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지웅의 에너지전쟁] 유가 100달러 시대, 우리들의 블루스
美 셰일오일로 인해 가격 잡혀
현재는 셰일 증산 어려운 상황
생산시설 유지·친환경 정책 때문
中 원유 소비량 증가와 엇박자
수요·공급 불균형에 유가 상승
韓 무역수지 적자 장기화 우려
과도한 소비 패턴 되돌아볼 때
편집자주 - 아시아경제는 한 달에 한 번씩 목요일자에 대변혁기를 맞은 에너지 산업을 진단하고 그에 얽힌 국제 질서 변화를 짚어보는 '최지웅의 에너지전쟁'을 연재합니다. 저자는 2008년 한국석유공사에 입사해 유럽·아프리카사업본부, 비축사업본부에서 근무하다가 2015년 런던 코번트리대의 석유·가스 MBA 과정을 밟은 에너지 분야의 전문가 입니다. 에너지의 현재와 미래를 담은 베스트셀러 '2050 에너지 제국의 미래'를 펴냈습니다.
올해 2월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돌파했을 때 언론과 대중은 상당한 충격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유가 100달러는 낯선 것이 아니다. 아주 오랫동안 시장은 100달러 이상의 유가를 일반적 가격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2008년에 이미 유가는 최초로 100달러를 돌파했고, 2011년부터 2014년까지 줄곧 110달러 수준에서 머물렀다. 구체적으로 2011년, 2012년, 2013년 연 평균 유가는 브렌트 기준 각각 110.9달러, 111.7달러, 108.7달러였다. 그리고 2014년 1~3분기의 평균유가도 107달러였다. 근 4년간 유가는 110달러 근처에서 유지됐던 것이다.
2000년 이후 유가를 변동시켰던 가장 큰 두 가지 요인을 꼽으면 수요 측면에서는 중국의 등장이었고, 공급 측면에서는 셰일오일의 등장이었다. 최근 20년의 유가 변화를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중국의 등장으로 유가 100달러 시대가 열렸고, 셰일의 등장으로 100달러 시대가 끝났다’가 된다.
2001년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한 뒤 중국의 석유 소비는 10년에 걸쳐 두 배로 급증했다. 자연스럽게 세계 원유 소비도 지속적으로 증가했다. 이 때문에 2008년 1월 국제유가는 역사상 최초로 100달러를 돌파했다. 이후 100달러 이상의 유가를 장기간 유지했다. 그러다 2014년 4분기부터 국제유가는 전례 없는 폭락세를 경험한다. 셰일오일이 본격적으로 시장에 유입된 것이다. 이후 국제유가는 50~70달러 수준에서 움직였다. 셰일오일 등장 이후, 산유국들은 러시아가 참여하는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비(非)OPEC 주요 산유국들의 협의체 'OPEC+'라는 새로운 그룹을 구성했다. 이 OPEC+의 감산 합의에 의존해 유가의 하방을 지지하던 것이 2016년부터 2020년 코로나19 발생 직전까지 시장의 모습이었다.
2022년 석유시장의 가장 큰 변화는 더 이상 2015년부터 7년 간 이어진 공급 과잉 상황이 아니라는 것이다. 지난 7년간 석유시장이 공급 과잉일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셰일오일이었다. 매년 1.3%씩 증가하는 세계 석유 수요보다 더 큰 증가율로 셰일오일이 증가했다. ‘셰일혁명’이란 말에 걸맞게 미국은 셰일오일 덕분에 불과 10년 만에 산유량이 두 배로 증가했다. 그리고 2018년 세계 최대 산유국이 됐다. 그러나 지금 셰일오일은 과거처럼 매년 생산이 늘어나는 물량이 아니다. 2020년에는 생산량이 오히려 감소했고 2021년과 올해도 큰 폭의 증산은 없을 것이다. 지금 셰일기업들은 과거처럼 성장을 추구하지 않는다. 이미 셰일업계는 지난 10여년간 성장을 거듭하며 생산시설을 늘려왔고, 지금 그 수준만 유지하기에도 인력과 인프라가 빠듯하다. 지금 한 단계 더 증산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자본투자가 더 증가해야 하는데 이는 바이든 정부의 친환경 기조와 맞지 않다. 아직 갚아야 할 부채도 많다.
반면 석유 수요는 세계 각국에서 견고한 증가 흐름을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 신재생에너지가 확대되고 있지만 적어도 10년 이내의 미래에는 석유와 가스를 쓰는 에너지 소비 환경이 크게 변하기 힘들다. IHS마킷 등 주요 기관은 석유 수요의 피크 시점을 2030년 이후로 예상한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올해 6월 보고서를 통해 금년 석유 소비량은 전년 대비 하루 180만배럴 증가하고, 내년에는 올해 대비 하루 220만배럴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적어도 올해와 내년은 지난 20년의 평균 증가율 1.3%보다 높은 1.8~2.2%의 석유 소비 증가를 예상한 것이다. 유가 100달러 시대를 열었던 중국의 원유 소비 증가세는 앞으로도 이어질 것이다. IEA에 따르면 중국 원유 수요는 2030년까지 현재 대비 약 10% 증가한다. 과거에는 중국의 수요 증분 이상으로 미국 셰일오일 증분이 컸기 때문에 구조적 공급과잉 상황이 가능했다. 그러나 지금 셰일업계는 증산을 추구하지 않는다. 바로 이 수요 증분과 공급 증분의 불균형이 현재 고유가 기조의 핵심 원인이다.
큰 그림에서 보면 석유 시장은 배럴당 110달러 수준에서 균형을 이뤘던 2014년 이전으로 돌아갔다. 지금의 수급 상황은 100달러 이상의 유가가 4년간 유지됐던 그 상황과 유사하다. 유가 100달러 시대를 열었던 중국의 석유 수요 증가세는 여전한 반면, 그 수요를 받쳐줬던 셰일오일은 성장을 멈췄다. 미국 뿐 아니라 다른 산유국들도 투자 부진에 시달리고 있다.
그렇다면 여기서 중요한 질문을 해야 한다. 과거처럼 앞으로도 100달러 이상의 고유가가 수년간 이어지면 어떻게 해야 할까. 유가는 물가 수준을 결정하는 핵심 요소이면서, 한국의 경우 무역수지를 결정하는 가장 큰 요인이기도 하다. 한국의 수입품목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단연 원유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고유가가 장기화될 경우, 한국의 무역수지 적자가 장기간 지속될 우려가 있다. 실제로 2010년부터 2021년까지 연간 무역수지 흑자 규모와 연 평균 유가를 비교해보면 아주 뚜렷한 반비례 관계를 보인다. 올해 6월 초까지 무역수지도 고유가로 인해 100억달러 이상의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고유가는 국내 물가 수준에도 영향을 주지만, 무역수지 악화가 장기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심각하다. 따라서 지금은 익숙한 옛 구호라도 빌려와 다시 한 번 캠페인을 해야 할 판이다. '기름 한 방울도 안 나오는 나라에서 에너지를 절약하자'는 그 구호 말이다. 무역수지를 떠나 탄소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석유를 아껴 쓸 필요가 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지난 7년간의 저유가 시기를 지나오면서 현명한 석유 소비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다. 지금 한국의 석유 소비 현실을 돌아보고 다시 자문해야 한다. 한국은 세계 4위의 원유 수입국이다. 한국은 경제 규모에 비해, 그리고 탄소감축 목표에 비해 너무 많은 석유를 쓰고 있는 것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동시에 석유의 안정적 수급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도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최지웅 한국석유공사 스마트데이터센터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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