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박찬욱이 선사한 "우아하고 고전적인 사랑 얘기"

임세정 2022. 6. 26.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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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은 정훈희 '안개'에서 출발"
탕웨이·박해일 염두에 두고 각본 작업
영화 '헤어질 결심'으로 제75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한 박찬욱 감독. CJ ENM 제공

박찬욱 감독은 마침내, 가장 간결하고 고전적인 방식을 통해 관객을 날 것의 감정 앞으로 이끌었다. ‘아가씨’ ‘박쥐’ ‘친절한 금자씨’ ‘올드보이’. 강렬하고 자극적인 이야기들로 채워져 왔던 그의 필모그래피는 ‘헤어질 결심’에서 아주 다른 결로 걸었다.

이번 영화로 제75회 칸 국제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한 박 감독이 지난 24일 국내 언론과 화상인터뷰를 가졌다. 박 감독은 “고전적이고 우아한 사랑 얘길 만들고자 했다”고 말했다. 그는 “감독의 주장, 정치적 메시지, 영화적 기교나 화려한 볼거리가 없는 순수한 영화, 배우의 연기와 카메라 샷 등 영화를 구성하는 최소한의 요소로 깊은 감흥을 끌어내는 영화를 만들어 보고 싶었다”고 밝혔다.

대중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처음에는 알 수 없었다. 그는 “이런 스타일의 영화가 너무 구식으로 보일 수 있겠다는 걱정이 있었다”며 “한편으론 현대에는 이런 영화가 새로워 보일 수 있겠다는 기대도 있었다”고 돌이켰다.

박찬욱 감독. CJ ENM 제공

영화의 두 주인공은 끊임없이 자제하고 에둘러 말하지만 대화, 눈빛 등 많은 것들이 관능적으로 다가온다. 그는 “에로틱한 느낌을 만들기 위해 배우에게 표정을 주문하거나 특별히 뭔가를 묘사하려 애쓰지 않았다. 그럼에도 관객들이 그렇게 느끼는 것은 ‘센슈얼하다’ ‘섹시하다’ 류(類)의 감정이 얼마나 정신적인 것인지 보여준다”면서 “육체적인 터치보다도 사랑과 관심같은 감정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성적인 즐거움까지도 유발하는지를 알려주는 증거”라고 말했다.

탕웨이와 박해일을 주연 배우로 염두에 두고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영화를 만드는 과정도 예전과 달랐다.

박 감독은 “탕웨이를 캐스팅하기 위해 주인공 서래를 중국인으로 설정했다. 그의 매력을 떠올리는 동시에 ‘이런 모습의 탕웨이를 보고싶다’고 생각하며 각본을 썼다”며 “실제로 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더 장난기가 있는 사람이었고 고집스러운 면도 있었다. ‘나는 이렇게 해야 잘할 수 있는 사람이다. 내 방식은 이런 것’이라는 소신이 뚜렷한 사람이어서 그걸 추후 캐릭터에 반영했다”고 설명했다.

박찬욱 감독. CJ ENM 제공

영화 속 해준은 전형적이지 않은 형사의 모습이면서 배우 박해일 본래의 캐릭터와 비슷하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그는 “박해일이란 사람을 상상하면서 각본을 써보자고 정서경 작가에게 제안했다. 담백하고 깨끗하며 상대를 배려해주는 인간 박해일을 캐릭터에 도입하자고 했다”며 “확고한 직업의식을 가진 고지식한 인물이 자기의 윤리를 배반하는 처지에 놓일 때 딜레마와 고통이 커질 거라고 봤다”고 말했다.

삽입곡이자 엔딩 테마곡 ‘안개’는 영화 속 키워드이자 작품 전반의 분위기를 잘 담는 요소가 됐다. ‘안개’는 박 감독이 가장 좋아하는 가요 중 하나다. 그는 여가수 중 정훈희를 가장 좋아하고 존경한다고도 했다.

박 감독은 “트윈플리오도 이 곡을 커버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때 이 영화가 시작됐다. 가사 중 ‘안개 속에 눈을 떠라 눈물을 감추어라 ’라는 가사가 특히 심금을 울렸다”며 “안개가 뿌옇게 끼어서 시야가 흐릿할 때 눈을 똑바로 뜨고 잘 보이지 않는 뭔가를 열심히 보겠다는 의지와 노력, 그런 걸 생각했다. 이 감흥을 표현할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이어 “영화에 실제 안개도 나오고, 녹색인지 파란색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색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여러가지 불분명하고 불확실한 상태나 사물, 관계, 감정같은 게 있다”고 덧붙였다.

영화 제목을 이렇게 지은 이유는 뭘까. 그는 “보통 결심을 하면 성공하는 일이 드물다. 결심이란 단어는 결심의 실패로 곧장 연결되는 단어”라면서 “‘헤어질 결심’이라는 제목을 지으면 관객이 곧이곧대로 믿지 않을 것 같아 맘에 들었고, 연상 작용을 통해 관객이 능동적으로 참여할테니 바람직한 제목이라 생각했다”고 밝혔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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