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운동 최전선에 선 60명 여성들 60개 목소리

김남중 2022. 6. 2. 2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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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길] 우리가 구할 수 있는 모든 것
아야나 엘리자베스 존슨·캐서린 K 윌킨슨 엮음, 김현우 외 옮김
나름북스, 596쪽, 2만2000원
‘우리가 구할 수 있는 모든 것’은 기후위기 대응에 대한 비관론에 맞선다. 여기 싸우는 사람들이 있다고, 짜릿한 대안이 있다고,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고, 늦었지만 포기하기엔 아직 이르다고 알린다. 절망하거나 걱정만 하는 대신 행동을 시작하고 변화를 만들어내는 여성들의 목소리를 들려준다. 나름북스 제공


기후위기에 직면했으나 행동하지 않는다.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처한 문제다. 부정하거나 외면하거나 낙담하거나 포기하거나. 전 세계에 걸친 이 위기와 불안을 어떻게 해야 할까. 무엇보다 행동하는 힘을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우리가 구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읽는 것도 그 방법이 될 수 있다. 미국 기후운동의 최전선에 서 있는 활동가, 작가, 시인, 정치인, 저널리스트, 학생, 농부, 선주민(원주민) 등 60여명의 글을 묶은 책이다. 필자는 모두 여성들이고, 수록된 글들은 어느 한 편도 허술한 게 없다. 이 책은 기후위기 대응에 비관적인 분위기에 맞선다. 여기 싸우는 사람들이 있다고, 짜릿한 대안이 있다고,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고, 늦었지만 포기하기엔 아직 이르다고 알린다.


흔히 해법이 있어야, 희망이 있어야 행동할 수 있다고 한다. 이 책은 행동이 먼저라고, 당신이 먼저라고 얘기한다. 애비게일 딜런 지구정의 의장의 글을 보자. “변화를 만들기 위한 모든 성공적인 노력에는 맞아떨어지는 운 좋은 상황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내 경험상 늘 한 가지 필수 요소가 있다. 출발선에서 불가능할 정도로 멀어 보이는 목표를 향해 기꺼이 나아가는 단호한 사람들 말이다.”

시인 아다 리온도 지구의 운명은 우리에게 달렸다고 얘기한다. “…우리는 볼품없는 존재가 아니다/ 여기까지 왔고, 이만큼 살아남았다// 우리가 더 살아남기로 결정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더 격렬히 사랑하기로 한다면?// 신경망과 살덩이로 뭉쳐, 차오르는 조수에 맞서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다면// 수많은 침묵하는 바다와 육지를 대변할 수 있다면/ 우리의 몸을 바치기로 흥정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다른 이들과 지구의 안전을 위해/ 우리가 깨끗한 밤을 선언하고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다면….”

이 책은 변화를 만들기 위해 나선 사람들의 이야기다. 지나 매커시는 오바마 정부의 환경보호청(EPA) 청장을 지냈고 트럼프 대통령 취임 후 환경보호단체 책임자로 자리를 옮겼다. 35년간 공직자로 일했지만 환경보호 정책을 뒤로 물리려는 정부에 맞서 시민단체로 향한 것이다.

“당신이 일과 유산, 모든 아이를 위해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자 노력할 때, 이를 무위로 돌리려 혈안이 된 대통령을 상상해보라. 그런 모습을 보면서 나는 민주주의의 미래, 법치, 그리고 아이들이 건강하고 안전하며 지속가능한 세상에 살 가능성이 위태로워지고 있음을 확신하게 됐다. 트럼프 행정부의 취약계층 공격에 동요한 많은 사람처럼 나도 행동하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환경보호의 전례 없는 후퇴를 막기 위해 ‘땀 한 방울도 남김없이 쏟아부으려’ 노력했다.”

과학이 알려주는 기후위기의 진실은 공포스럽고 절망적이다. 인류가 대응해야 할 과제는 너무 광범위하고 시간도 부족하다. 어쩌면 너무 늦었는지도 모른다. 우리에게 제시된 과제를 한마디로 정리하면, 지구의 온도 상승을 1.5도 이하로 유지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2030년까지 전 세계 탄소 배출량을 절반으로 줄이고, 2050년까지 배출량이 순 제로에 도달해야 한다. 핵심은 전기에 있다. 자동차, 가정, 산업 등에 들어가는 모든 에너지를 전기화하고 그 전력을 100% 청정에너지로 공급하면 된다.

이게 가능하겠냐고 묻는 동안, 이를 방관하는 정치와 기업을 욕하는 동안, 누군가는 행동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성취한 300개 이상의 석탄발전소 퇴출은 대부분 5년에서 10년 동안 주와 지방, 지역에서 꾸준한 캠페인을 통해 이뤄졌다.… 불과 10년 만에 우리의 풀뿌리 운동은 불가능한 것을 해냈다.…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화석산업 중 하나를 진부한 것으로 만들었다.”

비관론은 재고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아직 해보지 않은 일이 많다. “이 나라 인구의 10%가 일주일에 단 하루라도 진지하게 참여한다고 상상해보라. 우리의 가능성은 지금과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 우리를 절망으로 몰아넣는 기존 시스템은 서로를 떼어놓는 방식에 전적으로 의존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우리가 지금 역사상 매우 특별한 순간을 살아가고 있음을 두렵게, 그리고 흥분되게 일깨운다. 세계의 종말과 세계의 재구성이 동시에 가능성으로 존재하는 시대에 우리가 산다는 것은 엄청난 일이다.

“20세기는 파괴와 기만의 시대로 기억될 것이다. 바다는 플라스틱으로, 우리의 폐는 독으로, 마음은 기후 부정으로 채웠던 시대로. 모두의 노력과 더불어 21세기는 치유의 시대가 될 수 있다. 우리는 이번 세기에 탄소 오염을 줄이고 배출 곡선을 아래로 향하게 할 수 있다. 또 친구와 이웃, 바다 건너편 사람들과 미래 세대가 오염 없이 살아갈 정책을 시행할 수 있다.”

기후변화는 위기이면서 동시에 기회다. “인간과 지구의 관계를 회복하고 사회를 재정립하기 위해 생태계와 공존할 뿐 아니라 우리 삶을 더 낫게 하는 기회” “파괴적 자본주의를 종식하기 위한 도전” 그리고 그린 뉴딜을 통해 “미국 역사상 가장 정의로운 경제 동원”을 만들어낼 기회, “우리 주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공동체임을 깨닫는” 기회 말이다. 미네소타주 하원의원을 지낸 기후활동가 케이트 크누스는 “세계가 재편될 것이라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면서 “이는 지엽적인 변화가 아니라 근본적으로 다른 시스템이 출현하는 변화다”라고 썼다.

탄소 수치는 계속 증가하고 상황은 악화하고 시계는 째깍거린다. 맞다. 하지만 저항이 증가하고 대안이 발견되고 시스템이 변하고 있다. 이것도 사실이다. 이 책은 경고에 치중된 기후위기 담론 속에서 행동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한다. 기후 대응의 희망을 정치와 기업에 거는 익숙한 시각을 돌려 지역과 공동체, 풀뿌리운동에 주목하게 한다. 특히 이 시대의 가장 중요하고 어려운 주제를 개인적인 이야기와 우아한 에세이로 풀어낸 점이 돋보인다. 독자들을 기후운동으로 초대하고, 기후운동에 활력과 영감을 제공한다. 지금 꼭 필요한 책, 거듭 읽어야 할 책이다. 수록된 마지 피어시의 시 ‘도움이 되는 존재’가 초대장처럼 보인다.

“…나는 스스로 무거운 수레에 소를 매는 이들을/ 엄청난 인내심으로 물소처럼 끌어당기는 이들을/ 전진하기 위해 진흙과 오물 속에서 안간힘을 쓰는 이들을/ 해야 할 일을 반복, 다시 반복하는 이들을 사랑한다// 나는 일에 파묻힌 사람들과/ 추수하러 밭에 가는 이들과/ 줄 맞춰 짐을 전달하는 이들과/ 자리만 꿰찬 게으른 관리 인사가 아닌/ 음식이 들어오거나 불을 피워야 할 때/ 같은 리듬에 맞춰 움직이는 이들과 함께하고 싶다….”

김남중 선임기자 nj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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