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배현진 싸움에 마이크 끈 권성동..'막장 국힘' 생중계
물가 상승 등 좀처럼 탈출구가 안 보이는 민생. 국회 원 구성 협상 난항으로 인한 입법부 마비 사태. 집권 초 빨간불이 켜진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율.
삼중고에 시달리는 115석 집권당이 20일 감정싸움으로 휘청거렸다. 이날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와 배현진 최고위원은 최고위 회의에서 비공개회의 발언 유출 논란을 두고 설전을 벌였다. 고성이 오간 끝에 이 대표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는 장면이 고스란히 생중계됐다. 당내에선 “선거운동할 때는 민생을 위해 싸우겠다고 했는데, 정신 차려보니 집안싸움만 하고 있다”(당 관계자)는 자조가 나왔다.
이날 회의 시작 전부터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배 의원이 가장 늦게 착석하자 이 대표는 굳은 표정으로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마이크를 잡은 이 대표는 “비공개회의가 언론에 따옴표까지 인용돼 보도되는 상황이 발생해, 최고위 의장 직권으로 오늘부터 비공개회의에서 현안 논의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이 대표와 배 의원이 갈등을 빚은 13, 16일 비공개회의 발언 일부가 언론에 보도된 것을 겨냥한 것이다.
배 의원은 발끈했다. 그는 “현안 논의를 하지 않을 것이 아니라 비공개회의를 철저히 단속해서 건강하게 이어가야 한다”며 “(회의 뒤 내용이 공개되는) 미공개 회의처럼 돼 낯부끄럽다”고 말했다. 이 대표가 회의 단속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는 취지였다.
회의 말미 이 대표는 “기공지 한 대로 오늘 비공개회의는 없다”고 거듭 밝혔다. 배 의원은 이 대표의 말을 끊고 “비공개회의를 일방적으로 없애면 어쩝니까”라며 “회의 내용이 오픈돼서 제가 단속해달라고 (이 대표에게) 제안하지 않았나”라고 항의했다. 두 사람의 공개 설전은 약 1분가량 이어졌다.
▶이준석=“발언권을 득해서 말씀하시고요.”
▶권성동=(손으로 두 사람을 다독이며) “아니 잠깐만, 잠깐만.”
▶이=“비공개회의 내용이 언론에 누차 유출되면서….”
▶배현진=“대표님께서 많이 유출하지 않으셨습니까.”
▶이=“특정인이 참석했을 때 유출이 많이 된다는 얘기도 들리기 때문에….”
▶배=“단속을 제대로 안 하고. 심지어 대표가 언론에 얘기한 것을 누구 핑계를 대면서 지금….”
▶이=“단속해볼까요?”
분위기가 얼어붙자 둘 사이에 앉아 있던 권성동 원내대표가 나섰다. 권 원내대표는 난감한 표정으로 “자자, 그만합시다”라며 왼손으로 탁자를 툭 쳤다. 이 대표가 “아니오. 논의할 사안 있으면….”이라고 말을 이어가자 권 원내대표는 황급히 이 대표의 마이크 전원을 껐다. 당 관계자는 “방송사고라도 날 것 같아 권 원내대표가 마이크를 껐다”고 설명했다.
이 대표는 그 직후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고, 권 원내대표는 “그렇게 나가면 안 되지. 이 대표 들어오라”고 만류했다. 이 대표는 자리에 돌아오긴 했지만 “내 얘기를 내가 유출했다고?”라며 불쾌한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둘의 감정싸움은 회의가 끝난 뒤에도 수그러들지 않았다. 이 대표는 “제 발언을 제가 유출했다고 공개 주장하는 사태가 발생했다”며 “개탄스러운 상황이 백일하에 이뤄졌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비공개회의 내용을 유출한 사람이 누구냐는 질문에는 “누가 음해하는 메시지를 내는지 잘 알지 않나”라고 배 의원을 겨냥했다.
배 의원은 “누가 방송이나 페이스북을 통해서 비공개회의를 가장 많이 유출하는지 알 것”이라며 “마치 당직자와 다른 최고위원에게 공동 책임을 씌우듯 얘기하면 안 된다”고 반박했다. 이어 “(이 대표가) 자기방어적으로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 같은데, 내가 (회의 내용을) 유출했다는 것은 이 대표가 잘못 생각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두 사람의 충돌을 두고 내부에선 “당내 세력 다툼의 연장선”이라는 반응이 나왔다. 당 초선의원은 “단순히 발언 내용 유출이 다툼의 이유는 아닐 것”이라며 “이 대표가 사활을 건 혁신위 등에 대해 배 의원이 반기를 든 것이 충돌의 결정적 원인 아니겠나”라고 말했다. 배 의원은 지난 13일 비공개 최고위에서 이 대표가 띄운 혁신위원회에 대해 “사조직으로 오해받을 수 있다”고 비판했고, 16일 회의에선 안철수 의원이 추천한 국민의당 몫 최고위원 2명에 대해 이 대표가 부정적 인식을 드러내자 “졸렬해 보일 수 있다”고 반박했다.
22일 성 상납 의혹과 관련해 당 윤리위 징계안 심사를 앞둔 이 대표의 의도적 전략이라는 해석도 있다. 이 대표는 당초 윤리위를 공개회의로 열 것을 요구했다. 당 관계자는 “윤리위 직후 비공개 논의 내용이 외부로 무분별하게 유출돼 확대 재생산될 수 있다는 점을 이 대표가 염두에 두지 않았겠나”라며 “이 대표가 사전에 엄포를 놓은 것처럼 보였다”고 말했다. 이날만 해도 당내에서는 “윤리위가 이 대표보다는 김철근 정무실장을 징계하는 선에서 사태를 매듭짓지 않겠나” 등 다양한 추측이 쏟아졌다.
여권에서는 “지금 이럴 때냐”는 성토가 쏟아졌다. 전직 중진의원은 “민생이 난리인데, 여당은 아귀다툼만 하고 있다”며 “여전히 압도적 의석을 가진 민주당을 마주한 집권당처럼 보이질 않는다”고 꼬집었다. 재선 의원은 통화에서 “보궐선거와 대선, 지방선거에서 3연승 한 것이 외려 독이 된 상황”이라며 “민심이 등 돌리는 건 한순간이라 걱정스럽다”고 우려했다.
손국희 기자 9ke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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