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촬영 판치는 남녀 공용화장실?..캐나다선 배려의 아이콘
손민호의 레저터치

해괴한 문물과 맨 처음 조우한 건,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퀘벡시 복판의 향토 음식점이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사슴고기 타르타르와 토끼 다리 양념구이, 퀘벡을 대표하는 전통 음식 푸틴(치즈와 메이플 시럽으로 요리한 감자튀김)을 내는 캐나다 토속 음식점 화장실에서였다. 화장실이 하나밖에 없었다. 클럽 화장실처럼 낙서로 요란한 공용 공간이 있고, 한쪽 편에 화장실이 칸칸이 있었다. 그게 전부였다. 남녀 구분이 없었다. 남자 화장실이 따로 없으니 소변기도 없었다. 공용 공간 입구에서 머뭇거리는 사이, 캐나다 사람들은 남자와 여자가 섞여 화장실 칸 앞에서 줄을 섰다가 차례로 들어갔다. 이상하긴 했지만, 우리나라에도 공용 화장실이 있는 식당이 많아 그런가 보다 했다.

그날 저녁엔 퀘벡 시내의 고급 레스토랑에 갔다. 무려 15가지 코스가 나오는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이었다. 레스토랑이 고급이어서 화장실도 우아했다. 공용 공간 중앙의 대형 거울과 벽 그림으로 장식한 화장실은 여느 갤러리 못지 않게 화려했다. 이 화장실에도 남녀 구분이 없었다. 호화 레스토랑에 공용 화장실이라니. 낮의 화장실이 어색했다면, 밤의 화장실은 당혹스러웠다. 정장 차림의 남성과 드레스 차림의 여성이 차례로 줄을 서 화장실 칸에 들어갔다.

이후에도 비슷한 경험은 여러 번 반복됐다. 의문이 풀린 건, 온타리오주 나이아가라폭포 옛 발전소 건물 화장실에서였다. 여기 화장실도 남녀 공용이었다. 화장실 입구 벽에 한쪽은 바지, 다른 쪽은 치마를 입은 픽토그램과 ‘ALL-GENDER’라는 글씨를 보고서 알았다. 캐나다 공용 화장실은 ‘젠더리스(Genderless) 화장실’ 또는 ‘올 젠더(All Gender) 화장실’이었다. 굳이 사람을 남녀나 장애로 구분하지 않는, 구별하지 않으니 차별도 없는, 하여 남성도 아니고 여성도 아니라고 믿는 사람이 어디에 들어가야 하나 고민하지 않는 화장실이었다.
여행에 동행한 캐나다관광청 관계자가 “캐나다 동부 지역은 동성애 또는 양성애에 매우 관대하다”고 알려줬다. 자료를 찾아보니 온타리오주 토론토에서는 해마다 6월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양성애자 축제가 열리고 있었다. ‘월드 프라이드 페스티벌’이라는 축제로, 캐나다에서 열리는 세 번째로 큰 행사라고 한다. 2016년에는 트뤼도 캐나다 총리도 축제에 참여해 양성애자들과 함께 행진했다. 그러고 보니 길거리에서 여장 차림의 남성이 유난히 자주 눈에 띄었던 것 같다. 미국 뉴욕에서 온 현지 여행사 관계자는 “미국 동부는 보수적이어서 젠더리스 화장실을 찾아보기 어렵지만, 샌프란시스코 같은 서부 도시에는 젠더리스 화장실이 꽤 있다”고 말했다.

귀국 하루 전, 신속항원검사를 받기 위해 스마트폰으로 예약했다. 앱을 열고 개인 정보를 하나씩 입력하다 성별을 묻는 항목에서 멈췄다. ‘SEX’가 아니라 ‘GENDER’였고, GENDER 아래에 세 개의 선택 버튼이 있었다. Male(남성), Female(여성) 그리고 Self-Identify(자기 결정). 인류의 절반은 남자고 또 다른 절반은 여자인 세상은 더이상 없었다.
한국에 돌아와 포털 사이트에서 ‘공용 화장실’을 검색했다. 한국에도 젠더리스 화장실이 들어왔을까 궁금해서였다. 그러나 관련 검색어는 하나같이 암울했다. ‘몰카’ ‘성범죄’ 같은 몹쓸 단어만 난무했다. 이런 사회를 향해 구분이 차별을 만든다고 외치면, 너무 안일한 태도일까. 한국과 캐나다는 어쩌면 12시간 차이 나는 시차보다 더 멀었다.
레저팀장 ploves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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