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의 부활, 다시 극장이 숨을 쉰다

2022. 6. 24. 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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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범죄도시2’의 흥행 질주가 무섭다. 이 흥행의 저변에는 천만 관객 동원이라는 상징성이 내포되어 있다. 2019년 이후 오랜만에 접하는 숫자다. 그럼 이 상징을 뛰어 넘어 극장은 다시 살아날 수 있을까?

▶ 부활은 어느 날 갑자기 시작되었다

지극히 주관적 입장에서, 팬데믹 동안 사실 영화 극장이라는 공간이 망할 줄 알았다. 불과 3년 전만 해도 전 국민의 놀이 공간 중 하나였던 극장이 팬데믹이라는 전 세계적 암흑기와 동시에 몰락하는 게 보였기 때문이다. 사회적 거리 두기라는 명제 하에서, 극장은 가서는 안될 곳으로 전락해 버렸다. 익명의 대중이 밀폐된 공간에 운집할 수 밖에 없는 극장의 공간 구조상 한 명의 확진자가 발생하는 순간 영업을 중단하고 방역을 해야 했기에 더 그랬다. 그래서 점차 극장은 우리네 기억 속에만 남아 있는, 그런 유물 같은 공간이 될 것만 같았다. 그 찰나에 OTT 플랫폼이 급부상했다. 극장은 물론이고 TV라는 또 다른 전통 미디어까지 다 잡아먹을 기세로 성장했다. 극장이 관객으로부터 외면 혹은 차단 당한 상태에서 이미 완성된 영화들은 OTT 회사에 판권을 팔고 극장이 아닌 그곳에서 최초 공개되었다. TV 전유물이었던 드라마는 표현과 창작의 자유가 더 보장되는 OTT에서 오리지널 시리즈 딱지를 붙이고 훨훨 날아올랐다. 그러니까 OTT만 있으면 극장도 필요 없고 TV조차 필요 없는 시대를 맞이했던 셈이다. OTT는 극장과 TV에서 파생됐던 시간의 제약을 없앴다. 소비자의 시간에 맞춰 관람하면 되는 편리성까지 지녔다. 업계 관계자를 위시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OTT 자본의 우위를 점쳤다. 정말 그렇게 될 것 같았다.

하지만 극장은 마지막 한 줄기의 호흡을 간직하고 있었다. 그리고 마치 좀비처럼 다시 벌떡 일어섰다. ‘범죄도시2’가 견인차 역할을 했다. 영화는 지난 6월11일(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 기준) 천만 관객을 돌파했다. 봉준호 감독의 2019년 개봉작 ‘기생충’이 천만 관객을 넘긴 이후 약 3년 만의 일이다. 강우석 감독의 2003년작 ‘실미도’가 천만 관객의 첫 테이프를 끊은 이후 한국영화 역사상 18번째 천만 관객 동원 작품으로 등극한 것이다. ‘범죄도시2’의 천만 관객 돌파는 꽤 의미심장하다. 일단 사회적 거리 두기 조치가 시행된 지 약 2년 1개월 만에 해제된 ‘4월18일’의 상징성이 있다. 그간 필자를 포함한 우리 모두 얼마나 갑갑했던가! 굳이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어떤 해방감이 욕망처럼 들끓었을 것임에 틀림없다. ‘범죄도시2’는 그로부터 꼭 한 달 만인 5월18일에 개봉했다.

영화가 재미없는데 단순히 거리 두기 해제 조치가 천만이라는 어마어마한 관객을 동원했을 리는 없다. ‘범죄도시2’는 상업영화로서의 근사한 관습을 유지하면서도 러닝타임을 시간 낭비라 생각하지 않을 만큼의 재미를 지녔다. 2017년 개봉했던 ‘범죄도시’ 1편이 687만 명 이상을 동원했다는 점만 봐도 영화 자체가 재미없을 거라는 인식은 일종의 오류다. 여기에 더해 앞서 언급했던 어떤 억눌린 욕망의 표출이 힘을 보탰다. 아, 한 가지 더 덧붙이자면 최근 일종의 ‘밈’처럼 떠도는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에서 배우 손석구가 연기했던) ‘구씨’ 열풍이 단박에 천만 관객을 동원하는 데 일조했음이 틀림없다. ‘범죄도시2’가 개봉과 동시에 좋은 출발을 보이던 때에 또 다른 호재가 발생했다.

다름 아닌 칸 영화제에서 보인 한국영화의 선전과 쾌거다. 일본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메가폰을 쥐었지만 명확히 한국영화임에 틀림없는 ‘브로커’의 송강호 남우주연상 수상이 이를 부추겼다. 또한 ‘브로커’와 더불어 한국영화 부흥의 중심에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닌 박찬욱 감독이 신작 ‘헤어질 결심’으로 칸 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했다. 한국 극장에서는 칸 영화제 개막과 동시에 ‘범죄도시2’가 개봉을 하고 있고, 그가 흥행 신호탄을 쏘아 올린 시기에 송강호와 박찬욱의 동시 수상 뉴스가 전해졌다. 더욱이 시리즈 ‘오징어 게임’으로 전 세계 OTT 시청자를 흔들어버린 이정재의 감독 데뷔작 ‘헌트’도 칸 영화제 비경쟁부문에서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한국영화 산업 역사에 있어 이보다 더 좋은 시기가 있었던가? 아니 꼭 그렇지 않더라도 분명 이건 굉장히 좋은 신호임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영원한 것은 없다, 영화도 드라마도 OTT도

좋은 신호라고 표현한 건 다름 아닌 팬데믹 기간 동안 극장의 존재 자체가 위협받을 만큼의 수치 하락이 있었기 때문이다. 팬데믹이라는 악재 이전인 2019년 한국 극장산업의 매출은 1조 9000억 원에 달했다. 팬데믹 선언 이후의 2020년 매출은 5100억 원으로 나락을 쳤다. 전년 대비 73% 가까이 매출 감소를 겪은 것이다. 2021년에도 팬데믹은 지속되었고, 2020년 대비 14.5% 증가했지만 5800억 원 대 정도였다. 항간에는 대형 극장 체인들이 모두 매각을 시도한다는 소문도 있었다. 과거 황금알을 낳는 거위, 그러니까 영화 관람하러 가서 팝콘과 음료 등의 식음료를 사는 행위를 포함하여 엄청난 수익을 거둬들이는 구조로 정평이 나 있던 극장 산업 자체가 휘청거린 것이다. 여기에 서두에서 언급한 OTT 플랫폼 자본이 기존 산업 종사자들을 꼬드겼고 그 OTT가 완전한 대안으로 자리할 것이라는 예측 역시 극장의 존폐 위기를 더욱 부추겼다. 필자 역시도 극장이라는 환경에 대한 기억을 과거의 저편에 묻어두고 있었다. 대형 화면과 좋은 음향에서 관람하는 영화 보기의 즐거움을 손바닥 만한 모바일 속에서 이어폰(또는 헤드폰) 사운드만으로 영화나 시리즈를 보는 것에 익숙해져 버렸다. 그랬더니 굳이 극장엘 가야 하나라는 생각도 들고, 번거롭게 거기 가지 않아도 될 것 같다는 섣부른 판단을 내리기도 했다.

일단 코로나가 언젠가 끝날 수도 있다는 팬데믹 종식 예측이 불가능했고, 동시에 너무도 강력하게 부상하는 OTT 자본 파워의 지속력에 대한 긍정적 시선이 크게 작용했다. 하지만 앞의 두 요소에 치중하다 보니, 억압의 반대급부로 피어 오르는 유희에 대한 욕망의 강렬함을 살짝 놓쳤다. 최근 개최된 서울 재즈 페스티벌의 엄청난 관객 동원만 봐도 이해가 될 것이다. 만 2년간 억눌린 ‘놀고 싶음, 즐기고 싶음, 춤추고 싶음’에 대한 욕망들이 봇물처럼 터진 소비 결과가 바로 서울재즈페스티벌의 티켓 매진 행렬이 아닐까 싶다. 근래 발생하고 있는 ‘범죄도시2’의 놀라운 흥행 질주 역시 재미있다는 담보 하에 터져버린, 욕망 소비의 일부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그래서 극장이라는 육체 속 혈관에는 온기 가득한 피가 콸콸 돌아다닐 수 있게 되었다.

언제가 필자는 ‘극장은 죽었다’라는 일종의 선언을 한 적이 있다. 아니 죽을 것이다라는 예측을 했었다. 실제로 극장은 일정 기간 죽어 있었다. 마치 인공호흡기 같은 연명 장치에 의존해 겨우 숨만 쉬는 정도였다. 하지만 ‘범죄도시2’에 의해 일단 호흡기를 떼고 자력으로 숨을 쉬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여기에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에 송강호 주연의 ‘브로커’가 마동석의 괴력 및 손석구의 마력과 힘겨루기를 하고 있다. 전 국민이 이름 석 자 모를 리 없는 감독 박찬욱의 ‘헤어질 결심’도 6월말 개봉을 앞두고 열심히 홍보에 힘을 기울이고 있는 중이다. 한국영화뿐만 아니라 할리우드 영화도 대기 중이다. 필자와 같은 X세대 이상에게는 향수를, MZ세대에게는 뉴트로 현상으로 다가올 톰 크루즈 주연의 ‘탑건: 매버릭’이 그 대표적 사례다. 최근 시사를 통해 ‘끝내준다’는 후기가 들려오니 이 작품 역시 극장에 좀 더 신선한 혈액을 공급하는 데 일조할 것으로 예상된다.

▶관객 흥분하게 하는 개봉 예정작들

언뜻 보기에 고사해 가던 극장가가 활기를 띄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이 예측의 밑바탕에는 팬데믹 기간 동안 개봉 시기를 늦추며 잠자고 있던 한국 블록버스터 작품들이 꽤나 있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일단 제작사와 배급사가 팬데믹 기간 동안 극장 개봉을 해서는 손익분기점을 맞추기 어렵다고 판단한 영화들이 이미 OTT에 풀렸다.

물론 수많은 작품들 중에서는 개봉하기도 애매하고, OTT가 선뜻 판권을 구매해주지 않은, 이래저래 상황이 힘든 영화들도 많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리 두기 해제 조치 이후 묵은 영화들이 개봉 일자를 조정 중이라는 소식이 들려온다. 일단 팬데믹 선언 시점에서 개봉 시기를 쭉 늦춰버린 화제작들이 있다. 대부분 많은 제작비가 들어간 블록버스터다. ‘도둑들’, ‘암살’ 등 만들기만 하면 흥행을 담보했던 최동훈 감독의 ‘외계+인’이 여름 시즌 개봉을 준비하고 있다. 여기엔 김우빈, 류준열, 김태리, 소지섭 등 열거하면 숨이 찰 정도로 많은 스타급 배우들이 등장한다. 한국영화 역사상 가장 많은 관객인 1760만 명을 기록한 ‘명량’의 속편 ‘한산: 용의 출현’ 또한 7월 개봉을 준비 중이다. 여전히 이순신 장군은 한국 사람에게 전설적인 슈퍼 히어로다. 이번에는 최민식이 아닌 박해일이 이순신을 연기한다. 일정 부분 흥행에 성공할 것으로 보인다. 또 송강호, 이병헌, 전도연, 김남길 등이 주연을 맡은 한재림 감독의 ‘비상선언’도 8월 개봉을 예정하고 있다. 2021년 칸 영화제 비경쟁부문 초청도 받았었지만 팬데믹으로 인해 개봉을 미루고 있었던 영화다. 이 같은 블록버스터 이외에도 제작비 100억 원 미만의 영화들도 엄청나게 많이 밀려 있다. 이들 영화가 선보일 기회를 기다리는 데다, 또한 여름 휴가철까지 겹쳐져 일단 극장가는 호황을 이룰 것으로 보인다.

불과 (팬데믹의 종식이 여의치 않아 보이던) 올 초까지만 하더라도 위에서 열거한 작품들의 개봉 연기를 소재로 ‘극장의 종말’ 또는 ‘극장은 사라졌다’ 등의 많은 기사들이 범람했었다. 물론 제작 및 배급사의 입장에서 바라본다면 정체되어 있는 영화가 많다는 건 그만큼 신작 제작에 열중하기 힘들다는 가설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극장 자체는 괜찮은 영화를 걸고, 관객이 많이 들어오기만 하면 된다. 이 글은 제작사의 입장보다는 이내 사라질 줄만 알았던 극장의 존폐 위기에 대한 내용이다. 아무튼 올 여름 극장가는 꽤 괜찮아 보인다. 딱 여름 시즌만으로 1년 치 장사를 다 한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성수기에 다시금 관객을 극장으로 불러들일 수 있는 기폭제가 될 수는 있다.

극장이 일정 부분 다시 부활할 것이라는 기대감의 예측에는 최근 OTT를 두고 발생하고 있는 일련의 부정적 시선들도 일조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극장은 물론이고 TV까지 집어 삼킬 태세로 무한 확장되고 있던 넷플릭스의 주가 폭락, 디즈니 플러스나 애플 티비+ 등의 한국 시장에서의 고전 등에 대한 뉴스들 말이다. 실제로 필자 역시 이와 같은 OTT 플랫폼 대부분을 구독하고 있지만, 비용은 지불되는 반면 한 달 동안 한 번도 접속하지 않는 플랫폼도 있다는 것이 그 실례다. 그건 과거만큼 볼거리가 없다는 것에서 기인되는 무관심이다. 이런 상황과 마주하다 보니 필자 역시 지출을 줄이기 위해 특정 OTT는 구독 해지를 고려하고 있는 중이다. 물론 극장과 TV의 사정은 다르다. TV는 시간이 흐를수록 드라마 시청률 하락을 경험 중이다. OTT 자체 오리지널 시리즈들의 완성도가 상당하기에 더 그렇게 될 거다. 반면 영화의 경우는 사정이 좀 다르다. 팬데믹이 확산되면서 극장 개봉이 막힌 영화들은 자구책으로써 OTT를 찾아 나섰다. 그 사례들이 ‘사냥의 시간’, ‘승리호’, ‘낙원의 밤’ 등과 같은 작품들이었다. 관람 후 느낀 점은 과연 이들이 극장에서 크게 흥행했을까? 라는 의구심이었다. 물론 잘 됐을 수도 있겠지만 아닐 확률도 컸다는 의미다. 이렇게라도 살 길을 찾은 작품들은 다행이었지만 여전히 이런 줄조차 잡지 못한 미개봉작들이 수두룩하다. 아무튼 이제 다시 영화들은 자신의 터전인 극장으로 향할 확률이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분간은 묵혔던 영화들의 라인업으로 극장은 채워질 거다. 현재 제작 중인 영화들의 수가 과거에 비하면 현저히 줄어 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투자자들의 입장에서 어지간히 될 것 같지 않으면 시작 자체를 하지 않으려 하는 경향도 커지고 있다. 팬데믹은 이렇게 극장 및 영화 산업 자체에 혹독한 시련의 시간을 주었다. 그리고 다시 해빙기가 찾아오고 있다. 그래 봤자 꽁꽁 얼어있던 빙하가 살짝 녹는 정도일 뿐이다. 그간 내려앉은 극장 산업의 피해는 굉장히 크다. 완전한 팬데믹의 종식이 선언되지 않은 차에 섣부른 예측을 하긴 어렵다. 하지만 다시 극장을 찾는 관객들의 발걸음이 빈번해지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이 희망으로 다시금 극장이 살아나보길 기대한다. 필자 역시 모바일 화면이 아닌 극장의 스펙터클을 체감하기 위해 종종 극장엘 다시 찾아갈 생각이다.

[글 이주영(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사진 픽사베이, 영화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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