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털린의 역설' 의미, 이스털린 교수에게 직접 확인했더니
[이승엽 기자]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행복경제학의 답으로 일컬어지는 '이스털린의 역설'은, "소득이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행복도와 소득이 비례하지 않는다는 현상"으로 알려져 있다(링크). 한국어로 얻을 수 있는 상당수의 자료(링크)가 이스털린의 역설을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이스털린의 역설'의 의미
"The Easterlin Paradox states that at a point in time happiness varies directly with income, both among and within nations, but over time happiness does not trend upward in correspondence with income growth".
풀이하면 '주어진 한 시점에는 소득과 행복 사이에 상관관계가 나타나지만(횡단면 비교), 시간의 경과에 따라 소득이 증가한다고 해서 행복도 함께 증가하지는 않는다(시계열 비교)'는 의미다.
이 '역설'을 발견한 것으로 알려진 이스털린의 1974년 논문(링크)의 결과도 소득과 행복 사이의 관계가 국가내·국가간 횡단면, 국가내 시계열 비교 등에서 일관되게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 발견을 그는 후속 연구들(Easterlin, 1995, 2001)을 거쳐, 일정 시점의 횡단면적 관계와 시간 경과에 따른 시계열적 관계의 모순, 즉 '역설'로 정립했던 것. 다시 말해, '역설'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소득이 일정 수준에 도달하면 아무리 소득이 증가해도 행복은 더 이상 증가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아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오해는 지난 4월 번역되어 출간된 이스털린의 신간 <지적 행복론>을 통해서도 유포되고 있었다. 이 책의 표지 앞날개에는 이스털린이 "소득은 일정 수준을 넘으면 행복과 비례하지 않는다"는 "파격적인 증명"으로 "학계에 센세이션을" 일으킨 학자라고 소개되고 있다.
▲ 이스털린은 오히려 이 그래프를 근거로 소득과 행복의 관계에 대해 주장하는 것을 비판하고 있다. <지적 행복론> 227-232p. 자료를 참고해 직접 그래프를 그려봤다. |
ⓒ 이승엽 |
지난 5월경, 이스털린을 인터뷰한 한 언론사의 기사에서도 이스털린에 대한 오해가 유포되고 있던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기사의 인터뷰 문답에서 이스털린은 '이스털린의 역설'을 한국어 포털에 잘못 알려진 내용 그대로 소개하고 있으며, 소득이 행복을 늘려주지 않는 임계치를 구체적으로 연 소득 7만 5천 달러라고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2020년 논문(링크) 17쪽에서 이스털린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there is no time-series evidence of a happiness threshold at an individual income level of $75,000 or any other value." 즉, 7만 5천 달러든 아니면 다른 어떤 값이든, 소득이 행복을 더 이상 늘려주지 못하는 임계치가 있다는 시계열 증거는 없다는 것. <지적 행복론>에서도 비슷한 지적을 확인해볼 수 있다(227~232p). 이스털린이 유독 한국 언론사와 한 인터뷰에서만 2021년까지 쓴 책과 논문들에서 그가 비판했던 주장을 설파하고 있는 건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 이스털린의 답장 |
ⓒ 이승엽 |
문제의 오류들에 대한 내 지적이 "절대적으로 옳(absolutely correct)"다는 것. 덕분에, 기사의 오류를 이스털린의 대답과 함께 기자님께 제보할 수 있었고 매우 감사하게도 빠른 시정이 이뤄졌다. 이스털린은 번역서의 출판사와 관련된 오류들에 대해서도 조치를 취할 의사를 보이셨다. 이런 노력 끝에, 이미 책의 표지에 인쇄된 내용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오류가 시정될 수 있었다.
사회적 비교가 역설을 만든다
그러나 여전히 이 인터뷰 기사의 댓글란에는, 수정되기 전 기사를 보고, 이스털린이 행복을 늘려주지 못하는 소득의 임계치를 주장하고 있다고 오해한 독자들의 댓글들이 남아 있다. 이미 인터뷰 기사를 읽고나서 기억의 구석 한 켠에 치워둔 사람들은 여기에 이런 오류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 기회가 없었을 수 있다. 출판사의 마케팅에 의해 재생산된 오류는 이미 판매된 책의 인쇄본에 아직 그 흔적이 남아 있다.
그렇다면, '이스털린의 역설'에 대한 오해가 너무 널리 퍼진 나머지 이스털린 본인의 말마저 왜곡하기에 이르렀다는 점을, 누군가가 이렇게라도 기록해 더 많은 이들이 볼 수 있게 해야 하지 않을까. 이게 이 기사가 작성된 이유다.
마지막 의문. 이러한 '역설'은 왜 나타났을까? 이스털린의 신간 <지적 행복론>에서 명쾌한 답을 찾을 수 있다. "사회적 비교가 역설을 만든다(p. 49)." 요컨대, 행복을 가져다주는 건 소득의 절대적인 값어치가 아니라, 그 상대적 가치라는 것이다.
그래서, 경제 성장을 통해 모두가 소득이 다 함께 늘어나는 것은 사회적 행복의 증가와 별로 상관이 없지만, 사회적 비교가 이뤄지는 횡단면 차원에서는 높은 소득과 높은 행복 사이의 분명한 상관 관계가 나타난 것.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있을까?"라는 질문의 답은 이제 질문하는 당신의 본심에 달렸다. 당신은 혼자 행복해지는 법을 묻는 것인가, 아니면 모두가 행복해지는 법을 묻는 것인가?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정부에 날세운 경찰들 "독재시대 회귀냐? 인사번복, 경찰 길들이기"
- '서울시 유일' 3선 연임 성공한 구청장의 비결
- 자식에게도 못한 이야기... 어느 아버지의 끔찍한 과거
- "수도권 반도체학과 1만 증원? 지방대 10개 없어져"
- [오마이포토2022] 악수 거부 이준석, 배현진 다음 행동은?
- 외할아버지가 준비한 호루라기, 참 애틋하다
- 교사가 학교에서 '복도 뽀뽀'를 목격했을 때
- "여럿이면 졸업여행, 혼자가면 위로여행" 대구 지방의원들 '물의'
- 한미 합참의장 "연이은 북한 미사일, 평화·안정 위협"
- '악수 신경전' 이준석-배현진 향한 홍준표의 훈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