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잡'을 뛰면서도.. 가난해지지 않기 위해 내가 한 일

김혜영 2022. 6. 27.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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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가한 아빠와 쓰리잡, 그럼에도 '가난해지지 않는 마음'

[김혜영 기자]

 책 '가난해지지 않는 마음'
ⓒ 놀
양다솔 작가의 에세이 <가난해지지 않는 마음>을 읽었다. 제목부터 마음에 쏙 들었다. 유년기와 청소년 시절, 그리고 20대까지 내내 가난했던 나에게 '가난'은 언제나 탐구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너무 익숙해서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던 것. 그것이 내겐 가난이었다. 가난해도 자유로운 삶을 살고 싶었다. 내 욕망을 다스릴 줄 안다면 가난해도 자유롭고 행복해질 수 있을 것 같았다. <가난해지지 않는 마음>은 마치 그런 내 마음을 표현한 제목처럼 보였다.

나의 20대도 작가님만큼 가난했다. 사랑하는 엄마가 있고 쓰리잡을 뛰었다는 작가님을 보니 내가 좀 더 가난했던 것 같다. 주변엔 도움을 청할 어른이 한 명도 없었고 생활비와 등록금을 벌기 위해 휴학하고 포잡을 뛰었다.

내 주변엔 나만큼 많이 일하는 20대가 없었고 나만큼 가난한 대학생도 없었다. 30대 중반이 된 지금, 나는 도대체 그 시절을 어떻게 견딘 걸까 종종 생각한다. 그게 궁금해서, 그때의 나를 이해하고 위로하고 싶어서 젊은 여성 작가들이 자신의 '가난'을 이야기하는 에세이를 자꾸 찾아 읽는다. 

책으로 만난 양다솔의 삶은 작가님의 친구 이슬아 작가의 표현대로 궁상맞고 사치스럽다. 욕망을 다스리는 정도를 넘어 대부분을 아예 억누르며 살았던 20대의 나와는 달리 자신을 엄청나게 꾸미고, 있는 힘껏 표현하고, 매 끼니를 최선을 다해 차려 먹는 그 정성스러운 사치에 웃음이 났다.

과해 보이고 무리하는 것으로 보이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작가님의 글을 읽으며 그런 방식이 바로 작가님 스스로를 돌보는 방식임을 이해하게 되었다. 내가 나를 눌러가며 삶을 버텼다면 작가님은 일단 쏟아내는 방식으로 삶을 버텨낸 것 같았다.

마음이 가난해지지 않기 위해 내가 한 일

작가님이 20살 때 출가한 아빠 이야기를 한 부분에서는 많이 울었다. 읽는 내내 사랑하는 사람이 줄 수 있는 고통에 대해 생각했다. 자식이 성인이 될 때까지 책임을 다했다면 이후 부모가 자신의 삶을 사는 것은 자연스럽다. 하지만 그 방식과 과정이 너무도 나빴다.

작가님과 자신의 아내에게 큰 고통을 안겨준 작가님의 아빠를 보며 나의 아빠가 떠올랐다. 무책임하고 무능력해서 새엄마와 나를 너무 힘들게 한 사람. 하지만 나를 사랑했던 마음만큼은 진심인 걸 알아서 마음껏 미워할 수도 없는 사람. 이제는 세상에 없어서 왜 그랬냐고 물어볼 수도 없는 사람.

사랑하는 사람이 주는 고통이란 미워하는 이가 준 고통과는 다른 종류의 것이다. 그 미움은 사랑하는 마음과 섞여 고통받는 사람을 더욱 미치게 만든다. 평생을 안고 가야 하고 해소하는 것이 삶의 숙제가 된다. 너무 무겁고 깊어서 원망스럽다. 아빠로 인해 고통받는 작가님의 모습에서 내 모습이 겹쳐 보였다. 작가님처럼 아빠에 대한 글을 쓰면 조금은 나아질 수 있을까. 나는 아직 자신이 없다.

마음이 가난해지지 않으면 되는 거라고 아무리 생각하고 노력해도 쉽지 않다. 나에게 삶은 따스함이나 평화로움보다 두려움을 더 크게 느끼게끔 만들어 줬으니까. 삶에 불행은 언제나 예고 없이 닥치곤 했으니까. 마음을 다했던 대상이 나에게 끔찍한 고통을 안겨주기도 하고 나 또한 누군가에게 그런 존재였으니까. 예측할 수 없어 두려운 이 삶을 버텨내야 하는데 그게 너무 고단해서 일상의 따사로움을 필사적으로 찾아야 했으니까. 내가 얼마나 나약하고 하찮은지를 세상은 매번 다양한 방식으로 확인시켜 주었으니까.

그럼에도 나는 겁도 없이 누군가와 평생을 함께 할 거라는 약속을 하고 부모의 삶이 얼마나 무거운 것인지 알지도 못한 채 아이를 낳았다. 내가 약하니까 서로 의지하기 위해 결혼을 했고 서툰 사랑밖에 주지 못하지만 그럼에도 내가 가진 것 중 가장 좋은 것을 주고 싶은 대상을 만나고 싶어 아이를 낳았다. 그 무모하고 섣부른 선택의 이유는 바로 마음이 가난해지고 싶지 않아서였다. 사랑하고 사랑받고 따뜻해지고 싶어서.

물질을 향한 욕망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도 없고 언제까지 고통스럽게 노동하는 삶을 살아야 할지 알 수 없지만 마음만큼은 가난해지지 않는 삶을 앞으로도 살고 싶다. 궁상맞고 사치스러운 삶이 작가님을 가난하지 않게 만드는 어떤 낭만이라면, 나의 낭만은 내가 만든 가족일지도 모르겠다. 20대의 외롭고 가난했던 나를 토닥이며 지금 내 곁에 있는 남편과 아이의 얼굴을 떠올린다. 그리고 가만히 읊조려본다.

"나는 가난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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