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재값 치솟는데 환율까지 급등..수출기업도 못 웃는다
원자재 수입 의존하는 中企 실적부진 현실화
달러 운임 받는 해운 수혜 기대 보단 연료비 타격
삼성전자 "무조건 긍정적이라고 할 수 없어"
하반기 전략 다시 짜야할 판..끝 모르는 위기
[아시아경제 오현길 기자, 김종화 기자, 김유리 기자, 이관주 기자, 박선미 기자, 정동훈 기자, 유현석 기자] 부산의 한 페인트 업체는 최근 원달러 환율이 치솟으면서 비상이 걸렸다. 원료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는데 달러로 결제해야 해서다. 작년말부터 환율 상승을 예상하고 수지와 안료, 용제 등 재고를 쌓아왔지만 조만간 바닥이 날 처지다.
회사 관계자는 "기존에 확보된 원료 재고가 아직 남아 있지만 장기화된다면 직격탄을 맞게 된다"면서 "지난해 두 차례 제품 가격을 올린 데다 올해도 한 차례 인상했기 때문에 환율 급등분을 반영하기도 어려운 실정"이라고 토로했다.
환율이 치솟으면서 산업계가 공포에 떨고 있다. 올해 들어 공급망 불안과 원자재값 폭등에 시달려왔던 기업들은 13년 만에 원달러 환율이 1300원을 돌파하자 충격에 휩싸였다.
특히 원자재를 해외에서 수입해 국내에서 부품을 만드는 중소기업이나 달러로 항공기 대여료나 유류비를 결제하는 항공업계는 초비상이다. 하반기 경영계획을 다시 세워야 할 정도로 위기감이 커졌지만 문제는 앞으로 이런 상황이 얼마나 지속될 지 알지 못해 불안감을 키우는 형국이다.
◆고금리·물가에 천장뚫은 환율까지… 기업들 비명=항공은 환율이 올랐을 때 타격을 받는 대표적 업종이다. 항공기 장기 리스 비용뿐 아니라 항공유 구매 비용도 모두 달러로 결제하기 때문에 환율이 오르면 직격탄을 받는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환율이 10원 오를 때마다 각각 410억원, 284억원의 외화환산손실이 발생한다.
특히 고유가 상황에서 고환율까지 덮치며 비용 부담은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이미 항공사들은 유류비에 많은 비용을 소모했다. 항공사 5곳의 1분기 지출한 유류비만 해도 1조원을 넘어섰다.
황용식 세종대 교수는 "(달러 결제 비용이) 가격에 반영되기 때문에 항공 운임도 올라갈 수 밖에 없다"며 "특히 저비용항공사(LCC)의 경우 항공기를 리스로 운용하는 경우가 많아 큰 부담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원자재 상당 부분을 수입에 의존하는 중소·중견기업들의 실적부진도 현실화되고 있다. 유연탄 가격급등으로 홍역을 치르고 있는 시멘트업계의 경우 환율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특히 수출하지 않고 내수에만 의존하는 내륙 시멘트 회사들은 최악의 상태다.
시멘트 회사 관계자는 "원화가치가 떨어지면 해안에 공장이 있는 회사들은 수출로 손익을 일정 부분 메울 수 있지만, 내륙사들은 심각한 타격을 받게 된다"면서 "유연탄 가격이 폭등에 환율 급등까지 겪어 이중고지만 뚜렷한 대응방안은 없다"고 털어놨다.
달러로 판매하는 면세품을 취급하는 면세업계 역시 우려가 크다. 엔데믹 기대감과 실질적인 실적 회복 간 시차가 있는 상황에서 환율 이슈는 큰 부담이라는 게 업계의 공통된 목소리다.
고환율이 제품 물가 상승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식품업계의 경우 원·부재료 수입 비용이 크게 뛰어 울상이다. 포장재 등 부재료 가격, 운임 및 인건비 부담 확대 등까지 맞물리며 업종의 비용 부담이 커졌기 때문에 제품 가격으로 상쇄시킬 가능성이 제기된다.
제약업계 역시 원료의약품 또는 완제의약품을 수입·생산·유통하는 비중이 작지 않은 만큼 환율 상승이 직접적인 원가 인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의사의 처방전 없이 약국에서 구매할 수 있는 일반의약품 시장도 위태롭다. 현재 일반의약품은 약국마다 자율적으로 소매가를 결정하는데 공급가가 오르면 약국에서도 판매가를 높일 수밖에 없어 실질적인 약값 인상으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김정식 연세대 교수는 "현재는 금융 부실과 실물 경기 침체가 같이 올 수 있는 복합위기 국면"이라면서 "금리가 높아지면서 가계부채가 부실화되고 부동산 버블도 붕괴하면 실물 부분에서 소비와 투자를 위축시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수출 기업 고환율 호재’도 옛말=통상 환율이 오르면 수출을 주력으로 하는 국내 기업들은 매출이 늘어나는 ‘환율 특수’를 누렸다. 하지만 최근 글로벌 경기 불안 및 원자재 가격 급등과 맞물려 있어 환율 특수를 상쇄하고 있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국내 생산 반도체 대부분이 수출 물량이어서 환율 수혜 업종으로 불리는 반도체 업계도 기업마다 사정이 다르다. 삼성전자의 경우 반도체 뿐만 아니라 가전, 스마트폰 사업을 따져볼 때 환율 상승이 실적에 무조건 긍정적이라고 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세트 사업부(MX, CE)의 경우 반도체와 달리 환율 상승은 부정적으로 작용한다.
선박 건조 대금을 달러로 받는 조선업계도 고환율이 마냥 반갑지만은 않다. 수주 계약기간 내 환율 변동은 고스란히 원화 매출 변동으로 반영되는 만큼 환율 변동 폭만큼 매출도 증가하게 된다. 하지만 조선업계는 "세계 경기 후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어 환율이라는 경제지표 하나만으로 수혜를 얘기하기는 힘든 상황"이라고 언급했다.
이정희 중앙대 교수는 "원자재 가공하는 산업이 많다보니 수출 단가가 오를 수밖에 없고 우리 산업의 가격경쟁력이 떨어질 수 있는 효과"라면서 "문제는 환율 상승이 수출기업에 긍정적이라는 그간의 통념도 깨질 수 있다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원자재 가격이 너무 높은 상황에서 환율 상승은 더욱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오현길 기자 ohk0414@asiae.co.kr
김종화 기자 justin@asiae.co.kr
김유리 기자 yr61@asiae.co.kr
이관주 기자 leekj5@asiae.co.kr
박선미 기자 psm82@asiae.co.kr
정동훈 기자 hoon2@asiae.co.kr
유현석 기자 guspowe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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