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윰노트] '추천사 전문 작가'로소이다

2022. 6. 3. 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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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체력 '걷기의 말들' 작가·생활체육인


책을 많이 읽는 독자라면 알 거다. 뒤표지에 대개 어떤 내용이 들어가는지. 핵심 카피 한두 줄과 책 내용을 아우르는 소개 글을 넣는다. 그것만 읽고도 책을 사고 싶게 만들려고 편집자들은 막판에 머리를 쥐어짠다. 또 다른 홍보 일환으로 줄줄이 추천사를 넣는 경우도 많다. 누가 추천사를 쓰는가. 저자와 친분이 있으면서 유명한 사람이면 가장 좋다. 적당한 지인이 없을 경우는? 책 내용과 관련이 있으면서 잘 써줄 만한 분들에게 따로 청탁한다.

굳이 추천사를 받아 책에 넣는 이유는 뭘까? 처음 등판한 신출내기 저자로서는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 믿을 만한 사람이 추천한 글을 읽으면 독자들 맘이 혹할 수 있다. 일종의 전문가 별점 효과랄까. 편집자 입장에서도 강력한 지지자를 얻은 것처럼 든든해진다. 운이 좋으면 추천사 문구에서 촌철살인의 홍보 카피가 얻어걸리기도 한다.

27년 동안 편집자로 살았다. 얼마나 많은 책을 만들었을까. 책에 들어갈 추천사는 또 얼마나 많이 청탁했겠는가. 아무래도 그때 쌓인 업보를 이제야 치르는 것 같다. 작가가 되고 나니 여기저기서 추천사를 써달라는 요청이 쏟아진다. 처음엔 마치 유명 인사가 된 것 같은 기분에 우쭐했다. 그까짓 글 몇 줄 쓰는 건 일도 아니라고 여겼다.

막상 하다 보니 가볍게 여길 일이 아니었다. 범생이 집단의 둘째가라면 서러울 나는 읽은 척을 못한다. 편집자 출신답게 원고를 꼼꼼히 읽고 난 후에야 추천이든 비판이든 가능하다. 게다가 교과서 같은 뻔한 글만 휘갈길 수는 없지 않은가. 짧은 글로 재치 있게 압축하려면 머리를 엄청 굴려야 한다. 그런데도 아예 원고료 자체가 책정돼 있지 않은 출판사가 부지기수다. 내 소중한 시간과 시력을 갉아먹는 열정 페이가 따로 없다.

들어오는 청탁을 다 받을 수도, 그렇다고 무조건 거절하기도 어려웠다. 고민 끝에 결정하기 쉽도록 나름의 원칙을 세워 봤다. 다음 경우엔 추천사를 쓰기로 했다. 첫째, 저자가 잘 아는 분일 때. 혹은 청탁하는 편집자가 친한 선배이거나 후배일 때. 이 정도 노동으로 알게 모르게 내가 입은 은혜를 갚을 수 있다면야. 둘째, 저자도 모르고 편집자도 모르지만 마음에 드는 잘 쓴 글일 때. 돈 주고 사볼 책을 미리 읽고, 귀퉁이에 이름까지 얹을 수 있으니 얼마나 영광인가. 셋째, 출판사가 적당한 노동의 대가를 지불할 때. 추천사 쓰기도 작가의 일이라고 생각하면 왜 안 쓰겠는가.

그래서 원칙대로 잘되고 있냐고? 아니, 여전히 거절하기보다는 쓰는 일이 많다. 생각해 봐라. ‘잘 아는 사이’라든가 ‘친한’ 관계, ‘마음에 드는’ 같은 말은 하나같이 수량화할 수 없는 조건들이다. ‘적당한 노동의 대가’ 역시 참으로 애매하다. 대개 작가의 글은 원고 매수로 글 값을 매기는데, 추천사는 원고지 1~2매 정도이기 때문이다. 원고의 분량보다는 추천사를 쓰는 작가 브랜드를 빌린다고 생각해야 한다.

원칙에 어긋나는데도 계속 추천사를 쓰는 이유는 뻔하다. 내 추천사가 붙어서 그나마 책이 한 권이라도 더 팔리면 좋겠다는 맘이 앞선다. 또한 내가 편집자였기에 추천사를 청탁하는 어렵고 복잡한 심경을 이해한다. 다만 열정 페이가 아닌 작가들 경제 사정에 적으나마 도움이 되는 일로 정착되기를 바란다. 매번 주저하는 나답지 않게 단칼에 안 쓰겠다고 거절한 적이 딱 한 번 있다. 잘 모르는 저자를 앞세워 덩치 큰 출판사에서 ‘공짜로’ 추천사를 써달라고 했을 때다.

작가가 책만 써서는 먹고살기 힘든 시절이다. 출판사 또한 책이 잘 팔리지 않는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럴 때야말로 더더욱 같은 길을 걸어가는 작가와 출판사가 서로 사정을 봐줘야 버티지 않나 싶다. 마침 1일부터 5일까지 서울국제도서전이 열린다. 모처럼 다시 코엑스 전시장에서 막을 연 책의 축제에 독자들도 동참해 주시길. ‘마녀체력’ 작가의 추천사가 달린 책들도 사주시고.

마녀체력 ‘걷기의 말들’ 작가·생활체육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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