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준석 해외진출 선언, 이게 최선이었나

이준목 2022. 6. 21.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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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 대표팀 하차 절차에 아쉬움.. 아시아컵 자체도 좋은 기회 되었을 것

[이준목 기자]

▲ 슛하는 여준석 17일 오후 경기도 안양실내체육관에서 열린 남자농구 국가대표 평가전 한국과 필리핀의 경기. 한국 여준석이 슛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한국 농구의 유망주로 주목받던 여준석이 해외진출을 선언했다. 국가대표팀에서도 하차하며 2022 국제농구연맹(FIBA) 아시아컵을 앞두고 있던 농구대표팀은 전력손실이 불가피해졌다.

대한민국 농구협회는 지난 6월 20일 FIBA 아시아컵에 나설 남자농구 국가대표 12명의 최종 엔트리를 확정됐다. 추일승 감독이 새롭게 지휘봉을 잡은 농구대표팀에는 이대성, 이대헌(이상 한국가스공사), 허웅, 라건아(이상 KCC), 강상재, 김종규(이상 DB), 장재석(현대모비스), 최준용(SK), 양홍석(KT), 허훈, 송교창(이상 상무) 등이 최종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기존 명단에 있던 여준석과 문정현(이상 고려대), 하윤기(KT)는 최종 엔트리에 들지 못했다. 여준석은 필리핀과의 평가전에서 인상 깊은 활약을 선보였으나 본인의 의지로 대표팀에서 하차하면서, 최종엔트리에는 장신가드 이우석(현대모비스)이 대체 선수로 발탁됐다.

여준석 측이 밝힌 대표팀 하차 이유는 해외진출 일정 때문이다. 여준석은 7월에 예정된 미국 G리그 쇼케이스를 위하여 미국행을 결정했다. 여준석은 추일승 대표팀 감독과 모교인 고려대 주희정 감독 등을 만나서 자신의 결정을 밝히고 양해를 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G리그는 미국프로농구(NBA)의 공식 하부리그다. 2001년에 창설되어 본래 명칭은 NBA D리그(Development League)였으나, 2017년부터 스포츠 음료회사인 게토레이와 후원 계약을 맺으면서 기업의 이니셜을 반영한 지금의 G리그로 이름을 변경했다. 세계 최고의 리그로 꼽히는 NBA 무대에 원활한 선수 수급을 담당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G리그 쇼케이스는 NBA와 G리그 구단 단장, 스카우트 등 관계자들이 참석해 쇼케이스에 참가한 선수들의 기량을 점검하는 기회의 장이다. 올해 쇼케이스에는 여준석을 포함한 세계 각국에서 약 150여 명의 선수들이 참가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G리그에서 뛰었던 한국인 선수로는 국내 최초의 NBA리거였던 하승진(은퇴)을 비롯하여 방성윤(은퇴), 이대성(한국가스공사) 등이 있었다.

최고의 농구 유망주 빠진 대표팀

여준석은 NCAA에서 활약한 이현중(데이비슨대)과 함께 현재 대한민국 최고의 농구 유망주 중 한 명으로 꼽힌다. 203cm의 장신임에도 스피드는 가드처럼 민첩하고, 점프력은 어지간한 외국인 선수들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만큼 운동 능력이 출중하다. 폭발적인 탄력을 앞세워 고난도 덩크슛을 손쉽게 터뜨리는가하면, 속공과 3점슛도 능하다.

농구지능도 뛰어나 골밑과 외곽 어디에 놔도 제몫을 해줄 수 있는 올어라운드 플레이어의 재능을 갖추고 있다. 앨리웁 덩크까지 꽃아넣을 수 있는 화려한 퍼포먼스에 준수한 외모까지 겸비하여 스타성도 뛰어나다는 평가다. 농구인들은 허재-서장훈 이후 모처럼 몇십년에 나올까말까한 슈퍼스타급 재능이 등장했다며 기대를 감추지못했다.

여준석은 이미 2019년 호주 NBA 글로벌 캠프에서 1년 동안 농구 유학 생활을 경험 한 바 있다. 당초 미국 대학 진출까지 염두에 뒀으나 학업과 농구를 병행하는 상황에 부담을 느껴 2020년 국내로 다시 돌아왔고 이후 용산고를 졸업하고 고려대로 진학했다.

2021년 U-19(19세 이하) 농구 월드컵에서는 경기당 25.6점 10.6리바운드 2.1스틸로 활약하며 한국인으로서는 사상 첫 득점왕에 올랐다. 대학리그에서도 신입생인 첫 해부터 리그 9경기를 치르면서 22점 7리바운드를 기록하며 득점 2위를 올랐고 고려대를 단독 1위로 끌어올리는 데 지배적인 역할을 해냈다. 고려대는 여준석이 국가대표 차출로 제외된 경우를 제외하고 그가 뛴 경기에서 아직 한 번도 지지 않았다. 이미 동년배들의 수준을 월등히 뛰어넘은 여준석에게 연령대별 대표팀이나 대학무대는 좁다는 것을 증명한 장면이다.

여준석은 이미 용산고 재학 시절부터 일찌감치 성인대표팀에도 승선하여 지난 2021 아시아컵 예선에서 데뷔무대를 치렀다. 추일승 감독이 새롭게 지휘봉을 잡은 1기 대표팀에도 다시 이름을 올리며 필리핀과의 2연전에서 맹활약을 펼쳤다. 포워드로 나선 여준석은 내외곽을 넘나들며 2경기에서 연이어 17점씩을 기록했다. 직접 원맨속공을 마무리했고, 동료의 패스를 앨리웁 덩크로 연결하는 등 화려한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농구팬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이변이 없는 한 그가 농구대표팀에 잔류했다면 아시아컵 본선 최종엔트리에 승선하여 중용될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1997년(당시는 ABC대회) 이후 무려 25년 만의 아시아 정상탈환을 노렸던 대표팀으로서는 여준석의 빈 자리가 아쉬울 수밖에 없다.

'대표팀 하차' 절차 아쉬워

그동안 우물안 개구리였던 한국농구에 정말 모처럼 등장한 탈아시아급 재능이 주는 기대감, 국내에서의 보장된 성공에 안주하지 않고 해외진출을 향한 여준석의 도전정신 등은 높이 평가받아야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준석의 이번 선택에는 아쉬움이 진하게 남는다. 아무리 좋은 명분과 의도가 있다고 해도 절차와 타이밍이 맞지 않으면 공감대를 얻기 어렵기 때문이다.

태극마크는 아무나 달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그에 걸맞는 책임감이 필요했다. 부상 등의 부득이한 상황이 아닌 이상 국가대표에 발탁된 선수가 개인 사정을 내세워 중도에 제멋대로 하차하는 것은 전례가 드문 장면이다. 더구나 대표팀은 중요한 국제대회를 코앞에 두고 있는 상황이었고, 심지어 여준석은 대표팀에서 주전급으로 중용될 가능성이 높은 선수였다.

여준석 측은 대표팀 소집 중 G리그 쇼케이스 초청을 갑자기 받게 되었고, 해외진출 자체는 오래전부터 생각해왔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해외진출 계획이 분명했다면 아예 대표팀 소집단계에서부터 전후 상황을 정확히 전달했어야 했다. 이는 변명의 여지없이 대표팀에 엄청난 민폐를 끼친 것이다.

또한 여준석 측은 추일승 감독에게 대표팀 하차에 대한 '양해'를 구했다고 하지만, 이는 사실상 이미 결정을 내려놓고 일방적인 '통보'나 마찬가지다. 바로 어제까지 평가전에서 펄펄 날아다니며 기대를 모았던 선수가 갑자기 대표팀을 못 뛰겠다는 이야기를 듣는 감독의 기분은 얼마나 황당했을까. 추 감독도 여준석의 선택을 존중하기는 했지만 절차에 있어서는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G리그 때문에 아시아컵을 포기한다는 게 과연 올바른 선택인지도 의문이다. 여준석이 쇼케이스를 통과한다고 해도 G리그는 어디까지나 하부리그에 불과하다. 더구나 G리그는 전 세계 유망주들이 당장 NBA 진출을 놓고 치열하게 서바이벌을 펼치는 곳이지, 여준석같은 젊은 선수를 체계적으로 육성한다거나 경험을 쌓기에 적합한 환경과는 거리가 멀다. 실제로 여준석보다 먼저 도전한 방성윤, 하승진, 이대성 등도 G리그를 거쳐 NBA에 올라간 사례는 전무하며, 오히려 대부분이 오래 버티지 못하고 다시 국내로 돌아오는 길을 선택했다.

반면 아시아컵은 한국농구가 나설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국제대회 중 하나다. 올림픽과 농구월드컵 출전이 어려워진 한국농구가 내년으로 연기된 아시안게임과 함께 그나마 타이틀을 기대해볼 수 있는 메이저대회다. 비록 미국이나 유럽 수준은 아니더라도, 아시아 최정상급 레벨의 성인 선수들과 경쟁할 수 있는 기회는 여준석같은 유망주에게는 소중한 경험이 되었을 것이다.

또한 아시아컵에서 여준석과 농구대표팀이 경쟁력을 증명했다면 내년 항저우 아시안게임에 대한 전망도 기대해볼 수 있었을 것이다. 만일 금메달과 병역혜택 등 중요한 타이틀이 걸린 아시안게임이었다고 해도 여준석이 대표팀을 포기하겠다는 결정을 내렸을지 의구심이 든다. 이는 여준석 본인뿐만 아니라 주변의 어른들이 냉철한 조언을 해줬야하는 대목이다.

도전이라는 그럴듯한 단어가 모든 것을 다 미화하지는 않는다. 라이징스타였던 여준석은 이번 대표팀 하차를 둘러싸고 잡음을 일으켰다. 좋은 재능을 지니고 기대가 높은 만큼이나, 태극마크의 자격이 주는 책임감에 대해서도 진중하게 돌아봐야 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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