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에는 없는 재기발랄함, 혼자 보기 아깝다

김상목 2022. 6. 22.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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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예술영화 개봉신상 리뷰] <우스운 게 딱! 좋아!>

[김상목 기자]

 영화 <우스운 게 딱! 좋아!> 포스터 이미지
ⓒ 필름다빈
 
1_독립영화 배급사 '필름다빈'의 네 번째 옴니버스 개봉 프로젝트
 

'단편영화'는 상대적으로 적은 비용과 자원이 들어가는 특성상 (상업자본에 대해) 가장 독립적인 작업이 이뤄질 수 있는 조건으로 인식된다. 상업영화를 지향하는 경우에는 단편영화를 실습 차원에서 경험하게 되고, 좀 더 계획적으로 진로를 고민할 경우에는 장편 데뷔를 위한 '포트폴리오'로써 단편영화를 활용하게 마련이다. 물론 장편 상업영화에 대한 선망이 강하지 않은 작가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조건 내에서 창작의 자유를 확보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단편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그 대신, 단편영화는 장편영화 제작 시 전제하거나 최소한 기대하는 극장 개봉을 통한 상업적 순환을 기대하기 어렵다. 현재의 복합상영관 위주 극장 시스템은 철저히 장편, 그것도 '텐트 폴' 영화라 불리는 극소수의 천만 대박을 꿈꾸는 작품 라인업에 최적화된 구조다. 공공상영관 형태로 비영리 운영 극장 라인이 별도로 존재하지 않는 한 단편영화에 스크린을 할애할 극장은 소수의 독립예술영화 전용극장 외에는 사실상 부재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런 조건 아래에서 해마다 적지 않은 숫자가 등장하는 단편영화는 일단 만들어지고 영화제 등의 제한된 장소에서 상영된 후엔 관객과의 연결고리가 단절되고 만다. 지금까지는 운명처럼 받아들여진 한계였다.

온라인 스트리밍과 VOD 서비스가 비약적으로 활성화되면서 콘텐츠를 찾는 플랫폼들에서 단편영화에도 약간의 문호를 개봉하고, 온라인 유료 다운로드를 통해 영화를 안방에서 관람할 수 있는 조건도 예전에 비해 무척 좋아진 게 사실이다. 그러나 장편영화의 경우 개봉과정에서 (적지 않은 홍보비용을 들여) 선전 작업이 이뤄졌기에 관객이 정보를 수월하게 찾아낼 수 있지만 단편영화는 눈을 비벼가며 찾아봐도 제대로 정리된 작품정보를 구하기 힘들다. 정보량은 늘어났지만 결국 또다시 가이드가 필요해진 것이다.

몇 가지 돌파구가 모색되고 있다. 일단 예전에는 배급활동의 경계 바깥에 머물던 단편 독립영화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소규모 배급사들이 벌써 활동을 시작한 지 12년차가 된 '센트럴파크' 이후로 여럿 탄생해 다양한 시도를 진행하는 중이다. 이들 전문 배급사는 창작자가 일일이 챙기기 힘든 영화제 출품이나 텔레비전 방영, 2차 매체 진출, 공동체 상영 등을 폭넓게 지원하고 작품 검색을 위한 플랫폼을 제공하는 등 사실상 '에이전시' 기능을 병행하고 있다. 배급사가 다수 활동하면서 창작자들은 마음이 맞는 배급사와 협력관계를 구축하거나 직접 배급에 나서는 등 예전에 비해 배급 관련 고민과 노하우가 축적되는 과정에 있다.

아울러 주제별 전문 스트리밍 플랫폼을 구축하는 시도와 극장의 지분을 상당부분 잠식한 OTT 관련 콘텐츠를 공급하는 협업도 추진되고 있다. 전자가 여성영화 전문 플랫폼 '퍼플레이'나 배급사이기도 한 포스트핀의 '온피프엔', EBS가 운영하는 'D-box'와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가 신설한 'VoDA'등의 미니 OTT 형태라면, 후자는 왓챠 등이 의욕적으로 발굴해 소개하는 대형 OTT와의 제휴 협력 형태를 선보이는 중이다.

이런 다양한 합종연횡 가운데 배급사 필름다빈의 시도는 방법론적으로 눈여겨볼 만하다. 자신들이 배급하는 라인업 중에서 테마를 정한 뒤, 극장 상영시간 기준에 맞게 장편 1편 분량으로 만드는 것이다. 이렇게 재조합된 옴니버스 영화는 관객에게 일종의 큐레이션 가이드 역할을 담당한다. 소규모이지만 극장 개봉과정에서 얻은 홍보효과로 해당 단편들은 근래 활성화된 다양한 온/오프라인 공간의 소규모 상영회나 기획전에서 조금 더 많은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상업적으로는 하면 할수록 더 힘들어지는 프로젝트이지만 장기적 전망을 두고 실험 데이터를 축적해나가는 셈이다.

필름다빈의 첫 시도는 2019년 10월말 선보인 <오늘, 우리> 옴니버스 프로젝트에서 출발한다. 4편의 각기 다른 감독이 연출한 단편들은 2030 MZ세대의 시각과 관점으로 조명하는 분위기로 묶여졌다. 이 개봉 전후 소개를 통해 기존에는 최대 2년 내외이던 단편들의 수명이 연장되는 효과를 얻었다. 두 번째 기획은 1년이 지난 2020년 10월 개봉한 <마음 울적한 날엔>이었다. 역시 서로 다른 감독과 주제이지만 동 세대의 시선으로 평범한 일상에서 겪는 애환과 위로를 전하려는 테마가 돋보였다. 세 번째 프로젝트는 2021년 1월, 한창 코로나 팬데믹이 이어지던 시절에 걸맞게 뉴-노멀 가족을 배경으로 한 4편의 단편이 한데 묶였다. 그리고 1년 반이 지난 2022년 6월, 네 번째 기획이 오랜만에 돌아왔다.

2_MZ세대의 세태를 풍자한 코미디의 향연, <우스운 게 딱! 좋아!>

필름다빈의 오랜만에 돌아온 단편 옴니버스 프로젝트는 MZ세대의 세태를 풍자한 코미디 라인이다. 4편의 단편은 각각 2명 감독의 작업들 조합으로 선정되었다. 시작을 여는 <눈치돌기>와 세 번째 순서인 <떨어져 있어야 가족이다>를 연출한 김 현 감독과, 두 번째 순서인 <안녕 내 사랑>과 대미를 장식하는 <귀신 친구>를 만든 정혜연 감독이 절반씩의 지분을 점유하고 있다.

두 명의 감독의 작품 두 편씩, 게다가 남성(김현), 여성(정혜연) 감독 조합이 과연 어떻게 흐름을 이어나갈지 궁금할 이들이 나올 법하다. 원래 어떤 연결고리 없이 개별적으로 작업된 단편들이기에 그런 우려는 충분히 정당성을 가질 만한 것들이다. 하지만 그렇게 의도 없이 각개 약진하던 작품들을 하나의 느슨하지만 한데 묶어 생각해볼 거리로 재정립하는 게 본 프로젝트의 묘미이기도 하다. 과연 생경한 조합이 어떻게 짜임새를 갖추는지 살펴보도록 하자.

2_1. < 눈치돌기 The Insect Man >
: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을 조별과제로 풀어내다

 
 영화 <우스운 게 딱! 좋아!> 눈치돌기 스틸 이미지
ⓒ 필름다빈
 
영화가 시작되면 사각의 링이 관객 앞에 펼쳐진다. 조별과제를 위해 하나둘 같은 대학 학과 선후배들이 등장한다. 공동작업을 해야 하기에 그들은 같은 조 구성원 중 한 명의 원룸에 모인다. 그런 배경 때문에 사실상 처음 에피소드는 실내극 형태에 가깝다. 이들이 처한 상황이 종결되기 직전까지 누구도 원룸에서 나가지 않기 때문에 거의 밀실 상황극인 셈이다. 이런 밀착된 분위기는 소수 등장인물들의 캐릭터 비교를 용이하게 하고, 사건에 대한 집중력을 끌어올리는 장치로 활용된다.

'조별과제'라는 말만 나와도 동 세대 경험 보유자들은 무수한 경험담들을 머릿속에 떠올릴 것이다. 자연스럽게 관객은 영화 속 인물들이 곧 극심한 감정싸움과 갈등상황에 휩싸일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협동'과 '토론'이 부재한 시대인데도 공식적으로는 팀, 협력, MOU, 소셜, 네트워크 같은 용어들이 범람하는 요즈음, 모순도 이런 모순이 없을 지경이다. 이런 희한한 역설은 그만큼 공허한 협동 개념이 우리 사회에 절실하지만 해결은 안 되는 상황이란 걸 증명하듯 느껴지기도 한다. 시작부터 이 조는 서로 마음이 맞는 게 아니라 어쩔 수 없는 오월동주 상황임을 뚜렷하게 드러낸다. 파국은 예정되어 있다.

현은 선배 성구가 못마땅하다. 그저 귀찮은 수준을 넘어 짜증이 폭발 직전 수준이다. 하지만 성구는 눈치 없고 오지랖은 광활하기 그지없는지라 계속 현의 신경을 긁어놓는다. 현은 끝내 폭발 임계점에 도달하고 만다. 관객은 초반부가 시작되자마자 성구의 눈치라곤 아무리 눈 비비고 찾아봐도 고갈된 행태에 질린 나머지, 현의 분노에 자연스럽게 동조하게 된다. 학과나 동아리마다 응당 1명씩은 있게 마련인, 눈치 없는 '오지라퍼' 성구가 벌이는 온갖 사건사고에 관객조차 진저리치면서 예정된 파국이 언제 도래할까 기다리게 된다.

이제 본격적으로 현이 성구를 멱살잡이 하려는 아슬아슬한 상황에서 급반전이 펼쳐진다. 방주인인 후배 민철이 뒤늦게 도착하면서 이야기는 180도 돌변한다. 이제는 민철이 현을 추궁하며 으르렁대기 시작한다. 현은 필사적으로 변명하지만 이윽고 왜 그가 그토록 까칠한 심리상태였는지 실마리가 드러나기 시작한다. 카메라의 시선은 전반부에선 현의 시야로 걸러진 이미지를 전달하지만 이 반전 이후로는 객관적 시점을 유지한다. 그런 시점의 변화만으로 영화 속 소우주는 판이하게 달라진다.

'내로남불'이란 사자성어가 괜히 만들어진 게 아니다. 누구건 자연스럽게 갖게 되는 이기적 본성의 발현을 이성과 윤리로 어찌 극복하느냐는 동서고금 인간 보편의 문제다. 본 작품은 그 유구한 쟁점을 현재를 배경으로 극화한다. 한 번의 반전과 그 전후 두 개의 반복운동으로 전형적인 단편의 호흡과 구성이다.

영화 속 세계는 코미디로만 분류하기엔 상당히 불편한 풍경이기도 하다. 등장인물들은 영화가 시작되기 전 이미 서로 뒤틀린 상태다. 각자에 대한 불신과 혐오가 회복이 불가능한 단계에 진입한 그들에게 차선은 그저 서로 엮이지 않고 안 마주치는 것이다. 하지만 극중 외나무다리에서 만난 꼴이니 좋은 일이 생길 리 없다.

초반에는 현의 시선을 빌어 천하의 민폐 캐릭터로 그려진 성구만 실은 악의는 없는, 하지만 눈치는 더 없는 평상심을 유지할 뿐, 나머지 인물들은 상호적대감으로 현이 초반 성구와 같은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 불쾌하던 감정을 확대재생산한다. 상황의 본질을 깨닫는 순간 영화를 보던 관객 자신도 괜히 가슴에 손을 얹고 과거 품행을 성찰하게 만들 정도다. 갈등이 극에 달할 때 등장인물들이 서로에게 내뱉는 말의 칼은 (막연히 코미디를 기대했던 이들이라면) 불유쾌한 감정을 부를 수 있겠다. 무방비 상태로 기습당한 그런 기분이 들 테니깐. 옴니버스 연작의 도입부를 <눈치돌기>가 맡게 된 건 가장 불편한 체험은 일찌감치 해치우자는, 매도 먼저 맞자는 각오일까.

2_2. < 안녕 내 사랑 Hello My Love >
: 아픔만큼 성숙해진다?!

 
 영화 <우스운 게 딱! 좋아!> 안녕 내 사랑 스틸 이미지
ⓒ 필름다빈
 
옴니버스의 두 번째를 차지한 본 작품을 포털 사이트 영화정보란에선 코미디, 배급사 홈페이지에선 로맨스로 표기하고 있었다. 이런 경우엔 영화를 직접 눈으로 확인해봐야만 판단할 수 있다. 포털 게시판 담당자가 영화를 일일이 보면서 정보를 등재하진 못할 테니 아마도 로맨스가 맞지 않을까? 그럼 굳이 왜 코미디로 장르를 표기했을까. 아마도 이제는 사라져버린 미쟝센단편영화제에서 해당 작품이 '희극지왕' 부문에 선정되었기 때문일 테다. 하지만 희극의 범위가 그저 뭉뚱그려 코미디라고만 할 수 있을까.

<안녕 내 사랑>은 제목 그대로 헤어진 전 남자친구의 연락을 받고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만난 주인공이 청첩장을 받게 된 상황을 극단적 설정으로 풀어낸다. 물론 영화는 꾸며낸 설정들의 조합이지만 보는 이들 각자가 가진 실제 이별의 경험이 반응하는 순간 감정의 연쇄작용이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들어버릴 테다.

주인공과 그의 전 남자친구가 벌이는 찌질한 사건들의 시간은 하지만 지독히도 현실 연애를 재현한다. 헤어지고 좋은 친구로 남는 게 왜 그리도 드문 일이겠는가. 자연스럽게 멀어지기만 해도 다행인 경우일 것이다. 그렇게 죽고 못 살 것처럼 들러붙어 다니더니 갈라질 땐 원수가 따로 없다. 혹은 상대방의 일방적 변심에 저주와 원망을 퍼붓거나, 또는 홀로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어 반 폐인이 되는 군상들은 본인과 주변에서 수두룩하게 목격할 수 있는 풍경이다.

영화는 주인공 소연과 '오빠'의 좋았던 한때와, 그들이 헤어진 뒤 반년 만에 연락이 와서 만나는 순간을 지속적으로 교차시킨다. 엉겁결에 청첩장을 손에 쥐게 된 주인공의 기막힌 현재가 그가 회상하던 잔뜩 미화된 과거의 러브모드를 밀어내면서 '추락'이란 이런 것인가 실감나게 한다. 서로가 좋아할 때는 보듬고 배려할 태세를 철통같이 유지하던 것이, 헤어진 뒤론 내가 미쳤었지 심정으로 그렇게나 미워하는 대상으로 돌변한다. 그 극단적인 관계 역전이 섬세한 설정과 대사, 배우들의 연기와 표정으로 실연의 압축된 한 단면을 관객 눈앞에 펼쳐 보인다.

둘의 태도를 결정적으로 대비시키는 건 헤어진 두 남녀가 각자 봉투에 담아온 두 개의 편지다. 그 두 봉투 속 내용물은 철저히 둘이 서로 공유했던 시공간에 대한 각자의 평가이자 입장이 될 테다. 애정을 갈구하고 뭐든 다 내어줄 수 있었던, 순애보와 맹목적인 순정 경계선에 서 있던 주인공과, 연애 내내 참 지독히 속물적이던 전남친의 극중 태도가 드러나는 순간은 관객들에게 너무나 익숙한 동질감을 선사하며 각자 아픈 손가락처럼 간직해둔 경험들을 상기시킬 것이다. 하지만 그런 통과의례를 거쳐야만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게 마련이다.

어쩌면 사랑이라는 중독을 포함해 모든 감정을 최소화할 때 우리 각자가 겪는 고통은 대부분 사라져버릴지 모른다. 찰나에 불과한 사랑은 지나치게 비싼 대가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영화 속 주인공 역시 그런 후유증에 시달려 왔고 당분간 계속될 거란 건 빤하게 예측되는 상황이다. 하지만 그런 감정을 배제하면 인간에겐 대체 뭐가 남을까? 부질없는 감정의 조각이 모여서 인간성이 구축되는 것 아닌지.

너무나 쓰린 사랑의 종말은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슬랩스틱 코미디를 점점 추억의 일기장을 펼치듯 변환시킨다. 작품 전반을 지탱하는 코미디 기법을 그저 찰나적 도구가 아니라 인생의 진실을 담은 풍자로 승화시키려는 감독의 야심찬 승부수다.

2_3. < 떨어져 있어야 가족이다 Family Portrait >
: 끝나지 않을 전쟁의 풍경을 통해 가족이란 무엇인가 질문하다
 
 영화 <우스운 게 딱! 좋아!> 떨어져 있어야 가족이다 스틸 이미지
ⓒ 필름다빈
 
코로나19가 지난 2년 여 동안 기승을 떨치는 바람에 이전처럼 귀성전쟁, 대가족 제사상 등의 풍경이 상대적으로 퇴색했지만 이제 다시 한동안 뉴-노멀 향방을 둘러싼 가족 내 갈등이 시작될 판이다. <떨어져 있어야 가족이다>는 딱 명절 전후에 본다면 체감도가 극대화될 작품이다.

1년 전 가족 중 아버지가 작고한 상황, 남은 가족은 오래 유지해온 전통을 지키기 위해 모인다. 이별한 가족의 생일날에는 꼭 전부 모여 기념사진을 찍기로 한 것이다. 장녀는 잡지사 칼럼을 수정할 숙제를 싸안고 본가로 향하는 중이다. 하지만 시작부터 전개되는 상황은 이 가족도 만만찮구나 하는 실소를 관객들에게 선사한다. 엄마는 애정과 관심의 표현이겠지만, 다 큰 자식에겐 노파심과 부담감 그 자체로 다가오는 그런 문제다. 본가에 도착하면 코로나 시대 방역을 풍자하듯 설치된 검역절차 때문에 진입에 진을 다 빼고, 한자리에 마침내 모인 가족은 사이코드라마 한 장면처럼 쉴 새 없이 충돌한다.

딸은 남동생과 현실남매의 극한을 선보이며 다툰다. 불화의 원인은 원고수정을 위한 노트북 한 시간 사용여부다. 참 별것 아닌 거라도 실제 가족 간 싸움은 대개 이런 사소해 보이는 사안에서 출발해 온갖 묵은 감정을 끄집어내는 법이다. 이런 아찔한 상황을 뼈저리게 체험한 이들에겐 절대 남의 일이 아닐 테다. 딸은 폭발 직전이 되고, 엄마는 그 판국에도 상황판단은 별 관심이 없다. 오직 일방적으로 자신의 입장에서 딸을 챙기는 데 일방향 통행뿐이다. 정작 상대방이 원하는지 여부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태도다.

그런 '티키타카'가 폭발 후 정화를 거치면서 (원인은 그대로인 채) 가족은 서로 급 사과와 화해로 사태를 일단 봉합하고 가족사진을 무사히 찍게 된다.

<떨어져 있어야 가족이다>는 한국사회를 살아가는 이들 다수가 고개 끄덕이며 공감하게 만드는 친숙한 상황을 기본 설정으로 삼는다. 이를 위해 가족 구성원 3명의 조합에 공들인 티가 팍팍 난다. 딸 육민정 역의 공민정 배우와 남동생 육정민 역 류경수 배우, 작년에 독립장편 <갈매기>에서 원탑 주연으로 해당 작품을 떠받쳤던 정애화 배우의 능청스런 연기는 참으로 경탄스럽다.

아마 본 작품 평가가 갈릴 지점은 관객 각자가 가진 가족에 대한 경험적 측면이 거의 유일한 듯하다. 한국의 현대가족이 지닌 애증의 측면을 영화는 잘 형상화해놓았다. 작품 제목은 있는 그대로의 의미를 구현한다. 하지만 과도기적 상황이 아직 온전히 내놓지 않은 미래 가족에 대한 대안까지 나아가진 않는다. 그저 세태의 충실한 재현에 집중하는 태도다.

현실을 제대로 반영한다는 것도 쉬운 숙제는 아니다. 본 작품과 유사한 소재를 다루는 적지 않은 작품들이 코미디와 드라마 코드의 부조화로 물과 기름처럼 겉돌거나, 주인공에게만 지나치게 기우는 데 비해 본 작품은 연출의도에만 철저히 집중하는 일관성을 끝까지 유지한다. '가족은 원래 그런 거야!' 하고 웃어넘기는 이와, 차라리 의절하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이가 본 작품을 봤을 때 느끼는 감정은 퍽 다른 형태일 테다. 물론 해당 지점은 작품의 만듦새보다는 관객들의 주관적 측면이 더 크게 작용될 사안이다. 그만큼 한국사회의 급속한 변화속도는 사회구성원들이 일일이 따라가기 어려운 숙제다.

2_4. < 귀신친구 Ghost Friend >
: 코믹 귀신 극에 숨겨진 풍자와 해학

 
 영화 <우스운 게 딱! 좋아!> 귀신 친구 스틸 이미지
ⓒ 필름다빈
 
<귀신 친구>는 생과 사를 뛰어넘은 두 친구의 가슴 뭉클한 우정을 약간의 사회풍자와 조금의 공포장르 문법, 그리고 슬랩스틱 코미디 테크닉을 양념삼아 비빔밥처럼 버무려낸다.

소연은 얼마 전, 어릴 적부터 단짝이던 친구 지혜를 잃었다. 친구의 죽음도 속상한데 문제는 꿈에서 자꾸 지혜가 출몰한다. 친구는 자꾸 무엇인가 소연에게 전하려 시도한다. 시행착오 끝에 주인공은 친구가 죽은 뒤에도 그렇게나 마음 쓰이는 것에 대해 처리해주기로 약속한다. 한 번 죽은 친구가 두 번 죽을 위기를 모면시키기 위해 그는 호랑이굴 들어가듯 비장한 심정으로 친구네 집 대문을 두드린다.

친구의 아빠에게 인사드리고 주인공은 생전 친구 방에 어렵지 않게 진입한다. 하지만 죽은 친구가 맡긴 임무 난이도는 예상한 수준을 초월하는 지경이다. 의례 벌어지게 마련인 해프닝이 곳곳에서 터지면서 끊임없는 연쇄파동이 발생한다. 주인공은 계속 피가 마를 지경으로 압박을 겪는다.

주인공은 정말이지 보는 관객이 킥킥거리다가도 안쓰러울 정도로 친구의 명예를 지키고자 고군분투한다. 그런데 그 명예라는 게 대놓고 한국사회의 보수적 면모와 엄숙주의를 비꼬고 금기에 도전하는 내용이다. 이런 은유를 따라가다 보면 영화는 자연스레 여성 서사로 확장되기 시작한다. 시종일관 슬랩스틱 코미디의 향연임에도 불구하고 두 친구의 우정이 주인공의 수난 스토리에 끊김 없는 동력을 제공하기에 영화 속 우정 코드는 꽤 정석적으로 진한 편이다.

관객은 마지막 에피소드 내내 배를 잡고 웃다가 막판 어느 순간에 순간적으로 짠해지는 감정을 겪게 될 테다. 그런 전환의 완급조절 솜씨가 좋은 작품이다. 전형적인 K-호러 풍 원한 맺힌 귀신 형상이던 친구가 첫 등장 후로 점점 생전의 그리운 친근한 모습으로 변해가며 등장하고, 주인공은 그 변화와 교차해가며 친구의 명예를 지키고자 헌신한다. 끝끝내 자기희생을 결심하기까지 하는 주인공의 풍모는 코미디는 장식일 뿐 그 알맹이는 MZ세대의 공감과 연대로 채워진다.

일단 네 번째 단편까지 마치면, 세트 소품과 미술 담당에게 상을 줘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 만큼 본 작품의 미술 디자인은 특기할 가치가 있다. 이것저것 참 많이도 갖다놓고 꾸며놨지만 결코 산만하지 않은 영화 속 친구의 집 구석구석 소품들은 이야기의 일부로 자연스럽게 녹아든다.

주인공을 받쳐주는 배역진도 학생단편 사이즈에선 호사스런 캐스팅이다. 조희봉, 김재화 두 명품 연기자에다 특별한 '씬 스틸러'로 '키 큰' 이주영 배우도 각자 몫을 충실히 해준다. 든든한 조력에 힘입어 코미디 외양에 잘 감춰둔 우정과 상실의 감정이 판타스틱 배경과 잘 어우러져 깔끔하게 이야기를 전개하고 수확해낸다. 어깨에 힘 너무 주지 않고 즐겁게 만들었지만 완급조절 솜씨가 출중하다.

3_실험은 계속되어야 한다. Show Must Go On!
 

서두에서 언급했듯 <우스운 게 딱! 좋아!>를 구성하는 4편의 단편은 코미디의 색깔 아래 통합되어 있지만 각자의 결은 제법 다르다. <눈치돌기>는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주변 사람들 생각 않고 자기중심적으로만 세상을 보는 이기적 세태를 블랙코미디로 풍자하고, <안녕 내 사랑>은 자신에 대한 자존감 대신 끊임없이 타인에게 매달려 결핍을 메우려는 연애관의 피곤함을 로맨틱 코미디를 비틀어 전달한다. <떨어져 있어야 가족이다>는 여전히 전통적 가족 틀 안에서 서로 운명 공동체처럼 통제하고 간섭하려 하는 부작용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초적 혈연 공동체인 가족이 갖는 마지막 보루로서의 기능을 풍자해낸다. <귀신 친구>는 약간의 종교와 사회적 금기에 대한 풍자가 가미되지만, 우정에 대한 청춘 장르가 본질적이다.

지독히 냉소적인 흑백 톤(<눈치돌기>)에서 출발해 점점 원색으로 바뀌는 색감도 눈여겨볼 만하다. 4편 모두 코미디 범주에 넓게는 포함되지만 차갑고 무표정한 온도에서 출발해 훈훈한 온기로 마무리되는 점진적인 상승곡선이 느껴지는 조합이다. 여기에 두 감독의 작품이 교대로 등장하고, 각각 전작과 근작의 시간 순으로 편성되는 구성 때문에 같은 감독의 작품세계가 발전해 나가는 변천사 또한 부수적으로 관객은 목격할 수 있게 된다. 단편 감독들의 필모그래피 정리 작업인 셈이다. 또한 같은 감독의 작품에서 계속 함께 작업하게 된 배우들의 배역이나 연기 변화도 추가로 관찰 가능해 소소한 흥밋거리가 끊이지 않는다.

물론 팬데믹 이후 더 양극화된 최근 극장 환경에서 필름다빈의 네 번째 옴니버스 프로젝트가 예상 밖의 많은 관객을 모은다거나, 쟁쟁한 대작 블록버스터들 사이에서 수익을 내는 경우는 기대하기 어렵다. 하지만 극히 소수의 관객이라도 개성 있는 작업을 축적해 나가는 독립영화 감독과 배우들을 재발견하고 계속 관심 갖게 만든다면, 이 품은 많이 들어가고 수익은 안 날 것 같은 시도는 훗날 유의미한 데이터로 남아 다음 도전의 소중한 발판이 되어줄 테다. 무엇보다 장편에선 찾기 힘든 재기발랄함과 용감한 실험정신이 펄떡이는 단편들을 큰 화면으로 보는 재미란 결코 작은 게 아니다.
 
<작품정보>
우스운게 딱! 좋아!
2022|한국|코미디
2022.06.23. 개봉|101분|15세 관람가
감독 김현, 정혜연
주연 이민구, 김휘규, 탁이온, 이태희, 공민정, 류경수, 정애화,
      신소연, 백지혜, 조희봉
배급 필름다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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