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적가' 등 담시 쏟아내 [[김삼웅의 인물열전] 시인 김지하 평전]
[김삼웅 기자]
▲ 1975년 7월 20일 지학순 주교와 시인 김지하씨가 환영 인파에 앞장서 성당으로 향하고 있다. |
ⓒ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
누구나 '전성기'라는 게 있을 것이다.
김지하에게 1970년대 초반 그러니까 29세에서 32세까지 4년간은 담시의 전성기다. 1970년의 <오적>에 이어 1971년에는 일본의 경제침략과 기생관광 등을 비판 풍자하는 담시 <앵적가(櫻賊歌)>, 1972년에는 권력의 횡포와 민심의 향방을 이야기해주는 담시 <비어(蜚語)>, 1973년에는 민족주의 입장에서 일본의 경제침략을 비판하는 <분씨물어(糞氏物語)>를 썼다.
이외에 담시로 묶을 수 있는 <오행(五行)>, <아주까리 신풍(神風)>, <똥바다>, <깊흔들 이야기>, <고무장화>, <이 가문날에 비구름> 등이 있다. 일반적으로 많이 알려진 그의 담시에는 <오적>, <앵적가>, <비어>, <분씨물어> 등을 들 수 있다. 이들 담시가 20대 후반에서 30대 전반에 씌였다. 천재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들 담시들은 대체로 체포 - 투옥 - 보석 - 잠행 - 체포 - 사형선고 - 항소포기로 이어지는 70년대 전반의 영어체험과 날카롭게 대응되어 있다는 점에서 주목을 요한다. 즉 그의 생애에서 가장 급박하고 처절하던 이 고통의 시기에 가장 치열한 정치시들이 씌어짐으로 담시가 정치적 폭력에 맞아서 싸우는 문학적 응전양식임을 웅변해주고 있는 것이다. 거대한 유신독재정권의 조직적인 정치폭력과 구조적 부패 및 모순에 맞서 싸울 수 있는 전략전술 또는 무기로서 담시가 씌어졌음을 알 수 있게 해준다는 말이다. (주석 1)
그가 담시를 쓰게 된 시기는 1970년 9월 29일 목포출신 김대중이 신민당 대통령후보에 선출되고, 11월 13일 노동자 전태일이 서울 청계천 평화시장에서 노동조건 개선을 요구하며 분신자살을 하고, 1971년 4월 19일 최초의 재야단체인 민주수호국민협의회가 김재준ㆍ천관우ㆍ이병린 등의 주도로 결성되었다. 김지하도 참여한다. 4월 27일 박정희가 제7대 대통령에 당선되고, 대학가에 부정선거 규탄시위가 벌어졌다. 8월 10일 광주대단지사건, 10월 5일 고려대 무장군인 난입사건, 11월 12일 서울대생 내란음모사건으로 조영래ㆍ장기표 등이 중앙정보부에 구속되었다.
김지하는 1971년 야당인 김상현이 발행하는 <월간 다리> 7월호에 장문의 담시 <앵적가>를 발표했다.
"'앵(櫻)'은 일본말 '사쿠라'의 한자말 표기다. 사꾸라는 제국주의 일본의 국화였고, 우리 말로 전용되어 '이중인격자, 기회주의자, 가짜 밀정…'과 같은 부정적인 뜻을 나타내는 명사로 쓰이고 있다." (주석 2)
그가 이 담시를 쓸 당시 정가에서는 '사꾸라 론'이 회자되고 있었다. 야당 당수(유진산)의 처신을 둘러싸고 나타난 현상이었다. 그래선지 <앵적가>의 발표 뒤에는 물의가 없었다. <앵적가>의 한 대목이다.
한 손으로 밥술 뜰 때 딴 손으로 소변보기
오른 눈이 하늘 볼 때 왼쪽 눈은 땅을 보기
한 입으로 두 말하고 귀 따로 각각 듣고
오른발이 첩집 갈 때 왼발은 마누라 집
욕하며 칭찬하고, 절하며 침을 뱉고
화내며 웃고, 떨어지며 붙고, 엎드리며 눕고, 굽히며 서고
쳐다보며 내려다보고, 윗놈 붙어 아랫놈 치고, 아랫놈 긁어 위에 상납
큰 기침하며 잔기침, 과부돈으로 처녀 오입, 기다 걷다 뛰다 날다 마침내
우루루루루. (주석 3)
김지하가 머물고 있던 원주에서는 1971년 10월 5일 천주교 신도 2,000여 명이 참가하여 대대적인 반부패 시위를 벌였다. 지방 도시에서는 보기드문 사건으로 장일순과 지학순 주교가 합작하고, 천주교 원주교구의 명의로 발표된 〈부정부패자는 물러가라〉는 선언문은 김지하가 썼다.
선언문은 군부정권 전체의 부패와 호화를 격정적으로 성토했다. 내가 종교의 문건으로는 너무 과격하지 않나 걱정했을 때 지 주교님이 하신 말씀이 있다.
"옛날 예언자들이 모두 과격파들이야! 막 두들기라고! 그래야 정신이 번쩍 들지!" (주석 4)
선언문의 일부를 소개한다.
소돔과 고모라 이래 이처럼 극악한 불의의 창궐을 본 적이 있는가.
절대 다수의 민중이 말 한마디 못한 채 겪어야 하는 이 고통, 이 굶주림 위에 군림하여 한줌도 못되는 부패분자들이 호사와 방종을 홀로 즐기게 한 자는 누구인가? 인륜을 이처럼 참혹하게 상실시키고 인간성을 이처럼 혹독하게 파괴한 자 그 누구인가?
권력, 바로 그것이다. 부정부패한 권력, 바로 그것이 오늘의 이 불행을 가져다 준 장본인이다. 부정부패한 권력, 바로 그것은 인간공동체의 선과 사회정의를 실현하려는 모든 양심세력의 공동의 적이며 민중의 적, 한마디로 살아서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악 그 자체인 것이다. 부정부패한 독재권력, 그것은 공산독재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원수 우리의 적이다. (주석 5)
주석
1> 김재홍, <반역의 정신과 인간해방의 사상>, 앞의 책, <작가세계>, 109~110쪽.
2> 윤구병, <억압으로부터의 해방과 시적 진실>, <김지하, 그의 문학과 사상>, 35쪽, 세계. 1985.
3> <김지하 담시 모음집>, 153~154쪽, 동광출판사, 1985.
4> <회고록(2)>, 198쪽.
5> 김삼웅, 앞의 책, 150~15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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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 시인 김지하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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