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욱 '헤어질'서 '살인의 추억' 용의자 벗은 박해일..이순신 되어 여름 극장 호령
“최근까지도 ‘살인의 추억’(2003)에서 당신이 범인이냐고 물어보는 분들이 많아요. 그건 어마어마하게 좋은 관심이지만, ‘헤어질 결심’을 계기로 또 다른 캐릭터를 선보이는 것 같아 충만한 기분이죠.”
영화 ‘헤어질 결심’(감독 박찬욱)에서 처음 형사 역에 도전한 배우 박해일(45)의 말이다. 스크린 데뷔작 ‘와이키키 브라더스’(2001) 이후 30편 넘는 영화에 출연할 동안 형사 역은 처음이다. 지난달 칸영화제 공식 기자회견에서 그 이유를 그는 “‘살인의 추억’ 때 용의자 이미지가 너무 강해서”라 짐작했다. ‘헤어질 결심’은 박찬욱 감독이 올해 칸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하며 “짓궂은 미스터리로 포장된 거장의 눈부신 사랑 이야기”(버라이어티) 등 호평받은 터. 박해일에겐 ‘살인의 추억’이 봉준호 감독과 배우들의 대표작으로 꼽히면서 19년간 쫓아다닌 용의자 이미지를 또 다른 걸작으로 변화시킬 기회다. 개봉(29일)을 앞두고 23일 서울 삼청동 카페에서 만난 그는 “처음 제안받을 때 감독님이 한국영화 기존 형사 캐릭터와 다를 것이라 해 호기심이 동했다”며 들뜬 기색을 내비쳤다.
"'살인의 추억' 범인도 잡을만한 형사죠, 다만…"
‘헤어질 결심’은 산에서 추락사한 변사자 사건을 맡은 해준이 변사자의 중국인 아내이자 사건의 용의자 서래와 금단의 사랑에 휘말리며 붕괴되어가는 여정을 그린다. 한국 영화 ‘만추’에 출연하며 김태용 감독과 결혼한 중국 배우 탕웨이가 서래 역을 맡아, 한국말과 중국말을 오가는 대사의 여운을 살렸다. 박찬욱 영화에 빠지지 않던 섹스, 폭력의 자리를 시적인 대사와 절제한 감정 묘사가 차지한다. “감독님의 이전 영화들이 대부분 관객에게 직접적으로 다가가 감정에 스크래치를 내는 방식이었다면 이번에는 인물들에게 몰래 다가가 무슨 감정으로 얘기하고 있는지 눈빛을 봐야 사정을 파악할 수 있게끔 촬영하셨죠.” 박해일의 해석이다.
붕괴·마침내…박찬욱표 문학적 대사 '추앙 열풍' 이을까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JTBC)의 ‘추앙’ 열풍을 이을 만한 문어체 대사가 돋보인다. 서래가 사극 드라마로 배운 서툰 한국말은 때때로 더 예리하게 인물들의 감정을 꿰뚫는다. “송서래라는 캐릭터가 가진 언어적 질감이 드라마에 영향을 주죠. 감독님이 노리신 것 같아요.” 박해일의 말이다.
해준의 전환점이 되는 ‘붕괴’란 단어가 한 예다. 서래가 오래도록 곱씹는 이 단어의 뜻 ‘무너지고 깨어짐’은 이 영화 속 사랑의 또 다른 정의처럼 다가온다. 극 초반 안치실에서 남편 시신을 본 서래가 “산에 가서 안 오면 걱정했어요. 마침내 죽을까 봐”하는 대사에서 형사들의 의심을 산 ‘마침내’란 단어의 미묘한 쓰임은 촬영 당시 현장에서 유행어처럼 돌기도 했단다.
언어 차이로 인한 시행착오를 줄이려는 노력도 많이 했다. 박해일은 첫째로 대본 녹음을 들었다. 캐스팅 후 한국말을 배우기 시작한 탕웨이의 부탁으로 한국어 대사 전체를 박해일이 직접 녹음해준 것. “한국말 톤을 익숙하게 받아들이려고 한 것 같아요. 저도 극 중 중국어 대사를 녹음해달라고 했죠.” 또 촬영 틈틈이 로케이션 주변을 함께 산책한 것도 호흡을 맞추는 데 도움이 됐다. 박해일은 “서로의 감정을 알기 위해 눈빛을 많이 바라봤더니 나중엔 서로 배고픈 눈빛까지 알게 됐다”고 했다. “심문실에서 송서래와 마주 앉은 장면은 형사와 용의자 사이의 이성적 이야기를 나누지만 미묘하게 연애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죠. 그런 장면들이 좋았어요. 배우로서 집중도가 높아지더군요.”
소통 실수로 맞잡은 손…"중국서 2억 뷰 봤대요"
엔데믹을 맞은 여름 극장가에서 그는 ‘명량’(2014)을 잇는 사극 대작 ‘한산: 용의 출현’(7월 27일 개봉)도 선보인다. 김한민 감독과 ‘최종병기 활’(2011) 이후 다시 뭉쳐 왜구 소탕에 나선 젊은 이순신 장군을 연기했다. “코로나19로3년 만에 관객과 만나는 것 자체가 재기하는 느낌이 들 정도로 감동이고 들뜬다”는 그는 “찍어놨던 작품들이 시기상 종합선물세트처럼 쏟아지게 됐는데 자연스럽게 즐기려 한다. 매 순간 부담은 있다”고 말했다.
칸 찍고 이순신 "사람 '박해일'은 한없이 부족"
탕웨이처럼 외국 작품에서 새롭게 부딪혀보고픈 마음은 없을까. “탕웨이가 저한테 ‘중국 와서 중국어로 연기하고 한번 같이해볼래?’ 역제안하더라. 이번에 힘들어서 농담한 것이었다”는 그는 “탕웨이는 언어 감각이 출중한 편이고 저는 아니어서 외국어를 열심히 공부한들 한계가 있을 것 같다. 자국 언어, 문화로 미세한 감정과 호흡까지도 전하고 싶다. 타국 문화 작품에서 한국어를 쓰는 캐릭터라면 차라리 더 맞을 것 같다”고 했다.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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