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짱깨주의'만 슬쩍 띄워놓고..文의 책 추천 비겁한 3가지 이유 [임명묵이 고발한다]
서점가 역사 코너에 화제의 책 하나가 등장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SNS에 추천한 광운대 김희교 교수의 『짱깨주의의 탄생』이 주인공이다. 문 전 대통령은 "중국을 어떻게 볼 것이며, 우리 외교가 가야 할 방향이 무엇인지 다양한 관점을 볼 수 있다”며 “언론이 전하는 것이 언제나 진실은 아니다, 세상사를 언론의 눈이 아니라 스스로 판단하는 눈을 가지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해준다”고 썼다. 퇴임한 지 얼마 안 된 전 대통령의 추천 도서에 사회적 이목이 쏠리는 건 당연하다. 게다가 주제는 현재 한국에서 가장 첨예한 문제인 중국이다. 문재인 정부가 임기 내내 친중 논란으로 갑론을박을 벌였던 걸 생각하면, 그가 추천한 이 중국 관련 책을 바탕으로 지난 정부의 외교 방향성과 함의를 가늠하고 해석하는 게 그리 부자연스러운 일은 아니다.
책의 핵심적 내용은 이렇다. 서구 근대의 패권은 아시아에서 미국이 주도한 샌프란시스코 체제로 구현되었다. 냉전을 상징하는 이 체제는 공산권을 배제하고 아시아 태평양의 친미 자본주의 국가들끼리의 통합을 촉진하고자 설계된 국제 질서였다. 하지만 미 국무장관 키신저가 중국 개방을 주도하면서, 20세기 후반부터는 중국과의 긴밀한 경제적 협력을 통해 미국의 경제적 이득과 국제 질서에서의 패권을 유지하고자 고안된 키신저 체제가 들어섰다. 하지만 중국이 미국을 위협할 수준으로 성장하자, 미국은 또다시 새로운 샌프란시스코 체제를 만들어 중국을 포위, 봉쇄하고자 한다.
문 전 대통령은 왜 이 책을 추천했나
저자는 일제 시대부터 형성된 중국과 중국인에 대한 인종주의적 편견, 즉 ‘짱깨주의’ 탓에 우리가 중국을 바라보는 시선이 왜곡됐다고 주장한다. 미국을 추종하는 보수는 말할 것도 없고, 이상론으로 중국을 폄훼하는 진보의 중국관도 이런 짱깨주의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고 매섭게 비판한다. 그러면서 역사의 거대한 방향성은 서구의 패권이 끝나는 탈식민화를 가리키고 있기에, 짱깨주의에 입각하여 중국을 무시하는 일은 어리석다고 말한다. 한국이 적극적으로 중국과 보조를 맞춰 행동해야 탈식민적이고 다자적인 평화 체제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내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건 책 자체가 아니라 “언론이 전하는 것이 진실이 아니고” “다양한 관점을 볼 수 있다”는 문 전 대통령의 추천평이다. 이 문장은 그가 자서전 『운명』에서 리영희를 자신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지식인이라며 언급한 대목을 떠올리게 한다. 문 전 대통령은 대학생 시절 베트남 전쟁의 부도덕성과 제국주의적 성격을 다룬 리영희의 논문이 “미국을 무조건 정의로 받아들이고, 미국의 주장을 진실로 여기며, 상대편은 무찔러 버려야 할 악으로 취급해 버리는, 우리 사회의 허위의식을 발가벗겨주는” 글이었다고 회고한다.
반세기 가까운 시간이 흘렀지만 무언가 많이 겹쳐 보이지 않는가? 언론에서 이야기하는 게 진실이 아니니 ‘자신의 관점’으로 더 큰 맥락을 봐야 하는데 사람들은 늘 언론이 전달하는 왜곡되고 피상적 이야기에만 휩쓸리니 베트남 전사를 빨갱이라 비난하고 중국을 짱깨라 비난한다. 이게 아마 문 전 대통령이 전달하고 싶었던 메시지가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세 가지 점에서 부적절하다.
대중을 우매하다 여기는 시선 불편
첫째, “언론이 전하는 것만이 진실이 아니다”라고 하였는데, 사람들의 감정이 꼭 언론에 휩쓸려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다. 인종적 혐오로 이어지는 짱깨주의는 부적절할지 몰라도 중국, 나아가 중국 공산당과 중국 사회에 대한 비판은 언론이 만든 것이 아니라 중국과 교류하고 중국을 들여다보면서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형성했다. 중국이 외교적으로 보이는 고압적인 행태, 신장 위구르와 대만·홍콩을 대하는 태도, 대중문화 영역에서 일상적으로 충돌하는 중국 애국주의적 네티즌들의 모습, 심지어 노동 현장에서 중국인 이주민들과의 갈등 등…. 사람들이 직접적이고 실제적 통로로 중국을 바라본 결과가 현재의 반중 정서다. 물론 언론이 전하는 것에 진실만 있지는 않다. 때로 무엇이 진실이었는지 시간에 따라 바뀌기도 한다. 하지만 사람들이 비판 의식 없이 언론을 받아들여 반중 정서가 형성되었다는 이야기는, 나만 언론 너머 진실을 볼 수 있을 정도로 깨어 있고 일반 대중은 그러지 못한 몽매한 상태라는 함의로 이어진다. 민주주의는 민의를 반영하는 시스템이지 통치자가 몽매한 대중을 계몽하는 시스템이 아닌데도 그런 태도를 여과 없이 드러낸다.
소모적 논쟁만 남은 비겁한 추천평
하지만 셋째 문제는 가장 심각하다. 문 전 대통령이 이렇게 논쟁적 책을 추천하면서도 책을 추천 의도에 대해 제대로 된 말을 남기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 대신 “책을 추천하는 게 내용에 대한 동의나 지지가 아니다”라고 발을 빼는 문장 하나는 남겨 두었다. 책 추천을 이런 식으로 아주 모호하고 불친절하게 했기에 각종 추측과 논쟁이 난무한다.
정말로 책 추천이 동의를 의미하는 게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면 어느 지점에 동의하고 어느 부분은 동의하지 않는지, 책의 전체적 내용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며 책을 추천하는 이유는 무엇인지에 대해서 명확히 설명해야 한다. 그런데 책을 추천하면서 ‘뭐 딱히 다 지지하는 건 아닌데…’라며 말을 흐리니 공연한 논쟁만 넘실댄다. 전 정부에 비판적인 사람은 역시 문재인 정부는 친중이었다며 비난하고, 전 정부에 우호적인 사람은 ‘책 내용에 대한 동의가 아니라잖아’며 궁색하게 변명한다. 전직 대통령이 이끌어낸 논의치고는 너무 소모적이고 비생산적이다.
기왕 이렇게 된 마당이니 문 전 대통령이 『짱깨주의의 탄생』에 대해 명확하게 서평을 쓰면 좋겠다. 미국 중심의 질서가 문제고, 서구의 ‘식민적 근대성’ 대신 중국이 주도하는 ‘탈식민적 다자주의’가 옳다고 생각하는지 입장을 명확하게 밝히고 공개적 토론을 이끌어내는 게 올바른 자세가 아닐까. ‘언론에 선동당한’ 대중이나 ‘미국을 비판 없이 추종하는’ 이들이 자기 뜻을 알아보지 못할 게 우려스러워서 말을 흐린거라면 아예 이런 논쟁적 책을 추천하지 않았어야 한다.
임명묵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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