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18시간 반' 일시키는 尹정부 노동개악?.."원천적 불가능" [뉴스원샷]

김기찬 2022. 6. 25. 06:0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23일 오전 정부세종청사에서 근로시간 제도개선과 임금체계 개편을 골자로 하는 '노동시장 개혁 추진 방향'에 대해 브리핑했다. 추진 방향에 따른 구체적인 방안과 조치는 다음달 전문가로 구성되는 민간연구회의 실무 작업과 부처 간 조율을 거쳐 최종 확정할 계획이다. 뉴스1

김기찬 고용노동전문기자의 촉 : 시간 주권과 건강권

고용노동부의 근로시간 제도 유연화 방안을 놓고 노동계 등에서 비판의 날을 세우며 논란이 일고 있다. "주당 92시간 일할 수 있다"는 주장을 하면서다. 과연 맞을까.

현행법으로 허용되는 연장 근로시간은 주당 12시간이다. 여기에 법정 근로시간 40시간을 더해 주당 최대 근로시간은 52시간을 넘기지 못한다. 고용부는 이를 유연하게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노동시장 개혁의 일환으로 검토 중이다. 일하고 싶을 때 일하고, 쉬고 싶을 때 쉴 수 있는 '시간 주권'을 확보해 주려는 방향이다. '시간 주권'은 선진국 노사를 중심으로 태동해 현재는 보편화한 근로시간 관련 권리개념이다.

그 방안 중 하나로 정부가 고려하고 있는 것이 연장 근로시간을 주간 단위로 제한하지 않고 월 총량으로 관리하는 방식이다. '주당 12시간 X 4주'를 하면 월 연장 근로시간은 총 48시간이다. 총량으로 관리한다는 의미는 48시간 범위 안에서 일감이나 근로자의 간병·학업 등의 사유에 따라 노사가 합의해서 자유롭게 배분해 쓸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주당 12시간 제한이 풀려 어떤 주에는 그 이상 연장근로를 할 수도 있다.

'주 92시간 노동' 주장은 이걸 극단적으로 해석하면서 나온 논리다. 연장 근로시간 48시간을 한 주에 몰아서 쓴다는 것이다. 역으로 나머지 3주는 40시간만 근무한다는 얘기가 된다.

한데 주 5일 근무를 기준으로 한 주에 92시간을 일한다면 하루 18시간 24분을 일해야 한다. 가족과 같이 보내는 시간이나 휴식은 고사하고 출퇴근 시간을 제외하면 하루 2시간 남짓 잠을 자고 일터로 나가야 한다. 공산권의 수용소에서도 이런 극단적 노동시스템을 쓰지는 않는다.

토·일요일을 포함해 하루도 쉬지 않고 주 7일을 근무한다고 쳐도 매일 오전 9시에 출근해 밤 10시 넘어 퇴근해야 한다. 그래야 '주 92시간 노동'이라는 주장에 부합한다.

어떤 방식을 쓰든 지쳐 쓰러질 때까지 일한다는 전제가 깔려야 '주 92시간 근무'라는 논리가 성립된다. 그래서 "이는 노동자를 부품으로 생각하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일종의 노동자 부품화 셈법"(익명을 요구한 경영학 교수)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사용자 입장에서도 지친 근로자가 생산하는 제품의 품질 저하가 불을 보듯 뻔한데 선택할 리 만무하다. 근로시간의 주권을 보장하는 세계적 추세와도 맞지 않는다.

특히 현행 제도에 비춰도 이 논리는 성립하기 어렵다. 현재는 법으로 정한 주당 12시간의 연장근로를 초과할 경우 정부의 허락을 일일이 받아야 한다. '특별연장근로' 제도다. ▶천재지변이나 그에 준하는 재해·사고가 발생해 이를 수습하거나 ▶업무량 폭증 ▶인명보호와 안전확보 ▶국가 경쟁력 강화를 위한 연구개발 등의 조건에 부합하면 특별연장근로를 고용부에 신청할 수 있다. 반드시 근로자의 동의가 있어야 인가 신청이 가능하고, 정부가 사유의 적정성을 따져 허락과 불허를 정한다.

특별연장근로를 인가받더라도 주 92시간 노동과 같은 극단적인 연장 근로는 할 수가 없다. 건강보호조치를 반드시 이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근로일(日) 간 11시간의 휴식 부여 등이다. 따라서 하루 18시간 24분 노동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정부가 연장 근로시간을 월 총량 관리 체계로 전환하는 방안을 구상하면서 별도의 건강보호조치를 강구하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유연하게 근로자가 근로시간을 선택하도록 시간 주권을 보장하면서 건강권도 보호하겠다는 의미다. 고용부 관계자는 "주 92시간 근로는 실현될 수 없는 주장"이라며 "공장 근로 시대의 근로시간 제도로는 국가 경쟁력 배양은 물론 근로자의 시간 선택권과 같은 세계적인 추세를 따라갈 수 없다"고 말했다.

김기찬 고용노동전문기자 wolsu@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