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에 이런 곳이?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장호철 기자]
▲ 하늘에서 내려다본 달성공원. 전체 면적 3만9천여 평 가운데 토성 부분은 2만여 평에 이른다. |
ⓒ 대구시 |
1969년에 문 연 달성공원, 온 시민의 사랑을 받다
이듬해인 1970년 5월에 동물원이 문을 열면서 달성공원의 이름값은 더 높아졌다. 아이들은 달성공원 가족 소풍을 손꼽아 기다렸고, 아버지는 도시락을 싸고 가족들을 인솔해서 공원을 찾곤 했다. 키 225cm로 '달성공원 마스코트', '거인 수문장' 등 숱한 애칭으로 불리며 공원 정문을 지킨 키다리 아저씨도 달성공원의 한 부분이었다.
▲ 이상화 시비. 시 '나의 침실로'(전 12연) 중에서 11연을 새겼다. 내가 본 시비 중 가장 아름다운 시비다. |
ⓒ 장호철 |
대중교통으로 다시 달성공원을 찾다
달성공원을 다시 찾아 제대로 돌아봐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올해 들면서다. 지난 9일, 아침에 기차로 대구에 와서 시내버스를 갈아타고 달성공원 앞에 내렸다. 마침 점심 때라, 부근의 오래 묵은 한식당에서 육개장을 먹었다. 수십 년 역사를 지닌 맛집이라고 했지만, 1만 원짜리 식사로는 조금 모자라지 않나 싶었다.
정오를 넘긴 시각, 나는 정문을 통과했다. 지상의 구조물이나 시설보다 나는 공원을 빙 두른 달성(達城)을 돌아볼 생각이었다. 4m 높이의 토성(土城)인 달성은 공원을 감싸면서 1.3km에 걸쳐 이어져 있다. 대략 서너 차례쯤 공원을 찾았지만, 그 토성의 존재를 전혀 의식하지 못했었다.
▲ 정문에서 바라본 공원 전경. 공원엔 둘레길뿐 아니라 안쪽에도 오래된 나무가 아주 많다. |
ⓒ 장호철 |
달성은 청동기시대 이래, 지방의 중심세력이었던 집단이 그들의 생활근거지에 쌓은 성곽으로 추정한다. 성벽의 아래층에는 조개무지(패총貝塚) 유적이 있고 목책(木柵)의 흔적도 있다고 한다. 달성은 우리나라 성곽 가운데서 가장 이르게 나타난 형식인 셈이다.
고려 공양왕 2(1390)년과 조선 선조 29(1596)년에 달성에 석축을 더하고 상주에 있던 경상감영을 현재의 자리(중구 포정동, 경상감영공원)로 옮겨가기(1601) 전까지 감영을 두기도 했다. 청일전쟁(1894~1895) 때는 일본군이 주둔했고 고종 광무 9년(1905)에 공원으로 만들어졌는데 일제강점기에는 공원 안에 대구신사가 세워지기도 했다.
▲ 경상감영의 정문인 관풍루와 그 옆에 서 있는 팽나무 고목 |
ⓒ 장호철 |
경상감영이 설치되면서 선화당의 남서쪽에 포정문(布政門)을 세우고 그 위에 만든 문루가 관풍루다. 1906년 당시 관찰사 박중양이 대구읍성을 철거할 때 건물만 옮겼다가 1917년 달성공원 입구로 이전한 것이다. 처마 아래 편액은 '관풍루'지만, 누각의 편액은 '영남포정사(布政司)'다.
손을 덜 댄, 거칠지만 편안한 흙길
누각 옆에 팽나무 고목 한 그루가 서 있는데, 가지들이 하늘을 향해 만세를 부르고 있는 듯했다. 가지에 빽빽하게 달린 연록 빛 나뭇잎들은 쏟아지는 햇살에 반짝반짝 빛을 냈다. 나무의 짙은 그늘에선 중년 남녀 몇 명이 담소하고 있었다.
▲ 달성을 국가에 헌납한 서침을 기리고자 서침나무라 부르는 회화나무. 쉬는 이들은 역시 노인이다. |
ⓒ 장호철 |
달성공원을 구성하고 있는 나무는 대체로 고욤나무·느릅나무·말채나무·팽나무·쉬나무·오동나무·회화나무·왕버들 등이다. 그러나 그걸 일일이 판별할 만한 눈이 내겐 없다. 대신, 이른바 '관리의 손길이 덜 미친' 거친 만큼 자연에 더 가까운 흙길 좌우에 펼쳐진 숲이 연출하는 풍경 앞에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을 뿐이다.
전체 공원 면적 129,700㎡(39,234평) 가운데 토성은 66,116㎡(20,000평)로 과반에 이른다. 단순히 둘레길에 불과할 것이라고 하지만, 평균 높이 4m의 길 좌우의 면적이 만만찮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 좌우에 제멋대로 휘어지고 꺾어진 나무들이 이루는 연록 빛 숲은 공원의 나머지 풍경을 압도하는 것이었다.
▲ 둘레길 좌우에 제멋대로 휘어지고 꺾어진 나무들이 이루는 연록 빛 숲은 공원의 나머지 풍경을 압도하고 있었다. |
ⓒ 장호철 |
▲ 토성 둘레길. 별로 다듬지 않은 흙길에 군데군데 빨간 칠을 한 벤치가 놓여 있다. |
ⓒ 장호철 |
▲ 토성길을 걷는 이들은 대체로 중년 이상 노년이었는데, 상대적으로 젊은 축들은 운동 삼아 걷는 이들이었다. |
ⓒ 장호철 |
벤치는 어울리지 않게 고풍스러운 장식을 한 빨간 색인데 묘하게도 그게 전체 풍경을 흩트리지는 않는다. 거기 앉아서 쉬는 늙수그레한 중년과 노년의 남녀들도 마찬가지다. 거칠지만, 좌우의 숲에서 뿜어내는 신선한 대기 속에 연록의 풍경은 잘 녹아 있는 것이다.
공원 내부만 바라보는 시민들에겐 숨겨진 토성 둘레길
두어 군데 공원에서 토성길로 오르는 길도 매끄럽게 정돈하지 않기는 매일반이다. 거친 질감의 돌을 쌓은 계단길이거나, 별다른 구조물을 쓰지 않은 흙길인 까닭이다. 노인들이 걷기엔 다소 험하긴 했지만 나는 그 길이 썩 마음에 들었다.
▲ 공원에서 둘레길로 오르는 통로. 돌로 거칠게 쌓아놓은 길이다. |
ⓒ 장호철 |
▲ 토성 둘레길. 오르막에 돌로 쌓은 계단이 있는 거친 길이지만, 손이 덜 탄 이 길이 오히려 좋았다. |
ⓒ 장호철 |
▲ 숲길을 걷는 것은 잎사귀들이 걸러주어서 연록 빛으로 바뀐 햇살을 온몸에 받는 일이기도 했다. |
ⓒ 장호철 |
나는 지난해 가을, 진주성 둘레길을 둘러보면서 진주 시민이 부럽다는 여행기를 썼다. 정작 진주 시민들은 이렇게 아름다운 곳을 잘 알지 못할 거라고 너스레를 떨면서.(관련 기사 : 그냥 한번 와 봤는데…진주 시민들이 진심 부럽습니다)
나는 달성공원의 토성 둘레길도 진주성의 그것에 못지않다는 걸 깨달으며, 단풍이 고운 늦가을에 이 숲길을 다시 찾으리라고 마음속으로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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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제 개인 블로그 ‘이 풍진 세상에’(https://qq9447.tistory.com/)에도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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