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 몸에 들어가고 싶다는 왕, 그 속에 담긴 욕망 [김종성의 사극으로 역사읽기]
[김종성 기자]
지난 18일부터 방송되는 tvN 판타지 주말사극 <환혼>은 사람들의 영혼과 육체가 뒤바뀔 수 있다는 상상에 기초를 두고 있다. 가상의 왕국인 대호국을 배경으로 하는 이 드라마는 이른바 환혼술을 구사하는 도사들을 등장시킨다.
제1회 초반에 임금인 고성(박병은 분)을 알현하러 입궁한 도사 장강(주상욱)도 그런 술법을 선보였다. 병약한 고성은 건강한 몸에 들어가고 싶다며 환혼술을 부탁했고, 장강은 "환혼술은 금지된 사술입니다"라며 거절했다. 감히 어느 몸이 군주의 혼을 받아들일 수 있겠느냐는 것이었다.
▲ tvN <환혼> 한장면. |
ⓒ tvN |
▲ tvN <환혼> 한 장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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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이 타인의 육체를 빌릴 수 있다는 발상
영혼이 다른 사람의 육체에 들어갈 수 있다는 관념은 켈트족의 삼하인 축제에서 지원한 핼로윈데이에도 영향을 미쳤다. 켈트족은 죽은 자의 영혼이 1년간 타인의 몸에 머물다 사후세계로 옮겨가며 죽은 자가 자신이 머물 육체를 찾는 날이 섣달 그뭄인 10월 31일이라는 관념을 갖고 있었다. 이런 관념은 죽은 자의 혼이 자기 몸에 들어오는 것을 막고자 귀신 복장으로 변장하는 풍습을 낳게 했다.
영혼이 타인의 육체를 빌릴 수 있다는 발상은 과학적 가능성 여하를 떠나 인류의 문학적 상상력을 자극해왔다. 우리나라 고려 전기에 해당하는 중국 송나라 때의 <태평광기(太平廣記)> 같은 문학작품에서도 그런 발상이 등장한다.
드라마 <환혼>은 산 자들의 혼과 몸이 뒤바뀌는 장면을 보여준다. <태평광기> 등에 등장하는 것은 죽은 자의 혼이 다른 자의 시신을 빌려 이승으로 돌아오는 차시환혼(借屍還魂)이다.
<태평광기> 속의 차시환혼 사례들을 다룬 안희진 단국대 교수의 '영혼의 교체 - <태평광기> 중의 차시환혼을 논함'이라는 논문은 "차시환혼이라는 4글자의 성어는 처음에 문학작품에서 쓰였다"라며 이렇게 말한다.
"예를 들면, 원나라 악백천의 희곡 작품에 '너희들 잘 들어라. 이건 이도의 시신이고 여기 악수의 영혼이 있는데, 내가 이 시신에 악수의 영혼을 넣어서 살아나게 할 테다'라는 구절이 있다. 또 <서유기>에서는 '유전은 저승 갔다가 되살아났고, 취련은 남의 몸으로 혼이 돌아왔다' 등으로 전개되는 이야기가 있다."-2020년 한국중어중문학회 추계연합학술대회 발표문.
위 논문에 예시된 <태평광기> 속의 차시환혼 사례 중 하나는 당나라 현종(재위 712~756년) 때를 배경으로 하는 이간과 장홍의의 이야기다. 10여 리 떨어진 곳에 사는 이간과 장홍의는 서로 모르는 상태로 지내다가 10여 일 간격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간이 간질병으로 먼저 죽고, 장홍의가 10여 일 뒤 병으로 돌연사했다.
장홍의가 사망한 다음날이었다. 죽었던 장홍의가 일어섰다. 그런데 가족들을 알아보지 못했다. 자신을 이웃 동네 사는 이간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더니 이간의 집으로 찾아갔다.
이간의 가족들 역시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들을 더욱 놀라게 만든 것은 자칭 이간이 집안의 내력을 너무도 소상히 알고 있다는 점이었다. 일을 하는 모습도 이간과 흡사했다. 칼질을 해서 대나무 광주리를 만드는 기술이 생전의 이간과 똑같았다. 결국 가족들은 그를 이간으로 인정했다.
이 이야기 끝부분에서 <태평광기>는 전설적 명의인 편작을 거론한다. "옛날에 편작이 노공호와 조제영의 심장을 바꿨는데, 깨어나자 각자의 집으로 간 뒤 두 집에서 서로의 사정을 확인해야 했다고 하는데, 이로써 보면 이런 일은 사실이지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다"라고 논평한다.
<태평광기>에 나오는 또 다른 사례는 한 동네 사람들 간의 영혼 교체에 관한 것이다. 주인공인 죽계정과 조자화는 11년 간격으로 사망했다. 나중에 죽은 조자화는 며칠 뒤 부활해 문 밖으로 뛰어나갔다. 가족들이 놀라 뒤따라가자 자기는 조자화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목소리도 생전의 조자화가 아니었다. 그는 죽계정의 집으로 달려가 자신이 죽계정임을 입증했다.
두 사례의 공통점이 있다. 먼저 죽은 자의 영혼이 나중에 죽은 자의 육체로 들어갔다는 점이다. 그리고 영혼의 주인공이 부활한 사람의 정체성을 좌우했다. 누구의 몸이냐가 아니라 누구의 혼이냐가 정체성을 결정했던 것이다.
차시환혼 이야기가 이런 구도를 띠는 이유는 <태평광기>에 담긴 또 다른 사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사례의 주인공인 육언은 여름에 죽었고, 사망 열흘이 지나 염라대왕을 알현했다. 염라대왕은 "수명이 다하지 않았으니 돌려보내라"고 판결했다. 그러자 신하들은 육언의 시신이 이미 부패했다고 보고한다. 여름인 데다가 사망 10일이 경과해 여항의 육체로는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이었다.
신하들은 대안을 제시했다. '마침 이담이 죽어서 이리로 오고 있으니, 그의 몸을 이용하면 된다'는 것이었다. 아직 부패하지 않은 시신을 이용해 환생시키자는 것이었다. 염라대왕은 허락했고, 육언은 이담이 누워 있던 관에서 일어났다. 육언 역시 자기 집으로 돌아가 신원을 입증하는 과정을 거쳤다.
육언의 사례는 먼저 죽은 사람이 나중에 죽은 사람의 육체를 빌리는 쪽으로 스토리가 전개되는 이유를 설명해준다. 염라대왕 앞에 갔다가 "너무 빨리 왔으니, 나중에 다시 오라"는 판정을 들었더라도 시신이 이미 부패해 돌아갈 육신이 없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는 관념이 이런 스토리 구조를 낳았다고 볼 수 있다.
사람들의 영혼과 육체가 교환될 수 있는지를 지금의 과학 수준으로는 규명할 수 없지만, 영혼 교체 관념이 오래도록 전해져 온 사실에 함축된 것 중의 한 가지를 생각해볼 수 있다. 과학적 가능성 여하를 떠나, 육체에 가둬지기를 거부하는 인간의 지향성이 이 속에 담겨 있다는 점이다.
차시환혼이나 영혼 교체 이야기에서 인간의 정체성을 결정하는 것은 육체가 아니라 영혼이다. 이런 스토리 속의 영혼은 자신을 가두는 몸에 구애됨 없이 이 육체 저 육체로 옮겨다닐 수 있다. 현실세계에서 지리적·계급적·물질적 한계 등을 규정하는 육체의 틀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로운 세계를 지향하고 싶어 하는 인간의 갈구가 이런 스토리 구조에 담겼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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