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칼럼] 김정은 대신 BTS 그리고 선한 영향력

김희국 기자 2022. 6. 20.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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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악관 방문, 캠페인 참여 등 대중문화 세계적 아이콘 확인
잠정 중단해도 잊히지 않아..영향받은 '코리안' 등장할 듯

지난 13일 한국과 미국의 외교 수장이 워싱턴 DC에서 회담을 가졌다. 외교 수장이 만났으니 주제는 무거울 수밖에 없다. 그런데 회담을 마치고 기자회견장에 선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의 입에서 뜻밖의 말이 튀어나왔다. 그는 “최근 두 나라의 매우 주목할 만한 만남인 BTS(방탄소년단)의 백악관 방문을 잊을 수 없다”고 말했다. 북한의 미사일 도발에 강력하게 대응하겠다는 뜻을 밝히는 자리에서 엉뚱하게 BTS를 언급한 것이다. 이를 두고 한국과의 동맹 관계가 안보뿐만 아니라 문화 현상에 이르기까지 미국 곳곳에 스며있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앞서 BTS는 지난달 미 백악관을 방문해 조 바이든 대통령을 만났다. 바이든 대통령은 자신의 개인 트위터 계정에 BTS의 백악관 방문 동영상을 올렸다. 동영상을 보면 BTS가 대통령 집무실에 앉아 있고, 바이든 대통령이 직접 노트북을 조작해 BTS의 곡 중 하나인 ‘버터’를 재생한다. 그러면서 “이 노래가 익숙하지 않느냐”는 말을 덧붙인다. 노래를 들은 BTS 멤버들은 손뼉을 치고, 일부는 춤까지 췄다. 전 세계 정치 경제 외교를 논하던 미 대통령 집무실에서.

이뿐만이 아니다. BTS는 딱딱하고 무거운 백악관 브리핑룸 분위기를 콘서트장으로 만들어 버렸다. 백악관 출입 기자들이 사진과 동영상을 찍으려고 경쟁적으로 휴대폰을 들이대는(?) 바람에 브리핑룸 뒤편에 배치된 사진과 카메라 기자들이 휴대폰을 내려달라며 “폰 다운(Phone Down)”을 외치는 이례적인 풍경이 펼쳐졌다.

BTS가 백악관을 방문한 목적은 최근 미국 내에서 빈번하게 발생하는 반(反) 아시안 증오 범죄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서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이 눈에 띈다. 미국 내에, 미국 국적의 저명한 아시안-아메리칸(Asian-American)이 적지 않은데도, 백악관은 한국 국적의 BTS를 초청해 논의했다는 점이다. 그동안 BTS가 빌보드 차트 정상을 차지하고, ‘아메리칸 뮤직 어워즈’(AMA)에서 영국 밴드 콜드플레이와 함께 노래 부르는 모습을 보면서 ‘K팝 인베이전’이란 표현을 많이 썼다. 이제는 ‘인베이전’을 넘어 BTS가 세계적인 아이콘이 됐음을 확인할 수 있다. 공식적으로 입증해 준 곳이 백악관이고, 바이든 대통령이다.

BTS를 보면서 한 가지 궁금증이 생긴다. 2022년 현재, 미국을 포함한 전 세계인들에게 가장 유명한 ‘코리안(남한과 북한을 포함)’은 누구일까. 이런 생각을 한 이유는 그동안 겪었던 개인적인 경험 때문이다. 미국에서 만난 평범한 미국인들은 “한국(South Korea)에서 왔다”고 말하면, 거의 반사적으로 북한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먼저 거론했다. 고의인지, 아니면 남한과 북한을 구분하지 못해 그렇게 반응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럴 때마다 몹시 당황스러웠다.

미국인들에게 김 위원장은 조롱과 멸시, 증오의 대상이었다. 심지어 할리우드는 2015년 김 위원장을 비꼬는 영화 ‘디 인터뷰’를 제작했고, 미국의 유명 토크쇼 MC는 김 위원장을 코미디 소재로 삼기도 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미국인에게 가장 유명한 ‘코리안’은 북한의 김 위원장이란 생각을 갖게 됐다. 이유를 따져보면 몇 가지 추측이 가능하다. 북한은 부시 정부에 의해 ‘악의 축’으로 규정됐으며, 수시로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를 감행해 불안감을 고조시켰다. 특히 2018년 미국 하와이에서 탄도미사일 위협 경보가 발령돼 미국인들을 충격과 공포로 몰아넣기도 했다. 곧바로 실수로 밝혀졌지만 미국인들이 평소에 북한과 김 위원장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를 것이다. BTS가 세계 대중문화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평범한 미국인들은 “한국(South Korea)에서 왔다”고 하면, 자동적으로 BTS를 떠올릴 것이다. 이것이 정치 경제 외교 군사력을 능가하는 문화의 힘이다.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BTS는 지난 9년 동안 혐오 범죄 문제에 대한 입장 피력, 전 세계에 희망을 전하는 ‘러브 마이셀프’(Love Myself) 캠페인 등에 참여하면서 ‘선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악의 축’으로 부정적 이미지가 부각된 김 위원장과 대척점에 서서 ‘코리안’에 대한 인식도 바꿨다.


BTS가 지난 14일 단체 활동 잠정 중단을 전격 선언했다. 앞으로 팀 활동과 개별 활동을 병행하겠다는 계획이다. BTS가 잠시 멈춘다고 BTS가 잊히는 것은 아니다. BTS는 선한 영향력을 세계에 실천한 ‘코리안’으로 미국과 세계인의 머릿속에 남을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BTS의 영향을 받은 더 많은 선한 ‘코리안’이 등장해 BTS의 뒤를 이을 것이다. 대한민국 문화는 그럴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김희국 신문국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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