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호의 시시각각] 이재명 출마, 민주당의 위기

신용호 2022. 6. 23. 0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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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 출마, 계양을 이어 명분 없어
오직 당권 잡기에만 매몰된 듯
후진 없었던 정치 여정 되돌아봐야
신용호 Chief 에디터

이낙연 민주당 전 대표가 미국행 비행기를 타기 직전(지난 5일) 필자와 통화했다. 지방선거 패배 후 이 전 대표는 물론 친문재인계 인사들이 '이재명 책임론'을 언급하자 친이재명계 인사들이 대대적 반격에 나섰던 때였다. 그에게도 엄청난 비난이 쏟아진 모양이었다. 그는 통화 말미에 “당이 이렇게 추락할 수가 없다. 정말 말도 안 된다. 바로잡아야 하는데… 엉망이다”라는 한탄을 쏟아냈다. 평소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는 그의 '분노'는 당내 갈등의 깊이를 실감케 했다. 그 싸움은 갈수록 격해지고 있다.

계파 간 갈등은 그렇다 치고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연이어 지고도 이렇다 할 책임을 지는 이를 볼 수 없다. 그것도 모자라 8월 전당대회를 두고 "나는 나간다" "너는 나오지 말라"고 다투는 꼴은 더 한심했다. 당의 상징이 된 오만과 독주, 내로남불에다 '개딸'로 대표되는 팬덤 정치가 중심에 서면서 민주당은 어디로 갈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이재명 민주당 의원이 지난 18일 인천 계양구 계양산 야외공연장에서 열린 '이재명과 위로걸음' 행사에서 지지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 중심에 이재명 의원이 있다. 명분 없는 인천 계양을 출마는 당에 부담을 주었다. 그는 배지를 달았지만 당은 패배했다. 뚜렷한 반성 없이 전당대회에 나설 태세다. 계양을 출마부터 예상된 수순이지만 그의 전당대회 출마 역시 명분이 없다. 친문을 비롯해 86그룹과 비주류 사이에선 이재명 불가론이 다수다. 하지만 그를 막기엔 역부족이다. 대적할 상대가 없어서다. 재선 의원 34명이 22일에도 사실상 불출마를 요구하는 성명을 냈지만 이 의원이 끄떡할 것 같지 않다. 한 친명계 인사에게 그의 출마에 대해 물었다.
-이 의원이 책임지지 않았다.
"그건 그렇다. 그래서 본인도 고민이 많다. 하지만 안 싸우겠다고 안 나가면 바보가 된다. 나오지 말라는 사람들 때문에 나가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출마에 걱정이 많다.
"어쩔 수 없이 홍역은 치르고 가는 수밖에 없다. 찢어지더라도 방법이 없다. 사안마다 모두 잘 합의되거나 마무리되는 건 아니지 않나. 비난을 감수하고 대표가 돼서 보여주면 된다. 어차피 말에 올라탔다."
이 의원의 출마는 세대교체론을 원점으로 돌릴 거다. 친문 후보와 맞설 경우 격렬한 다툼으로 당은 분당 위기를 맞을지도 모른다. 그가 대표가 된다면 사정 정국이 빚어낼 '이재명 리스크'가 고스란히 '민주당 리스크'가 될 수도 있다. 다음 총선을 생각하면 국민의힘으로선 호재가 아닐 수 없다. 야권 중진 인사는 "모두 출마해 싸운다면 그게 바로 죽는 길이다. 또 그 후유증이 이만저만 아닐 거다. 특히 이 의원이 대표가 되면 개딸들이 하라는 대로 해야 하는 시대가 오지 않겠나. 자괴감이 든다"고 했다.
아직 시간이 남은 만큼 이 의원은 이런 생각도 해봤으면 한다. 당의 위상을 깎아 먹는 강경파 '처럼회'를 친위부대 삼아 당권을 잡는 목표에만 매몰돼 있는 건 아닌지 말이다. 대표직을 자신의 사법적 리스크를 막아내는 방패쯤으로 여기는 건 아닌지도. 그가 꿈꾸는 차기 대권을 위해 친명·친문 후보는 뒤로 물러나고 쇄신할 수 있는 젊은 지도체제를 세우는 게 합리적이지 않나.
이 의원은 이제 초선이다. 실패를 거울삼아 지도자의 길을 배워나가야 한다. 국회에 들어온 이상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 어떻게 협상하고 타협할 지를 모색하는 게 첫걸음이다. 시장이나 도지사 때처럼 모든 권력을 틀어쥐고 밀어붙이는 건 정치가 아니다. 그가 당 대표가 된다면 시장·도지사식 정치의 시즌2가 될 것이라 걱정하는 이가 적지 않다. '이재명 정치'에 후진이 없었던 점도 짚어볼 대목이다. 그는 바닥에서 무서운 속도로 위로 치고 올라만 왔다. 한 차례도 물러남이 없는 정치는 위험하다.
이 의원의 출마는 가뜩이나 길을 잃고 헤매는 민주당을 거세게 흔들 수 있다는 걸 스스로도 잘 알 거다. 이 정도가 바닥일 거라 예상하지만 더 깊을 수도 있다. 이 의원이 의미 있는 결정을 해야 할 시점이다.

신용호 Chief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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