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조에 통째로 넣고 껐다" 산불 맞먹는 전기차 화재

황서량 2022. 6. 25.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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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에 기본 7~8시간, 소화수 일반차 100배
국내 일부 시·도만 냉각수조 시범 사용 중
소방대원들이 지난 4일 남해고속도로 요금소 충격흡수대를 들이받은 아이오닉5 차량의 진화를 시도하고 있다. 부산소방본부

국내외에서 전기자동차 대형화재가 계속해서 발생하고 있다. 전기차에 불이 붙으면 진화에 7~8시간이 소요된다. 소화수를 뿌리는 것만으로는 부족해 차체를 모두 침수시켜야 겨우 불을 진압할 수 있다. 유독 전기차 화재 규모가 큰 이유는 무엇일까.

지난 4일 오후 11시쯤 부산에서 김해 방향으로 달리던 아이오닉5 전기차가 톨게이트 앞 도로 분리벽과 충격 흡수대를 들이받고 화염에 휩싸였다. 이 사고로 운전자와 동승자가 숨졌다. 당시 차량 내부 온도는 800도까지 치솟았고, 진화에는 7시간이 걸렸다. 소방은 전기차 주위로 수만t의 물을 뿌리고 이동식 수조를 설치해 차량을 침수시키는 방법으로 화재를 진압했다.

배터리 열폭주로 인한 전기차 화재는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발생했다. 24일(한국시간) 미국 폐차장에 방치됐던 테슬라 모델S에서 배터리가 자동 발화했다. 잔열로 인해 진화가 어렵자 땅에 구덩이를 파고 물을 채워 배터리를 침수시켰다. 불붙은 건물 한 채를 진화하는 데 쓰일 양의 물이 배터리 진화에 사용됐다.

전기차 화재 시 일산화탄소, 사이안화수소 같은 독성가스를 포함해 100가지가 넘는 유기화학물질이 발생한다. 또 수백에서 수천도가 넘는 불이 쉽게 번져 내연기관차보다 더 인체에 위험하다.

대규모 화재 발생 원인은?
경기도 남양주 와부읍 주민자치센터 주차장에 세워진 코나 전기차(EV)에서 17일 오전 3시 40분쯤 배터리 충전 중 불이 났다. 남양주소방서 제공

2016년 1만여 대에 불과했던 국내 등록 전기차가 지난해 말 23만여 대를 넘겼다. 이로 인해 전기차 화재 건수도 늘었다. 소방청에 따르면 2017년부터 4년간 발생한 전기차 화재는 총 69건이다.

2020년 10월 경기도 남양주에서는 주차장에 세워진 코나 전기차에서 배터리 충전 중 불이 났다. 지난해 1월에는 충남 태안 도로를 달리던 같은 모델의 전기차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같은 달 부산 동래구의 아파트 주차장에서 대창모터스 다니고 전기밴이 불길에 휩싸였다.

아이오닉5 차량이 지난 4일 남해고속도로 요금소 충격흡수대를 들이받고 불이 났다. 부산소방본부

소방 당국과 전문가들은 전기차 배터리 온도에 이상이 생겨 순식간에 150도 이상의 고열이 발생하는 ‘배터리 열폭주’를 사고 원인으로 꼽았다. 배터리 열폭주는 배터리가 외부 충격을 받아 손상돼 배터리팩 내부 온도가 최고 수백에서 수천 도까지 치솟는 현상을 말한다.

소방관이 2018년 8월 30일 서울 동작구 동작소방서에서 리튬 배터리에 외부충격을 가해 화재가 발생하는 실험을 하고 있다. 뉴시스

전기 자동차 하부에는 작은 셀들로 이뤄진 약 7천 개의 가량의 손가락만 한 원통형 또는 파우치형 배터리가 겹겹이 있다. 이 배터리는 일반 차에는 없는 리튬 이온으로 만들어진 배터리로, 고밀도의 에너지를 작은 크기에 저장할 수 있어 전기차에 주로 사용된다.

그러나 불안정한 화학적 상태를 가진 리튬이온 때문에 화재 발생 시 일반적인 내연기관차보다 전기차가 훨씬 위험하다. 순식간에 수백 도로 온도가 높아지고, 주위까지 불이 크게 번지기 때문이다.

김태년 미래모빌리티연구소 소장은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원소 번호가 3번인 리튬은 굉장히 불안하다는 특성을 갖는다”며 “리튬이온 이차전지 안에는 음극과 양극을 분리하는 비닐(분리막)이 있다. 이 분리막이 충격이나 열 등으로 찢어지면 순식간에 30~50도를 유지하던 배터리 온도가 150도 이상으로 치솟게 된다”고 설명했다.

또 “전기차의 충·방전이 거듭될수록 더욱 불안정한 상태가 되고 매년 2~3% 정도 성능도 저하되어 10여 년이 지나면 통상 70~80% 수준으로 떨어진다”고 덧붙였다.

전기차 충격 시 시스템·보호강판 무용지물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공학부 교수(한국전기차협회장)는 “배터리관리시스템(BMS) 소프트웨어가 배터리 온도가 높아지지 않게 관리하는 역할을 하지만, 배터리가 충격을 받는 등 먼저 손상이 발생하면 무용지물”이라고 설명했다.

충격으로 온도 변화가 일어나면 바로 옆 셀에서도 고열이 발생해 도미노처럼 불이 옮겨 붙는다. 김 교수는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배터리 열폭주는 배터리 손상 직후 몇 초 만에도 벌어질 수 있다”며 “연료만 소화하면 불이 꺼지는 내연기관차와 달리 리튬 배터리는 불이 쉽게 꺼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전기차 배터리는 리튬이온 부분을 보호하기 위해 초고장력 강판을 덧대는 식으로 제조된다. 강판은 시속 60㎞ 내외 충돌에는 배터리를 안전히 보호할 수 있도록 설계돼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김 교수는 “케이크 상자 속 흔들리는 케이크를 생각하면 된다”며 “순간적 충격이 일어나면 관성으로 인해 배터리가 떠 셀이 충격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간이 수조’로는 진화 역부족
부산소방재난본부 제공

전기차 화재 진화가 어려운 건 불안정한 리튬이온 배터리를 보호하기 위한 철제 막 때문에 소화수가 배터리를 직접 식히지 못하기 때문이다. 내연기관차 화재 시 필요한 소화수보다 약 100배 이상의 물이 사용된다.

김 교수는 “1000ℓ의 물로 50분이면 끌 수 있는 일반 차량과 다르게 전기차는 10만ℓ 이상이 필요하다”며 “10만ℓ는 미국의 한 가정집이 2년 동안 쓸 수 있는 물의 양”이라고 했다.

지난 4일 부산에서 발생한 아이오닉5 전기차 화재는 소화 후 자정을 넘겨서 불이 다시 붙었고, 이튿날 오전 6시를 넘겨 겨우 진화됐다. 배터리 열폭주로 인한 화재는 일반 내연기관차 화재와 다르게 불을 끈 이후에도 열이 계속 발생해 재점화가 가능하다.

재점화를 막기 위해서는 임시 벽을 만들어 차를 통째로 ‘간이 수조’에 집어넣거나 차 주변에 임시 벽을 쳐서 배터리 전체를 물에 담가야 한다. 아이오닉5 차량 화재에서도 임시 벽에 물을 부어 배터리를 식히는 방식을 사용했다.

부산 강서소방서 관계자는 “이번 사고에는 한 대당 소화용수 2.5t이 들어가는 펌프차 4대, 용수 5t을 수용 가능한 탱크차 4대, 총 8대의 소화 차량이 출동했다”고 설명했다.

이동형 냉각수조를 설치하는 모습. 소방청 제공

조립식 간이 수조는 전기차 사방에 물막이판을 설치해 물이 빠지지 않도록 막아주는 장비다. 하지만 아직 모든 소방서에 전기차 화재 재발을 막기 위한 이동형 냉각수조가 갖춰져 있지는 않다.

소방청 관계자는 “일부 시·도에서만 냉각수조가 시범 사용 중”이라며 “전 세계적으로 전기차 화재 시 매뉴얼이 없어 일반 차량 화재 때보다 더 많은 인력과 소화 차량을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 전기차 화재 최적 기술 개발 진행 중”이라며 “올해 안에 전국에 장비가 마련될 것으로 보인다”고 예상했다.

김 소장은 “불안정한 액체 전해질을 사용하는 리튬이온 배터리 대신, 고체 전해질 배터리를 개발하는 연구가 현재 국내외에서 진행 중”이라며 “열폭주로부터 안전하지만, 상용화에는 수년이 걸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학계에선 전기차 화재를 방지하는 시스템이 개발되고 있다. 김 교수는 “리튬형 배터리 사이에 특수 소화제를 끼워 넣어 화재를 방지하는 시스템을 개발 중”이라며 “개발에 속도를 낸 지 10년도 채 되지 않아 안전성이 미흡한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소방 당국과 학계에선 모두 배터리 온도를 급격히 높일 우려가 있는 과충전을 피하는 게 좋다고 제안했다. 현재의 기술 수준에서 전기차 화재를 막기 위해서는 운전자도 과속방지턱을 세게 넘지 않는 방식으로 차체에 충격을 주지 않는 게 안전하다.

황서량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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