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기에 아기 낳은채 30분간 폰 했다..'영아 살해' 엽기 전말 [사건추적]

김준희 2022. 6. 26. 2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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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전주시 만성동 전주지방법원. 김준희 기자


전주지법,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선고


“혹시 살아있을 수도 있으니 확인해 보자.”(20대 친모)

“나도 확인을 못하겠어.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있어.”(40대 친부)

갓 출산한 아들을 화장실 변기 물속에 방치해 숨지게 한 친부모가 당시 주고받은 대화 일부다. 이들은 모두 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겨졌지만, 최근 법원에서 잇달아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풀려났다.

전주지법 형사5단독 노미정 부장판사는 지난 22일 영아살해 혐의로 기소된 A씨(27·여)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다. A씨는 지난 1월 8일 오후 6시45분쯤 전북 전주시 덕진구 자택 안방 화장실에서 자신이 낳은 아들을 남편 B씨(43)와 공모해 변기 안에 30분가량 방치해 살해한 혐의다.

앞서 같은 혐의로 기소된 남편 B씨도 비슷한 형량이 선고됐다. 전주지법 형사1단독 김승곤 부장판사는 지난 17일 B씨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다. 120시간의 사회봉사와 5년간 아동 관련 기관 운영 및 취업 금지도 명령했다.

도대체 A씨 부부는 무슨 사연이 있기에 이런 끔찍한 범행을 저지르게 됐을까. 1심 판결문을 바탕으로 사건을 재구성했다.


아이 원치 않았지만 거듭된 임신


26일 전주지법 등에 따르면 A씨 부부는 같은 병원에서 근무하던 동료였다. 교제를 시작한 4년 전부터 동거해 왔다. A씨는 초혼, B씨는 재혼이었다. A씨는 지난해 10월부터 B씨 전처가 낳은 아들도 함께 키우며 살았다.

경찰 조사 결과 둘 사이엔 최소 세 차례 임신이 이뤄졌다. 하지만 2019년 4월에 낳은 아이는 출산 직후 보육원에 보냈고, 두 번은 임신 중절을 택했다. 모두 “남편이 아이를 원하지 않는다”는 게 이유였다.

이후 A씨는 또다시 아이를 가졌으나 임신 8개월 차인 지난해 12월 말까지 이 사실을 숨겼다. 남편이 알면 재차 임신 중절을 종용할 것을 우려해서다. A씨 예상은 맞았다. 뒤늦게 아내의 임신 사실을 안 B씨는 경제적 사정과 아버지의 병환, 전처 아들 양육 문제 등을 들면서 임신 중절을 요구했다.

A씨도 남편 뜻을 따랐다. 남편 도움 없이 아이를 낳거나 키울 여건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해서다.


중절 수술되지 않자 낙태약 구매


부부는 애초 산부인과를 알아봤다. 하지만 ‘임신 후기여서 중절 수술을 할 수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이들은 인터넷을 통해 국내에서는 사용이 허가되지 않은 낙태약을 구매했다. 올해 초 180만 원을 송금하고 약을 받았다.

A씨는 낙태약 복용 후 진통을 느끼기 시작했다. 출산이 임박해 왔음을 느낀 A씨는 1월 8일 오후 6시45분쯤 안방 화장실 변기에 앉은 상태에서 분만했다. 임신 약 31주 된 사내아이였다.

분만을 마친 A씨는 1분 뒤 B씨에게 “아이를 낳았으니 화장실로 오라”고 말했다. 이에 B씨가 “움직일 수 있냐, 확인할 수 있냐”고 묻자 A씨는 “아파서 못 움직이겠으니 (직접 와서) 확인해 봐. 혹시 살아있을 수도 있으니”라고 했다.

하지만 B씨는 “나도 확인을 못하겠다.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있어. ○○(전처 아들) 데려다 주고 오겠다”며 집 밖으로 나갔다. A씨는 남편이 올 때까지 변기에 앉은 채 기다렸다. 그동안 휴대전화를 이용해 인터넷에서 ‘탯줄 처리’ 등을 검색했다.

A씨는 잠시 후인 오후 7시11분쯤 “집에서 아이를 낳았다”고 119에 신고했다. B씨가 전화로 “지금 엘리베이터 타니까 이제 119에 신고해”라고 말한 직후였다.

A씨 부부는 오후 7시15분에야 변기 물에 잠긴 아들을 꺼냈다. 영상 통화를 하는 과정에서 갓난아이가 변기 속에 들어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119 종합상황실 직원의 지시에 따라서다. 아이는 병원 응급실로 옮겨졌지만, 오후 11시쯤 사망했다.

대법원 정의의 여신상. 중앙포토


법원 “아이가 살아있을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방치”


재판부는 “A씨 부부가 영아가 살아있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식했는데도 분만 직후 약 30분간 아무 조치 없이 변기 안에 방치해 살해해 죄질이 나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갓 태어난 아기의 생사는 보호자의 양육 의지나 환경에 따라 결정돼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다만 A씨에 대해선 ▶초등학교 때부터 부모의 보호를 받지 못한 점 ▶불우한 성장 과정이 인격 형성에 악영향을 미쳐 성년이 된 후에도 자기 표현이나 주장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점 ▶아이를 출산하고 싶지만 전적으로 의지하는 남편이 반대하자 순응하는 쪽을 택해 사건에 이른 점 ▶분만 직후 신체적·정신적으로 매우 불안정한 상태였던 점, B씨에 대해서는 ▶시신을 유기하지 않은 점 ▶늦게나마 신고한 점 등을 각각 참작했다.

한편 전주 사건 이후 영아살해죄 형량에 대한 논란이 이어지기도 했다. 한쪽에선 영아가 사회적으로 보호받아야 할 약자이기에 해당 범죄를 무겁게 다뤄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다른 쪽에선 범행 배경이 상당수 경제적 어려움 등 불안정한 출산 환경인 만큼 형량 상향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전주=김준희 기자 kim.ju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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