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자 홀린 '이혼 예능', 화제성 뒤에 감추어진 한계

김종성 2022. 6. 26.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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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 예능 화두로 떠오른 이혼, '자정 능력'은 발휘될 수 있을까

[김종성 기자]

"근데 나한테 왜 그런 거야? 나한테 예쁘다 그러고 사랑한다 그러고."
"사랑한다고 한 거? 민수 엄마니까 사랑한다고. 내가 너를 싫어하는 게 아니야. 싫어하진 않아. 옛날처럼 사랑은 안 하지. 하지만 민수 엄마잖아."

폭언, 경제적 문제, 관계의 불균형, 대화 단절 등 다양한 이유로 이혼을 진지하게 고려하고 있는 부부(TVING <결혼과 이혼 사이>). 이미 서류에 도장을 찍고 남남이 됐지만 여러가지 복잡한 속내로 새로운 관계를 모색하는 이혼 부부(TV조선 <우리 이혼했어요2>). 이혼 후 새로운 사람과 연애를 꿈꾸고, 더 나아가 재혼까지 고민하는 남녀(MBN <돌싱글즈 시즌3>).
 
 TV조선 <우리 이혼했어요2> 한 장면.
ⓒ TV조선
 
 TV조선 <우리 이혼했어요2> 한 장면.
ⓒ TV조선
 
카메라는 이들의 일상과 관계를 집중적으로 포착한다. 시청자들은 그들의 리얼한 이야기에 몰입한다. 그렇다, 요즘 예능의 화두는 단연 '이혼'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혼'을 예능에서 다룬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드라마에서는 흔한 소재로 다뤄졌지만, '리얼'이 전제된 예능에서는 어려웠다. 그만큼 심리적 저항이 컸다. 하지만 길이 뚫리고 나니 그다음부터는 한결 쉽다. 

2020년 11월 <우리 이혼했어요>가 이혼한 연예인 부부를 전면에 내세우고, 2021년 7월 <돌싱글즈>가 이혼 남녀들의 연애, 동거 프로젝트를 기획하면서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우선, 두 프로그램은 시청률 면에서 성공을 거뒀다. <우리 이혼했어요>는 최고 시청률 9.288%(닐슨코리아 기준)를 기록하며 상종가를 쳤고, <돌싱글즈>는 3.363%로 시즌제 안착에 성공했다. 

<돌싱글즈> 박선혜 PD의 말처럼, 결혼, 이혼 소재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기에 "호불호라는 게 없는 소재"이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우리 이혼했어요>는 (시청률이 6%대로 하락하긴 했지만) 시즌2가 방영 중이고, <돌싱글즈>는 시즌2에서 더욱 가파른 성장을 했고, 윤남기-이다은 커플을 대상으로 한 '외전'까지 제작했다. 게다가 26일 시즌3 방송이 예고되어 있다. 

'이혼' 프로그램에 대한 기대와 우려

"왜 너는 항상 남들이랑 (나를) 똑같이 대하냐고. 그럴 거면 내가 너랑 결혼을 왜 했겠냐고."
"그럼 남이랑 살아."
"그러고 싶어, 지금이라도."

한편, TVING은 '각기 다른 이유로 이혼을 고민하는 네 부부의 현실적인 결혼 생활'을 담아낸 <결혼과 이혼 사이>를 5월 20일부터 공개했다. 여기에는 결혼 생활을 하며 자력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로 신음하고 있는 네 쌍의 부부가 등장한다. 이들은 프로그램 내에서 변호사를 만나 이혼 절차를 직접적으로 경험하는 한편 상담사를 만나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간다. 

상대방을 이해하려는 시도를 하고 집점을 찾아가는 듯싶다가도 이미 깊어질 대로 깊어진 갈등의 골은 어김없이 서로의 거리감을 확인하게 한다. 자신의 주장만 반복하고, 상대방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는다. 여전히 말이 통하지 않다고 느끼고, 그러다 보니 답답한 감정만 또렷해진다. 그들이 머무르며 해답은 찾아가는 '사이집'은 역설적으로 서로의 사이만 멀어지게 할 뿐이다. 

'이혼'을 담아냈던 프로그램들이 시즌제로 제작되고, '이혼'이라는 주제에서 파생된 프로그램이 방영되는 흐름에는 기대와 우려가 공존한다. 연간 이혼 건수가 10만 1673건(통계청)에 달할 만큼 이혼은 현실이다. 나의 일이고, 가족이 일이고, 친구의 일이다. 따라서 이혼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담은 프로그램은 사회적 편견과 선입견을 바꾸는 데 일조했다.

다만, 이혼을 이야기하려면 '갈등'도 함께 언급해야 한다는 점은 문제를 야기한다. 결혼 생활에서 어떤 문제를 겪었는지, 무엇 때문에 이혼을 결심하게 됐는지에 대해 설명해야 한다. 이때 자극적인 사연이 전시된다. <우리 결혼했어요>에서 일라이와 지연수의 경우 아들의 존재가 관계의 핵심이라는 점은 이해하지만, 미성년자인 자녀의 발언과 행동이 지나치게 전시되고 있다는 점은 안타깝다. 

<결혼과 이혼 사이>도 마찬가지다. 문제 해결을 위해 상황을 살펴보고 원인을 진단하는 건 당연하지만, 네 쌍의 부부가 갖고 있는 문제들이 지나치게 적나라하게 방송되고 있다. 상상을 초월하는 폭언과 욕설, 분노 등이 하나도 걸러지지 않는다. 카메라가 보여주는 자극의 강도에 '선'이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OTT들이 이혼 예능에 가세하면서 통제할 수단조차 없어졌다. 

게다가 <결혼과 이혼 사이>의 출연자들의 경우에 심각한 우울증을 앓고 있거나 정신과 치료가 시급한 이들도 많다. 아무리 진지한 접근을 했다고 한들 한계가 뚜렷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문제 해결에까지 이를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 방송사 입장에서는 이들을 통해 '화제성'을 취하면 그만이지만, 방송이 끝난 뒤 다시 끔찍한 현실에 직면해야 할 출연자들은 어떻게 되는 걸까. 

과도기라고 할 수 있을까. 시간이 지나면 자정 능력이 발휘될까. 솔직히 회의적이다. 시청자들은 자극의 역치가 올라간 만큼 더 강렬한 무언가를 요구할 것이고, 방송사는 그 필요에 맞추기 위해 보다 과감한 선택을 하게 될 것이다. 당장 SBS는 이혼한 부부가 3박 4일 동안 한 집에 모여 특정한 과제를 수행하면 자녀에게 장학금을 주는 새로운 이혼 예능의 론칭을 알렸다. 

방송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어쩌면 사회적 현실을 시청자들과 공유하고, 그 고민을 함께 나누는 것만으로도 역할을 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다만, 당장의 화제성에 취해 오로지 자극만을 좇고, 그로 인한 피해에 눈감는 몰상식한 짓은 삼가야 하지 않을까. 앞으로 '이혼 예능'은 어디까지 뻗어갈까. 적어도 지금의 방향성은 매우 우려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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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김종성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 '버락킴, 너의 길을 가라'(https://wanderingpoet.tistory.com)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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