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까지 경주 와서 불국사랑 첨성대만 보고 갈래?
[운민 기자]
▲ 경주향교 지난 2월 다녀온 경주향교의 대성전, 신라의 국학 이래로 전래된 것으로 조선시대 당시의 건축양식이 잘 보존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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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가탑과 다보탑이 자리한 불국사, 석굴암, 에밀레종(성덕대왕신종), 첨성대, 천마총, 대왕암 이름만 들어도 전 국민이 아는 신라 천년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명소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학창 시절에는 수학여행의 단골 코스로 성인이 되어서는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로 한 가정을 이루고 나서는 가족들과의 나들이 코스로 경주는 꾸준히 사랑을 받고 있다. 화려한 볼거리에 비해 먹거리가 부족하다는 혹평도 종종 듣지만 황리단길을 통해 젊은 층이 꾸준히 유입되면서 새로운 맛집들이 계속 생겨나는 추세다.
발길을 동쪽으로 돌리면 주상절리를 간직한 아름다운 동해바다가 있고, 북쪽으로 이동하면 고택과 어우러진 계곡도 자리해 있다. 이처럼 경주는 굳이 필자가 첨언하지 않아도 이미 수많은 매체와 책에서 충분히 다루고 있다. 그러면 왜 지금 다시 경주를 알아 보고자 하는 것일까?
▲ 최부자집의 전경 교촌마을에 위치한 최부자집은 한국의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전형으로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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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가 멸망한 지 1000년 넘는 세월이 지났지만 아직도 경주는 서라벌의 간판을 여전히 달고 산다. 하지만 경주는 신라가 멸망한 이후에도 경상도를 대표하는 주요 도시로서 꾸준한 문화와 정체성을 쌓아왔다. 고려, 조선, 대한민국으로 이어오는 오랜 기간 동안 이 도시의 존재감은 결코 작지 않다.
우선 첨성대와 반월성 사이 계림을 지나 그 사잇길로 걷다 보면 어느 순간 한옥의 처마들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꽤 규모가 있는 한옥마을이 우리의 눈길을 끌게 된다.
▲ 집경전 태조 이성계의 초상화를 보관했던 경주의 집경전터, 임진왜란 이후 소실되어 현재는 터만 남아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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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신라의 왕궁은 무너져버렸지만 시가지는 거대했고 황금빛 사찰이 빛나 지나가는 사람이 구경하기 바쁜 화려한 도시로 남아있었다. 하지만 번성했던 도시는 몽골 군대의 말발굽 아래 모든 것이 무너졌다. 81m의 높이를 자랑했던 황룡사 9층 목탑도 이 시기를 전후해 불타 없어진다. 조선시대에 들어와 경주는 다시금 부흥기를 맞이한다.
▲ 구야마우찌병원 일제강점기 때 건립된 구야마우찌병원 현재는 화랑수련원으로 사용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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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서경사 경주시내에 위치한 일본식 건축양식을 지닌 구서경사, 1932년 일본에서 건축자제를 들어와 건축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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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식 사찰이었던 구 서경사와 구 야마구찌 병원이 바로 그곳이다. 여기서 조금만 걷다 보면 조선시대의 관아와 새롭게 복원되고 있는 경주읍성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다. 다른 도시에 있었다면 문화재적 가치를 인정받아 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게 할 수 있는 장소지만 다른 신라의 유적들로 인해 관심도가 떨어지는 사실이 씁쓸하기만 하다.
게다가 근래에 들어 경주는 지속적으로 새로운 유물들이 발굴되고 기존 유적들의 재정비가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 대릉원과 돌담길을 맞대고 있는 쪽샘고분군과 조만간 고분전시관으로 변모할 금관총이 그 대표적인 예다. 이탈리아의 로마, 중국의 서안, 일본의 교토 못지않은 2000년 고도로서 특정 시대에 국한되지 않는 이 도시의 매력을 함께 총체적으로 알아가 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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