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 장바구니가 작아졌다

문수정 2022. 6. 24. 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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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을 쓰기에 좋은 때가 있었다.

최저가 경쟁이 난무하던 시절이었다.

시장을 선점하려는 기업들은 격렬하게 출혈경쟁을 벌였다.

기업들은 더 이상 최저가 경쟁에 열을 올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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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정 산업부 차장


돈을 쓰기에 좋은 때가 있었다. 최저가 경쟁이 난무하던 시절이었다. 이커머스 기업들의 춘추전국시대. 심지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0%대였다. 온라인쇼핑몰마다 ‘핫딜’이 넘쳐났고, 오프라인 유통업계까지 가세해 곳곳에서 ‘파격 세일’을 만날 수 있었다. 소비자들은 크게 애쓰지 않아도 ‘득템’의 기회를 맞닥뜨리곤 했다.

그 정점의 시기는 2019년이었다. 당시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0.4%였다. 물가는 안정적이었고 유통기업들의 치열한 경쟁으로 소비자에게는 수많은 선택지가 놓여 있었다. 그해 나는 ‘소비자 전성시대’(국민일보 9월 20일자)라는 칼럼을 쓰기도 했다. 칼럼 도입부에는 “무언가를 살까 말까 고민한다면, 그 고민이 가격 때문이라면, 이렇게 권한다. ‘지금이야말로 무언가를 사기에 딱 좋은 때’”라고 적었다.

약 3년이 지난 지금, 격세지감을 확인하고 있다.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지난해 5월보다 5.4% 올랐다.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4%대로 예상된다. 이보다 더 높아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숫자만으로는 가늠이 잘 안 될지 모르겠다. 그러나 소비의 현장으로 한 걸음만 다가서도 절절하게 느끼게 된다. 칼국수 한 그릇에 1만원이 돼버린 식당 메뉴판을 보고 놀란다. 2만원짜리 한정식 점심 특선상이 초라해진 것을 보고 실감한다. 값이 올랐거나 내용이 부실해졌거나 둘 중 하나다.

이커머스 시장 환경도 3년 사이에 적잖이 달라졌다. 2019년만 해도 ‘절대강자’는 없었다. 가히 춘추전국시대라고 불릴 만했다. 시장을 선점하려는 기업들은 격렬하게 출혈경쟁을 벌였다. 무료 배송이나 1시간 단위로 바뀌는 타임딜이 등장할 수 있었던 건 그런 까닭에서였다.

적자를 거듭하던 기업들은 더 이상 마이너스 실적을 감수하며 돈을 쏟아부을 수 없게 됐다. 네이버, 쿠팡, 이베이를 품은 이마트가 3강을 굳히면서다. 다른 기업들은 증권시장 상장을 노리거나 특화된 콘텐츠로 승부를 보려고 애쓰고 있지만 주식시장도 소비시장도 처참하다. 살길을 모색하는 게 간단치 않은 상황이다. 멤버십 서비스 요금을 올린 것도, 온갖 타임딜이 급감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기업들은 더 이상 최저가 경쟁에 열을 올리지 않는다. 온라인쇼핑을 애용하던 사람들은 물가 상승을 더 크게 체감할 듯하다.

이런 상황만으로도 충분히 버거운데 고유가에 고환율, 고금리까지 덮쳤다. 어떤 것 하나 부담되지 않는 게 없다.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산을 겨우 넘고 이제 한숨 돌리는가 했더니 인플레이션이라는 협곡이 떡하니 등장했다. 심지어 코로나19라는 빌런을 완전히 따돌린 것도 아니다. 언제 다시 어떤 모습으로 들이닥칠지 누구도 장담 못한다. 불확실성까지 짙어지니 소비자들은 돈 쓰는 게 겁난다. 장바구니가 작아졌다. 점심 특선 상차림이 초라해지듯 쇼핑카트가 헐렁해졌다. 얼마 전 한 대형마트에서 신제품 프로모션을 하던 여사님의 말씀이 떠오른다. “어휴, 이런 행사만 수백번 해봤는데 이렇게 팔기 힘든 때가 있었나 싶어요. 하나 더 붙여준다고 해도 하나 가격이 워낙 올라서 그런가, 그냥 지나쳐 가버리는 분들이 많아요.”

하반기에 또다시 식품·외식업계의 가격 인상 러시가 이어질 것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바짝 오른 물가에 지갑은 닫히고, 전문가들은 스태그플레이션을 우려한다. 이런 상황인데도 물가 대책에 “근본 대처 방법이 없다”(윤석열 대통령)거나 “뾰족한 수가 없다”(추경호 경제부총리)와 같은 허망한 말이 반복적으로 들려온다. 과연 우리는 이 난관을 어떻게 헤쳐 나가게 될까.

문수정 산업부 차장 thursda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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