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빵 1500만개 車에 태운다"..식량난 불똥튄 '바이오연료' [세계한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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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대부분의 주유소에선 바이오에탄올이 섞인 연료를 주유할 수 있다. 바이오에탄올의 혼합 비율이 높을수록 연료 가격은 저렴해진다. 미 정부는 2005년부터 휘발유에 바이오에탄올을 최소 10% 이상 섞어 판매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미네소타주에 거주하는 한 운전자는 최근 CBS와의 인터뷰에서 "연료비 절약을 위해 최근 바이오에탄올이 15% 섞인 연료를 차에 채우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바이오연료는 고유가 대안과 저탄소 에너지로 주목받으며 2000년대 초반부터 세계 여러 나라에서 자동차 연료에 혼합해 쓰고 있다. 바이오연료엔 옥수수·사탕수수·밀 등에서 얻는 바이오에탄올과 콩기름, 팜유(식용유) 등에서 얻는 바이오디젤 등이 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전쟁발 글로벌 식량 위기는 '식량 VS 바이오연료' 논쟁을 촉발했다. 일각에서 바이오연료를 생산을 줄여 곡물을 연료가 아닌 식량으로 우선 사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식량난 불똥'이 바이오연료에 튄 모양새다.
바이오연료 생산 최고치..."장려할 때 아냐"
파이낸셜타임스(FT)는 우크라이나 전쟁 전까지 세계의 바이오연료 생산량은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전했다. 아워월드인데이터에 따르면 2020년 세계의 바이오연료 생산량은 1043테라와트시(TWh)로 1990년의 83TWh보다 12배 넘게 급증했다. 바이오연료 선도국인 미국은 지난해 생산한 옥수수의 36%와 콩기름 공급량의 40%를 바이오연료 생산에 사용했다.
그러나 FT에 따르면 국제식량정책연구소(IFPRI)는 "현재는 각국 정부들이 의무 규정이나 인센티브 정책을 통해 식량 작물을 에너지로 전환하도록 장려할 때가 아니다"고 지적했다.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두 나라는 전 세계 밀 수출량의 25%, 옥수수 수출량의 20%를 차지한다. 특히 전 세계에 공급된 해바라기유 50% 이상이 우크라이나에서 나왔다. 그러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곡물의 발이 묶이면서 세계 식품 가격은 17% 상승했다.
소비 밀의 40%를 두 나라에 의존해 온 아프리카에선 밀 가격이 45% 오르고, 심각한 영양실조를 겪는 아동의 수가 증가하고 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UN) 사무총장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식량 부족으로 아프리카를 포함한 개발도상국의 수억 명이 기아와 빈곤 위험에 처하게 됐다"는 우려를 내놨다.
"바이오연료 곡물 50% 줄이면 우크라 수출 감소분 만회"
환경운동단체 교통&환경의 마이크 마라렌스는 "유럽연합(EU)에선 매일 빵 1500만 개를 만들 수 있는 밀 1만t이 자동차 연료용 에탄올로 태워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로이터통신은 이는 연간 빵 50억 개 이상에 해당한다고 전했다.
바이오연료는 앞서 2007~2008년 세계 식량 위기의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되기도 했다. 당시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IMF)은 옥수수 가격 상승분의 20~50%는 바이오연료 시장의 성장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에 당시 유엔의 식량 주권 조사관은 바이오연료 증가에 대해 "인류에 반하는 범죄"라고 날을 세우기도 했다.
또 바이오연료 생산을 위해 농작물 생산을 늘릴 경우 환경에 또 다른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온실가스 배출 40% 감소..."대부분 사료용 밀"
그러나 바이오연료의 이점을 고려할 때 이런 지적이 부당하다는 반박도 만만치 않다. 미 아르곤국립연구소 분석에 따르면 일반 휘발유 대신 옥수수 기반 바이오에탄올을 사용하면 온실가스 배출이 평균 40%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 정부는 이례적으로 올 여름 바이오에탄올이 15% 섞인 연료에 대한 판매를 허용했다. 당초 스모그 유발에 대한 우려로 바이오에탄올 15% 혼합은 여름엔 금지돼 왔지만, 고유가와 인플레이션 억제를 위한 특단 조치다. 백악관은 이번 조치로 1갤런당(3.78ℓ) 약 10센트(약 129원)의 연료비를 절약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또 바이오업계는 바이오연료 생산에서 밀이 차지하는 비중은 전체 곡물의 약 2%로 미비하고, 대부분이 제빵용이 아닌 사료용 밀 이라고 설명한다.
유럽 최대 바이오연료 정제소를 소유한 클론바이오의 투자 책임자 에릭 시버스는 FT에 "때문에 현재의 빵 위기 상황에서 밀 에탄올을 지적하는 건 맞지 않다"고 말했다.
곡물을 에탄올로 바꾸는 과정에서 닭과 소, 돼지 등에 먹일 수 있는 단백질과 지방 부산물이 만들어져 동물 사료에 이용되기도 한다. 바이오연료 업계에 종사하는 제임스 코건은 "바이오연료 생산 제한은 신재생 에너지 손실과 에너지 독립성 상실, 일자리와 농장 소득 감소, 화석 연료 수입과 탄소 배출 증가란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美 계속 혼합, 獨 의무 완화 고려..."균형 맞춰야"
이런 엇갈린 입장 속에 국가별 대응에도 차이가 나고 있다. 미국은 휘발유 가격 안정을 우선 목표로 에탄올 의무 혼합 비율을 밀고 나가기로 했다.
인도네시아에선 팜유 가격이 급등하자 바이오디젤에 쓰이는 팜유 비율을 줄여야 한다는 요구가 나왔다. 그러나 인도네시아 정부는 '에너지 안보'가 우선이라며 현행 30% 비율을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최근 설탕 수출 제한에 나선 인도는 설탕을 사용한 바이오에탄올의 혼합 비율을 오히려 늘리기로 했다.
반면 독일과 벨기에는 식량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바이오연료 혼합 의무 완화를 고려하고 있다고 FT는 전했다.
글로벌 컨설팅사 맥킨지의 니콜라스 데니스는 "바이오연료를 사용하는 나라들은 식량 안보와 에너지 사용의 지속 가능성 사이에 균형을 맞춰야 한다"며 "각국 정부는 각기 다른 우선순위를 고려해 결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미 프린스턴대 연구원인 올리버 제임스는 "식량 수급이 불안정한 상황에서 우리는 세계인을 먹여 살리고, 기후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제한적인 자원의 쓰임에 대해 정말로 진지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임선영 기자 youngc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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