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초롱] 저출산, '국가 개조'로 풀어야

2022. 6. 22. 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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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둘을 키운다는 건 전쟁 같은 일이다.

토스트 한 조각으로 늦은 아침 때우고, 청소 빨래 설거지하고, 아기 업고 마트 가서 장보고, 반찬이랑 이유식 만들고, 장난감 정리하고, 그냥 뭐 이것저것 시계추처럼 움직이다 보니, 어머나 오후 3시.

'아이는 얼마나 중요한가'(원제 Do babies matter?)는 미국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여성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10여 년에 걸쳐 꼼꼼히 추적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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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달호(작가·편의점주)


아이 둘을 키운다는 건 전쟁 같은 일이다. 늦잠 자는 첫째 깨워, 얼러가며 밥 먹이고, 세수 양치시키고, ‘어제 그 옷 입혀달라’ 떼쓰는 아이를 “안돼, 세탁기에 있어”라고 설득해도 소용없는 사이, 둘째가 함께 앙앙거리고…. 영혼이 탈출할 것 같은 혼란 가운데 첫째를 어린이집 보냈더니 둘째가 기저귀에 ‘대똥’을 쌌는데, 욕실에서 씻기고 나왔더니 주방에선 타는 냄새가…. 아뿔싸, 된장찌개!

토스트 한 조각으로 늦은 아침 때우고, 청소 빨래 설거지하고, 아기 업고 마트 가서 장보고, 반찬이랑 이유식 만들고, 장난감 정리하고, 그냥 뭐 이것저것 시계추처럼 움직이다 보니, 어머나 오후 3시. 어린이집 달려가 첫째 데려오고, 간식 먹이고, 놀이터에서 놀아주고, 돌아와 씻기고, 그사이 둘째는 또 ‘대똥’을 싸놓고, 그거 수습하는 사이 첫째가 장난감 상자를 뒤집어놓고, 이번엔 둘째가 배고프다며 앙앙거리고, 그사이 첫째는 식탁에 이마를 부딪쳐 시퍼런 멍이 들고, 이걸 병원에 데려가야 하나 고민하다 아내에게 전화했더니 이런 말이 먼저 날아온다면…. “애를 도대체 어떻게 봤길래 그래?” 그때부터 ‘진짜 싸움’이 시작되는 거다.

서두를 천천히 읽으며 당신은 여성이 집안일을 돌보는 풍경을 떠올렸을 것이다. 주부를 주‘부(婦)’라고만 상상했겠지. 요즘 젊은이들이 결혼을 안 하는 이유? 우리나라 출산율이 세계 최악의 수준인 이유? 딱 이런 풍경, 이런 사고 안에 있다. 가사와 육아는 대체로 여성의 몫이라는 고정관념 말이다. 당신을 꾸짖을 생각은 없다. 제가 감히 무슨 자격으로 그러겠나. 현실이 온전히 그러하니, 그렇게 상상하는 것이 당연하지.

‘아이는 얼마나 중요한가’(원제 Do babies matter?)는 미국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여성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10여 년에 걸쳐 꼼꼼히 추적한 책이다. 결과는 당신이 예상한 대로. 출산이 여성의 ‘앞길’을 가로막고 있었다. 아이 낳으면 직장을 떠나고, 경력이 단절되고, 다시 돌아와도 주어지는 자리는 일용직이나 비정규직. 누군가가 ‘애 엄마’로 눌러앉는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미국이 이러할진대 한국은 말해 뭐하나.

실현 가능성과 상관없이 출산율 높이는 방법은 간단하다. 전국 방방곡곡 보육시설 잔뜩 만들고, 육아휴직 당당히 쓸 수 있어야 하고, 그에 앞서 성차별이 사라지고 성역할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바뀌어야 하며, 임금 격차가 없어지고, ‘키우는 건 국가가 할 테니 당신들은 낳기만 하시오’ 정도 되면 된다. 워킹맘으로 꿋꿋하던 여성이 아이가 중학교 올라갈 즈음 퇴사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건 역시 교육 때문이다. 따라서 저출산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사교육을 받아야 좋은 대학에 갈 수 있는 현실, 좋은 대학을 나와야 출세하는 사회 구조까지 바뀌어야 한다. 단순히 ‘아이 낳게 만드는 일’이 아니라 전반적 국가 개조 사업에 가깝다.

이 많은 걸 어떻게 해결하느냐고? 한꺼번에 이룰 수 없으니 ‘순서’를 정하는 것이겠다. 하나씩 풀며 조화롭게 나아가는 것인데, 지금은 모든 것이 감정싸움으로만 수렴하는 양상이다. 이걸 따뜻하게 보듬으며 다독여도 부족할 정치권은 ‘여성가족부 폐지’ 같은 난폭한 공약이나 내걸고 말이다.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생긴 지 오래다. 저출산 문제에는 주택 연금 이민 노동 교육까지 온갖 과제가 난마처럼 얽혀 있는데 자문 수준의 조직으로 뭘 할 수 있으려나 싶다. 특단의 대책을 강구할 때 아닐까. 핵심은 결국 여성과 양극화에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아이 낳아 기르는 일이 끔찍하기만 하고, “능력 없으면 결혼도 출산도 하지 말자!”가 보통의 가치관으로 굳어진 나라에 희망은 없는 것이다.

봉달호(작가·편의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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