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대왕>이 생각나는 2010년대 대표 하이틴 SF판타지
[김성호 기자]
독자 머릿수로만 따지자면 이 시대 문학시장의 주도권은 영미권 하이틴 소설이 장악한 지 오래다. 조앤 롤링의 <해리 포터>부터 스테파니 메이어의 <트와일라잇>, 수잔 콜린스의 <헝거 게임>, 베로니카 로스의 <다이버전트>, 올슨 스캇 카드의 <엔더의 게임>까지, 가히 세계적 흥행이라 불러도 좋을 만한 성과가 끊이지 않고 있다.
이들 문학엔 분명한 공통점이 있다. 제가 알던 세상의 경계를 처음으로 넘어선 아이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며, 이들이 기성세대가 만든 질서에 저항하며 성장한다는 내용이 줄기를 이룬다는 점이다. 때로는 믿기 힘든 마법의 세계이고, 때로는 서로를 위협하는 이종족 간의 이야기이며, 또 때로는 인간성을 억압하는 암울한 시대상과 그에 대한 저항의 이야기이지만 그 주체와 갈등만큼은 대체로 유사하다.
무협도 걸작이 될 수 있음을 입증한 김용의 시대에도, 전설을 엮어 생명력 있는 세계를 창조한 톨킨의 시대에도 청소년 독자를 대상으로 한 판타지 문학은 주류로 불린 적이 없었다. 그러나 21세기 들어 이들 소설보다 더 많은 관심을 받는 장르는 찾아보기 어렵게 됐다.
적잖은 유망한 작가들은 빅토르 위고나 어니스트 헤밍웨이 대신 조앤 롤링과 수잔 콜린스를 선망하며 글을 써내려 간다. 영상화 할 원작을 찾는 데 눈을 부릅뜬 업자들은 상품성 있는 작품과 선계약을 주저하지 않는다. 시리즈 3부작이 완결되고 유명 감독과 계약해 영화화까지 앞두고 있는 <레드 라이징> 역시 그렇게 탄생한 작품이다.
▲ 레드 라이징 책 표지 |
ⓒ 황금가지 |
수백년 뒤 태양계, 인간이 인간을 착취한다
배경은 지금으로부터 수백 년이 흐른 뒤의 태양계다. 인류는 자원이 고갈된 지구를 떠나 화성을 비롯한 다양한 행성과 위성들을 개척해 놓은 상태다. 테라포밍이라 불리는 기술은 지구와 유사한 대기와 토양을 만드는 것이다. 이 기술로 수많은 우주공간에 인류가 퍼져나간 지 오래다.
주인공은 십대 소년 대로우다. 철저한 신분제 사회에서 가장 낮은 '레드'라 불리는 신분인 대로우는 화성 깊은 곳에서 목숨을 걸고 자원을 채취한다. 레드는 체제와 상위 신분에 대한 복종을 미덕으로 삼는다. 어쩌다 이에 반하는 행동을 하는 사람이 나오면 통치자들은 법에 따라 매섭게 응징한다. 충분한 먹거리도, 의약품도 주어지지 않는 열악한 삶 가운데서 저항하는 이들은 채찍질은 물론, 교수형을 받기 일쑤다. 대로우의 아버지 역시 그렇게 목숨을 잃었다.
소설은 대로우가 지배자인 골드로 위장해 그들의 학교에 입학하며 본격적으로 전개된다. 아버지에 이어 어린 아내까지 반역의 죄를 뒤집어 쓰고 처형당하자 대로우 역시 체제에 저항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대로우는 발달한 성형기술의 힘을 빌려 외모를 골드일족처럼 꾸미고 그들의 자식이 다니는 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수련을 거듭한다.
SF판타지판 <파리대왕>, 잠을 잊는 재미
소설의 대부분은 대로우와 그가 속한 학급이 다른 학급들과 경쟁하는 이야기로 채워진다. 학급마다 요새 하나씩이 주어지는데 저마다의 전략과 전술을 통해 다른 요새를 점령하면 되는 것이다. 수개월에 이르는 긴 시간 동안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요새를 점령해야 하는 과제가 인간 내면의 야만성을 일깨운다.
적잖은 평론가들이 <레드 라이징>을 이야기하며 노벨문학상 수상작인 윌리엄 골딩의 <파리대왕>을 언급하고는 하는데, 아이들이 규제 없는 세상 속에서 싸움을 하며 어른들의 사회와 다르지 않은 모습들을 내보이는 부분이 유사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고 보면 영미권 하이틴 소설들은 십대 학생들의 사회를 적극적으로 다루기를 즐겨한다. <해리 포터>, <헝거 게임>, <다이버전트>, <앤더의 게임> 등이 모두 그러했듯, <레드 라이징> 역시 동급생의 사회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주요하게 다룬다. 아이들의 사회가 인간사회의 가장 원초적인 특징을 적나라하게 드러낼 것이라는 <파리대왕>식 기획에 더해, 주요 독자층이 학창 생활에 한창인 나이대인 만큼 공감대가 큰 이야기를 놓치고 싶지 않다는 판단이 작용했을 테다.
<레드 라이징>을 쓴 피어스 브라운은 아날로그 시대의 감성과 디지털 시대의 감각을 동시에 누린 1988년생이다. 언론과 국회에서 다양한 직업을 경험했으나 어느 곳에서도 분명한 성취를 거두진 못한 열망 가득한 젊은이가 이 작품 하나로 전 세계적 성공을 경험했다. 없어서 못 읽는다는 하이틴 SF판타지 장르에서 수준급 작가로 우뚝 선 피어스 브라운이 다음엔 또 어떤 작품을 내놓을지 벌써부터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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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김성호 시민기자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독서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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