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경미의 영화로 보는 세상] 톰 크루즈, 레전드 파일럿의 귀환
1986년 개봉한 영화 ‘탑건’은 미 해군의 전폭적 지지를 받으며 제작됐다. 뛰어난 전투기 조종사 매버릭이 미국의 1급 전투 조종사를 양성하는 훈련학교 탑건에 입학해, 그의 동료들과 우정을 쌓고 항공물리학을 강의하는 여교관 찰리와도 사랑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영화는 당시 무려 3억 5천 달러 (한화 약 4천 억원)에 달하는 흥행수익을 내며 미국의 청년들을 대거 해군에 지원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24세의 신인 배우였던 톰 크루즈는 이 영화를 통해 청춘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고 월드 스타로 급부상했다. 2022년, 무려 36년 만에 ‘탑건: 매버릭’이 속편으로 돌아왔다. 전 세계에서 1조 원이 넘는 매출을 올리며 올해 최고 흥행작 반열에 올랐다.
최고의 파일럿이자 전설적인 인물 매버릭(톰 크루즈 분)은 라이벌이며 절친인 아이스맨(발 킬머 분)의 도움으로 자신이 졸업한 훈련학교 탑건의 교관으로 발탁된다. 매버릭에게 주어진 임무는 3주 남짓한 짧은 시간 동안 훈련생 탑건을 가르치는 것이다. 그의 명성을 모르던 팀원들은 매버릭의 지시를 무시하지만, 실전을 방불케 하는 상공 훈련에서 눈으로 봐도 믿기 힘든 전설적인 조종 실력에 모두가 압도된다. 매버릭의 지휘 아래 견고한 팀워크를 쌓아가던 팀원들에게 적국의 핵시설을 파괴하라는 위험한 임무가 주어진다. 매버릭은 죽은 절친 구스의 아들 루스터(마일즈 텔러 분)와 한 팀을 이루어 목숨을 건 비행에 나선다.
극장에 관객들이 몰리는 이유는 과거의 향수를 자극하기 때문이다. 실제 ‘탑건: 매버릭’은 ‘탑건’의 장면들을 고스란히 오마주하고 있으며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요소들로 채웠다. 서사적인 측면에서 매버릭의 절친인 제독 아이스맨은 대령인 매버릭을 탑건으로 복귀시킨다. 과거 훈련 도중 사고로 숨진 동료 구스의 아들 루스터는 그와 한 팀이 되어 비행한다. 전작에서 언급됐던 페니(제니퍼 코넬리 분)와는 러브스토리도 이룬다. 뿐만 아니라, 추억과 낭만을 떠올리게 하는 펍에서 떼창하는 군인들, 붉은 노을이 내려앉는 해변가, 항공전투신 등은 전편을 그대로 오마주 했다. 여기에 활주로를 배경으로 흘러나오는 배경음악은 1편의 오프닝 시퀀스를 소환한다. 36년이라는 간극이 느껴지지 않도록 전편의 이야기와 인물, 장면들이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관객들의 향수를 자극한다.
영화적 체험을 제공하는 것도 특징이다. 팬데믹 이후 OTT 이용자가 늘었지만 극장에서 봐야 하는 영화가 있다. ‘탑건 매버릭’은 집에서 즐길 수 없는 시각적 즐거움을 선사한다. 창공을 가르는 곡예비행, 지대공 미사일이 배치된 협곡 등 플레어와 미사일이 팡팡 터지는 신은 이 영화의 백미다. 개인 디스플레이에 의존하는 OTT 플랫폼과는 비교할 수 없다. 드넓은 하늘을 빠른 속도로 시원하게 비행하는 전투기의 모습, 전투 장면 등을 제대로 확인하기 위해서는 큰 스크린에서 관람해야 한다. 특히 아이맥스 카메라로 촬영한 영화인만큼 아이맥스 스크린을 이용한다면 ‘탑건: 매버릭’을 보다 재밌게 즐길 수 있다.
톰 크루즈의 연기 열정도 볼만하다. 스턴트맨 없이 액션을 소화하는 톰 크루즈는 이번 영화에서도 리얼리티를 살리기 위해 대역 없이 연기했다. 진짜를 향한 열정으로 전투기에 몸을 싣고 중력을 견디며 연기해 현장감을 고스란히 스크린에 담으면서 36년의 기다림이 아깝지 않은 속편으로 귀환했다. 수십 년의 세월을 지나 우리 곁으로 돌아온 매버릭의 귀환, 더 깊어진 따뜻함으로 돌아온 매버릭, 그 고집스러운 레전드 파일럿의 이야기가 관객들을 감동시킨다.
기성세대와 신세대의 불협화음이 큰 지금은 세대 간의 화합이 중요하다. 영화 ‘탑건: 매버릭’은 권위를 앞세워 상대를 강요하거나 가르치려고 하지 않는다. 몸소 실천하고 제자들과 부딪히며 스승으로서의 참된 모습을 보인다. ‘무인 전투 시대가 도래함에 따라 파일럿은 이제 필요 없다’는 상관의 말에 ‘아직은 아니라’는 답변으로 다음 세대를 위한 디딤돌을 자처하는 모습에서 어른의 자세를 배울 수 있다.
양경미 / 연세대 겸임교수, 영화평론가 film102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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