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구리 튀김에 깜짝..요리사가 최고 훈장 받는 미식의 도시

시작은 호기심이었다. 프랑스관광청 초청으로 5월 중순 이 나라 고유의 맛과 멋을 간직하고 있다는 동남부 오베르뉴 론 알프 지역을 돌아본 계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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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 이름부터 '어린 왕자'의 생텍쥐페리라니
알프스산맥에서 지중해로 흘러내려 가는 론 강과 이탈리아와 유럽대륙 사이를 가로지르는 알프스 산맥 서부로 이뤄진 이 지역은 19세기 철도가 열리면서 프랑스에서 가장 먼저 관광‧레저가 발달한 곳이다.
고대 로마제국 속령인 갈리아의 수도였던 리옹부터 찾았다. 『어린 왕자』의 작가이자 비행사인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의 성을 딴 ‘리옹 생텍쥐페리 공항’에 혼자 도착했다. 리옹은 인구 200만 명으로 프랑스에서 파리와 마르세유 다음으로 크다. 론 강과 손 강이 도시 가운데에서 합류하면서 길고 좁은 반도를 형성한다. 프레스킬이라고 불리는 이 반도가 도시의 중심부다. 호텔로 가는 동안 리옹을 대표한다는 벨쿠르 광장과 레퓌블리크 광장을 지나면서 보니 시민들이 모여 5월의 시원한 밤을 만끽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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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병원을 21세기 호텔로 개조
호텔은 론 강변에 잡은 웅장한 돔형의 건물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 자체로 문화재였다. 중세 시대 병원이 들어선 뒤 시민들의 기부를 받아 수백 년간 증축을 거듭한 곳이라 병원이라는 뜻의 ‘오텔 듀(Hotel Dieu)’를 붙인다. 건물 곳곳에 남아있는 몇백 년 묵은 기부자 이름들이 인상적이었다. 기부를 기억하고 기리는 문화를 확인할 수 있었다.
제1, 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 베트남전, 알제리전 등에 참전하거나 희생됐던 군의관을 기리는 명패도 있어 그 앞에서 잠시 고개를 숙였다. 2차대전 당시 건물 옥상에 올라가 프랑스 국기를 흔들어 미군의 오폭을 막았던 병사의 공로를 기리는 명패도 보였다. 당시 독일이 점령해 군 병원으로 사용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병원 근처의 다리는 당시 전투로 파괴됐다가 복구했다니 병원이 격전지였다. 그래서 그런지 건물 여기저기 총탄이나 파편으로 인한 손상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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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사를 그토록 존경하는 미식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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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서 발견한 고대 로마의 속살
언덕 위에 자리 잡은 푸르비에르 대성당을 찾았다. 성화에 리옹의 상징인 사자가 그려진 모습이 이채로웠다. 성당 뒤에선 리옹이 한눈에 보였다. 멀리 인터폴 본부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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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때부터 이용된 포도밭과 광장
리옹을 뒤로하고 남쪽으로 향했다. 고속도로의 양쪽 언덕에 포도원이 줄지어 보였다. 론 와인의 재료인 포도가 익어가고 있었다. 암퓌라는 마을에 도착해 유명한 와이너리인 샤토 기걀에서 운영하는 포도주 박물관과 시음장을 찾았다. 건물 내부는 물론 정원에도 17세기 이후에 실제로 사용한 포도주 제조 도구들이 전시돼 있었다. 고대 로마 시대 석조물도 군데군데 보였다. 수천 년간 포도주를 만들어온 전통을 볼 수 있었다. 언덕의 포도원을 바라보며 론의 유명 와인인 E-기걀을 종류별로 시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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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콜릿에 시식의 자유를 허했더니
탱레르미타주라는 작은 도시를 찾아 발로나 초콜릿 박물관을 방문했다. 박물관은 초콜릿의 원료인 카카오가 어떻게 자라고, 이를 어떻게 선별해서 품질 좋은 초콜릿을 만드는지를 보여줬다. 오렐리 루르 관장은 "카카오 버터 함량이 풍부한 정도의 초콜릿을 넘어 최고의 재료를 최선의 조건으로 가공해 명품 초콜릿을 만드는 모습을 보여준다"고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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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 그리냥에 숨은 미슐랭 맛집의 매혹
차는 다시 출발해 론 지역의 농촌을 관통해 중세 때인 12세기에 지어진 그리냥 성에 도착했다. 16세기 신성로마제국의 카를 5세, 영국의 헨리 8세 등과 맞섰으며, 프랑스 문화를 크게 진흥해 ‘르네상스 왕’으로 불린 프랑수아 1세가 직접 찾아와 묵었을 정도로 건축과 실내 장식에서 수준을 인정받는 성이었다. 프랑수아 1세는 예술가를 후원하고 작품을 수집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탈리아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프랑스로 초청해 모나리자를 프랑스에서 완성하게 헸으며, 만년을 프랑스에서 지내게 했다. 하지만 그리냥 성은 프랑스 대혁명 당시 폐허가 됐다가 1913년부터 1931년까지 장기간에 걸친 보수로 원래의 화려한 모습을 되찾고 지역의 문화 아이콘이 됐다. 성 앞뜰에서는 매년 각종 공연이 펼쳐진다. 이런 역사를 뒤로하고, 성에서 내려다보는 론 평원은 기름지고 평온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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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하호 둘러싼 안시, 맑은 물에 비친 알프스
그리냥을 뒤로 하고 알프스 지역의 빙하호인 안시(아느시라고도 발음)에 도착했다. 겨울 올림픽 유치 경쟁에서 평창에 밀렸던 안시는 호수와 빙하의 도시다. 호수 남쪽에는 베니스를 연상케 하는 운하의 중세 도시가 펼쳐졌다. 여기저기에 스위스 국기와 비슷한 사부아(이탈리아어로는 사보이아) 공국의 깃발이 휘날렸다. 독립국인 사르데냐 왕국도 통치한 사보이아 공작 가문은 1860년 이탈리아 통일 전쟁을 위해 오스트리아와 싸우는 것을 도와주는 대가로 사부아 공국과 니스 백작령을 프랑스에 할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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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만호반의 중세 어촌 이부아르
이튿날 안시를 뒤로 하고 레만 호반의 이부아르로 향했다. 호수 건너 스위스가 보이는 이 어촌 마을은 세 가지가 놀라웠다. 첫째, 두 나라에 걸쳐 있었고, 건너편 스위스에 국제기구의 도시 제네바와 국제연맹 본부가 있던 로잔, 그리고 휴양도시 몽트뢰가 있는데도 물이 그렇게도 맑았다. 호숫가에선 정기적으로 제네바를 오가는 파워 보트가 대기하고 있었다.
몽트뢰는 그룹 퀸의 녹음 스튜디오가 있었으며, 퀸의 리드 보컬 프레디 머큐리가 잠시 머물렀다. 호숫가에 그의 동상이 있으며, 그의 생일에는 축하 행사가 열린다. 그런 축제의 도시 맞은편 호변이 이렇게 깨끗한 수질을 유지한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이부아르 관광사무소의 캐롤튀팡에게 물었더니 적절한 규제와 과학기술을 비결로 들었다.
둘째로 놀란 점은 중세 어촌인 이 작은 마을이 연간 200만 명의 관광객을 끈다는 사실이었다. 오래된 거리에는 식당이 즐비했다. 코로나 이전에는 여름마다 관광객이 몰렸는데, 올해 포스트 코로나 특수를 기대하는 눈치였다. 오래된 성이 하나 보였지만 개인 소유라 들어가지는 못했다. 대신 그 앞에 있는 작은 식물원에서 약초와 식용 허브를 만지면서 자연을 만끽할 수 있었다. 식물을 보는 곳은 많지만, 만지고 맛까지 보는 곳은 처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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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비앙에는 광천수만 있지 않았다
이부아르에서 멀지 않은 광천수의 고장 에비앙에 도착했다. 우선 시내를 돌았더니 세계 최초로 영화를 만든 뤼미에르 형제의 흔적이 보였다. 리옹에 살던 뤼미에르 형제의 별장이 광천수 휴양지인 이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 집은 지금 에비앙 시청이 돼 있었다. 독특한 것은 공공건물이지만 근무시간에는 누구나 문을 열고 건물에 들어가 돌아볼 수 있게 개방됐다는 점이었다. 그곳에서 과학기술자인 뤼미에르 형제가 발명해 사용했던 난방장치, 선풍기 등을 맘껏 구경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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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넘은 골프장서 한국 선수 연속 우승
에비앙 리조트 세일즈 매니저 플로랑 지로는 “에비앙 골프 코스가 1905년에 만들어졌다”고 강조했다. 117년의 역사와 전통, 그리고 꾸준히 코스 업그레이드에 공을 들인 리조트의 노력으로 오늘날 명문 코스로 자리 잡았음을 자랑하고 싶은 눈치였다. 숲속에는 자작나무로 만든 대형 콘서트장도 있었다.
에비앙 리조트에는 5성급인 루아얄과 4성급인 에르미타주 호텔이 3억 달러 이상을 들인 개조를 마치고 포스트 코로나 손님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스위트룸에 들어가 봤더니 레만 호가 한눈에 보이는 통창이 인상적이었다. 전 세계 부호들을 맞고 그들의 지갑을 열게 할 준비는 이미 마친 상태였다. 지로 매니저는 에비앙 리조트는 시설 개수와 보수에 꾸준히 투자해 최상의 상태를 유지한다고 설명했다. 스위트룸은 중동과 러시아 부호를 주 고객으로 상정해 시설을 세계 최상급으로 정비했다고 한다. 하지만 최근의 정치적 상황 때문에 은근히 걱정하는 눈치였다. 호숫가에 있는 힐튼 호텔도 보수를 마치고 포스트 코로나 고객을 기다리고 있었다. 코로나19로 인한 휴식기에 과감하게 투자하고 미래에 대비한 셈이다.
에비앙 관광사무소 프레데리크 알레옹은 “코로나 팬데믹 기간은 관광 산업계에 한편으론 불경기였지만 다른 편으로는 미래를 위한 투자와 재정비 기간이었다”며 “관광객은 물론 관련 산업계 종사자들도 지금을 기다려왔다”고 말했다. 에비앙도 매년 200만 명이 몰린 인기 관광지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알파인이 탄생한 도시, 샤모니몽블랑
에비앙을 아쉽게 뒤로 하고 알프스 산중 도시 샤모니몽블랑으로 향했다. 샤모니로 새벽 일찍 출발했지만, 가는 길 내내 만년설이 덮인 설봉들과 그 아래의 빙하, 그리고 더 아래의 푸른 초지가 계속 이어져 도저히 졸 수가 없었고, 지루한 줄도 몰랐다. 1924년 첫 겨울 올림픽이 열린 도시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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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블카로 에귀뒤미디 도착하니 현기증
샤모니에서 장비를 갖추지 않고 몽블랑에 가장 가까이 다가가는 방법은 케이블카를 한번 갈아타고 해발 3842m ‘에귀뒤미디(정오를 가리키는 시계 바늘이라는 뜻)’ 봉우리에 설치된 전망대까지 올라가는 것이다. 1955년 완공된 케이블카는 두 단계로 이뤄졌다. 해발 1035m의 샤모니에서 출발한 케이블카는 우선 해발 2317m까지 올라간다. 거기서 잠시 쉬면서 호흡을 고른 뒤 다른 케이블카를 타고 해발 3777m에 있는 다음 역까지 올라간다. 샤모니에서 따지면 고도차가 2800m 가까이 된다. 이 때문에 온도나 산소 농도 차이에 따른 현기증 등 고산 증세를 줄이기 위한 방법이다.

추위와 바람은 미약했지만, 햇빛은 사정없이 강했다. 먼지 하나 없는 맑은 공기에 하얀 만년설과 빙하에 반사된 햇빛은 시력을 손상시킬 정도였다. 선글라스를 쓰지 않았으면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가벼운 고산병 증세도 느껴졌다. 중간역에선 아무런 증상이 없었지만 에귀 디 미디까지 올라갔더니 잠시 뒤 귀가 먹먹해졌다. 침을 삼켰더니 증상이 조금씩 나아졌다. 어지럼증은 중간 케이블카 역으로 내려갈 때까지 미미하게 계속됐다. 가끔 에귀뒤미디와 몽블랑 사이에서 눈사태 소리가 들렸다. 오른쪽으로 동그란 몽블랑이, 눈앞의 이탈리아 쪽으로는 끝없는 눈의 벌판이 펼쳐지고 있었다. 왼쪽으로는 바늘같이 뾰족한 봉오리가 연이어져 있었다. 그곳은 대자연의 한복판이었다.
5월에 빙하 트래킹과 스키 활강 도전
사람들의 도전은 그치지 않았다. 일반 관람객은 에귀뒤미디 여기저기를 다니고 사진을 찍거나 사방에 다 보이는 투명한 유리 상자 안에 잠시 서서 스릴을 느끼는 정도에 그쳤다. 하지만 모험가들은 전문 장비를 착용하고 전문 가이드의 동행 아래 에귀뒤미디 전망대에서 좁은 출입문을 거쳐 밖으로 나가고 있었다. 장비에 따라 일부는 설산 트래킹을, 일부는 발레 블랑슈라는 계곡을 지나 샤모니로 이어지는 스키 코스로 향하고 있었다. 멀리 수백m 아래에서 눈길이나 빙하를 걷는 사람들이 까마득하게 보였다. 스키 코스는 산에 가려져 보이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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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로 사라진 거대 빙하
더욱 충격적인 것은 몽탕베르 철도의 끝까지 올라가서 목격한 메르 드 글라스의 2022년 모습이었다. 빙하 세 개가 합류한 이곳은 길이 7.5㎞, 두께 200m의 빙하가 장관을 이루고 있다는 게 18세기 이곳을 찾아 처음으로 기록을 남긴 영국인의 목격담이었다. 하지만 2022년 5월 메르 드 그라스는 바닥의 흙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었다. 군데군데 남은 빙하가 보이는 정도였다.
샤모니몽블랑 관광사무소의 세실 그뤼파는 “눈앞에 나타난 현상은 기후변화로 그 두꺼운 빙하가 사라져 나타난 것”이라고 설명했다. 역 주변에 설치된 작은 박물관은 이를 과학적으로 설명하고 있었다. 탄식이 절로 나왔다. 알프스의 몽환적인 풍경은 현실과 거리가 있어 보였지만, 그곳에서 목격한 기후변화는 냉혹하고 분명한 사실이었다. 기후변화협약 당사자총회(COP)를 이곳에서 열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기차 종점에는 ‘그랑 오텔 뒤 몽탕베르 알 라 메르 드 글라스’라는 호텔 겸 식당, 카페가 있었다. 그뤼파의 도움으로 주인의 양해를 얻어 객실을 살펴봤다. 창밖은 신선의 땅이었다. 그뤼파는 “기차 막차가 끊긴 뒤 다음날 첫차가 올 때까지 그야말로 산새와 알프스의 봉오리와 함께 절대 고독을 즐길 수 있는 곳”이라고 표현했다. 알프스는 사방이 놓칠 게 없어 보였다. 파면 팔수록 매력이 샘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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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프스 바라보며 야외 스파
몽탕베르에서 기차로 내려오니 QC 테름이라는 이라는 이름의 ‘알프스가 보이는 야외 스파’가 기다리고 있었다. 물론 스파 시설이야 목욕과 찜질방 문화가 발달한 한국만 한 데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샤모니의 야외 스파는 눈앞의 풍경이라는 점에서 다른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스파 야외 욕장에 들어가고 근처의 평상에 누우면 눈앞에 알프스의 설산이 보인다. 왼쪽을 보면 설봉과 함께 몽탕베르로 올라가는 빨간 기차가 달리고 있다. 눈앞에는 작은 개울이 흐르고 그 옆에는 행글라이더 착륙장이 보인다.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샤모니를 굽어보고 있는 동그란 몽블랑이 눈에 들어온다. 바람이라도 솔솔 불어오면 도저히 스파에서 나가기 힘들어진다.
알프스는 사람을 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프랑스 오베르뉴-론-알프 여행은 이렇게 막을 내렸다. 프랑스의 다양성과 맛과 멋을 확인할 수 있는 여행이었다. 놀라운 것은 분명히 저잣거리를 돌았는데도 수도원에 머문 것처럼 마음이 맑아졌다는 사실이다. 자유를 만끽해서였을까.
글ㆍ사진=채인택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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