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년 만의 특급 바겐세일 '엔' 투자법
최근 일본 엔화 약세가 지속되면서 여행이나 유학 자금 마련 등의 목적으로 분할 매수를 노리는 투자자가 늘고 있다. 미국을 비롯한 각국 중앙은행은 초인플레이션 대응을 위해 잇달아 금리를 올리고 있지만 일본은행은 여전히 완화적인 통화 정책을 고수하고 있어 엔화 약세는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달러 매수·엔화 매도 포지션
▷日, 완화적 통화 정책 당분간 유지될 듯
최근 달러당 엔화 가치는 1998년 외환위기 당시 수준인 달러당 135엔대를 중심으로 오르내렸다. 현재 달러당 엔화 가치는 1998년 10월 이후 약 24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엔화 가치는 올 들어서만 10% 이상 하락하는 등 주요국 통화 가운데 하락 속도가 가장 빠르다. 통화 가치에는 그 나라 거시경제의 주된 요인이 집약적으로 반영되는데 엔화가 딱 그렇다.
무엇보다 미국의 강력한 긴축 기조가 엔화 약세를 부채질했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는 기준금리를 한 번에 0.05%포인트 올리는 ‘빅스텝’을 넘어 한 번에 0.75%포인트 인상하는 ‘자이언트스텝’을 단행했다.
지난 6월 15일(현지 시간) 연준은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를 마친 뒤 기준금리를 0.75%포인트 인상한다고 밝혔다. 미국 기준금리는 종전 0.75~1% 수준에서 1.5~1.75% 수준으로 크게 올랐다. 연준이 ‘자이언트스텝’을 밟은 것은 지난 1994년 이후 28년 만이다. 지난 6월 10일 발표된 5월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약 40년 만에 최고치를 찍는 등 인플레이션 공포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하자 ‘자이언트스텝’이라는 초강수를 둔 것이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다음 회의에서 50bp(1bp=0.01%포인트) 또는 75bp의 금리 인상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해 7월 FOMC에서도 자이언트스텝을 밟을 가능성을 시사했다.
이런 이유로 글로벌 금융 시장에서는 일제히 달러 매수, 엔화 매도 포지션을 취하고 있다. 저금리 통화를 매도하고 고금리 통화를 사들이는 전형적인 ‘캐리 트레이드’가 활발해지면서 엔화 가치가 하염없이 추락 중이라는 분석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엔화 가치가 태국 바트화 등 신흥국 통화보다도 낮아졌다고 분석했다.
달러 강세와 그 외 통화 약세는 세계적인 현상이기는 하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인플레이션 쇼크, 중국의 경기 침체 우려 등으로 글로벌 수요 감소 우려가 대두되면서 안전자산인 달러 가치는 지속적으로 상승세다. 16개 주요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측정하는 WSJ달러지수는 지난 1년간 12% 상승했다.
그중에서도 유독 엔화 약세가 두드러진 것은 ‘통화 정책 디커플링’ 때문으로 풀이된다. 현재 일본은 -0.1%의 마이너스 금리를 유지하고 있다. 전 세계 중앙은행은 미친 듯 뛰는 물가를 잡으려 금리를 잇달아 올리고 있지만 일본은행은 당분간 완화적 통화 정책 기조를 고수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최근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는 의회에 참석해 “엔화 급락이 일본 경제에 부정적이고 바람직하지 않다”면서도 코로나 팬데믹 충격에서 회복 중인 경제를 부양하려 완화적 통화 정책을 유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스즈키 슌이치 일본 재무상도 엔저에 부정적 측면이 많지만 정부의 외환 시장 개입 가능성에는 선을 그었다.
‘나쁜 엔저’가 지속되고 있지만 일본 당국이 섣불리 금리 인상 카드를 검토하지 못하는 것은 정체된 임금 수준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미국과 한국 등에서는 코로나 국면을 지나면서 노동 시장 변화로 가파르게 상승한 임금이 인플레이션의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됐다.
반면, 일본에서는 수년째 임금 수준이 정체돼 있고 이런 가운데 금리마저 오르면 자칫 가처분소득 감소로 수요 급감이라는 부메랑을 맞을 수 있다. 일본은 장기 불황을 겪으면서 오랜 기간 인적 자원에 대한 투자를 하지 않았던 탓에 노동 생산성이 낮은데 미래 수요가 불확실한 상황에서 생산성 향상이 뒷받침되지 않은 임금 인상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는 지적이다.
스즈키 재무상도 “엔화 가치가 하락하고 수입 원가가 상승해도 임금이 오르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며 “지금은 임금 상승 압력이 약해 엔화 약세의 부정적 측면이 두드러지는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바닥 다지는 중
▷시기 나눠 분할 매수할 만
엔화 약세가 이어지자 전문가들은 여행 비용이나 유학 자금 등 환전 계획이 있다면 조금씩 분할 매수할 때라고 조언한다. 환율 시장 불확실성이 커 최저점에 엔화 매수 타이밍을 잡기란 쉽지 않다.
안정적인 성향의 투자자라면 엔화예금이 괜찮은 투자처다. 원화를 엔화로 바꿔 외환예금에 가입시키고 만기 때 다시 엔화를 원화로 바꿔 통화 간 환율 차이만큼 추가 이득을 볼 수 있도록 설계됐다. 금리 자체는 그리 높지 않지만 환차익만 놓고 본다면 매력적일 수 있다.
실제 5대 시중은행의 엔화예금 잔액은 지난 6월 13일 기준 5982억엔으로 지난 5월(5536억엔)보다 8%가량 늘었다. 지난해 말과 비교하면 엔화예금 잔액은 20%(1015억엔) 증가했다. 엔화예금에 투자하려면 예치 기간을 정한 뒤 외화정기예금, 외화보통예금 등 상품을 선택하면 된다. 은행별로 외화예금 대표 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시중은행 외화 통장의 경우 외화 가치 상승에 따른 환차익은 비과세다.
엔화 직접 투자를 고려한다면 엔화와 원화의 흐름을 함께 살펴 투자 타이밍을 잡는 것도 방법이다. 달러 강세 추세를 고려했을 때 원엔 환율은 당분간 900원 중후반선에서 좁은 박스권을 형성할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대략 원엔 환율 900원 중반을 기준으로 엔화의 등락 추이를 따라 신중한 분할 매매 전략을 펴는 것이 유리하다는 조언이다.
엔달러 환율은 최근 10년간 110엔을 중심으로 움직여왔으나 올 들어 추세선이 가파르게 우상향 중이다. 앞으로 엔화 약세 현상이 다소 진정되더라도 ‘달러 콜·엔화 풋’ 구도가 뒤집힐 가능성은 매우 낮다. 대체로 120엔 후반대를 기준으로 이보다 위 구간에서는 고평가된 달러를 분할 매도하고 저평가된 엔화를 분할 매수하는 전략이 유리하다는 분석이다.
보다 공격적인 투자자라면 엔화 기반 상장지수펀드(ETF) 상품에 투자하는 것도 방법이다. 단, 현재 상장된 상품은 TIGER엔선물ETF 정도로 선택폭이 좁다. 환헤지를 하지 않고 환노출형 일본 투자 펀드에 가입할 수도 있다. 엔화 가치가 장기적으로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면 환율 변동성에 노출돼 환차익을 볼 수 있는 ‘언헤지 일본 투자 펀드’를 고르면 된다. 해외 투자 펀드에서 발행한 환차익은 배당소득세 과세 대상에 포함된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다만, 엔화 가치 반등폭에 대해서는 눈높이를 다소 낮춰야 한다는 시각이 대체적이다. 엔화 가치가 바닥을 찾는 과정인 것은 분명하지만 안전자산으로서 엔화의 위상이 과거와 달라졌다는 점은 부인하기 힘들다.
권아민 NH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단기적으로는 미국과의 물가 상승률 차이는 올해를 정점으로 내년부터 괴리를 좁힐 것”이라며 “엔화 약세가 지난해와 올해 상당 부분 진행된 점 등을 고려하면 현 수준에서 달러엔 환율의 추가 상승폭도 다소 제한적일 것”으로 내다봤다.
다만 권 애널리스트는 “글로벌 전체 수출에서 일본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과 엔화 가치의 궤적은 과거와 유사하지만 미국 GDP 대비 일본 GDP 규모는 2000년 49%에서 2021년 22%로 축소됐다”며 “이는 향후 위험자산 회피 국면에서 엔화의 매력도 과거와 달라졌다는 것을 시사하는 대목”이라고 덧붙였다.
[배준희 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64호 (2022.06.22~2022.06.28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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