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vel | 사람과 시간이 빚어낸 자연..남이섬은 '오늘'이 좋다

2022. 6. 17.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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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은 무작정 떠나기 좋은 곳이다. 노래처럼 정겹게 기차가 다니고 자동차로도 쉽게 갈 수 있다. 그곳까지 가는 경치는 또 어떤가. 수려한 북한강을 따라 달리다 어디에서 내리든 넉넉한 물길과 산길이 반겨주고 어김없이 마음을 다독여준다. 남이섬은 그런 춘천의 다른 이름이다. 여행이 고픈 어느 날 문득 찾아가도 좋을, 꿈 같은 휴식이 있는 곳이다.

까마득 잊고 살았던 걸까. 여행을 떠올릴 때면 늘 1순위로 꼽히던 곳이 한동안 낯설게 느껴졌다. 발길을 끊은 지도 꽤나 오랜 세월이 흘렀다. 춘천 남이섬 이야기다. 어떤 시절, 누군가에겐 젊음과 낭만과 추억의 이름이었던 그곳. 그리고 그 후엔 드라마 한류를 이끌었던 ‘겨울연가’의 촬영지로 전 세계 여행자들이 물밀 듯 몰려오던 곳이었다. 그렇게 20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드라마 한류는 K-Pop에 자리를 내주고, ‘겨울연가’에 열광하던 사람들은 ‘강남스타일’과 ‘BTS’에 흠뻑 빠져들었다. 손에 꼽던 국내 여행지도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핫플레이스로 확산돼 전국 방방곡곡 구석구석이 인기 있는 여행 명소로 변모했다. 역사와 전통의 여행지 대신 젊은 감성을 자극하는 ‘여행 맛집’이 대세가 되는 그런 세상이 된 것이다. 남이섬에 평생 잊을 수 없는 인생 스토리를 남긴 사람이 아니라면 그 옛날의 추억 정도는 자연스레 잊히고도 남을 시간이다. 그래도 막상 그곳을 떠올린다면 다르지 않을까. 설렘으로 가슴이 뛰던 청춘을 지나온 누구에게나 축복이자 그리움으로 다가서는, 행복한 상상의 나라가 바로 남이섬이다. 계절은 지금 청춘처럼 푸르다. 청춘을 꼭 닮은 남이섬은 지금도 안녕할까.

▶남이섬과 인어공주, 그리고 안데르센

실로 오랜만에 남이섬 이야기를 듣게 됐다. 멀리 이탈리아로부터 날아온 뉴스 하나가 마중물이 되었다. 지난 봄, 이탈리아 볼로냐국제아동도서전에서 ‘아동문학계의 노벨상’이라 일컬어지는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어워드’의 수상자가 발표됐다. 놀랍게도 한국의 그림책 작가 이수지가 일러스트레이터 부문 수상자로 선정됐다. 실력 있는 일러스트레이터이자 그림책 아티스트로 활동하고 있는 이수지 작가는 『토끼들의 복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파도야 놀자』, 『그림자놀이』 등의 작품으로 국내외의 권위 있는 상을 여러 차례 수상한 실력 있는 예술가다. 하지만 아동문학 분야에서 최고 권위를 갖고 있는 ‘안데르센상’을 수상한 건 이번이 처음이며, 한국 국적의 작가가 이 상을 수상한 것도 최초의 일이다. 세계는 물론 한국 아동문학계를 놀라게 한 사건이었다. 놀라운 일은 그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남이섬이 바로 이 안데르센상의 공식 후원사였다는 사실이 작가의 수상 소식과 함께 알려진 것이다. 남이섬은 지난 2009년부터 14년째, 이 상의 공식적인 단독 후원사로 세계적 작가 양성에 힘을 보태왔다. 남이섬이라는 작은 여행지 하나를 운영하는 관광문화 기업이 세계적 권위의 문학상을 단독 후원해왔다는 것은 미담 이상으로 의미가 깊다. 그 이전의 공식 후원사가 일본의 닛산자동차였다는 것만 봐도 아동문학에 대한 남이섬의 관심과 애정의 크기를 가늠할 수 있는 일이다.
남이나루 옆에 서 있는 ‘긴머리 여인 동상’(인어공주상)
남이섬이 안데르센상과 인연을 맺은 사연은 무엇일까. 지난 2002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이 이야기는 남이섬 숲속에 방치돼 있던 작은 동상 하나로부터 시작된다. 우연히 발견된 그것은 누가 어떻게, 왜 만들었는지 가늠도 되지 않는 ‘긴 머리 여인’ 동상이었다. 딱히 유명한 작품도 아니었지만 그냥 버리기도 아까워 선착장 옆 강가에 세워두었는데 강물이 차오르면 허리 아래가 물에 잠기는 형상이 되었고, 그때부터 ‘인어공주상’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동화나라를 꿈꾸던 남이섬에 뜻하지 않게 인어공주가 생긴 것이다. 그 탄생 스토리는 동화처럼 신비스런 옷을 입고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다. 그리고 그 이듬해인 2003년, 남이섬은 과거 유원지 시절 카바레로 쓰던 건물을 고쳐 ‘안데르센홀’을 만들었다. 남이섬이 동화나라, 책의 섬으로 거듭나게 된 계기였다. 그해 ‘안데르센홀’에서는 ‘안데르센 동화와 원화전’을 개최하고, 국내 최초로 안데르센의 육필 원고를 전시하면서 문학계는 물론 세간의 이목까지 집중시켰다. 그리고 다시 2년 후인 2005년, 안데르센 탄생 200주년을 기념하는 ‘세계 책나라축제’가 남이섬에서 펼쳐졌다. 행사 주최는 국제아동도서협의회(IBBY)가 맡았고, 남이섬은 장소와 제반 비용을 부담했다. 첫 해, 전 세계 38개 나라가 참여한 이 행사는 이후 남이섬을 대표하는 문화 행사로 자리 잡았다. 인어공주상, 안데르센홀, 세계 책나라축제로 이어진 남이섬의 동화 사랑은 2008년 볼로냐국제아동도서전에서 안데르센상 공식 후원사로 지정되면서 마침내 꽃을 피우게 된다. 한 편의 동화 같은 이야기가 이수지 작가의 안데르센상 수상을 계기로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이다. 남이섬의 인어공주상은 지금도 남이나루 선착장 옆에 다소곳한 모습으로 서 있다. 남이섬의 상징 조형물이 된 이 동상은 국제아동도서협의회가 인정하는 공식 인어공주상이 되었고, 덴마크 코펜하겐에 있는 원조 인어공주상과 동등한 위상을 획득했다는 얘기도 있다. 들으면 들을수록 동화 같은 이야기다.

▶책과 그림이 넘쳐나는 예술의 섬

남이섬을 ‘겨울연가’로 기억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지만, 그보다는 ‘책의 섬’이라고 하는 게 더 정확하다. 남이섬은 입구부터 섬 구석구석이 온통 책 천지다. 남이나루에 내리자마자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게 책을 쌓아놓은 거대한 조형물이고, 길마다 건물마다, 심지어 화장실에까지 책들이 꽂혀 있다. 특히 아이들을 위한 책은 그 종류와 양이 국내 어느 도서관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하고 압도적인 규모다. 섬 곳곳에 만들어진 도서관도 특별하다. 쉽게 경험할 수 없는 안데르센 그림책센터를 비롯, 국제어린이도서관과 그림책 놀이터, 북카페, 심지어는 호텔 정관루 객실에까지 TV 대신 책을 비치하고 있다. 마음만 먹으면 하루 종일 책만 보고 있어도 충분한, 섬 전체가 숲속 도서관이자 책 놀이터다. 그중 특히 인기가 있는 곳이 안데르센 그림책센터와 그림책 놀이터다. 안데르센 그림책센터는 안데르센 탄생 200주년을 기념하여 만든 곳으로 도서 전시와 체험이 이루어지는 공간이다. 역대 안데르센상 수상자들의 작품과 세계 주요 그림책상 수상작들을 만나볼 수 있고, 올해 수상자인 이수지 작가의 작품도 그곳에서 볼 수 있다. 아이들이 특히 좋아하는 그림책 놀이터에는 2만여 권의 어린이 책이 비치되어 있고 상상력과 창의력을 키워주는 다양한 체험이 이루어진다. 또 미끄럼틀을 타고 장난감도 가지고 놀 수있는 재미있는 놀이 공간이다.

남이섬을 멋진 예술 공간으로 만드는 요소 중 하나는 그림이다. 2년마다 열리는 국제 그림책 일러스트레이션 공모전인 ‘나미콩쿠르’를 통해 전 세계의 실력 있는 일러스트레이터들을 발굴하고 그들의 작품을 입체 전시해 섬 전체를 하나의 그림 전시장으로 만들어 놓았다. 또 현재의 남이섬을 가꾸고 일군 ‘영원한 남이섬 지킴이’이자 일러스트레이터인 강우현의 영혼이 깃든 글과 그림, 공예 등 수많은 작품들이 남이섬의 자연과 어우러져 곳곳에서 보석처럼 빛나고 있다. 길을 거닐며 가만히 생각해보면 처음부터 있었던 자연이 아니라 사람이 하나하나 만들어낸, 손때 묻은 땅과 풀, 꽃과 나무에 예술이 더해진 보물 같은 자연이고 그것을 남이섬에서 발견할 수 있다.

▶태초의 평화를 함께 나누어 가는 곳

평상시엔 육지였다가 홍수 때가 되면 섬이 되던 곳. 푸른 호수 위에 가랑잎처럼 떠있는 남이섬을 지금의 청정 자연, 동화나라이자 책과 그림의 정원, 노래의 섬으로 만든 이가 강우현이다. 그가 펴낸 『남이섬 상상탐험』이란 책의 서문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책 속의 이미지 가운데 33퍼센트만 찾아낸다면 당신은 강우현을 남이섬에서 밀어낼 수 있다.” 책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수백 컷의 남이섬 사진 가운데 여행자가 발견해낼 수 있는 사진이 과연 얼마나 될까를 묻는 말이다. 의도하지 않고 또 계산하지 않고 만들어놓은 것은 이곳에 그 어떤 것도 없다는 얘기일 터다. 흡사 보물찾기처럼 구석구석 꼼꼼히 살펴보아야 마침내 찾을 수 있는 남이섬의 숱한 보물들. 전설 같은 ‘연봉 100원’에 남이섬을 맡아 불과 3년 만에 유원지를 관광지로, 소음을 리듬으로, 경치를 운치로 바꿔버린 그가 이곳에 쏟아 부은 정성과 노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짐작케 하는 말이기도 하다. 그가 쓰고, 그리고, 만든 것들의 무궁무진함은 지금도 남이섬을 꾸미는 ‘자연’의 일부가 되어 있다. 지금은 제주도로 내려가 남이섬의 동생 격인 ‘탐나라공화국’을 만든 강우현은 관광지의 조건으로 “사진 찍을 곳을 많이 만들라”고 했었단다. 요즘 인기 있는 여행지들의 공통적인 특징인 ‘인생샷’에 대한 그의 철학과 혜안이 오늘의 남이섬을 있게 하지 않았을까. 남이섬을 거니는 동안 온통 셀카, 인증샷 삼매경에 빠진 여행자들을 바라보며 들었던 생각이다.

2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남이섬은 여전하다. 가평의 나루터에서 배를 타고 들어가는 방법도 마찬가지다. 달라진 게 있다면 높이 80m의 짚와이어를 타고 섬으로 곧바로 들어가는 방법이 하나 더 생겼다는 것. 그래서 시간과 속도를 즐기려는 젊은 여행자들은 ‘나미나라 출입국관리소’ 대신 스카이라인 짚와이어를 탄다. 풍경은 그대로지만 달라진 것도 있다. 아쉽지만 남이섬의 시그니처 감성을 이끌었던 ‘겨울연가’의 설렘과 감동을 찾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가슴 떨리는 첫사랑의 느낌 대신 유쾌한 방식으로 표현되는 오감만족에 더 충실한 여행자들이 많아지면서 과거의 명소가 그냥 스쳐지나가는 장소로 변해버린 듯하다. 그래서인지 ‘겨울연가’의 ‘준상’과 ‘유진’이 눈사람을 만들다 첫 키스를 나눴던 장소에 서서 추억을 그리는 이들을 보기란 쉽지 않다. 당시의 벤치도 그대로 보존되어 있고 눈사람 조형물도 있지만 ‘겨울연가’를 추억하는 사람은 드물고 감동도 예전만 못한 느낌이다.

그렇지만 남이섬의 숲은 더욱 깊어지고 풍경은 더 진해졌다. 하늘로 곧게 뻗은 잣나무와 메타세쿼이아, 은행나무 길은 한 줄기의 햇빛도 허락하지 않을 정도로 짙푸른 나무 터널을 만들어주고, 작은 묘목이던 현호림 자작나무숲은 순백의 줄기와 초록 잎으로 여름을 빛내고 있다. 먼발치에서 가끔 보았던 동물들도 이젠 제법 사람들과 친해져 있다. 긴 깃털을 자랑하는 공작새는 아무렇지도 않게 사람들과 나란히 길을 걷고, 토끼와 다람쥐, 청설모는 손에 잡힐 듯 가깝게 오가며 재롱을 피운다.

아직 코로나 바이러스가 완전히 소멸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여행자들이 쓰고 있는 마스크를 보고서야 느낄 만큼 보통의 일상을 맞이한 남이섬은 지금 모든 것이 원래대로 돌아간 듯한 모습이다. 길을 걷고, 책을 읽고, 푸른 잔디밭에서 뛰어노는 평범한 일상이 평화롭게 이어진다. 실로 오랜만에 주어진 행복을 행여 놓칠세라 카메라에 담는 여행자들의 모습이 정겹다. 청춘을 닮아 유난히 푸른 남이섬. 그곳의 여름이 지금 시작되고 있다.

▷놓치지 말아야 할 남이섬 여행 Tip

▶입장 | 남이섬에 들어가는 방법은 유람선과 짚와이어가 있다. 유람선(일반 1만6000원/우대 1만3000원)은 가평나루에서 남이나루까지 오전 8시부터 오후 9시 사이 10~30분 간격으로 왕복 운행하며, 짚와이어(4만9900원/입장료 포함)는 오전 9시부터 오후 7시까지(동절기 오후 6시까지) 이용할 수 있다.
▶ 탈 것 | 전체 섬의 둘레는 약 5㎞. 한나절 천천히 걸어서 둘러보는 게 남이섬의 매력에 흠뻑 빠지는 가장 좋은 방법이지만 그보다 편하고 시간을 절약하는 방법도 있다. 남이나루에 내리면 관광청 옆에 대기하고 있는 스토리투어버스(8000원/20분 소요)와 선착장역에서 중앙역까지 가는 나눔열차(3000원) 그리고 싱글·커플·패밀리 자전거(5000원~1만7000원/30분)와 하늘자전거(일반 3000원/어린이 2000원)를 이용할 수 있다.
▶먹을 것 | 남이섬에는 한식당부터 아시안 레스토랑까지 다양한 음식점과 카페가 있다. 남이섬을 블렌딩한 차와 음료를 파는 카페도 있고, 남이섬이 아니면 맛볼 수 없는 특별한 간식도 있다. 그 가운데 눈사람을 콘셉트로 한 눈사람호떡과 눈사람빵, 눈사람초콜릿은 꼭 먹어봐야 할 주전부리다.
▶잘 곳 | 남이섬은 달밤이 좋다. 별밤은 더 좋다. 하지만 새벽을 걷어 올리는 물안개를 보면 아무 말도 할 수가 없다. 남이섬의 아름다움을 전부 확인하려면 그곳에서 하룻밤을 묵으면 된다. 남이섬에는 본관 숙소 격인 호텔 정관재가 있고, 별관으로 두 사람을 위한 투투별장과 여럿이 함께 할 수 있는 아네모네, 후리지아 등의 콘도별장이 있다.
▶구경거리 | 노래박물관 내에 자리한 세계민속악기전시관에서는 세계 각국의 민속악기 300여 점을 구경할 수 있고, 갤러리 평화랑에서는 바다의 소중함을 알리는 세계 일러스트레이터들의 엽서전 ‘SEA CHANGE:바다가 보낸 편지’가 열리고 있다. 전시된 엽서에는 바다와 바다 생물을 그린 원화와 함께 작가들의 바다 보호 메시지가 적혀 있다.

[글과 사진 이상호(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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