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 대신, 소중한 사람 지켜낸 왕의 선택

이준목 2022. 6. 22.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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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KBS2 월화드라마 <붉은 단심>

[이준목 기자]

진정한 복수는 단지 원한을 푸는 보복을 넘어, 괴물이 되지않는 것. 나에게 가장 소중한 가치를 지켜내는 데 있다.

21일 방송된 KBS2 월화드라마 <붉은 단심>에서는 피비린내 나던 권력투쟁의 끝자락에서 각자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을 지켜내려는 주인공들의 마지막 선택이 그려졌다.

이태(이준)는 유정(강한나)이 박계원(장혁)과 거래하여 자신을 견제한다는 사실을 알고 충격을 받는다. 이태는 "과인의 적이 되겠다는 거냐. 과인이 어찌 살아왔는지 누구보다 잘 아는 내궁이. 이제 왕권을 바로 세우고 끝이 보이는 이때"라며 분노한다. 하지만 유정은 "끝은 없다. 그래서 시작했다"라고 반박했다.

이태는 "멈춰야 한다. 내궁이 적이 되면 과인은 그대를 제거해야 한다"며 눈물을 흘리면서 경고한다. 이태는 권력을 추구한 것도 유정을 지키기 위해서라며 "과인은 과인의 길을 갈 것이다. 그래야 내궁을 지켜줄 수 있다"고 호소한다. 유정은 "그리하세요 전하. 전하의 길을 가시라. 다만 전하가 아닌 신첩을 위해서는 가지 마시라. 신첩은 신첩이 온 힘을 다하여 지킬 것"이라며 이태의 제안을 뿌리친다.

유정은 재야의 사림들을 만나 공신들과의 일시적인 연대를 제의한다. 조정에서는 유정의 신분과 거취 문제를 놓고 대신들 사이에 갑론을박이 벌어진다. 이태는 유정을 지키기 위하여 이 모든 사건의 책임을 박계원에게 돌려 죄를 묻는 것으로 난국을 돌파하려 한다.

최가연은 박계원이 투옥되고 자신의 측근들도 차례로 제거당하자, 정적인 이태를 찾아가 석고대죄하고 폐비를 청하는 승부수를 띄웠다. 이태는 최가연 앞에 무릎을 꿇는 척하면서 "그만 하시라, 참으로 추하다"라며 조롱한다. 최가연은 "공신들이 저희가 살기 위하여 날 죽일까. 아니면 반정을 일으켜 불효자인 주상을 폐위할까. 어느 쪽이 더 명분이 있을까"라며 이태를 압박한다.

최가연은 은장도로 자해를 하려하자 이태는 급히 그녀를 제지했다. 무엇을 원하느냐는 이태의 질문에 최가연은 측근들과 함께 자신을 "온양행궁으로 보내달라. 더는 궁궐에서 버틸 힘이 없다"라고 제안하고 이태는 수락한다.

이태는 유정을 만나 "과인에게는 절대적인 내편이 필요하다. 늘 주변엔 내 사람이 아니면 내 적이었다"라고 고백한다. 유정은 "저는 평생 전하의 곁에서 그렇게 살 것이다. 저는 전하의 적이 아니다. 고언을 하는 신하로 살려한다. 받아주십시오. 받아주셔야 한다"라고 진심을 고백한다.

정의균은 이태에게 행궁으로 가는 최가연을 시해할 것을 제안한다. 이태는 거부하지만 정의균은 무시하고 독자적으로 암살 작전을 강행한다. 수감되어있던 박계원은 시해 위험을 누구보다 잘 아는 최가연이 안전한 궁궐을 떠났다는 소식에 비로소 그녀의 본심을 눈치채고, 파옥하여 그 뒤를 따라간다.

최가연은 궁궐을 떠난 이틀 뒤에야 이태가 읽어볼수 있도록 편지를 남겼다. 최가연은 자신을 시해당할 것을 이미 예측하고 '내가 죽으면 주상이 한 짓이라는 내 친필이 적힌 벽보가 조선 팔도에 붙을 것이다. 주상이 어미를 죽였노라고. 이제 주상은 죽으려는 나를 살리고 싶을 것이다. 부디 반정과 숙청의 피바람으로 내가 준 지옥에 살아보라'는 저주가 편지에 담겨 있었다.

충격을 받은 이태는 다급히 정의균을 찾지만 그가 전날부터 입궐하지 않았다는 소식을 듣고 그가 암살 계획을 주도했다는 사실을 비로소 눈치챈다. 정의균이 최가연에게 화살을 겨누던 순간, 뒤따라온 박계원이 최가연 앞에 나타난다. 최가연은 "나를 죽이러 온 것이냐. 내가 죽어주면 되는 거냐, 내가 죽으면 다들 지옥일테니 이제 기쁘게 죽어줄수 있겠구나"라며 절규하며 박계원을 원망한다.

박계원은 "마마의 모든 죄는 나로 인해서다. 그러니 살아주시라"라며 다독인다. 사랑하는 사람과 평범한 여자로서의 행복을 꿈꿨던 최가연의 진심을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박계원은 "그렇게 살게 해드려야 한다고 후회하고 또 후회했다"라며 뒤늦은 진심을 전했다.

암살단과 박계원의 수하들 사이에 전투가 벌어진다. 정의균이 최가연을 노리고 화살을 날리지만, 박계원은 그녀를 지키기 위하여 대신 온몸으로 화살을 맞았다. 박계원은 피를 쏟으며 "마마, 살아주십시오. 사는 것이 죽는 것보다 고단하더라도, 꽃이 피면 꽃을 보고, 눈이 내리면 눈을 맞으면서 또 하루를 그리 살다보면 어느 하루, 웃을 날도 있겠지요"라는 마지막 유언을 남기고 최가연의 앞에서 숨을 거둔다.

정체가 탄로난 정의균은 이태를 보호하기 위하여 이별을 고한다. 정의균은 "내궁에게 전하를 부탁했다. 선왕이 소신에게 전하를 부탁했듯이, 제가 믿을 수 있는 분은 내궁뿐"이라며 유정과 함께할 것을 당부하고 이태를 떠난다.

유정은 박계원과의 인연을 회상하며 "나의 정치는, 나의 시대는 경의 길과는 다름을 보여주겠다"라고 다짐한다. 이태는 문상을 와서 박계원의 환영을 만난다. 이태는 "너의 시대가 끝났으니 과인의 시대로다"라고 일갈하고 박계원은 "신하로 인하여 전하의 은덕이 지워졌다고 보나. 신하로 인하여 전하의 부덕이 가려지는 것을 모르시냐"라고 반박하며 "이제부터 전하의 통치는 온전히 전하의 책임"이라고 강조한다.

이태가 "과인이 잘할 것이라고 보냐"고 묻자. 박계원은 "모른다. 그래서 전하를 믿지 못했다. 다만 신하는 고할뿐, 모든 결정은 만백성의 하늘인 전하의 뜻이다"라고 당부한다. 이태는 유정을 찾아와 "이제 원망해야 할 사람이 사라졌다"라며 그녀의 품안에서 눈물을 흘리고, 유정은 그런 이태를 따뜻하게 위로했다.

이태는 최가연을 찾아와서 대비의 폐위를 전하며 길고 지루한 싸움이 될 것을 예고한다. 이태는 불효의 죄가 치세 내내 붙겠지만, 어미를 자식이 죽였다는 벽보가 전국에 붙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라며 "함께 가시지요, 마마가 만든 지옥으로"라고 일갈한다.

최가연은 "그냥 죽이세요. 제발"이라고 호소하지만, 이태는 냉정하게 "목을 매어도 독을 삼켜도 살릴 것이다. 임금이 효를 다하고 있음을 증명해야 하니까. 그러니 살아가시라. 이 궁궐에서 홀로. 백수를 누리시지요"라고 선언하며 돌아선다. 남겨진 최가연은 "홀로 백수를 누리라"는 이태의 말을 되새기다가 오열한다.

세월이 흐르고 유정은 아이를 출산하고 이태와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어느덧 권력을 공고히 한 이태는 옥좌를 바라보며 자신이 올바른 군왕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고민한다.

이태는 외척이 되어 권세가 커진 조원표를 파직시키고 귀양보낸다. 이태는 후궁인 조연희만큼은 지켜주겠다고 약속한다. 분노한 조연희는 귀양을 떠나는 조원표를 전송하며 "앞으로 아버지를 누구도 못건드리지 못하게 힘을 키우겠다. 중전은 못 되어도 대비는 되어보겠다"라고 다짐하며 후일을 기약한다.

이태는 유정을 마침내 중전으로 책봉한다. '머리 위의 칼이자, 나의 안식처'라는 이태의 독백에 유정은 '머리 위에 칼이 있어야 왕좌의 무게를 안다. 평생의 전하의 안식처가 될 것'이라고 화답한다. 책봉식에서 "나의 정인이자, 나의 중전이며 나의 정적이여"라는 이태의 독백을 끝으로 드라마는 해피엔딩속의 묘한 여운을 남기며 막을 내린다.

<붉은 단심>은 살아남기 위해 사랑하는 여자를 내쳐야 하는 왕 이태와, 살아남기 위해 중전이 되어야 하는 유정, 연인이면서 동시에 정적이 된 그들이 동상이몽을 그려낸 이야기다.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했지만 등장인물은 모두 가상의 인물이다. <붉은 단심>은 기존 자체 최고 시청률 8.9%(닐슨코리아 전국 기준)와 타이를 기록, KBS 사극 흥행 불패를 보여주며 유종의 미를 거뒀다.

젊은 스타들의 연애담이나 판타지에 초점을 맞춘 기존 청춘 사극과 달리, 잔혹한 권력투쟁의 한복판에 내던져진 연인들을 내세운 '정치 로맨스' 사극이라는 색다른 접근법이 돋보였다. <붉은 단심>은 허구의 스토리임에도 일반적인 로맨스물에서 예상되는 낭만성이나 판타지적 전개는 최대한 배제하고, 시종일관 진지하고 비극적인 분위기로 전개된다. 드라마에서 주인공들의 로맨스란, 단순히 사랑놀음을 넘어서 비정한 정치와 권력투쟁 속에서 '인간다움'을 지탱하는 마지막 보루로 묘사된다.

단순한 선악 이분법을 넘어서 주인공들은 각자의 정의와 명분, 그리고 한계와 연민을 드러내는 입체적인 인물로 묘사된다. 이태는 치열한 정치극의 중심에서 복수의 화신에서 성숙한 군왕으로 성장해가는 캐릭터이고, 박계원은 권세를 탐하는 권신이지만, 동시에 나라를 생각하는 자신만의 신념이 있고, 동시에 대비를 향한 이루지 못한 연정을 마음을 품은 순정남의 면모도 가지고 있다. 유정과 최가연은 조선시대 사극에서 묘사되는 전형적인 히로인을 벗어나 자신의 신념과 욕망을 가지고 움직이는 주체적인 여성 캐릭터로 등장했다.

특히 후반부 최가연의 흑화를 중심으로 클라이맥스를 책임한 박지연의 열연은 '진히로인과 페이크 여주인공' 논란을 낳을만큼 강렬한 존재감을 빛냈다. 최가연은 정순왕후(영조-정조), 문정왕후(중중 인종-명종) 등 조선 시대에 실존하며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대비들을 모티브로 재창조한 인물이다. 그동안 조선시대 사극에서 나이 많은 궁중어른이나 이야기의 조연급으로만 소비되던 '대비'라는 캐릭터를, 억눌린 욕망과 연정, 권력욕 사이에서 방황하는 현대적인 '팜므파탈'로 해석해낸 것은, 박지연이라는 배우의 열연을 만나 빛을 발할 수 있었다.

다만 후반부에 오히려 서브주인공 커플이자 악역이라고 할 수 있는 최가연과 박계원에게 비중이 쏠리면서 상대적으로 진짜 히로인인 유정의 역할과 존재감이 묻혀버린 것은, 이야기의 균형을 맞추는 데 실패했다. 실제로 극후반부에서 유정은 사건의 주변부에만 머물며 간간이 이태에게 쓴소리를 하거나 위해주는 장면에서만 등장하는 병풍으로 전락해 버린다. 

<붉은 단심>은 단순히 선과 악의 복수극을 넘어 정치는 권력투쟁이 아니라 더 소중한 가치를 지키고 지향하기 위한 과정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최가연이 흑화한 결정적 이유도 박계원에 대한 미련 때문이었고, 냉혹해보이던 박계원은 결국 마지막에는 최가연을 지키려다가 숨을 거둔다.

또한 박계원의 죽음과 최가연의 몰락으로 이태는 '최후의 승리자'가 되지만 드라마에서 그의 승리 자체가 곧 정의나 해피엔딩이라고 묘사되지는 않는다. 독재자로 전락하기 쉬운 국왕 앞에서 '무조건적인 내편' 대신 고언하는 '정적이면서 안식처'가 되겠다는 유정의 모호하고 복잡한 정체성, 복수극을 마무리한 이태가 어떻게 권력 그 자체를 넘어 진정한 군왕이 될수 있을지 고민하는 모습은 여운을 남긴다.

하지만 정작 그들이 자신의 각기 다른 정치적 신념을 어떻게 실천하는지, 이태와 유정의 어떻게 갈등을 해소하고 다시 동행하게 되었는지 등은 충분히 제대로 묘사되지 못했다. 그저 주인공들의 몇 마디 대사와 눈물만로 봉합된 어색한 전개는 극의 핵심적인 메시지에 대한 공감대를 떨어뜨리며 마무리에서 아쉬움을 남기기도 했다. 모든 외부의 적이 사라지고 나서 이태와 유정의 후일담과 그들의 관계 변화에도 좀더 분량을 할애했더라면 어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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