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기 두고 분열된 美..대법원 "집 밖에서 총 소지 금지한 뉴욕주 법, 위헌"
[아시아경제 뉴욕=조슬기나 특파원] 미국 연방대법원이 23일(현지시간) 공공장소에서 권총 휴대를 제한해 온 뉴욕주의 주법을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최근 잇따른 미국 내 총격사건으로 총기 규제 목소리가 높아지는 가운데 오히려 대법원은 총기 휴대를 지지하는 판결을 내린 것이다.
뉴욕타임스(NYT)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대법원은 이날 6대 3 투표로 집이 아닌 장소에서 총기 소지를 엄격히 제한해 온 뉴욕주 주법이 수정헌법 2조에 위배된다는 판결을 내렸다. 이는 공공장소에서 총기 소지 권리가 어떻게 적용되는 지에 대한 첫 판결이라고 NYT는 전했다. 뉴욕의 주법이 합헌이라는 하급심 판결을 뒤집은 것이기도 하다.
대법원은 판결문에서 1913년 제정된 뉴욕주의 주법이 일상적 정당방위 필요가 있는 개인이 무기를 소지할 권리의 행사를 막았다고 밝혔다. 클라렌스 토마스 대법관은 "수정헌법2조와 14조는 집 밖에서 정당방위를 위해 권총을 휴대할 수 있는 권리를 보호한다"며 뉴욕주 법이 위헌이라고 주장했다.
이날 대법관 9명 가운데 진보성향의 3명은 모두 반대표를 던졌다. 진보 성향 스티븐 브라이어 대법관은 소수의견에서 대법원이 총기 폭력의 심각성을 해결하지 않은 채 총기권을 확대했다며 이번 판결이 총기 폭력에 대응할 능력을 잃게 할 수 있다고 반대했다. 브라이어 대법관에 따르면 2020년 총기로 사망한 미국인은 4만5222명으로 집계된다. 올 초부터 보고된 총기난사 사건(최소 4명 이상의 사망 또는 부상)은 277건으로 하루 평균 1건 이상이다.
특히 이번 판결은 지난달 뉴욕주 버펄로의 한 슈퍼마켓, 텍사스 주 유발디 초등학교 등에서 발생한 총격으로 수십명이 사망하면서 미국 내 총기규제 목소리가 커진 가운데 나와 더욱 주목받고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최악의 시기에, 역사적으로 가장 위험한 총기 판결"이라고 보도했다. 총기를 둘러싼 미국 내 오랜 분열을 보여주는 모습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현지 언론들은 이번 판결이 공공장소에서 권총 휴대를 제한함으로써 총기범죄를 줄이고자 했던 도시들에게 광범위한 여파를 미칠 것으로 봤다. 뉴욕뿐 아니라 워싱턴DC와 캘리포니아, 하와이, 메릴랜드, 메사추세츠, 뉴저지 등 최소 6개 주에도 유사한 법률이 있다. 코네티컷 등 3개 주는 공공장소에서 총기 소지 문제와 관련해 공무원들에게 재량권을 주고 있다.
의회의 총기 규제 입법 움직임과도 배치된다. 미 상원은 이날 대법원의 판결이 알려진 2시간쯤 뒤에 총기규제법안에 대한 토론을 종결하는 표결을 실시, 찬반 65 대 35로 필리버스터를 종료했다. 초당적 총기규제법안은 이제 상원 본회의 표결 절차만 남겨둔 상태로 사실상 통과가 확실시되고 있다. 여당인 민주당은 상원이 미 독립기념일인 7월 4일을 앞두고 휴회하기 전 법안을 통과시키겠다는 계획이다.
앞서 공개된 80장짜리 규제안은 총기를 구매하고자 하는 18~21세의 신원 조회를 위해 미성년 범죄와 기록을 제공할 수 있도록 하고 21세 미만의 총기 구입자의 정신건강 상태를 관계 당국이 최소 열흘간 검토하는 내용이 골자다. 더 많은 총기 판매업자에게 신원 조회 의무를 부여하며 총기 밀매 처벌을 강화하고, 학교 보안 강화와 심리치료를 위한 예산을 지원하는 내용도 담았다. 아울러 위험 인물의 총기 소지를 금하는 ‘레드 플래그’(red flag) 법안을 도입하려는 주에는 인센티브도 제공한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대법원의 결정과 관련해 "매우 실망했다"며 "이 판결은 상식과 헌법 모두에 배치된다"고 말했다. 또한 각 주가 총기 규제법을 제정하고 시행할 것을 촉구했다. 법무부 역시 성명을 내고 법원의 결정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혔다. NYT는 또 다른 기사를 통해 대법원의 판결이 알려진 후 버펄로주 총격사건 희생자의 가족들이 "말도 되지 않는다"고 분노를 표했다고 보도했다.
뉴욕=조슬기나 특파원 seu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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