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 낚시 당하지 않는 법

김상기 2022. 6. 2. 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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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강호에서 오랫동안 기삿거리를 찾아 썼다.

여기저기서 낚였던 뼈아픈 경험을 토대로 '낚시를 당하지 않는 법'을 문서로 정리했고, 인터넷 기사 작성이 아직 어색한 후배들에게 비법인 양 하나씩 전해주는 여유를 부리기도 했다.

비법서 도입부에는 인터넷에 대한 환상을 깨야 한다는 당부로 채웠다.

자, 이렇게 비법서를 쓰는 고수가 됐으니 이제 낚시를 당하지 않게 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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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기 콘텐츠퍼블리싱부장


인터넷 강호에서 오랫동안 기삿거리를 찾아 썼다. 부끄럽지만 그러는 사이 참 숱하게 속았다. 어찌나 많이 당했는지 ‘이제 웬만한 유형은 다 속아 봤으니 더 속을 일은 없겠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내 머릿속에는 ‘낚시 회피 내공’이 쌓였으며 독은 오히려 ‘낚시 면역 시스템’을 구축하는 약이 됐으리라 위안 삼았다. 여기저기서 낚였던 뼈아픈 경험을 토대로 ‘낚시를 당하지 않는 법’을 문서로 정리했고, 인터넷 기사 작성이 아직 어색한 후배들에게 비법인 양 하나씩 전해주는 여유를 부리기도 했다. 다양한 사례가 축적된 만큼 비법서 또한 장황했는데 요약하면 간단했다. ‘묻고(ask) 더블 체크로 가!’쯤 되겠다.

비법서 도입부에는 인터넷에 대한 환상을 깨야 한다는 당부로 채웠다. 현실 세계에서는 사람 눈동자의 미세한 떨림으로 참과 거짓을 밝히는 거짓말탐지기 같은 기계가 있다. 하지만 상대방이 보이지 않는 인터넷 세상에서는 거짓과 허풍과 과장을 단숨에 집어내기란 애초부터 어려운 일이다. ‘사이버 월드’는 월드와이드웹이라는 네트워크를 통해 순식간에 정보를 공유하며 우리를 자유롭게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때때로 ‘사이비 월드’가 될 수 있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 그래서 인터넷에서 뭔가 찾아 기사로 만들려면 의심부터 해야 하고 몇 번이고 묻고 확인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는 조언이었다.

자, 이렇게 비법서를 쓰는 고수가 됐으니 이제 낚시를 당하지 않게 됐을까. 안타깝게도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2년 전인가. 동생이 지하철 성추행범으로 몰려 억울하게 실형을 선고받았다는 형의 호소를 기사로 썼다가 낭패를 봤다. 형이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린 글은 정교했다. 인터넷 호소 글의 지평을 한 차원 끌어올렸다는 평가와 함께 네티즌들의 탄성이 이어졌다. 그는 뉴턴 제2 법칙인 ‘가속도의 법칙’(F=ma)을 적용해 동생이 피해자에게 붙지 않기 위해 얼마나 큰 힘을 써야 했는지를 계산해 제시했다. 동생의 오른손이 피해자의 옷에 닿은 것은 평소 클래식 기타를 쳤기 때문이라면서 해외 유명 기타리스트가 인터뷰할 때 습관처럼 손가락을 계속 움직이는 동영상을 첨부했으며, 아울러 철도경찰의 채증 영상을 초 단위로 분석해 동생이 누명을 썼다고 주장했다. 무엇보다 스마트폰 너머로 들리는 나직하고 확신에 찬 형의 목소리는 호소 글에 대한 신뢰도를 높여 주었다.

형의 주장을 담은 기사에는 하룻밤 사이 1만여개의 댓글이 달렸다. 호응이 커지자 기자회견을 열겠다던 형은 그러나 느닷없이 ‘동생이 성추행한 게 맞다’며 기자회견 취소를 통보했다. 법원은 1, 2심 판사들이 채증 영상 원본을 보고 성추행을 확인해 유죄로 판단했고 이미 과거에도 동종 범죄로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피고인 또한 공소사실을 모두 인정했다고 설명했다. 물론 기사에 형의 주장이 거짓일 가능성을 언급했지만, 결과적으로 난 수많은 독자를 낚은 셈이 됐다. ‘묻고 더블 체크로 가’의 비법은 무용지물이었다. 그래서 내가 내린 최종 결론은? ‘낚시를 당하지 않는 비법 따윈 없다’다. 같은 사람이나 같은 수법에 또다시 당하지 말자고 다짐하는 수밖에.

따지고 보면 정치인들의 허황한 공약은 인터넷 낚시의 작동 원리와 흡사하다. 아무리 눈을 부릅떠도 낚이지 않기가 어렵다. 지난 대선에선 ‘병사 봉급 월 200만원’이 이대남을 설레게 했고 ‘코스피 5000시대’가 동학 개미의 마음을 훔치지 않았던가.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끝이 났다. 지역 일꾼을 뽑는 선거인데 무책임한 약속들이 쏟아졌다. 그것이 참인지 거짓인지 지금으로선 알기 힘들다. 그러니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공약이 잘 지켜지는지 감시하고, 거짓말이라면 다신 표를 주지 않는 방법뿐이다.

김상기 콘텐츠퍼블리싱부장 kitti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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