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제국 무너뜨린 '괴승' 라스푸틴의 마지막 편지

이준목 2022. 6. 8.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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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리뷰] tvN <벌거벗은 세계사>

[이준목 기자]

 tvN <벌거벗은 세계사>의 한 장면.
ⓒ tvN
 
"파멸할 것인가, 온 힘을 다하여 전진할 것인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역사는 이렇게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한다." 러시아 제국을 무너뜨리며 최초의 사회주의 국가를 건설했던 혁명가 블라디미르 레닌의 어록이다.

러시아 제국의 마지막 황제 니콜라이 2세는 역사의 시험대에서 잇달아 잘못된 선택으로 전진이 아닌 파멸의 길로 접어들었다. 니콜라이 2세와 그의 황비 알렉산드라, 자녀 일남사녀가 남긴 황가의 화목했던 순간을 촬영한 가족사진은, 촬영 이후 불과 5년 뒤에 20세기의 가장 비극적인 기록으로 역사에 남게된다. 황제일가가 한밤중 지하실로 끌려가 일가족이 모두 몰살당하는 전대미문의 사태는 전세계에 큰 충격을 안겼고 곧 거대한 러시아 제국의 종말을 의미하는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6월 7일 방송된 tvN <벌거벗은 세계사>에서는 푸틴이 자랑스러워한 러시아의 흑역사로 꼽히는 '러시아 제국의 몰락과 괴승 라스푸틴' 이야기를 조명했다. 류한수 상명대 역사콘텐츠학과 교수가 강연자로 나섰다.

러시아는 어떻게 대제국을 설립하고 또 무너지게 되었는가. 러시아는 13~15세기까지만 해도 약 240년 몽골의 지배를 받으며 암흑기를 보냈다. 몽골을 물리치고 독립을 이뤄낸 모스크바 공국은 루스 차르국을 거쳐 1721년에는 러시아 제국으로 국호를 개명했다.

러시아는 표트르 대제-예카테리나 2세-알렉산드르 1세 시절을 거치며 서구화 정책과 영토 확정으로 신흥 강대국으로 올라섰다. 최전성기였던 19세기 중엽에는 전세계 지표면의 1/6이 러시아 영토였을 정도였다.

황제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표트르 대제 시절부터다. 러시아 제국의 성장과 더불어 황제의 절대 권력 역시 막강해졌다. 러시아 정교를 국교로 하던 러시아에서 황제는 정치뿐만 아니라 종교까지 관장해야 했다. 러시아에서 황제의 존재는 '신이 내려준 아버지'로 여겨졌고 백성들은 실제로 수백년간 황제를 '자상한 아버지'로 불렸다.

'현대판 차르' 푸틴과 러시아 제국
 
 tvN <벌거벗은 세계사>의 한 장면.
ⓒ tvN
 
현재 러시아 대통령 푸틴은 '현대판 차르(황제)'로 불린다. 푸틴은 형식상 민주주의로 선출한 지도자이지만 실제는 절대권력을 휘두르는 권위주의 독재자의 전형에 가깝다. 푸틴은 집권 초기부터 '전성기 러시아'의 부활을 추구하며 '제국주의 시대'의 향수에 빠져있는 인물이다.

푸틴이 서방과 강경하게 대립하는 것이나 국제사회의 비난에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강행하고 있는 것은 러시아의 영광을 되찾겠다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푸틴이 가장 러시아 역사에서 자랑스러워하며 이상적으로 여기고 있는 것이 바로 러시아 제국 시절이다.

그런데 푸틴이 그토록 동경하던 러시아 제국은 20세기 들어 미스터리한 사건들에 휘말리며 너무나도 갑작스럽고 허망하게 몰락했다. 러시아 제국의 멸망을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는 결정적인 두 사람이 바로 황제 니콜라이 2세와 괴승 라스푸틴이다.

니콜라이 2세는 26세에 즉위할 당시 황제가 되기에 완벽한 정통성을 지녔지만 정작 "나는 황제가 될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 나는 황제가 되기 싫다. 통치술을 전혀 모른다"고 스스로 고백할 정도로 자신감이 없는 상태였다. 니콜라이 2세는 제왕으로서의 교육을 충분히 받지 못했고, 타고난 성격도 냉철한 권력자가 되기에는 너무 여렸다.

우려한 대로 니콜라이 2세는 국정을 풀어가는 데 주변의 이야기에 쉽게 휘둘렸다. 반면 백성들의 목소리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았는데, 치세 내내 계속된 이런 태도는 결과적으로 러시아 제국과 황제 일가의 운명에 이르기까지 치명적으로 작용했다.

러시아 제국이 몰락에 이르기까지 결정적인 계기로 세 가지 사건이 거론된다. 혁명의 물결, 러일 전쟁, 그리고 피의 일요일 사건이다.

18세기 서구 사회는 낡은 전제정치 대신 민주주의와 사회주의라는 두 개의 거대한 흐름에 직면한다. 하지만 니콜라이 2세는 이런 시대적 흐름을 읽지 못하고 오히려 전제군주제를 강화하는 길을 선택한다. 점진적 혁명을 추구하다가 오히려 암살 당한 할아버지 알렉산드르 2세, 그 반작용으로 혁명세력을 탄압하며 강력한 전제군주가 된 아버지 알렉산드르 3세의 모습은 니콜라이 2세의 가치관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러시아 제국을 위협하는 불안한 국내외 정세 속에 니콜라이 2세는 연이어 정치적 자충수까지 저지른다. 한반도 정세에 개입하려던 러일전쟁의 충격적 패배, 비인간적인 노동환경 개선을 요구하며 평화시위를 펼치던 노동자들을 무력진압한 '피의 일요일' 사건이 터지며, 민심은 니콜라이 2세에게 등을 돌렸다.

니콜라이 2세가 혼란한 나라를 제대로 돌보지못한 데는 아들인 황태자 알렉세이의 건강 문제도 크게 작용했다. 어렵게 얻은 유일한 아들은 황태자는 유전적인 요인으로 피가 멈추지 않는 혈우병에 시달리고 있었다. 니콜라이 2세는 후계자로서의 자격이 위협받을까봐 아들의 상태를 비밀로 감췄다.

'괴승' 라스푸틴의 등장    
 
 tvN <벌거벗은 세계사>의 한 장면.
ⓒ tvN
 
이때 니콜라이 2세 앞에 등장한 인물이 바로 '괴승(괴상한 수도승)' 라스푸틴이었다. 라스푸틴은 시베리아 출신의 농민이자 글도 깨우지치 못한 문맹으로, 젊은 시절에는 고향에서 그저 술과 여자에 빠져살았던 문제아였다.

하지만 고향에서 쫓겨난 라스푸틴은 당시 러시아에 존재했던 지하 이단종파인 흘리스티(채찍)에 가입하며 운명의 전환점을 맞이했다. 라스푸틴은 자신이 굉장히 특별한 사람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됐고 본인이 성모 마리아의 계시를 받아 신비한 능력을 얻었다고 선언하기에 이른다.

라스푸틴은 카잔에 있는 러시아 정교회를 찾아가 수도승이 되었고 예언과 치유의 능력이 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차츰 명성을 얻게된다. 라스푸틴은 자신을 "신과 교감하는 성자이며 질병을 치유하고 미래를 예언하고 불행을 쫓아버릴 수 있다"고 주장했다. 라스푸틴이 사람들을 치유하는 기적을 행했다는 소문들이 여기저기 퍼지며 귀족과 황족 사회에서도 그의 이름이 알려지게 되었고, 결국 니콜라이 2세의 부름까지 받게 된다.

니콜라이 2세는 라스푸틴을 만나고 "우리가 찾던 그 성자"라며 반겼고 국가기밀인 황태자의 혈우병까지 라스푸틴에게 털어놓았다. 이후 라스푸틴은 황태자가 아플 때마다 입궁했고, 놀랍게도 그가 기도하고 나서는 황태자의 출혈이 거짓말처럼 멈추거나 위독한 상태에서도 기적적으로 호전되었다고 한다.
 
 tvN <벌거벗은 세계사>의 한 장면.
ⓒ tvN
 
라스푸틴이 어떤 방법으로 황태자를 치료했는지는 지금도 미스터리다. 황태자는 당시 출혈을 증가시켜서 혈우병 환자에 치명적인 아스피린을 복용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라스푸틴은 의학적 지식없이 아스피린 복용을 멈추게 했는데 덕분에 황태자의 상태가 자연적으로 호전되었다는 것인데, 사실이라면 기막힌 우연이 아닐수 없다.

라스푸틴은 황태자를 구한 생명의 은인으로서 황제 일가를 정신적으로 사로잡았다. 수시로 황궁을 드나들며 사실상 황실을 장악한 라스푸틴은 자연히 엄청난 권세를 누리게 되었다. 라스푸틴에게 잘 보이려는 사람들이 뇌물을 바치고 청탁을 하는 경우가 늘어났다. 라스푸틴이 뇌물을 받고 자신이 직접 사인한 증서 하나만 넘겨주면 의뢰한 모든 일들이 단숨에 해결될 정도였다.

라스푸틴은 자신의 명성과 권력을 이용하여 수많은 여성들을 추종자로 거느리며 문란한 관계를 맺기도 했는데, 심지어 황비까지 추문에 포함되어 있었다. 알렉산드라 황비가 라스푸틴에게 보낸 연서에 가까운 편지가 언론에 공개된 것은 황실의 권위를 바닥으로 떨어뜨리는 데 영향을 미쳤다. 현대의 역사학자들은 황제의 권위에 의존하고 있던 라스푸틴이 황비와 실제로 부적절한 관계는 아니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추론하고 있지만, 문제는 당시에는 그 추문을 사실로 여기는 분위기가 더 높았다는 것이다.

라스푸틴의 부정적인 면모가 드러나기 시작하면서 러시아 언론과 종교계 등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졌지만 정작 니콜라이 2세는 이를 방관했다. 라스푸틴이 황실의 비밀을 쥐고 있었기 때문이다.

라스푸틴에게 휘둘리던 러시아 황실에게 더욱 치명타가 된 사건은 바로 제 1차 세계대전이었다. 라스푸틴은 니콜라이 2세의 심리를 읽고 황제가 참전하여 직접 전쟁터까지 나서도록 부추겼다. "폐하께서 군통수권을 장악하면 모든 전선에서 승리를 알리는 종이 울릴 것"이라는 라스푸틴의 예언에 확신이 생긴 니콜라이 2세는 수도를 비우고 전장으로 떠났고, 그 사이 국정은 라스푸틴이 장악했다.

라스푸틴은 이미 자신에게 정신적으로 장악당한 황비를 배후에서 꼭두각시처럼 조종하며 무소불위의 전횡을 일삼았다. 황제 부부가 라스푸틴의 하인과 애인이 되었다며 조롱하는 만평이 나올 만큼 황실에 대한 평가는 바닥으로 떨어졌다. 러시아 국민들은 라스푸틴과 황비가 러시아 제국을 망치고 있다며 분노하는 여론이 점점 높아졌다.

라스푸틴 암살 계획
 
 tvN <벌거벗은 세계사>의 한 장면.
ⓒ tvN
 
펠릭스 유수포프 공작은 황족을 대표하여 라스푸틴의 전횡을 막기 위하여 암살을 계획한다. 황족들은 라스푸틴을 파티로 초대하여 독살할 계획을 세웠지만, 놀랍게도 라스푸틴은 청산가리가 든 음식을 잔뜩 먹고서도 죽지 않았다. 심지어 총탄을 두 방이나 맞고서도 쓰러지지 않는 불사신같은 모습을 보이다가, 결국 세 번째 총알을  이마에 맞고 나서야 겨우 숨을 거뒀다고.

황족들은 라스푸틴의 손과 발을 묶어 강물에 던졌다. 1916년 12월 러시아 제국의 황실을 뒤흔들었던 라스푸틴은 비참한 시체로 발견된다. 황제 부부는 라스푸틴의 사망에 실의에 빠졌다.

라스푸틴이 세상을 떠난 후 불과 3개월 뒤에 러시아에는 혁명이 불길이 치솟았다. 오랜 전쟁과 굶주림에 지친 국민들은 일제히 거리로 나섰다. 시위 진입을 명령받은 군인들까지 발포를 거부하고 오히려 시위대에 합류하며 통제불능 상태가 되자 결국 1917년 니콜라이 2세는 성명서를 내고 모든 권력을 내려놓고 제위계승까지 포기하겠다고 선언한다.

하지만 끝내 황제 일가의 운명은 평탄하지 못했다. 러시아는 혁명세력과 반혁명세력의 내전상태에 휩쓸렸다. 혁명 세력은 황제 일가가 반혁명세력의 구심점이 될 것을 우려하여 모두 제거하기로 결정한다. 한때 세계를 호령했던 러시아 제국의 황제일가는 그렇게 한밤중에 지하실로 끌려내려가 일가족이 몰살당하는 끔찍한 최후를 맞이한다. 

놀랍게도 라스푸틴은 죽기 전에 황제에게 이런 편지를 썼다고 한다. 라스푸틴은 자신의 죽음을 예측하며 "제가 러시아 농민의 손에 죽는다면 폐하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된다. 하지만 제가 폐하의 친족에게 죽는다면 폐하의 자녀 어느 누구도 두 해 넘게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러시아의 황제이신 폐하는 러시아 백성 손에 죽을 것"이라는 소름끼치는 예언을 남겼다고. 결과적으로 라스푸틴의 예언은 모두 현실이 됐다.

하지만 역사학자들은 이를 라스푸틴의 정치적 술수였다고 평가한다. 정적들이 자신의 목숨을 노린다는 것을 눈치채고 있던 라스푸틴이 황제의 가족을 언급하며 자신을 지켜달라는 협박성 탄원서를 보낸 것이 우연히 맞아떨어졌다는 것.

황제 일가가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 지 3년 후 러시아 내전은 레닌이 이끄는 혁명세력의 승리로 끝났다. 이로서 세계 최고의 사회주의 체제인 소비에트 연방이 탄생했다. 이후 2차대전과 냉전시대라는 70여 년의 역사를 거쳐, 소비에트 연방이 해체된 현재는 푸틴의 집권이 22년째 이르고 있는 현대 러시아 시대를 맞이했다.

만일 니콜라이 2세가 라스푸틴같은 간신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만의 신념과 판단을 지닌 황제였다면? 그가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국민의 목소리에 좀더 귀를 기울이는 황제였다면? 본인과 가족, 러시아 제국의 운명도 많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시대는 변하고 있는데 본인의 낡은 믿음만을 고집했던 니콜라이 2세는 연이어 최악의 결정을 내렸고, 결국 거대한 제국을 무너뜨리는 결과를 초래했다.

역사의 흐름을 읽지 못하는 체제는 항상 비참한 결말을 피하지못했다. 우리가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에 여기에 있다. 변화하는 세상의 흐름을 읽어야 바른 결정을 내릴수 있다. 러시아 제국의 몰락사가 우리에게 주는 진정한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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