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주 모인 커뮤니티서 환호", 윤석열표 정책에 쏟아지는 우려
[민달팽이 유니온]
▲ 주택임대차보호법개정연대와 주거권네트워크, 집걱정없는세상연대 회원들이 22일 오전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인근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윤석열 정부의 첫 부동산 정책을 규탄하며 서민 주거 안정 정책을 추진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
ⓒ 유성호 |
지난 21일 정부가 발표한 임대차 시장 안정 방안 및 3분기 추진 부동산 정상화 과제에 대해 '부자 감세'라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주거권 연대체인 주택임대차보호법개정연대와 주거권네트워크, 집걱정없는세상연대가 지난 22일 서민 주거안정을 외면하고 부자 감세를 추진하는 윤석열 정부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청년 세입자 연대 민달팽이유니온도 같은 날 성명을 발표하는 등 정부에 대한 비판을 제기했다.
정부는 임대차 시장 안정 방안으로 ▲임차인 부담 경감 ▲임대주택 공급 확대를 들고 와 그중 임차인 부담 경감을 위해서는 상생임대주택에 대해 양도세 특례를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통해 임대차 가격 인상 자제를 유도하고 양도세 실거주 의무를 충족하는 과정에서 임차인 퇴거를 방지하겠다는 것이 주요 골자다.
정부 발표에 대해 지수 민달팽이유니온 활동가는 "지금의 값비싼 임대료는 투기꾼들과 다주택자들이 부동산 시장을 교란하면서 형성된 것"이라며 "문제 원인 진단부터 틀렸는데, 어떻게 이것이 '상생' 방안이 되느냐"고 의문을 표했다.
22일 기자회견에 참여한 박도형 주택법률지원센터 세입자114 간사는 "이 정책이 발표되자마자 환호성을 지른 곳은 건물주가 모인 부동산 커뮤니티였다"며 "상식적으로 이런 정책을 이유로 건물주들이 '국가가 세제혜택을 줘가면서 부탁하니까 세입자들한테 잘해줘야겠다, 갭투기도 안 하고 전세사기도 포기하고 세입자들 권리를 보장해야겠다'하고 생각할 리 없다"고 주장했다.
정부는 또 다른 임차인 지원책으로 전세대출 지원 강화, 월세 세액공제 및 보증금 대출 원리금 상환액 지원 확대 방안을 제시했다. 청년 세입자들의 보증금을 삼키는 전세사기가 어느때보다 횡행하고 있는 와중에, 윤 정부가 내놓은 임대차 시장 안정화 방안은 전혀 현실을 담지 못해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같은날 기자회견에 참여한 가원 민달팽이유니온 활동가는 이에 대해 "저소득층 청년들을 계속해서 소외시키는 정책"이라고 비판하며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오르는 집값은 사실 대출과 세입자들의 보증금이 뒷받침해주고 있으며, 이것이 주택 가격을 교란시키는 주요인"이라고 전했다.
청년들의 전재산을 넘어 빚까지 떠안게 만드는 전세사기에 대한 불안이야말로 가장 시급하게 다뤄져야 할 주제다. 실제로 '전세보증금반환보증'을 실행하는 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 따르면 2021년에 공사가 대위변제한 보증금만 5040억 원에 달하며 그 중 부채비율이 90% 넘는 집이 71%에 육박한다. 피해자 3명 중 2명이 청년이라고 하니, 문제가 매우 심각하다. 집값의 대부분을 세입자의 보증금과 빚으로 떠받치고 있는 구조를 바꾸지 않고서는 근본적인 해결이 어렵다. 그럼에도 정부가 겨우 대출 규제 완화를 제시한 것을 두고 일각에선 '세입자의 간절함을 이용해서 시민을 기만하려는 술수'를 부린다는 비판까지 일고 있다.
▲ 관악구 대학동 고시촌 전경 |
ⓒ 민달팽이유니온 |
청년층의 주거 불안 해소에 관한 정부 발표 내용에 대한 우려 또한 깊다. 정부는 청년·신혼부부 대상 40년 만기 보금자리론에 체증식 상환방식을 도입하고, 청년을 위한 생애주기별 맞춤형 주거지원 패키지를 마련하겠다고 발표했다. 특히 기존 청년 주거지원 정책을 '저소득층 주거비 절감에 집중'했다고 평가하며 청년들의 자산 형성과 중산층 성장을 지원하겠다는 입장이다.
시세 80% 수준의 주거비를 요구하는 행복주택이나 시세 95%까지도 요구하는 역세권청년주택 등은 저소득층 청년들의 주거 부담을 줄이기에 턱없이 부족한 현실임에도 정부는 이에 대한 개선안을 제시하지 않았다.
가원 활동가는 기자회견에서 "최근 행복주택 공고에서는 보증금 2억이 훌쩍 넘는 집이 버젓이 공공주택이라는 이름으로 입주자를 모집한다"며, "어느 보통의 청년에게 2억이 있나"하고 되물었다.
실제로 SH서울주택도시공사의 2022년 1차 행복주택 입주자모집공고를 보면 강남구 소재 행복주택들의 신혼부부 유형은 보증금이 2억 400만원, 2억 4160만원 등으로 책정돼 있다. 전세 보증금 5천만원을 위해서도 대출을 받으려면 자부담금 5백~1천 만원이 필요하기 때문에 그만한 자산이 없는 청년은 과도한 신용대출을 이용하게 되거나, 더 저렴하고 열악한 주거지를 택하게 된다.
주거환경 상향을 위해 전세 보증금 1억~2억의 집을 찾는 사람은 자부담금 수천만원을 갖고 있어야 한다. 끝을 모르고 치솟는 집값 앞에 청년 세입자들은 나날이 벌어지는 자산 격차를 체감하며 더 저렴한 고시원, 곰팡이 있는 집, 전세사기 위험을 가진 집을 택하게 된다.
청년에게도, 세입자에게도 헛헛한 대책이다. 용산구 거주 청년 김지선씨는 이번 정부 정책을 두고 "세입자의 전·월세금으로 무리하게 자산증식을 하는 임대인들을 규제하는 것이 아니라, 대출 규제를 완화하는 것이 정말 세입자를 위한 대책인지 의문"이라며 "오히려 세입자의 부담을 늘리는 방식으로 주택 시장을 부양함으로써 주거 안정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것 아니냐"고 우려했다. 마포구 거주 청년 김혜미씨는 "사람이 사는 집은 돈으로만 움직여서는 안된다"며 "방만한 정부의 태도로는 당면한 주거문제를 결코 해결할 수 없다"라고 밝혔다.
임대인에게 혜택을 주는 방식의 임대차 안정화 정책은 이미 지난 정부에서도 정책적 효과가 낮고 다주택자들의 조세 회피 수단으로 이용된 부작용을 낳았다고 지적된 바 있다. 현 정부의 발표를 두고 청년 세입자 당사자 연대 민달팽이유니온은 성명을 통해 주거권을 인권의 관점으로 바라보고 세입자 주거 안정을 위한 대책을 내놓을 것을 촉구했다.
▲ 21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윤석열 정부 첫 부동산 관계장관회의를 하고 있다. |
ⓒ 연합뉴스 |
다주택자에게 세제 혜택을 주며 투기하기 좋은 환경을 조성해준 뒤, 임대인의 선의에 기대는 것은 세입자의 주거 안정과 주거비 경감을 위한 대책이 될 수 없다. 세입자의 주거권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계약갱신청구권 및 전월세상한제의 확대 등을 비롯해, 보증금 반환 안전성을 높이기 위한 대책을 포함한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이 필요하다.
또 공인중개사 의무 이행에 관한 관리감독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세입자 편에 서서 안전한 계약과 점유 및 보증금 반환에 이르는 주택임대차계약의 전 과정을 지원하고, 문제 상황에 즉각 대응하며 위법행위를 엄벌할 수 있는 감독관제도 등의 시스템도 필요하다.
최근 장애인 주거권 보장을 위한 장애인 탈시설 지원 조례안이 서울시의회를 통과했다. 집은 누구에게나 기본적인 권리로 보장되어야 하며, 장애를 이유로 집이 아닌 시설에 거주하는 것을 강요할 수 없다. 이와 같이 주거를 권리로 바라보는 관점에서 주거 정책을 설계한다면, 주택임대차시장 안정화 방안 또한 세입자 권리 보호를 위한 정책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전국 각지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세사기를 비롯해, 청년 세입자들이 곤혹을 겪고 있는 주택임대차시장 내 무질서한 실태들을 적극 파악하고 이를 개선하기 위한 진정한 세입자 지원 방안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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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해당 기사는 민달팽이유니온이 기자회견에 직접 참여한 뒤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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