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석기인 핑계는 좀.. 식탐과 맞짱을!

오상훈 헬스조선 기자 2022. 6. 24.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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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탐의 기원 ① 유전] 허기진 인류 살린 식탐이 현대인들 애먹여
우리의 식탐은 인류가 환경에 맞춰 발전시킨 유전적 소인일 수 있지만 통제할 수도 있다./사진=클립아트코리아
음식을 먹고 난 뒤 후회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만 먹어도 충분할 걸 예감했지만 더 먹는 걸 선택한 결과다. 살과의 전쟁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비만과 당뇨 유병률이 증가하고 있다. 여기저기서 ‘조금만 먹어라’, ‘운동해라’와 같은 조언들이 쏟아지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 본능적으로 무언가가 음식을 더 먹게 만드는 것 같은 느낌도 든다. 음식에 대한 집착, ‘식탐’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유전자일까, 문화일까, 환경일까.

◇식탐이 왜 있냐고? “굶어 죽지 않게 분투한 흔적”

인류사의 99%를 차지하는 구석기시대엔 항상 먹을 게 부족했다. 구석기인들은 무리 지어 생활하며 채집과 사냥으로 먹고 살았는데 겨울엔 먹을 게 부족했다. 그래서 끊임없이 다른 곳으로 이동하며 살았다고 한다. 한 번 음식을 만나면 일단 먹고 최대한 에너지를 비축해야 했다.

식탐도 강했을까? 진화심리학자인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 전중환 교수는 “당시 인류가 처한 환경에서 급선무는 굶어죽는 걸 피하는 것이었고 달거나 기름진 음식은 횡재였다”며 “오늘날의 식탐은 과거 인류의 유전자가 환경과 상호작용하며 만들어낸 적응적인 결과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즉, 현재 음식에 집착하는 우리들의 심리적 형질은 먼 조상들이 주변 환경에 맞춰 생존하면서 진화시켜온 유전자의 산물일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평생 식탐 달고 살아야 할 운명?

구석기는 너무 오래 전 일 아닐까? 시간으로 따지면 그렇지만 생물학적으로는 아니다. 우리의 유전자는 구석기인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볼 수 있다. 연세대 시스템생물학과 김응빈 교수는 “인류는 종 차원에서 봤을 때 굉장히 어린 종”이라며 “정치적, 사회적 문제로 기아에 시달리고 있는 몇 지역을 제외하곤 기근에서 벗어난 지 기껏해야 100여년인데, 생물학적인 변화가 일어나기에는 매우 짧은 시간이다”라고 말했다.

진화에 얼마나 긴 시간이 걸리는지는 우리 주변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우리는 성인이 되면 모유를 먹을 필요가 없어서 유당분해효소인 락타아제 분비 유전자를 꺼버리도록 진화했다. 그러나 약 1만년 전 목축업이 시작되고 인간은 다시 락타아제 분비 유전자를 켜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직도 우유만 먹었다 하면 설사하는 사람들이 많다. 전중환 교수는 “유당분해효소 분비에 관여하는 유전자 변이가 고정되는데도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는데 식탐과 같이 수많은 유전자가 영향을 끼치는 심리적 형질이 바뀌려면 몇 천 세대, 즉 수 만년이 걸릴 수도 있다”고 말했다.

◇유전자에 새겨진 식탐

식탐은 유전자에 어떻게 새겨져 있을까. 먼저 살펴볼 수 있는 유전자는 ‘FTO’다. FTO 유전자는 탄수화물을 지방으로 바꿔 저장하는 데 관여한다. 이러한 FTO 유전자에 변이가 발생하면 우리 뇌는 에너지가 덜 들어왔다고 판단해 식사량을 늘리게 된다. 김경철 가정의학과 전문의(웰케어클리닉)는 “FTO는 지방을 저장하게 만들어 인류를 생존시켜 온 유전자지만 냉장고에 음식이 쌓여 있는 현대에 이르러서는 비만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며 “다행히도 FTO 유전자 변이 비율이 70%에 이르는 서양인과 달리 한국인은 25~30% 정도로 보고되고 있다”고 말했다.

FTO 유전자 외에 ‘멜라노코르틴 수용체4(MC4R)’나 ‘뇌유래신경영양인자(BDNF)’도 살펴볼 수 있다. 이들은 뇌가 느끼는 포만감을 차단해 식탐을 부추긴다. 강북삼성병원 가정의학과 강재헌 교수는 “시상하부에 작용해 배고픔과 포만감을 결정하는 MC4R은 변이하면 식탐을 강하게 만든다”며 “BDNF는 포만감을 자극하는 단백질을 형성하는데 변이하면 비만에 간접적인 영향을 준다고 알려져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유전자들이 개개인의 식탐에 얼마나 영향을 끼치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FTO는 몸에서 생존을 위해 영양소를 요구했을 때 나타나는 식욕과 관련이 크고 MC4R과 BDNF는 에너지 생성과는 무관한 가짜 식탐과 관련이 크다고 알려져 있다.

◇유전자 전부 아냐… 최소한 가짜 식탐은 구분해야

구석기인의 유전자를 핑계 삼아 먹다간 병에 걸리기 쉽다. 인간은 굶었을 때 음식을 먹으면 금방 회복할 수 있지만 반대로 살이 쪘을 때 굶는다고 문제가 해결되진 않는다. 그러나 유전은 운명이 아니다. 식탐에는 문화나 환경이 더 큰 영향을 끼치기도 한다. 어렸을 때 가정환경에 의해 형성된 우리의 식습관은 먹방 등의 유행성 문화에 끊임없이 바뀐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가짜 식탐 정도는 통제할 수 있다. 가짜 식탐엔 유전자 말고도 감정적 상태나 스트레스가 영향을 끼치기도 한다. 우리 몸은 스트레스를 받으면 행복 호르몬이라고 불리는 세로토닌 수치를 높이기 위해 뇌로 배고프다는 신호를 보내는데 이때 식욕 관련 호르몬인 그렐린과 렙틴의 균형이 깨지면서 가짜 식탐이 생긴다. ▲특정 음식을 보면 먹고 싶은 마음이 든다 ▲식사를 한 지 3시간이 채 되지 않았는데 배고프다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배고픔이 심해진다 ▲음식을 먹어도 공허하다 ▲10~15분이 지나면 배고픔이 사라진다면 가짜 식탐이라고 볼 수 있다.

포만감을 주는 단백질과 식이섬유를 충분히 활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강재헌 교수는 “단백질은 지방이나 탄수화물에 비해 포만감이 크고 공복감을 줄여준다”며 “콩, 각종 나물, 쌈채소 등 식이섬유가 풍부한 음식도 포만감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식사를 규칙적으로 하는 것도 중요하다. 한 끼 거르면 그만큼 섭취 열량이 준다는 건 착각이다. 오히려 식탐이 강해질 수 있다. 강재헌 교수는 “식사를 거르면 혈당이 떨어져 식욕이 급격히 상승함으로써 되레 다음번 식사에서 과식과 폭식을 하게 된다”며 “규칙적인 식사와 한 차례의 건강한 저열량 간식이 혈당과 식욕을 안정적으로 조절하는 데 크게 기여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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