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쓸모 있는 직원" 깨닫게 해야 좋은 상사

2022. 6. 2.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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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호 교수의 '뉴노멀 시대, 직장인 리더십 키우기']

언젠가 수업에 들어와 꾸벅꾸벅 조는 4학년 학생에게 혹시 어디가 아픈지 물은 적이 있다.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하기를 수업 끝나고 인턴을 하러 가야 하는데 어젯밤에 잠을 못 자 지금 자둬야 한다는 것이다. 채용과 연계된 인턴이라 최선을 다해야 하니 거기서는 조는 모습을 보일 수 없다고 덧붙였다. 그 학생은 인턴 기간이 끝나고 정식직원으로 채용됐다. 그렇게 원하던 직장에 들어갔으니 열정을 불사를 줄 알았던 그가 ‘워라밸(Work-Life Balance)’을 외치며 칼퇴근에 열심이다.

“선약이 있어서 먼저 가겠습니다.” “필라테스 가려고요.”

회식이나 갑작스러운 야근이 떨어지면 어김없이 듣게 되는 막내들의 우렁찬 외침. ‘라떼’는 상상도 못할 일이라고 한숨 쉬지 말고 무슨 ‘워라밸’이냐고 푸념도 마시고 이 글을 읽어보시라.

워라밸은 신조어가 아니다. 1970년대 영국 워킹맘 협회에서 처음 쓴 단어라고 하니 족히 50년도 더 된 셈이다. 직장인이 워라밸을 추구하는 것처럼 학생도 ‘스라밸’을 찾는다. ‘School-Life Balance’다. 한숨, 푸념 다 쏟아내고 싶지만 그만큼 대학 생활이 예전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바빠졌다는 얘기다.

‘인생 백 년 가기가 달리는 말같이 빠르니 학도야, 학도야 공부하라’는 문구가 그야말로 무상하다. 그런데 권학가(勸學歌)보다 더 오랜 구절이 있으니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 늙어지면 못 노나니’가 아닌가. 나이 들면 비행기 오래 타기도 힘드니 젊었을 때 부지런히 다니며 견문도 넓히고 가족과 시간도 보내겠다는데 그다지 틀린 말은 아닌 듯하다.

심리학자 에이브러햄 매슬로(Abraham Maslow)는 인간의 욕구를 위계(hierarchy)로 설명한다. 인간은 가장 원초적인 생물학적 생존이 만족되면 안전을 추구한다. 먹고 자고 입고 사는 문제, 즉 의식주가 먼저라는 얘기다. 여기서 소유욕도 생기고 단순히 사는 차원을 넘어 얼마나 잘 사느냐의 문제도 대두된다. 그다음에는 사람들과 사귀고 그룹을 구성하는 소속 욕구가 생기는데 존경이나 명예, 권력에 눈을 돌리게 된다. 또 이게 만족되면 마지막 단계로 자아실현을 추구하게 된다. 이른바 필요의 위계법칙(Hierarchy of Needs)이다.

복잡한 이론 같지만 의미는 간단하다. 가장 절실한 필요나 욕구가 해소돼야만 그다음 단계로 나아갈 동기가 생긴다는 것이다. 워라밸이나 스라밸도 가장 원초적인 것만 보장받은 채 다음 단계를 희생하면서까지 직장이나 공부에 매진하고픈 동기를 찾을 수 없다는 계산의 결과다.

왜 수업 시간에 조는 학생이 인턴 근무할 때는 열정을 불태우고 정작 원하던 직장에 들어가면 열정보다는 워라밸을 찾게 될까.

워라밸이나 스라밸 모두 동기 유발과 관련된다. 아무리 노력해도 바늘구멍을 뚫을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다. 뚫지 못하면 잃는 게 너무 많다. 열심히 일해도 임원 승진하기 힘들고 안 쓰고 모아도 집 한 채 장만하기 힘들다면 노력과 시간을 허비하지 말자는 것이다. 가족과 추억을 만들거나 자신에게 더 많이 투자해 보디프로필이라도 한 장 찍어놓으면 인스타그램에 올릴 사진이라도 남으니 말이다.

결국 자신의 삶을 희생하고 직장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칠 동기보다 내 삶을 택하는 동기가 더 크다는 것이다. 상사보다 신입사원이 더 무섭다는 요즘 직장 생활이다. 입사 100일을 축하해주거나 직장에 빨리 적응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전담부서도 생겼다고 한다. 소위 ‘온보딩(Onboarding)’으로, 온보딩의 핵심도 결국에는 동기 부여다.

대기업이나 중소기업 할 것 없이 대부분 회사가 동기를 부여하는 저마다의 방식이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연수나 워크숍, 오리엔테이션 등인데, 주로 단결심을 키우는 데 목적을 둔다. 구기대회나 합창, 장기자랑 등도 낯익은 형태다. 이 과정에서 스타가 탄생하기도 하고 입사 동기 간의 의리도 피어난다.

하지만 이런 과정을 통해 얼마나 동기 부여가 될지는 미지수다. 연수나 워크숍을 다녀와서 애사심이 돈독해진다든지 업무 태도가 눈에 띄게 달라지면 좋겠지만, 그동안 밀린 업무를 하느라 스트레스만 더 받는 경우도 있다. 단결심이나 동기애가 생긴다고 동기 부여가 되는 건 아니다. 더구나 상시 채용이 확대되면서 입사 동기라는 개념도 사라지고 주입형 오리엔테이션을 하려고 해도 입사 월차가 다양해 수준을 맞추기도 힘들다.

동기는 뭔가를 해야 하는 쓸모를 깨달았을 때 생긴다. 1930년대 어느 날, 월트 디즈니는 자신의 스튜디오 직원들에게 구내 카페테리아 무료 식사권을 나눠 준다. 그날 저녁 그는 직원들에게 세 시간 반 동안 그의 첫 장편 만화영화 구상을 설명한다. 이미 미키마우스와 그의 친구들인 도널드 덕, 구피와 플루토의 단편 만화영화 시리즈로 성공을 맛보던 직원들은 디즈니의 첫 장편 만화영화 아이디어에 흥분한다. 대표의 비전을 공유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1937년 12월 21일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가 개봉되고 대공황 와중에서도 150만달러라는 박스오피스 수입을 올린다. 무려 8개 부문에서 아카데미상도 받았다. 단편 만화영화 스튜디오가 글로벌 기업으로 발돋움한 순간이다.

디즈니사는 사내에 리더십연구소(Disney Institute)를 두고 있다. 인-하우스 인큐베이팅은 회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와서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는 소리를 들어야 하는 자괴감에서 벗어나게 해준다. 조직문화를 존중하면서 하나하나 개선해나갈 여유도 갖게 된다. 디즈니 연구소는 우선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을 고용해 회사의 공동목표를 이해하도록 훈련시키는 기능을 한다.

새내기에게 동기를 부여한다는 것은 팔로워십을 배양하는 것과 같다. 팔로워십은 리더십이라는 동전의 다른 한 면이다. 좋은 리더는 자신의 전문 분야 밖에서는 좋은 팔로워가 되는 지혜를 갖고 있다. 좋은 팔로워가 돼봐야 훌륭한 리더가 될 수 있다. 리더십을 배양한답시고 모두를 리더로 키우는 건 불가능하다. 모두가 임원이 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디즈니에서는 커다란 놀이공원 자체를 사원의 리더십을 키우기 위한 실험실로 활용한다. 놀이공원 자체가 움직이는 랩이 된 것이다. 따로 연수나 교육을 받는 번거로움도 없다. 평상시와 다름없이 일상 근무를 하면서 디즈니가 보유한 세계 최고 기술과 능력이 어떻게 발휘되는지 볼 기회를 마련해준다. 개개인이 그 결과(output)에 무엇을 보태고 어떻게 향상시킬 수 있는지 깨닫는 과정을 거치며 회사를 ‘그들’이 아닌 ‘우리’라는 1인칭으로 바라보게 된다는 얘기다. 이 과정에서 자기 일이 아니면 아예 할 생각도 하지 않는 ‘철밥통 마인드’가 없어진다.

용인 에버랜드에서 놀이기구 직원을 캐스트로 부르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놀이공원 전체를 하나의 무대로 보고 이들은 연기자 역할을 한다는 설정이다. 최근 한 놀이기구 캐스트의 영상이 1000만 조회 수를 넘으며 화제가 되고 있다. 계약이 만료됐지만 에버랜드 광고까지 찍는 등 계속 그곳에 머물 것으로 보여 더더욱 화제다. 캐스트 중에는 스타가 많아 15만 구독자를 보유한 유튜버도 있다고 한다.

구성원의 성장이 회사의 성장이고 회사 발전이 구성원의 발전일 때 동기도 부여된다. 굳이 임원으로 승진하지 않아도 자신에게 쓸모가 있는 재능을 키울 수 있다면 자신의 삶도 알차고 풍부해진다. 비로소 일과 삶이 균형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진짜 워라밸 아닐까.

[김용호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61호 (2022.06.01~2022.06.07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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