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1세대 가구예술가, 최병훈의 확신
이 기사는 언론사에 의해 수정되어 본문과 댓글 내용이 다를 수 있습니다.
Q : 1990년에 모교인 홍대에 교수로 부임한 후 30년간 재직했습니다. 그 사이 학과 명칭을 목공예과에서 목조형가구학과로 바꿨지요
A : 그때는 공예과를 나무, 금속, 섬유 같은 재료로 구분했어요. 하지만 학생들이 미래에 만들 가구들이 단지 나무로만 만들어지진 않을 텐데 나무나 공예라는 범주로 한계를 짓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가구 디자이너의 결과물이 작품으로서 미감과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길 바랐죠. 교수진과 협의해 학과 명을 바꾸고 아트 퍼니처 과목도 신설했습니다. 내가 강의를 맡았고 은퇴할 때까지 계속했어요.
Q : 당시 아트 퍼니처라는 단어도 대내외적으로 처음 사용했습니다
A : 1993년에 했던 첫 개인전 이름이 〈아트 퍼니처〉전이었어요. 인사동 선화랑에서 했는데 반응이 좋았습니다. 언젠가 가구가 예술로 인정받을 거라는 확신과 믿음이 있었어요. 다만 시간은 좀 걸릴 거라고 생각했지요.
Q : “가구를 사용하지 않는 시간에도 그 공간에서 미적 만족감을 줄 수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A : 작업실에 놓여 있는 저 의자가 1902년에 찰스 레니 매킨토시가 디자인한 ‘힐 하우스 래더 백 체어’인데 지금 봐도 좌판이 좁고 등받이가 직각이어서 앉으면 불편해요. 기능적으로 실용성을 가진 의자는 아니지만, 디자인은 아름답고 오브제로서 만족감은 높습니다. 저렇게 놓여 있거나 가만히 바라보기만 해도 특유의 예술성을 느낄 수 있죠. 이것이 벌써 100여 년 전 일입니다. 그래서 이 의자가 여전히 현대가구 디자인의 효시로 기록되는 겁니다. 내가 아트 퍼니처라는 단어를 사용한 이유는 우리도 레더 백 체어처럼 예술가구를 향유할 시기가 됐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다행히 그 후로 시선이 많이 바뀌었지요.
Q : 자연 재료와 현대 공예 기술을 집대성한 예술가구를 세상에 선보이게 된 계기는
A : 졸업 후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디자인실에서 근무했습니다. 해외여행이 쉽지 않던 1970년대에 공무원 신분으로 자유롭게 여러 나라로 출장을 다녔어요. 덕분에 20대 청년 시절에 이탈리아, 멕시코, 페루, 리비아, 아프리카 세네갈에 이르기까지 신비롭고 기이한 옛 유적지를 직접 만날 수 있었습니다. 마야, 잉카 문명과 원시예술을 접하며 받았던 신선한 충격은 말로 다 할 수 없어요. 파괴된 유적지 곳곳에 놓인 거대한 돌들도 큰 울림을 줬어요. 고대부터 구축되고 이어져 온 경이로운 예술세계를 눈으로 확인한 경험은 지금의 작품세계를 형성하는 데 많은 영향을 줬습니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젊을 때 최대한 많은 세계를 보고 듣고 경험하라”고 해요. 가구나 디자인과 연관이 없어도 좋다고요. 저 역시 그랬으니까. 그 이후 휴학해서 인도에서 1년간 살다 인도 전통 의상을 입고 나타난 학생도 있었고, 보름 동안 히말라야 트레킹을 하면서 편지를 보낸 학생도 있었어요. 그때의 경험이 훗날 그들의 인생에 큰 방향성을 제시해 줄 거라고 확신합니다.
Q : 아트 퍼니처라는 말만 들으면 미술관에서 그저 바라보고 감상해야 할 오브제로 느껴집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선생님 작품에 앉고 만질 수 있는 기회가 우리 곁에 있어요
A : 2007년에 설치된 아트 퍼니처 프로젝트인 ‘예술의 길, 사색의 자리’는 정동길 한가운데에 놓여 있어요. 외부에 설치된 지 몇 해가 흐르다 보니 빛도 바래고 표면도 반질반질해졌지만 시간의 흐름이 더해진 매력이 있습니다. 최근 서울공예박물관에 설치된 ‘태초의 잔상’ 안내 데스크도 아트 퍼니처지만 시민들이 편하게 앉고 경험할 수 있어요. 4m 80cm에 달하는 자연석이 시선을 압도하죠. 데스크 맞은편에 있는 흑색 원목 수납장도 함께 제작해서 데스크 자리가 하나의 편안한 공간으로 보이도록 만들었습니다. 조선시대 원목장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이지요.
Q : 2021년에 가나아트에서 열린 전시에서 서울공예박물관의 장을 집대성한 시리즈를 보여줬습니다
A : 〈빈장의 공간〉이라고 이름 붙인 구역에 여러 점의 장을 놓았습니다. ‘태초의 잔상’보다 패턴이나 크기 면에서 더욱 다양한 방향으로 작업한 결과물이었어요. 현무암과 수석, 자연석 같은 돌을 물푸레나무 장의 수납공간 가운데 배치하거나 지지대로 사용했습니다. 〈빈상의 공간〉에도 옻칠을 더해 광택이 나는 나무와 수석이 조화된 사이드 테이블과 콘솔을 전시했지요.
Q : 2020년에 퇴직한 후 지금까지 쉴 틈 없이 작업과 전시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A : 퇴직에 대해 의식해 본 적 없어요. 학교에만 가지 않을 뿐 변한 게 하나도 없거든요. 퇴직 이후에 대해 특별한 계획도 세울 필요가 없었어요. 20년이 넘은 이 작업실에서 늘 하던 대로 작업하면 되니까요. 오히려 예술가로서 새로운 시작이라는 생각도 합니다. 전시도 자주 하고, 더 많은 재료들을 찾아 다니고 싶어요. 내 나이가 되면 과거 얘기를 많이 하는데, 학생들을 최선을 다해 가르쳤고 아쉬움이 없기 때문에 과거보다 미래를 더 생각하고 싶어요.
Q : 이곳 파주 작업실에서는 어떤 작업이 이뤄지나요
A : 여기서는 주로 나무 관련 작업을 합니다. 돌은 무거워서 석재 관련 시설과 기중기가 있는 공장에서 함께 작업해요. 도장하는 공장도 따로 있고요. 현재는 뉴욕과 파리의 전속 갤러리를 통해 주문이 들어온 작품을 제작 중에 있습니다.
Q : 돌과 나무가 결합된 작품은 조각과 설치미술 작품의 중간 지점에 있는 듯합니다
A : 살아 있는 동안 가구를 만들면서 제가 소화할 수 있는 모든 소재는 다 경험해 보고 싶어요. 그래서 여러 종류의 나무와 돌은 물론이고 카본 파이버, 스테인리스스틸, 알루미늄도 시도해 본 거지요. 작업실 입구에 있는 작품 ‘Afterimage 08-282’도 카본 파이버 좌판과 검은 화강암의 조합입니다. 단단하고 둥근 돌 위에 유려하고 날렵한 곡선의 카본 파이버만 올려놓았어요. 돌과 나무를 함께 모았을 때 이질적인 물성의 소재들이 충돌하며 느껴지는 신선함이 좋아요. 야생의 돌을 내 손으로 만지고 다듬어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과정도 즐겁죠.
Q : 작업에 필요한 소재는 어떤 과정을 통해 탐색하거나 발견하나요
A : 산업이 발달하면 할수록 새로운 소재는 계속 발명되고 개발됩니다. 그러니 예술가는 끊임없이 발굴하고 도전해야 해요. 당시엔 카본 파이버도 신소재여서 수소문 끝에 밀양의 카본 파이버 회사를 찾아간 기억이 납니다. 지금 작업에 사용하는 돌도 중국 샤먼, 인도네시아 자바 섬, 이탈리아 카라라 등 세계 곳곳의 돌 산지에서 구해옵니다. 물론 마천석, 보령석 등 작품에 필요한 국내석 역시 산지를 답사하며 원석을 찾고 있습니다. 지난해 휴스턴 미술관 프로젝트 당시에는 국내 수석 관련 지역을 전부 훑고 다니며 작품 영감을 얻기도 했어요.
Q : 2020년에 개관한 휴스턴 미술관 신관에 영구 설치될 조각 작품을 제안받았습니다. 올라퍼 엘리아슨, 아이 웨이웨이 등 세계적인 작가 여덟 명에게 작품을 의뢰한 프로젝트였습니다
A : 2014년과 2016년에 뉴욕 프리드먼 벤다 갤러리에서 열린 〈아트 퍼니처〉 전시를 휴스턴 미술관 큐레이터가 관심 있게 본 것을 계기로 2017년에 휴스턴 미술관에서 공식적인 작품 의뢰를 받았어요. 조각 작품을 만들어달라더군요. 고민 끝에 수석과 옛 선비의 마음을 떠올렸습니다. 오래전 선비들이 수석을 서재에 두고 교감했던 문화에서 영감을 받았지요. 작품을 제작하기 전에는 한지에 먹으로 그린 드로잉으로 컨셉트를 보여주었고, 평면을 입체로 만드는 과정을 위해 10분의 1 크기로 축소한 모형도 여러 차례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탄생한 작품이 높이 3m의 기둥 세 개가 나란히 놓인 ‘선비의 길(Scholar’s Way)’입니다. 세 개의 높고 길다란 인도네시아산 현무암이 하늘로 반듯하게 서 있는 형상으로 묵묵히 한 길을 가는 선비들의 마음을 표현하려 했어요. 미술관 서쪽 입구의 얕은 수면 위에 영구 설치됐습니다.
Q : 뭐든지 오래 이어가면 자신만의 틀에 갇히기 쉽습니다. 하지만 40년 넘게 지속된 선생님의 작업은 늘 그런 울타리를 넘어서는 모습이었죠. 자신의 일에 한계를 느낄 때 어떻게 극복했나요
A : 작가에게 한계란 기존의 작업을 반복하면서 매너리즘에 빠지고 생명력이 떨어지는 겁니다. 계속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개인의 가치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그래서 나는 쉴 틈 없이 드로잉을 해서 예술적 근육을 단련합니다. 그렇게 쌓인 드로잉은 단번에 성과가 드러나지는 않지만 적절한 시기에 긴요하게 쓰여요. 이번에 뉴욕 갤러리와 미팅하는데 전에 했던 드로잉이 떠올라 보여줬더니 마음에 들어하더군요. 그런 아카이브는 작가에게 단번에 생성될 수 없는 자양분이죠.
Q : 가구예술가의 공간에는 어떤 가구가 놓여 있는지 궁금합니다
A : 여기 있는 오래된 ‘토넷 체어 No.14’는 연구년 당시 파리에 있을 때 벼룩시장에서 샀어요. 공산품으로는 가장 긴 생명력을 갖고 있는 의자라고 생각합니다. ‘임스 라운지 체어’도 파리에서 구입했어요. 주로 쉬거나 책을 읽을 때 앉아 있습니다. 이건 덴마크 프리츠 한센의 빈티지 의자인데 세븐 체어와 같은 라인에서 생산됐지만 디자인이 조금 달라요. 저기 놓인 가구 세트는 내가 헬싱키 디자인대학 연구교수로 있을 때 학과 교수였던 시모 헤이키라의 디자인입니다. 핀란드 디자인 정신을 그대로 보여주지요. 20년 후에 이곳에 온 적 있는데 자신의 가구를 소장하고 있다는 사실에 감격하더군요. 의자 등받이에 사인도 하고 갔어요. 파이버글라스에 금박을 입힌 의자는 웬델 캐슬, 철망으로 만든 의자는 시로 구라마타의 작품입니다. 나와 같은 뉴욕 갤러리 소속 작가들이지요.
Q : 세상의 모든 재료로 만든 예술적인 의자들이 여기 다 모여 있는 것 같습니다
A : 항상 다른 작가들의 작품을 보며 많이 배우고 감동을 느낍니다. 작업실에 좋아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놓아두고, 자극과 에너지를 받을 수 있는 기회도 지속적으로 만들어요. 전시도 보고, 책도 읽고, 국내외의 아트 비엔날레도 수시로 찾아가죠. 그들의 작품을 보며 새로운 영감을 받으면 다시 내 작업이 하고 싶어요. 나도 누군가에게 그렇게 감동을 주고 싶어서.
Q : 의자 사이로 곳곳에 무심히 놓여 있는 돌들이 공간에 방점을 찍는 것 같습니다
A : 마음에 드는 돌을 찾았다고 해서 그것이 곧바로 작품 소재가 되는 건 아닙니다. 작업실 이곳저곳에 놓아두고 수시로 지나가며 어떤 형태와 이미지에 맞을지, 어울리는 소재는 무엇인지 계속 생각하고 살펴요. 때로는 몇 년이 흐를 때도 있습니다. 지금은 작업실 한 켠에, 현관 앞마당에 길가의 돌과 별 구분 없이 묵묵히 놓여 있을 뿐이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좋은 작품에 큰 보탬이 될 겁니다. 그 시기는 나도 모르는 순간에 불현듯 찾아와요.
Copyright © 엘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