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신흥국 위기 시나리오

2022. 6. 21. 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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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 대기근(Great Famine·1845~1852년). 끔찍한 역사를 회상해 보자.

코로나19나 러시아 전쟁도 예측할 수 없었기에 속수무책으로 당했지만, 이후 불안하게 전개되는 세계 경제 시나리오를 그려보고 대응책을 마련하는 일은 지금 시점에서 중대한 일이라 판단된다.

위기 상황에 취약한 신흥국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몇몇 신흥국 위기가 연쇄적으로 세계 경제에 미치는 나비효과를 감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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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석 한국경제산업연구원 경제연구실장


아일랜드 대기근(Great Famine·1845~1852년). 끔찍한 역사를 회상해 보자. 당시 아일랜드 국민 약 100만명이 사망했다. 감자 역병이 유럽을 휩쓸어 감자 농사가 황폐화된 것이 원인이었다. 유럽 전역에 감자 역병이 돌았는데, 아일랜드에서만 대기근이 발생한 것은 감자가 그들의 주식이었기 때문이다.

특정 작물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식량 구조는 외부 변수에 크게 취약할 수 있음을 깨닫게 해준다. 이 잔혹한 역사는 현대인에게도 무언가에 편중되게 의존할 때 문제가 발생할 수 있음을 시사해준다. 코로나19나 러시아 전쟁도 예측할 수 없었기에 속수무책으로 당했지만, 이후 불안하게 전개되는 세계 경제 시나리오를 그려보고 대응책을 마련하는 일은 지금 시점에서 중대한 일이라 판단된다. 최근 펴낸 ‘긴축의 시대’를 통해 세계 경제는 금리의 역습을 받을 것을 경고한 바 있다.

‘R의 공포’가 엄습하고 있다. 세계 경제의 불황(recession)이 찾아올 것이라는 우려다. 경기 침체 신호로 불리는 장단기 금리 역전 현상이 가시권에 들었다. 기준금리를 반영해 움직이는 미국 2년물 국채금리가 3%를 초과해 상승하면서 10년물 국채금리와 근접해 있는 상태다. 41년 만에 찾아온 미국의 인플레이션 쇼크와 이를 방어하기 위해 단행한 28년 만의 ‘자이언트 스텝’(0.75% 포인트 기준금리 인상)은 뭔가 거대한 먹구름이 세계 경제에 몰려오고 있음을 감지하게 하는 데 부족함이 없다.

불균형한 긴축 행보에 문제가 있다. 세계적으로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면서 물가 상승 압력이 경제를 짓누르고 있다. 다만 미국 경제는 코로나 충격으로부터 탄탄하게 회복된 터여서 물가 잡기에만 주력할 만한 여건이다. 경기라는 토끼는 이미 잡았고, 물가라는 토끼만 잡으면 되니 보폭을 늘리며 긴축 행보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신흥국은 아직도 코로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터여서 물가를 잡기 위해 기준금리를 빠르게 인상하면 경기라는 토끼마저 놓칠 판이다.

강한 달러의 시대다. 긴축의 시계가 국가마다 따로 돌기 때문이다. 미국의 긴축 행보는 매우 빠르지만 다른 나라들은 그 속도를 맞출 수가 없는 형편이다. 미국으로서도 강달러가 좋을 것이다. 강달러가 미국 경제에 주는 영향은 좋은 면도 있고 나쁜 면도 있겠지만, 지금 우선 닥친 과제는 물가이기 때문에 강달러를 동원해 수입물가부터 잡는 것이 그 어떤 나쁜 면을 상쇄할 것이다.

문제는 신흥국이다. 위기 상황에 취약한 신흥국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이집트는 지난 3월 국제통화기금(IMF)에 추가 구제금융을 요청한 바 있고, 헝가리는 지난 5월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이집트, 아르헨티나, 터키는 IMF가 제시한 적정 외환보유액 수준에 미달하고, 단기외채 비율도 높아 대외지급능력이 매우 열악하다. 주요 신흥국 3분의 2가 에너지 순수입국임을 생각하면 달러화 강세는 경상수지를 악화시키고 물가 상승을 더욱 부추길 것이다. 코로나에 대응하느라 정부 재정 여력이 없고, 생산원가 부담 등에 따라 기업 재무 구조도 심각하게 악화되고 있다.

금리 역습에 대응해야 한다. 우리의 재정과 외환 여건을 진단하고, 취약 신흥국들과의 연결 고리를 검진해야 한다. 몇몇 신흥국 위기가 연쇄적으로 세계 경제에 미치는 나비효과를 감지해야 한다. 감자병이 잔혹한 역사를 남겼듯, 미국발 긴축이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 예상 가능한 시나리오를 상정하고, 시나리오별로 어떻게 대응할지 고민해야 한다. ‘내가 바라는’ 시나리오 하나에 편중되게 의존하는 정책은 끔찍한 역사를 반복하게 한다.

김광석 한국경제산업연구원 경제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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