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경 없는 여자배구? '오른쪽'도 큰 고민
[양형석 기자]
VNL에서 고전하고 있는 한국 여자배구에 또 하나의 악재가 발생했다.
세자르 에르난데스 곤살레스 감독이 이끄는 한국 여자배구대표팀의 이선우(KGC인삼공사)는 지난 19일(이하 한국시각) 네덜란드와의 VNL 2주차 경기에서 발목을 다친 후 24일 오른 발목 인대 부분파열 진단을 받았다. 남은 3주차 경기 출전이 힘들어진 이선우는 오는 25일 귀국해 치료에 전념할 예정이다. 한국은 노란 리베로(인삼공사)가 아킬레스건 부상을 당한 데 이어 이번 대회 두 번째 이탈자가 나왔다.
2002년생으로 박혜진(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최정민(IBK기업은행 알토스)과 함께 대표팀 막내인 이선우는 무릎이 좋지 않은 김희진(기업은행)의 백업으로 활약하며 이번 대회 7경기에서 40득점을 기록했다. 문제는 이선우의 이탈로 대표팀은 당장 이번 대회 오른쪽 공격수 자리에서 김희진의 부담이 커졌을 뿐 아니라 훗날 김희진의 대표팀 은퇴 후 오른쪽 공격수 자리에 대한 고민도 더욱 커졌다.
▲ 대표팀의 붙박이 라이트 김희진조차 소속팀 기업은행에서는 센터로 더 많은 경기를 소화했다. |
ⓒ 국제배구연맹 |
지난 시즌 V리그 여자부 득점 순위를 보면 1위 레티치아 모마 바소코(GS칼텍스 KIXX)부터 5위 옐레나 므라제노비치(흥국생명)까지 상위 5명의 자리를 외국인 선수들이 독차지했다. 이는 비단 지난 시즌뿐만 아니라 V리그에서 꽤 오랜 기간 자리 잡은 전통(?)이다. 실제로 국내 선수가 마지막으로 득점왕을 차지한 시즌은 한송이(인삼공사)가 김연경(흥국생명)을 제치고 득점왕에 올랐던 2007-2008 시즌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그리고 지난 시즌 득점 5위까지 오른 선수들은 모두 포지션이 아포짓 스파이커(오른쪽 공격수)라는 공통점이 있다. 물론 한국도로공사 하이패스에서 활약했던 켈시 페인(시고르타 샵)처럼 왼쪽 자리에 서는 선수도 있었지만 서브리시브를 면제 받고 공격에만 전념한 것은 모두 마찬가지였다. 대부분의 팀들이 국내 선수가 서브리시브와 수비를 책임지고 외국인 선수가 높은 공격점유율을 기록하는 것이 경기력을 극대화하는 방법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역대 각 구단의 외국인 선수를 살펴 보면 서브리시브에 적극적으로 참가했던 윙스파이커 포지션의 선수는 기업은행에서 활약했던 메디슨 리쉘과 현대건설 힐스테이트의 에밀리 하통,헬렌 루소, 흥국생명의 케이티 윌킨스 등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로 적었다. 이는 그 시절 기업은행과 현대건설,흥국생명에 각각 김희진과 황연주(현대건설)라는 걸출한 아포짓 스파이커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외국인 선수 활용 방식이었다.
국내 선수가 윙스파이커, 외국인 선수가 아포짓 스파이커로 활약하는 것이 일종의 공식처럼 굳어지면서 V리그에 입성하는 대형 아포짓 스파이커 유망주들도 프로에서 윙스파이커 또는 중앙공격수로 포지션을 변경하는 경우가 많았다. 구단에서는 매 시즌 공격을 전담할 외국인 선수를 선발하기 때문에 더 많은 출전기회를 얻기 위해서는 하루 빨리 윙스파이커나 센터로 포지션을 바꾸는 게 현실적인 선택이었다.
물론 V리그에는 유서연(GS칼텍스)과 하혜진(페퍼저축은행), 정지윤(현대건설),김주향(기업은행) 등 많은 선수들이 윙스파이커나 센터로 포지션을 변경해 성공적으로 프로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이로 인해 V리그에 점점 토종 아포짓 스파이커가 사라지는 부작용이 생기고 말았다. 실제로 현재 V리그에서 전문 아포짓 스파이커라고 분류할 수 있는 선수는 선수생활의 끝자락을 향해가는 황연주와 현 국가대표 주전 라이트 김희진 정도 밖에 없다.
▲ 김희진의 백업으로 좋은 활약을 펼친 이선우는 발목 부상으로 3주차 일정을 소화하지 못하고 귀국한다. |
ⓒ 국제배구연맹 |
한국 여자배구가 지난 10여 년간 오른쪽 공격수 기근에 시달리지 않을 수 있었던 비결은 김희진이라는 걸출한 아포짓 스파이커의 헌신 덕분이었다.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주전이었던 황연주의 부상과 부진을 틈타 한국의 4강 진출에 기여한 김희진은 인천 아시안 게임과 리우 올림픽, 그리고 또 한 번의 4강 신화를을 달성한 2020 도쿄 올림픽까지 대표팀의 주전 라이트로 활약하며 한국 여자배구 영광의 순간을 함께 했다.
크고 작은 국제대회마다 김연경과 김수지(기업은행),양효진(현대건설) 등 언제나 언니들과 함께 하며 동생 역할을 하던 김희진도 언니들이 대표팀을 떠나면서 어느덧 고참 라인이 됐다. 게다가 김희진은 오랜 대표팀 생활로 인해 어깨와 무릎 등 크고 작은 부상에 시달리고 있다. 이제는 너무 늦지 않게 대표팀에서도 김희진의 뒤를 이을 아포짓 스파이커 후계자를 찾아야 한다는 뜻이다.
문제는 현재 소속팀에서 아포짓 스파이커로 활약하고 있는 선수가 거의 없다는 점이다. 이번 VNL 대회에서 김희진의 백업으로 활약한 이선우 역시 인삼공사에서는 대부분 오른쪽이 아닌 왼쪽에서 활약했다. 소속팀에서 오른쪽 공격수로 등록돼 있는 문지윤(GS칼텍스)이나 김다은(흥국생명)은 아직 출전 경험이 턱 없이 부족하고 하혜진과 최정민(기업은행) 역시 소속팀에서는 오른쪽이 아닌 중앙에서 활약하고 있다.
소속팀에서 아포짓 스파이커로 활약하는 선수가 턱 없이 부족한 현실 속에서 세자르 감독은 이번 대회의 이선우처럼 체격조건이 좋은 윙스파이커 유망주들을 대표팀에 선발해 아포짓 스파이커 변신 가능성을 타진하는 방법 밖에 없다. 하지만 대표팀에서 오른쪽 공격수로 가능성을 보인 선수들이 소속팀으로 돌아가 다시 외국인 선수에게 자리를 내준다면 아무리 높은 잠재력을 가진 유망주라도 성장에 한계를 보일 수 밖에 없다.
2주차까지 열린 8경기에서 승리는커녕 단 한 세트만 따내고 무려 24번의 세트를 내준 한국은 8전 전패로 16개의 참가국 중 최하위에 머물러 있다. 한국은 오는 29일부터 불가리아에서 열리는 3주차 경기에서 태국과 브라질,이탈리아,중국을 각각 상대한다. 언니들의 대표팀 은퇴에 이어 2명의 부상 이탈자까지 발생하면서 이번 대회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한국 여자배구는 마지막 4경기에서 첫 승을 따내며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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