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수궁 정원 연못에 '황금 연꽃'이 피었습니다

손영옥 2022. 6. 26.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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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셸 오토니엘: 정원과 정원'展
덕수궁·서울시립미술관 74점 전시
2011년 퐁피두센터 이후 최대 규모
프랑스 조각가 장-미셸 오토니엘의 작품 ‘황금 연꽃’과 ‘황금 목걸이’가 서울 중구 덕수궁의 연못에 전시돼 있다. 서울시립미술관은 덕수궁을 포함해 서소문 본관에서 ‘장-미셸 오토니엘: 정원과 정원’전을 선보이고 있다. 서울시립미술관·손영옥 기자


가랑비가 내리던 지난 15일 서울 중구 덕수궁. 대한문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오른쪽으로 빠지면 만나는 작은 연못에 노란 연꽃이 정갈했다. 실은 연꽃 모양의 황금색 구슬 조각이다. 프랑스의 세계적인 조각가 장-미셸 오토니엘(58)은 이 연못에 스테인리스스틸 구슬에 금박을 입혀 만든 ‘황금 연꽃’을 설치했다. 연못 가운데 작은 섬의 나무에는 ‘황금 목걸이’를 보일 듯 말 듯 걸었다.

서울시립미술관이 ‘장-미셸 오토니엘: 정원과 정원’전을 시작했다. 미술관 측은 2015년 프랑스 베르사이유 궁전 정원에 작품을 영구 설치하며 유명세를 떨친 오토니엘을 초대하며 서소문의 미술관을 넘어 인근 덕수궁으로 전시 공간을 확대하는 새로운 시도를 했다.

이날 한국 기자들과 만난 오토니엘은 “덕수궁을 방문한 적이 있지만 여기서 전시를 하리라곤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며 소회를 밝혔다. 그가 작품 설치 장소로 정한 연못은 덕수궁의 구석진 곳에 있다. 작품 크기도 작다.

베르사이유 설치 작품이 스펙터클한 크기, 물을 뿜는 분수의 리드미컬한 움직임에 맞춘 역동적 디자인으로 강렬한 인상을 주는 것과 달리, 덕수궁 작품은 작고 은밀하다. 첫눈에 들어오는 그런 크기와 형태가 아니다. 작가는 “베르사이유 작업은 영구 설치인 것과 달리 여기는 일시적인 설치인 점을 고려했다”며 “한국 정원이 갖는 시적인 분위기에 살포시 스며드는 분위기의 작품을 하고 싶었다. 일부러 내밀한 느낌이 나는 곳을 택했다”고 설명했다. 황금색 연꽃은 노랑어리연꽃의 노랑과 색채 상 조응한다. 구슬 연꽃 작업은 진흙밭에서도 꽃을 피워, 정화의 이미지를 가진 연꽃에서 영감을 얻었다.

오토니엘은 1992년 세계적인 현대미술 축제인 독일 카셀도쿠멘타에 초대되며 국경을 넘어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90년대 후반부터 구슬 목걸이 작업을 하며 자신의 이미지를 각인시켰다. 구슬 연꽃은 구슬 목걸이가 변주된 형태다.

미술관에 전시된 작품 ‘스스로 서 있는 목걸이’. 서울시립미술관·손영옥 기자


조각으로서 구슬 목걸이는 어떤 의미일까. 오토니엘은 프랑스 폐광지역인 생테티엔 출신이다. 성장 과정에서 광물 자체에 대한 감각이 발달했다. 그가 유리구슬이라는 형식과 재료에 눈을 뜬 것은 작가로 본격적으로 활동하며 해외 레지던시에 체류하면서부터다. 파리-세르지 보자르(국립미술학교)를 졸업한 뒤 인화 사진에 죽은 나비를 부착하는 작업을 하던 그는 30대 초반이던 90년대에 이탈리아의 레지던시에서 작업하며 유리 세공으로 유명한 베네치아 무라노 섬의 유리 공예 장인과 협업할 기회를 얻었다.

유리 작업의 형태가 하필 구슬 목걸이일까. 이는 신화적 상상력에서 가져왔다. 여신 이슈타르가 목걸이 등 장신구를 벗어 7개 관문을 통과함으로써 마침내 지하세계에 이른다는 메소포타미아 신화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목걸이는 고대 사회에서 주술사의 목에 건 목걸이처럼 마술적 힘과 치유의 힘을 상징한다. 96년 쿠바계 이민자인 펠릭스 곤잘레스 토레스가 에이즈로 사망한 뒤 동료 작가들이 추모 전시를 열었을 때 오토니엘은 유리구슬 1000개를 만들어 관객의 목에 걸어주는 퍼포먼스를 하고 사진을 찍어 전시했다. 이것이 오토니엘의 브랜드가 된 구슬 목걸이 작업의 시초다.

구슬 목걸이는 덕수궁의 나무에도 걸렸지만 서울시립미술관 전시장 안팎에서 만날 수 있다. 전시장 입구에는 커다란 목걸이가 직립한 인간처럼 서 있다. 목걸이의 하단부는 구슬이 상대적으로 커서 광화문 흥국생명 해머링맨의 커다란 발을 보는 듯하다. 목걸이 시리즈는 매듭 시리즈로 진화한다. 매듭 시리즈는 스테인리스스틸 재질이라 거울처럼 관람객의 얼굴과 주변의 풍경을 비추고 반사한다. 매듭 연작은 서울시립미술관 석조 건물 바깥에 수호석처럼 시립해 관객을 맞는다.

미술관에 전시된 작품 ‘푸른 강’과 ‘매듭’ 연작. 서울시립미술관·손영옥 기자


실내 전시장에서 관객을 가장 환호하게 만드는 작품은 ‘푸른 강’이다. 26×7m 직사각형 공간을 7500개 청색 유리 벽돌로 빼곡하게 메워 펼쳐 놓은 뒤 그 위에 스테인리스스틸과 유리로 만든 매듭 조각이 매달려 있다. 푸른 강 위에 은하수가 흐르는 것 같은 경이로운 경험을 제공한다. 청색 유리 벽돌은 피로자바드 유리 산업 지역 장인들과 협업했다. 작가는 ‘푸른 강’ 설치 작업을 2019년 파리 페로탕 갤러리에서 가진 개인전에서 처음 선보였지만 이번 한국 출품작이 역대 최대 규모다.

2011년 프랑스 퐁피두센터 전시 이후 최대 규모로 꾸려진 이번 한국 전시에는 총 74점의 작품이 나왔다. 회화도 끼어 있어 종합선물세트 같다. 수묵화로 그린 장미를 연상시키는 ‘루브르의 장미’는 2019년 루브르박물관 유리 피라미드 개장 30주년을 기념해 제작한 연작이다. 루브르 소장품 중 바로크의 거장 페테르 파울 루벤스가 그린 ‘마리 드 메디치의 앙리’에 등장하는, 땅에 떨어진 장미에서 영감을 얻었다. 루벤스의 회화에서 장미는 붉은색이지만, 죽음보다 강력했던 여왕의 사랑과 권력, 야망과 운명을 상징하기 위해 백금박을 칠한 캔버스에 검은색 잉크로 그렸다.

미술관에 전시된 작품 ‘자두꽃’. 서울시립미술관·손영옥 기자


한국 전시에선 이를 변형한 ‘자두꽃’을 신작으로 내놨다. 꽃잎의 붉은색과 수술의 노란색이 구슬처럼 엮여 상큼한 삼면화 형식의 이 작품은 한국인에게 주는 선물이다. 덕수궁 전시가 시처럼 함축적이라면, 서울시립미술관 전시는 서사가 있는 단편소설집을 읽는 기분을 준다. 8월 7일까지.

손영옥 문화전문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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