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멋있고 당당하고 인기 많지" 영화 [니얼굴]의 주인공, 다운증후군 배우 정은혜의 아름다움

2022. 6. 23.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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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은 변화한다. 몸에 대한 생각도 계속해서 진화한다. 여기 4명의 여성이 가진 내 몸에 대한 지금의 생각은 그 무엇과도, 누구와도 바꿀 수 없는 나만의 것이다.

거울 속 당신의 모습을 보면 무엇이 보이는가? 당신의 몸을 부위별로 낱낱이 뜯어 분석하는가? 스마트폰으로 포토샵을 하듯, 스와이프 한 번으로 피부 결을 정돈하고 몸의 굴곡을 더하거나 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가? 우리는 스마트폰 앞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낸다. 필터로 보정한 내 모습과 실제 내 모습을 쉽사리 비교하게 된다. 가끔은 스스로 예쁘다고 생각하는 아주 귀한 순간도 있을지 모른다. 자기 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내 몸 긍정’ 운동 덕에 우리는 지금까지 완벽한 몸의 허상에 사로잡혀 있었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힘을 갖고 있는지도. 하지만 자신을 사랑한다는 게 말처럼 쉽진 않다. 몸에 대한 느낌은 계속 바뀐다. 지난달과 이번 달이 다르고, 어제와 오늘이 다르고, 10분 전과 지금이 다르다. 내 몸에 대한 생각이 변해가는 것은 하나의 여정과도 같다. 우리의 몸은 출산, 수술, 노화를 겪는다. 살이 빠지고, 살이 찐다. 정신 건강과 행복도에 따라 내 몸에 대한 생각 또한 크게 달라지기 때문에, 때로는 겉으로 보이는 것과 본인이 속으로 느끼는 것이 정반대가 되기도 한다. 식스팩을 드러낸 ‘핫한’ 비키니 사진을 올리는 이들과 살집이 그대로 드러난 ‘보디 포지티브’ 비키니 샷을 올리는 이들이 공존하는 여름이면 내면의 갈등은 더욱 심해진다. 이 글은 그 갈등을 얼마간 풀어줄 해독제다. 그렇다고 살을 찌우라거나, 빼라거나, 실제로는 결점이 아닌 것들을 짚어가며 내 몸의 결점까지 사랑하라는 가르침을 주려는 강의는 아니다. 이 글은 우리가 내 몸에 대해 갖는 생각이 진화해가는 과정에 대한 솔직한 대화다. 이 글은 오늘 당신이 당신의 몸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든 괜찮다고 말한다.

“세상에 안 예쁜 얼굴은 없어요” 정은혜
정은혜는 양평군 문호리의 리버마켓에서 ‘니얼굴’ 캐리커처를 그리는 것으로 유명해진 작가다. 다운증후군 외모로 시선 강박증까지 앓게 된 그에게 그림은 세상과 소통하는 창구가 됐다. 얼마 전 그는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에 한지민의 쌍둥이 언니 ‘영희’ 역으로 출연해 화제를 모았다. 6월에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리버마켓에서 캐리커처를 그리는 은혜 씨의 일상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니얼굴〉이 개봉한다.

“예쁘다.” 이른 아침 학동역 근처 스튜디오에서 메이크업을 받던 은혜 씨가 제대로 뱉은 첫 단어다. 시종일관 뚱한 표정이다가, 커피를 받자마자 거푸 서너 모금을 들이켜고 난 후였다. “아침이라 피곤해서 그래요. 커피 한 잔 하면 또 텐션이 올라올 거예요”라던 그의 어머니, 만화가 장차현실 씨의 말이 꼭 맞았다. 확실히 얼굴 표정이 달라졌다. 그는 엄마가 필요할 때는 거침없이 “현실아!” 하고 부르고, 아이보리와 블랙 중 입고 싶은 슬립 드레스를 묻는 말에 주저 없이 “블랙”이라 답했다. 144cm, 아담한 은혜 씨가 마침내 호리존에 서자 별안간 스튜디오가 꽉 찼다. “춤을 춰도 되고, 얼굴에 꽃받침도 좋고, 하여간 하고 싶은 건 맘껏 해주세요”라고 주문하자 포즈가 쉴 새 없이 이어졌다. 은혜 씨는 “우빈 오빠랑 지민 언니한테 사진 보내줘야지. 놀라겠다”라며 배시시 웃었다. 카메라 세례가 끝나고 난 뒤, 의자에 잠시 앉아 자신이 찍힌 사진들을 바라보던 은혜 씨는 약간 멍해 보였다. “저게 나야?” 인터뷰를 위해 자리에 앉자마자, 사진이 마음에 드는지 물었다. “네.” 대뜸 “채식하고 (몸이 좋아졌다)”라는 정보도 일러줬다. “소화 장애 때문인지 몸에 종기가 자꾸 나서 채식으로 식단을 바꾸고 한약을 먹고 있어요”라고 장차현실 씨가 설명해줬다. ‘다운증후군’ 하면 보통 얼굴 생김새만 떠올리기 쉽지만, 이것이 발달장애의 한 종류이며 뇌 기능에 영향을 미쳐 심장과 위, 신장 등 장기의 대사 문제나 학습 장애, 비만 등을 동반한다는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은혜 씨의 경우 채식을 하면서 피부가 개선된 건 물론이고 살도 조금 빠졌다. 찍힌 사진을 보니 어떤 생각이 드냐는 물음에 은혜 씨가 답했다. “사랑스러워요.” 자연스러운 포즈는 춤을 배운 덕분인지 궁금했다. “아니에요. 모델을 했었어요, 제가.” 옆에서 듣던 장차현실 씨가 “네가 언제?”라며 의아해하더니 이내 이마를 짚었다. “맞다. 아주 옛날에 〈몸으로 말하기〉라고 장애 여성들의 몸 사진전에 참여한 적 있어요. 정말 오래됐는데….” 카메라 앞에 서니 본능적으로 그때 생각이 난 듯했다. 몸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부분을 묻자 “얼굴. 팔. 궁뎅이? 그리고 가슴”이 순서대로 술술 나왔다.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 출연 이후 유튜브에는 은혜 씨가 예전에 출연한 다큐멘터리 편집본이 여럿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그중에는 자기 방에 ‘섹시 공주방’이라고 붙여두었던 17살 은혜 씨 모습도 있다. 요즘은 사람들이 은혜 씨를 어떻게 생각했으면 좋겠냐고 물었다. “멋지고 당당하고 예쁘고 인기 많고.” 은혜 씨는 매번 외출 전에 꼼꼼히 기초화장을 한다. 장차현실 씨의 도움을 받아 파악한 절차는 다음과 같다. “하얀 거, 젤(스킨). 동그란 크림. 선크림. 비비크림. 그거(눈썹)도 하고.” 은혜 씨를 지그시 바라보던 장차현실 씨는 “오늘 눈썹 너무 잘 그려주셨다. 예쁘네”라며 감탄했다. 은혜 씨도 촬영 당일 유독 어머니에게 예쁘다는 말을 많이 했다. “뭐 했어? 왜 이렇게 예뻐?” 은혜 씨 사전에 ‘예쁘다’는 말은 ‘기분이 좋다’와 유의어인 듯했다. “네 눈에 지금 다 예뻐 보여?” 하며 어머니는 웃을 수밖에. 기분이 제일 좋을 때는 언제냐는 말에 곧장 “먹을 때”라고 대답했다. 은혜 씨가 등장한 영상을 보면 유독 먹는 장면에서 한껏 텐션이 올라 몸을 흔들어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술도 가끔 한다. 가장 좋아하는 건 “와인. 진로(소주)도 마시고.” 많이는 안 되고, 한두 잔 정도다.

드레스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한동안 개인 활동을 이어가던 은혜 씨는 요즘 다시 문호리 리버마켓에 나가기 시작했다. 드라마 출연 이후 캐리커처를 받고 싶다는 문의가 하도 많아서다. “눈이 오거나 바람이 불거나, 비가 오거나. 그림을 그리면서, 술도 먹고.” 여태까지 그린 그림이 4천여 점에 가까워졌다. 은혜 씨는 자기 얼굴도 꽤 여러 번 그렸다. 이번에 개봉하는 그의 아버지 서동일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니얼굴〉 포스터도 빨간 줄무늬 티셔츠를 입은 은혜 씨의 자화상이다. 직장 내에서 발달장애인을 대하는 법을 대중에게 알리기 위해 한국장애인고용공단에서 발행한 안내 책자 〈보람씨의 행복한 직장생활〉에 그린 삽화도 본인을 모델로 찍은 사진을 레퍼런스로 완성한 그림들이다. “자기는 다 예쁘게 그리고 다른 사람은 이상하게 그려”라며 장차현실 씨가 짓궂게 놀렸다. “난 예쁘니까. 밝은 아이.” 은혜 씨가 그린 자화상 속 은혜 씨는 어딘가 새초롬하다. 뚱하면서도 약간의 장난기가 서린 평소 표정이 고스란히 담긴 것이 신통하다. 은혜 씨는 농담 반 진담 반의 어조로 다시 한 번 강조했다. “음, 착한 아이. 순수하고 밝은 아이. 천사 같은 아이.” “너 평소에 엄마한테 그렇게 성질을 내면서 스스로 착하다고 할 수가 있니?” 어이없다는 듯 웃던 장차현실 씨도 이내 “안 착해도 돼. 응? 나는 네가 성질 내는 게 더 좋아. 아가씨, 네 성질대로 사세요”라며 진심을 꾹 눌러 담아 말했다. 늙으면 어떤 모습일 것 같냐는 말에 은혜 씨는 엄마 얼굴을 봤다. “엄마처럼 갱년기.” “쪼글쪼글해지겠지, 너도.” “그렇지. 엄마처럼 짜글짜글짜글짜글. 신나죠. 신나요.” “신날 것까진 없겠지만 괜찮겠다 이거겠죠.” 장차현실 씨는 매번 은혜 씨의 말을 기가 막히게 번역해줬다. “엄마처럼 성질 부리고.” “그치, 늙어봐. 무서울 게 없어.” 채식이 은혜 씨의 몸을 바꿨다면, 그림과 춤은 은혜 씨의 마음을 바꿨다. 예전에는 자작시에 “외롭다”고 적었던 은혜 씨가 이날은 “저랑 동갑짜리 친구 하나 있어요. 녹색당 당원”이라고 또박또박 말했다. 장차현실 씨의 말에 따르면 전화 통화를 자주 한다고. 무슨 얘기를 하는지는 “비밀”이다. 은혜 씨에게는 유독 소중한 친구가 또 있다. 서촌화가 김미경 씨다. 김미경 작가에 대해 묻자 은혜 씨는 이렇게 답했다. “그리워요.” 언제 봐도 보고 또 보고 싶은 애틋한 마음일까? “우리는 언어와 글이 의사소통의 기본값인 세상에 살고 있지만, 은혜 씨에게 익숙한 소통 방식은 그림을 그리거나 춤을 추는 거예요.” 딸에게 꼬박 존칭을 붙여가며, 인터뷰 말미에 어머니 장차현실 씨는 이렇게 덧붙였다. 사실 말하지 않아도 은혜 씨가 최선을 다하고 있음을 모두가 느낄 수 있었다. 촬영 당일 은혜 씨는 어머니에게 가끔 툴툴대면서도 현장의 스태프들에게는 단 한 번도 싫은 내색을 하지 않았다. 다소 낯을 가리는 것 같아도, 카메라 앞에 선 은혜 씨 모습은 그 반대를 얘기하고 있었다. 오직 카메라 앞에 드러난 은혜 씨의 몸짓만이, 은혜 씨가 지금 스스로에 대해 느끼는 전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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