좀 비슷하려나 싶어요

A : 아뇨. 전혀, 전혀 달라요.

Q : 그렇군요(웃음). 최근 인터뷰들을 보면 아직 배우로서 내가 하지 못한 역할이 많고, 보여주지 못한 게 많다는 이야기를 꾸준히 했어요. 그런 확신은 어디에서 비롯했을까요

A : 그냥 보고 싶은 거예요, 저도. 오늘과 내일이 다르고 감정과 에너지가 날마다 다르듯 내가 살아온 만큼 앞으로 살 날 동안 뭔가 더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이죠. 과연 내가 정말 나를 다 알까? 새로운 환경이나 상황, 이야기에 빠지면 또 다른 게 있지 않을까 하는 것. 저는 되게 소모당하고 싶어요. 잘 활용되면 좋겠고요.

Q : 첫 넷플릭스 영화 〈길복순〉이 그런 돌파구가 될 수 있을까요

A : 〈길복순〉은 변상현 감독과 꽤 오래 알고 지내며 그가 본 제 모습을 많이 투영한 영화예요. 희생과는 거리가 먼 ‘포식자’로서의 전도연을 담아보고 싶다는 아이디어에서 시작했고요. 감독님이 대본을 쓸 때마다 가끔씩 모니터해 달라고 보내는데 도통 볼 시간이 안 나더라고요. 결국 한 번에 몰아서 봤는데, 너무 캐릭터가 일관성이 없는 거예요. 무슨 캐릭터인지도 모르겠고. 그 말을 했더니 “선배님이 그러세요”라고 하더라고요.

레이스 디테일의 화이트 실크 드레스와 라텍스 소재의 더플 코트, 슈즈와 초커는 모두 Saint Laurent by Anthony Vaccarello.

Q : 그 말을 들었을 때 어땠나요

A : 아, 내가 그렇구나 했죠 뭐. 말했듯이 내가 나를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모를 수도 있잖아요. 그런데 누군가 나를 그런 시선으로 본다니 흥미로울 따름이에요.

Q : 누군가 인간 같지 않거나 혹은 너무 인간다울 때 우리는 ‘짐승 같다’고 말합니다. 여러 인물에 들어갔다 나오고 많은 삶을 이해한 배우로서 인간의 본성에 대해 내린 결론이 있다면

A : 가장 보기 힘든 것이 인간의 본성 아닐까요? 본성이라는 것은 동물적이고 원초적이잖아요. 어떤 극단적인 상황에 처하지 않으면 드러나기 어려운데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시스템이나 환경에 맞춰 생활하죠.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 어떤 모습이 나올지 자신조차 알지 못한다고 봐요.

Q : 연기 혹은 현실에서 전도연이 대면하기 힘든 감정은

A : 두려움, 외로움, 어쩌면 시간이나 세월 그 자체일 수도 있고요. 대답이 좀 막연하긴 하지만 죽을 때까지 결론을 낼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섬세한 골드 플라워 레이스 소재의 시스루 톱과 브라운 팬츠는 모두 Saint Laurent by Anthony Vaccarello.

Q : 살면서 그래도 ‘이런 태도나 마음가짐은 잃지 않는 게 좋겠구나’라고 생각하는 것은

A : 저는 자유로움을 잃고 싶지 않아요. 살다 보면 우리는 늘 어딘가에 매일 수밖에 없잖아요. 그래도 그런 역할에 갇히지 않고 마음만은 자유롭고 싶어요. 아이에게도 가정교육이라고 불리는 것 외에는 선택을 주려고 해요. 좀 더 자유롭게 자기가 원하는 것을 선택할 수 있도록요. 대신 그에 대한 책임은 져야죠. 책임감과 자유로움은 다른 이야기 같지만 결국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자기가 선택한 것에 대해 비겁해지지 않고, 핑계 대지 않고 책임져야 한다는 점에서요. 내가 해봤기 때문에 스스로에게 더 큰 자유를 줄 수도 있고, 혹은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게 얼마만큼인지 판단할 수도 있게 되죠.

Q : 나이를 먹고 여러 경험을 한다고 자연스럽게 좋은 어른이 되는 건 아니더군요. 전도연은 인간적으로 ‘레벨 업’하고자 노력했던 시기가 있나요

A : 딱히 성숙해야 한다거나 내가 어른이기 때문에 어른스러워야 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데요. 다만 요즘 내가 나를 충분히 사랑하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많이 생각해요. 배우라는 직업은 사랑받는 직업이지만, 사실 그것만으로 만족하지는 않잖아요. 어떨 때는 그 사랑이 과한 것 같기도 하고, 부족한 것 같기도 한데 시시각각 달라지는 감정에서 내가 어떻게 하면 나를 잃지 않을까 생각하면 결국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느냐에 달렸더라고요. 끝없이 나를 채찍질해 봤는데, 과연 스스로에게 충분한 보상을 해줬는지에 대해 생각 중이에요.

퍼 트리밍 장식의 롱 코트는 Saint Laurent by Anthony Vaccarello.

Q : 어떤 걸 해주기로 했나요. 나를 위해

A : 칭찬 좀 해주자! 남이 해주는 칭찬 말고 내가 나를. 그간은 내 마음이 어떤지와 상관없이 상황에 맞추려는 성향이 더 있었던 것 같아요. 어떤 상황에서 ‘전도연은 이렇게 할 거야’ 같은 게 있잖아요. 그런 것들에 제가 좀 불편해도 맞추려 했죠. 얼마 전 촬영 중에 부상을 입었어요.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좀 과부하가 걸렸구나 싶었죠. 그런데 촬영해야 되니까, 사람들이 물어보면 ‘괜찮다’고 하는데 내가 왜 괜찮다고 하지? 어젯밤에 아파서 막 울었는데? 나 안 괜찮은데? 싶더라고요. 그래서 생각하게 된 거예요. 내가 진짜 괜찮은지 아닌지 좀 돌봐야겠다고.

Q : 오래 지켜보고 함께한 이들이 주변에 많아 보입니다. 그들이 있어 마음이 든든한가요. 때로는 나 또한 그들에게 괜찮은 동료인 것 같기도 하고요

A : 저는 너무 괜찮은 동료고 괜찮은 사람이죠. 모든 관계에서 그냥 다 안 주고, 안 받고 싶기도 하지만요(웃음). 저는 사람들이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비사교적이에요. 부지런하게 인간관계를 유지하거나 다가가는 걸 잘 못 하죠. 관계를 유지하려면 내가 그 자리에 맞춰야 하는 상황이 많은데 그게 좀 힘들더라고요. 그래서 오래 알고 지낸 사람들이 있다는 게 되게 든든해요. 자주 만나지는 않지만 내가 어떤 일에 처했을 때 앞뒤 안 보고 나를 믿어주는 사람들이 있으리라는 것.

새틴 블랙 셔츠와 팬츠, 벨트, 펌프스, 골드 이어링은 모두 Saint Laurent by Anthony Vaccarello.

Q : 사과하는 것과 용서하는 일, 전도연은 두 가지를 잘하는 사람인가요

A : 사과 엄청 잘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하잖아요. 저도 그렇고요. 그런 건 빨리 사과하는 편이고, 내가 용서해야 하는 상황에 대해서는 많이 이해하고 열어두려고 하죠. 그런데 아무리 입장 바꿔 생각해도 납득이 안 되는 게 있잖아요. 우리가 ‘선’이라고 부르는 걸 넘는 것. 그 선을 판단하는 가장 가까운 기준은 과연 ‘인간적이냐’ 하는 것이에요. 그래도 인간적으로 그럴 수 있느냐 혹은 비인간적이냐. 네, 그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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