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랭크 와일드혼 "제 뮤지컬이 한국에서 인기있는 이유요?"
뮤지컬 ‘엑스칼리버’ ‘지킬&하이드’ ‘데스노트’ ‘마타하리’ ‘웃는 남자’. 올해 들어 국내에서 공연됐거나 현재 공연 중인 이들 대형 뮤지컬 5편의 공통점은 작곡가가 동일 인물이라는 것이다. 그 주인공은 작곡가 프랭크 와일드혼(63). 장기공연이 이뤄지는 대형 뮤지컬의 속성을 고려할 때 와일드혼의 작품이 국내 대극장을 장악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오는 7월 7일엔 와일드혼의 작품 속 넘버들로만 프로그램을 구성한 갈라 콘서트 ‘ONLY LOVE’도 예정돼 있다. 와일드혼에게 따라다니는 ‘한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뮤지컬 작곡가’라는 수식어는 괜한 것이 아니다.
미국 뉴욕 출신인 와일드혼은 서던캘리포니아대학(USC)에서 역사와 철학을 전공했다. 하지만 중학교 시절 피아노를 독학으로 공부하기 시작해 고교 시절 작곡을 시작한 그는 1981년 팝음악 작곡가로 엔터테인먼트 세계에 입문했다. 나탈리 콜, 케니 로저스 등 다양한 가수가 그의 노래를 불렀다. 특히 휘트니 휴스턴이 부른 ‘Where do broken hearts go?’(상처 입은 마음은 어디로 갈까?)는 빌보드 핫100 1위에 오르는 등 국제적으로 히트했다. 이 노래 덕분에 경제적 여유를 얻은 그는 오랫동안 관심을 가지고 있던 뮤지컬에 눈을 돌리게 됐다.
와일드혼은 1990년 자신의 멘토였던 작사가 레슬리 브리커스와 함께 뮤지컬 ‘지킬&하이드’를 선보인 이후 지금까지 25편을 만들었다. 고국인 미국보다 유럽과 아시아에서 인기가 높은 그는 한국, 일본, 중국, 체코, 헝가리 등에서 작품 위촉을 많이 받았다. 미국을 제외하고 일본이 ‘데스노트’ ‘미츠코’ 등 6편으로 와일드혼에게 가장 많이 위촉했다. 한국은 ‘천국의 눈물’ ‘마타하리’ ‘웃는 남자’ 등 3편이다. 다만 스위스에서 초연됐다가 한국에서 전면적 개작이 이뤄진 ‘엑스칼리버’까지 합치면 4편이다.
와일드혼이 ‘웃는 남자’와 ‘마타하리’를 공연 중인 EMK뮤지컬컴퍼니의 초청으로 최근 한국을 찾았다. 지난 23일 서울 강남구 도곡동 EMK뮤지컬컴퍼니 사옥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그에게 ‘한국이 가장 사랑하는 뮤지컬 작곡가’가 된 이유를 들어봤다.
“2004년 ‘지킬&하이드’가 처음 선보인 이후 18년 동안 한국에서 제 작품이 16개 공연됐습니다. 제 작품이 이토록 사랑받으리라곤 저 자신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한국 관객과 제 음악 사이에 낭만적인 연애가 지속되는 것 같아요. 최근 한국에서 제 작품 4개가 동시에 공연되면서 매일 밤 7000~8000명의 관객이 관람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제가 이들 관객에게 감동과 추억을 드릴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저는 정말 운이 좋은 사람이에요.”
국내에서 와일드혼의 인기는 2004년 ‘지킬&하이드’의 초연이 대성공을 거두면서부터 시작됐다. 당시 배우 조승우를 앞세운 ‘지킬&하이드’가 한국 뮤지컬 발전에 큰 전환점이 되면서 ‘드라큘라’ ‘시라노’ 등 그의 다른 작품들도 잇따라 국내에서 공연됐다. 그리고 EMK와 손잡고 ‘마타하리’ ‘웃는 남자’ ‘엑스칼리버’를 만들었으며, 이 가운데 ‘마타하리’와 ‘웃는 남자’는 일본으로 라이선스 판매되기도 했다.
“한국에서 선보인 제 작품들 가운데 ‘스칼렛 핌퍼넬’(라이선스)과 ‘천국의 눈물’(창작)이 성공을 거두지 못했습니다. 다른 작품들이 꾸준히 공연되는 것과 달리 두 작품은 초연으로 끝났어요. ‘스칼렛 핌퍼넬’의 경우 언젠가 다시 무대에 올랐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천국의 눈물’은 당시 제작 과정부터 쉽지 않았지만 저의 ‘한국 형제’ 김준수를 만나게 해줬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김준수는 이후 ‘드라큘라’ ‘데스노트’ ‘엑스칼리버’ 등 저의 다른 작품에 많이 출연했죠.”
와일드혼은 뮤지컬의 본고장이라는 뉴욕 브로드웨이 평단에선 ‘구식 낭만주의자’라는 평가를 받는다. 듣기 쉬우면서도 여운이 오래가는 멜로디를 추구하는 음악 스타일이 20세기 전반 뮤지컬 황금기를 떠올리게 만들어서다. 하지만 현학적이고 냉혹한 비평가들 대신 대중에게 강하게 어필하는 그의 작품들은 미국을 넘어 다양한 나라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특히 2010년대엔 아시아의 일본과 중국, 한국에서 잇따라 신작을 위촉받는 기염을 토하고 있다.
“제 작품이 아시아에서 왜 인기가 있는지 잘 모르겠어요. 그리고 이것을 일일이 분석하고 싶지도 않아요. 다만 브로드웨이에서 일하는 작곡가들이 브로드웨이가 전부라고 생각한다면 저는 국제적으로 관객을 생각합니다. 뉴욕에서 히트해도 다른 나라에서 인기를 얻지 못하는 작품들이 많은 것은 작곡가의 이런 태도와 관련 있지 않을까요? 제 경우 뮤지컬이 아니라 팝음악에서 일을 시작했기 때문에 국제적으로 관객을 생각하며 작품을 쓰는 훈련이 된 것 같아요. 어쨌든 지난 몇 년간 아시아는 전 세계 뮤지컬 시장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시장이 됐고, 제가 아시아 시장의 성장에 조금이나마 역할을 한다는 것이 기쁩니다.”
와일드혼은 한국에서 위촉을 받은 ‘마타하리’ ‘웃는 남자’의 경우 초연 이후 재연 때마다 수정한 버전을 선보였다. 브로드웨이에선 여러 차례의 워크숍과 지역 도시에서의 트라이아웃 공연을 거치는 동안 계속 수정할 수 있는 것과 달리 한국 등 아시아에서는 바로 본공연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그는 “개인적으로는 작품이 본공연에 들어가기 전까지 오랫동안 준비 시간을 가지는 브로드웨이 방식을 선호한다. 한국은 작품을 수정하고 보완하는 시간 없이 본공연에 바로 들어가기 때문에 초연의 긴장감이 더 크다”면서 “한국에서는 브로드웨이 방식으로 작품을 만들 수 없는 만큼 본공연 이후에도 프로듀서 등 관계자의 조언과 관객의 반응을 보며 작품을 수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 뮤지컬 배우들의 기량은 그가 가장 높이 평가하는 부분이다. 김준수를 비롯해 박효신 박강현 박은태 홍광호 옥주현 등 그의 작품에 출연했던 배우들에 대해 그는 “한국 배우들은 영혼을 담아서 노래한다. 영어만 가능하다면 브로드웨이에서도 충분히 통한다고 본다”면서 “앞으로 (내가 음악을 맡은 ‘데스노트’ ‘북두의 권’처럼) 일본 만화를 원작으로 한 뮤지컬이 브로드웨이에서 공연될 경우 아시아 배우들에 대한 수요가 커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어 “요즘 미국에서 BTS로 대표되는 K팝 등 한국 콘텐츠들이 정말 인기다. 하지만 이들 콘텐츠는 온라인을 통해 접할 수 있지만, 뮤지컬은 라이브 공연의 속성상 유통이 쉽지 않아 아쉽다”면서 “여담이지만 얼마전 BTS의 뷔가 콘서트에서 사전음향 체크를 하며 ‘지금 이 순간’(뮤지컬 ‘지킬&하이드’의 대표넘버)을 부르더라. 뷔가 ‘지킬&하이드’에 출연한다면 언제든 환영이다”라고 웃었다.
한편 와일드혼은 이날 세계 정상의 교향악단인 오스트리아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빈필)에서 자신의 첫 교향곡 ‘다뉴브(독일어명 도나우) 심포니’를 11월 3일 연주한다는 소식을 전했다. 독일어권에서 뮤지컬 프로듀서로 활동해온 월터 포이트가 와일드혼에게 제안하면서 시작된 ‘다뉴브 심포니’는 중유럽을 관통하는 다뉴브강을 통해 시대마다 뒤틀린 역사를 음악으로 그려냈다. 지난해 포이트의 후원으로 빈필 연주 음반이 나왔으며 올해 코엔 슈츠 지휘로 대면 공연이 이뤄지게 됐다. 오는 11월 공연에서는 ‘다뉴브 심포니’ 외에 ‘지킬&하이드 조곡’(킴 샤른버그 편곡)과 ‘드라큘라 조곡’(코엔 슈츠 편곡)도 연주된다. 와일드혼은 “나는 클래식 음악을 전공한 사람이 아니다. 그런데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빈필에서 내 심포니를 연주할 수 있게 돼 정말 영광스럽다”며 자부심을 드러냈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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