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왕의 아버지보다 어머니가 더 강했다는 증거 [김종성의 사극으로 역사읽기]

김종성 2022. 6. 22.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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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성의 사극으로 역사읽기] KBS2 <붉은 단심>

[김종성 기자]

1506년 중종반정(연산군 실각) 이후의 시대 배경에 상상력을 대거 투입해 만든 KBS <붉은 단심>의 최근 방영분은 대비 최가연(박지연 분)이 전처소생인 임금 이태(이준)를 상대로 반란을 일으켰다가 실패하는 장면을 보여줬다. 

아직 후계자가 없는 임금 이태가 5월 6일 제11회 때 쓰러져 사경을 헤매게 되자, 대비 최가연은 반발 여론을 무릅쓰고 수렴청정을 선포했다. 그런 뒤 군대 등을 동원해 후궁 유정(강한나 분)을 비롯한 임금 친위세력을 압박하다가 허무하게 실패했다. 이태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국가권력이 자연스럽게 이태의 수중으로 들어간 결과다.

대비가 쿠데타를 일으킨다는 설정은 상상의 결과물이고 드라마에서는 대비의 난이 비교적 쉽게 진압됐지만, 대비들의 권력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막강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몇몇 사례만 다시 살펴봐도 알 수 있는 일이다.

한국 역사에서 확실히 증명된 것이 있다. 왕의 아버지가 강할 것 같지만, 실제로는 왕의 어머니가 훨씬 강했다는 점이다.
 
 KBS2 <붉은 단심> 한 장면.
ⓒ KBS2
 
9년의 위상, 싱거운 몰락

흥선대원군 이하응이 어린 고종을 대신해 섭정 권한을 행사했지만 의외로 싱겁게 몰락했다. 그의 기반에 허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흥선대원군은 1873년까지 9년 동안 막강한 위상을 보여줬다. 정조 사후에 순조·헌종·철종 3대에 걸쳐 이어지던 외척 가문(왕실 사돈)의 세도정치를 종식시키고, 보수세력인 유림들을 압박하는 서원 철폐령으로 조선 사회를 놀라게 만들었다.

국제적으로도 업적을 남겼다. 서양세력이 동양으로 점점 다가오며 동아시아 각국을 굴복시키던 서세동점 시대에, 병인양요(1866) 및 신미양요(1871)를 승전으로 이끌며 프랑스와 미국을 패퇴시켰다. 영국과 러시아가 1진급을 이루고 프랑스·독일·미국 등이 2진급을 이뤄 세계를 주도하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그에게는 한계가 있었다. 고종은 자신의 처가이기도 하고 아버지의 처가이기도 한 여흥 민씨 가문이 도승지 같은 주요 포스트를 차지할 수 있도록 조치하는 방법으로 자기 힘을 늘려가다가 아버지를 한순간에 몰아냈다.

고종은 자기가 추천하는 사람들이 아버지 쪽 사람들로도 비친다는 점을 활용했다. 아버지의 의심을 사지 않는 방법으로 아버지의 영역을 잠식해 가다가 결정타를 날렸던 것이다. 

그에 대해 대원군은 파괴력 있는 대응을 보여주지 못했다. <붉은 단심> 속의 최가연은 임금에게 맞서기 위해 군대라도 동원해봤지만, 대원군은 그렇지 않았다. 왕의 살아 있는 아버지는 강할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정치에 눈뜨고 성년이 된 아들 앞에서 대원군은 맥을 추지 못했다.

막강했던 대비들
 
 KBS2 <붉은 단심> 한 장면.
ⓒ KBS2
 
이런 대원군보다 훨씬 막강한 대비들이 있었다. 중종의 부인이자 명종의 어머니인 문정왕후는 11세 된 아들을 대신해 1545년부터 1553년까지 8년간 수렴청정을 했다. 그는 1553년 이후에도 집권을 계속해 1565년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국정을 이끌었다.

명종이 어머니의 권력 행사를 고분고분하게 받아들인 것은 아니다. 이 문제로 모자 간에 다툼도 있었다. 음력으로 명종 20년 4월 6일자(양력 1565년 5월 5일자) <명종실록>에 묘사돼 있듯이, 문정왕후는 권력을 갖고자 하는 아들에게 "너를 왕으로 세운 공로는 나에게 있다"며 "내가 없었다면 네가 무슨 수로 이렇게 됐겠느냐?"라고 몰아부쳤다. 아들의 의욕을 꺾은 것이다. 

명종도 고종처럼 자기 사람들을 모았다. 1516~1519년 조광조 집권기간에 수권능력을 보여준 개혁파인 사림파를 끌어들여 어머니에게 맞서고자 했다. 그렇지만 권력을 꽁꽁 움켜쥔 어머니 앞에서 제대로 힘을 쓰지 못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1565년에야 임금의 위상을 갖게 됐고, 그로부터 2년 뒤 그 자신도 세상을 떠났다. 임금으로 살았던 22년 중에서 실제로 임금 역할을 했던 기간은 2년에 불과했다.

문정왕후만큼은 아니지만, 성종의 어머니인 인수대비, 영조의 부인이자 정조의 젊은 새할머니인 정순왕후도 막강한 권력을 행사했다. 정순왕후는 자기 친정이 왕실 비슷한 힘을 갖도록 만들기까지 했다. 정조가 열 살 된 순조를 두고 세상을 떠난 1800년에 정순왕후는 수렴청정을 시작하고 친정인 경주 김씨가 세도정치를 하도록 만들었다.

대비들의 위상이 막강한 것에 비하면, 그들에 대한 견제 장치는 상대적으로 취약했다. 언제든 최고권력을 쥘 수 있는 이들에 대한 합법적 견제수단이 마땅치 않았기 때문에, <붉은 단심> 속의 최가연처럼 이들이 마음만 먹는다면 얼마든지 강한 권력을 가질 수 있었다. 

대비들에 대한 견제 수단이 마땅치 않았다는 점은 명종만큼이나 대비에게 불편한 마음을 갖고 있었던 정조 임금의 사례에서도 나타난다. 정순왕후의 오빠인 김귀주(김구주)가 정조를 해치려다 귀양을 가고 세상을 떠난 사실, 정조가 죽은 뒤에 정순왕후가 정조의 개혁을 후퇴시킨 사실에서도 느낄 수 있듯이 정조와 정순왕후는 정치적으로 대립하는 관계였다. 그렇지만 정조는 정순왕후를 어쩌지 못했다. 항상 깍듯이 예우하며 선을 지키지 않을 수 없었다.

대비를 어찌지 못한 것은 광해군도 마찬가지다. 그는 새어머니인 인목대비를 서궁(덕수긍)에 유폐하는 불효를 범했지만 그 이상의 압박은 가해지 못했다. 인목대비는 광해군이 어머니로 모셔야 할 존재였지만, 광해군의 지위를 위협하는 이복동생 영창대군의 어머니었기 때문에 광해군 입장에서는 상당히 껄끄러운 대상이었다. 그렇지만 광해군은 대비를 연금시키는 이상의 물리적 압력은 가하지 못했다.

고종은 '아버지 그만하세요'라며 흥선대원군을 몰아냈다. 고종이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흥선대원군의 권력이 아들의 왕권에 기초했기 때문이다. 대원군의 권력은 1866년까지는 익종(효명세자)의 부인이자 헌종의 어머니인 신정왕후 조씨의 권한에 기초했다. 신정왕후가 어린 고종을 대신해 수렴청정 권한을 갖고, 신정왕후가 이 권한을 대원군에게 위임하는 방식이었다.

신정왕후의 수렴청정이 끝난 뒤에는 대원군이 아들의 권력을 대신 행사하는 구조로 바뀌었다. 아들의 권력을 위임받아 행사하는 방식을 취했기 때문에, 은밀히 세력을 확충한 아들이 '아버지 그만하세요'라고 했을 때 마땅히 대응할 수단을 찾을 수 없었던 것이다. 흥선대원군의 지위는 신정왕후의 수렴청정이 아닌 고종의 왕권에 기초하는 순간부터 취약해졌다고 볼 수 있다.

흥선대원군과 달리 대비들은 하늘로부터 권력을 받는 모양새를 취했다. 왕후 책봉식은 왕과 더불어 왕후가 신의 대리인이 됐음을 알리는 의식이었다. 책봉식을 통해 갖게 된 왕후의 위상은 죽을 때까지 유지됐다. 임금인 남편이 죽는다 해서 책봉식의 효력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처럼 신성한 위상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대비의 권력에 도전하는 것은 임금의 권력에 도전하는 것만큼이나 힘들었다. 위상이 신성했기에 대비에게 도전하는 정치세력이 결집하기도 쉽지 않았다.

그에 더해 대비의 신변과 위상을 보호해주는 현실적 요인도 있었다. 왕조를 전복하는 혁명이 아닌, 왕조의 존속을 전제로 하는 쿠데타 같은 정변을 도모하는 세력은 임금을 폐위하더라도 왕실만큼은 남겨둬야 했다. 그래야 왕실의 승인을 받아 새로운 인물을 왕으로 추대할 수 있었다.

왕실에서 그런 승인을 해줄 수 있는 최고 권위는 대비에게 있었다. 임금 유고 같은 비상시에 신왕을 추대할 수 있는 권한은 대비에게 있었다. 이런 이유로 혼란한 정변 와중에도 대비들은 신변과 위상을 지킬 수 있었다. 

이런 여러 가지 이유들로 인해 대비들은 막강한 위상을 확보했다. 그들의 권력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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