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남대의 은퇴일기②] 내 머리 속에 '지우개'가 생겼다

데스크 2022. 6. 21.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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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신체기능이 퇴화하여 간다. 건망증과 같은 기억력 감퇴는 나이 든 사람 대부분이 느낄 수 있는 흔한 일이다. 아직은 아닐 것 같았는데 다른 사람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고는 ‘아니 이럴 수가’ 하는 생각에 상심이 크다.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며 받아들여야 하지만 쉽지 않다.


성당 주차장 한쪽에 5일 동안 주차된 승용차

성당 관리장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3453번 차주냐?”고 물어본다. “그렇다”고 하자 “자동차가 성당 마당에 며칠째 주차되어있는데 좀 이동시켜 줬으면 좋겠다”고 한다. 관리장과는 잘 아는 사이인데 내가 누구인지 모르는 말투다.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내 차는 우리 아파트 지하주차장에 있는데”라며 의아해하자 “전화번호 끝자리가 6645번 아니냐?”며 “자동차 앞 유리에 붙어 있는 번호로 전화하는 것이다”고 한다.

그제야 사실인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내 차가 성당에 있을 이유가 없는데 왜 거기 있지?’ 하는 생각에 조용히 기억을 더듬어보자 지난 일요일에 차를 몰고 지방에 다녀오면서 시간이 촉박하여 바로 성당에 가서 미사를 드리고 걸어서 집으로 온 것 같았다. 성당과 우리 아파트는 담장이 붙어 있어 미사를 마치고 아무 생각 없이 평상시와 같이 걸어서 온 것이다.


곧 가지러 가겠다고 한 후 성당에 가 보았더니 마당 한쪽 귀퉁이에 얌전히 주차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관리장에게 전화하여 사정을 이야기했더니 그제야 누군가 알아차리고 “그럴 수도 있지요” 하면서 웃는다. 속으로 ‘나이도 많지 않은 사람이 저렇게 기억력이 없어서야!’ 하면서 혀를 찼을 것 같아 얼굴이 화끈거린다.


지난 일요일 이후 5일 동안 자동차를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으니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 만약에 성당으로부터 전화를 받지 않았다면 그 이후 자동차를 이용하려고 지하주차장에 내려갔다가 차가 없어 이리저리 다니며 찾느라고 한참 동안 소동을 벌였을 것이다. 그런 걱정과 수고를 들어준 성당 관리장이 고맙다.


치매와 건망증과는 관계가 없는 줄 알았는데 내가 그럴 줄이야. 갑자기 요양병원으로 면회 가도 멍한 눈으로 누군지도 알아보지 못하시던 어머니의 모습이 떠오른다. 나이 들어서도 그렇게는 되지 말아야 할 텐데 은근히 걱정이 앞선다.


직장에 다닐 때는 지역만 이야기하면 맛집 이름을 줄줄이 이야기할 수 있었으며, 사람 이름도 금방 떠올랐었다. 퇴직 후 긴장의 끈을 놓고 느슨하게 생활하다 보니 급격히 기억력이 떨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몇 년 전에 구청에서 무료로 치매 검사를 해준다고 하여 받았더니 아무 이상이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 안심했었는데 그사이 상태가 나빠진 건지, 너무 과민하게 반응을 보이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한번은 안경을 어디에 둔 지를 몰라 한참 찾다가 얼굴을 쓰다듬다 손에 뭐가 걸려 안경을 쓰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황당해한 적도 있었다.


며칠 전에는 아침에 딸네 집에서 아내와 함께 손주들 어린이집에 가는 것 챙겨주느라 분주한데 입사 동기로부터 전화가 왔다. ‘이 아침에 웬일이지?’하며 전화를 받았더니 “왜 아직도 골프장에 안 오느냐?”고 한다. 순간적으로 멍해지면서 동기들과 골프 약속했던 일이 떠오르며 그날이 오늘이구나 하는 생각이 스친다. 얼른 핸드폰 일정표를 확인해 보니 ‘입사 동기 운동’이라고 적혀 있다.


“깜빡 잊고 있었다”고 이야기했더니 “멀지 않은 거리니까 지금이라고 나오면 후반전에 합류할 수 있다”고 한다. 골프 할 아무 준비도 안 된 상태인 데다, 간이골프장으로 비용이 저렴하여 동기들에게 큰 피해가 되지 않을 것 같아 사정을 이야기하고 빠질 수밖에 없었다. ‘골프는 본인이 사망하지 않는 이상 참석해야 한다’고 하는데 이런 실수를 하다니 동기들 보기가 미안하고 창피스럽다. 내가 생각해도 한심한데 동기들은 어떤 심정이었을까? 앞으로는 골프 같이 가자는 이야기를 다시는 하지 않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영화 ‘더 파더’는 치매에 걸린 80대 노인 앤서니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여준다.ⓒ판시네마

주변의 친구들 만나 이야기하다 보면 정도의 차이는 있더라도 기억력 저하와 건망증 증세는 어느 정도는 있는 것 같다. 나이가 들고 일선에서 퇴직한 후 일어나는 증상이라고 하더라도 ‘벌써 이런 증상이 있다니’ 하는 생각이 들면서 우울해지기도 한다.


전문가들은 뇌세포를 늘려 노화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머리를 굴리고 눈, 코, 귀, 입이 즐거워야 한다고 한다. 오감을 즐기기 위해 좋은 것을 자주 보고, 즐거운 것을 많이 듣고, 맛있는 음식을 자주 먹으라고 한다. 또한, 외국어와 같이 처음 접하는 학습은 깨어있는 뇌세포를 늘리는 데 가장 좋지만, 매일 하던 것을 아무 생각 없이 반복하는 생활은 뇌세포 노화를 촉진한다는 것이다.


한편에서는 신이 인간에게 준 최고의 선물이 망각이라고 한다. 건망증이 없어 가슴 아픈 기억이나 좋지 않은 추억들을 안고 살아야 한다면 그 스트레스로 도저히 견딜 수가 없을 것이다. 나이 들어감에 따라 기억력이 떨어지는 것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기억력 저하로 인한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 요즈음에는 일정표에 꼭 기록한다. 순간적으로 떠올랐던 생각도 금방 잊혀지기 때문에 책상 위에는 항상 메모장을 준비해 둔다. 예술적 경험과 활동은 새로운 신경망을 만들어 생각을 풍부하게 하고 사고를 유연하게 한다고 한다. 여러 사람과 교류를 지속하는 것도 뇌를 깨운다고 하므로 멀리 떨어진 친척보다는 가까이 있는 문학이나 예술 활동하는 동호인들과 어울림을 늘려야겠다. 기억력이 떨어지는 현상에 ‘내가 벌써 이럴 나이가 되었나?’ 하며 우울해하기보다는 나이 들어감에 따른 자연적인 현상이라고 생각해야겠다.


조남대 작가ndcho5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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